친구가 글쓰는 사람에게 응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가 쓴 글을 읽고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해 주라고 말했어요. 그게 계속 쓸 힘이 된다고요. 이 리뷰도 여러분에게 계속 쓸 힘이 되면 좋겠어요. 리뷰는 한 명의 독자로서 드리는 의견일 뿐이니 참고만 하세요. 중심은 쓰는 사람에게 있으니까요.
찡해지는 순간 - 밤비
밤비가 “진정한 대화”라고 느낀 순간이 담겨 있는 글이네요. 가벼운 농담을 나눴던 친구,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선배, 내 표정과 말투를 따라 하는 애인까지. 밤비가 “찡해지는 순간”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순간들로 보였어요. 힘들 때 만난 B 선배의 행동이 “동정심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했는데요. 누군가 힘들 때 동정이 아닌 진정한 위로를 한다는 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더 각별한 장면 같아요. 그날 선배의 어떤 행동과 말을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 장면이 나오면 좋겠어요. 내게 각별하게 남았다는 건 이유가 있고, 그걸 썼을 때 의미가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그 순간 내 마음에 머물러 보세요. 밤비 말대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거예요.
은유 - ‘대화’가 중심 키워드인 글이므로 마지막 단락에 ‘글쓰기’로 끝나기보다는 대화에 관한 것으로 마무리가 되면 더 좋겠어요.
앞서 걷는 사람 - 키키
“나는 아빠 딸도 엄마 딸도 아닌 그냥 큰 딸.”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아요. 사람은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고 느낄 때 안전감을 얻잖아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큰딸’이라는 의무를 짊어진 어린 필자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이 글에는 중요한 전환(“내가 (동생보다) 상대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이 되니”)이 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부모님이 “든든한 큰딸”이라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필자의 변화나 성취가 있었던 건지 궁금했어요. 몇 살 때쯤 일인지도 궁금해요. 이 부분이 나와야 동생과의 관계 역전이 납득돼요. 마지막에 “동생에게 받은 사랑”을 떠올리는 대목이 뭉클한데요. 나는 동생에게 어떤 사랑을 받았을까요? 동생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 적어 보세요. 동생에게 받은 사랑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줄 때” 필자와 독자 모두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갈 거예요.
은유 - “안 좋은 것들을 자꾸 덮으니 결과적으로 나는 좋은 것들만 남은 사람이 되었다.” 통찰 있는 문장이네요. 덮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면 좋은 글감이 됩니다.
이제 당신을 원망할 수 없어요 - 이네
“여성으로서 받았던 추행과 위협들은 사실 통행 시각과는 크게 관련되지 않았다.” 핵심을 찌르는 문장입니다. 자기 경험을 근거로 사회적 통념을 뒤엎는 문장이라 좋았어요. 여전히 통금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에게 싸울 수 있는 언어를 주네요. 필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가면서 (...) 원망의 대상을 잘못 정했다는 낭패감이 든다.”라고 했는데요. 결혼과 육아가 나에게 준 영향, 결혼과 육아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자세하게 적어 주세요. 그게 이 글에 주제니까요. 필자는 어떤 계기로 원망의 대상을 잘못 정했다는 발견을 한 건지 궁금해요. 글에서든, 삶에서든 생각이 바뀌는 건 중요한 전환이라서요. 그 전환의 순간, 계기를 포착해서 쓰면 글에 메시지가 생깁니다.
은유 - “한번도 가진 적 없는 밤을 되찾을 수 잇을까?” 마지막 문장이 좋습니다.
오르막 내리막 - 김규리
등산 안 하던 사람이 등산하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담은 글이네요. “앞서 있는 누군가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탈락할 걱정도 없다.”, “내 발걸음에 집중하고 갈림길에서는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문장들이 좋아서 밑줄 그었어요. 혼자 하는 등산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명상 같네요. 이 글을 읽고 나니, 나도 동네 뒷산 정도는 가볍게 혼자 갈 수 있겠다는 용기도 나요. 이 글에서 중요한 대목이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 등산을 가게 됐다.”인데요. ‘계시’라고도 표현했는데, 필자는 왜 갑자기 등산을 가게 된 것일까? 많은 운동 중에 왜 등산이었을까도 궁금했어요. 사소한 동기라도 좋으니 그때 등산을 가게 된 마음을 더 적어주세요. 나는 무엇을 찾아 산으로 갔는지, 그 욕구가 보여야 독자도 이 여정에 몰입해서 따라갈 수 있어서요. “첫 등산이 끝난 후, 나는 매주 꼬박꼬박 산에 갔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도 한 번 짚어주세요. 전환이 일어나는 대목에서는 머물러서 내가 왜 그랬지?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러면 이 경험을 글로 쓰고 싶었던 이유,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드러날 거예요. (필자는 몇 살인지, 등산한 지 얼마나 됐는지 배경이 되는 정보도 채워 주세요.)
은유 - 마지막 두 단락 (기억도 나지 않는~ 느끼고 싶다.)를 덜어내고 “이 모든 것은 산이 내게 알려준 몸의 깨달음이다.”라고 끝나도 좋겠습니다. 문수산 사진 무척 아름답네요.
남해 - 르미
밥을 푸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손녀와 손자를 다르게 대하는 할머니. 이 장면 하나로 할머니의 성차별적 가치관이 확연하게 드러나네요. 필자가 자기 안에 맺혀 있던 장면을 풀어내니 몰입이 돼요. 저는 이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밥 푸는 사건부터 글을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전까지 남해가 왜 싫은지, 할아버지와 관계는 어떤지, 에둘러 가는 감이 있거든요. 이 글은 할머니의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그 이야기로 직진해 주세요. 이외에도 할머니와 관련된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참에 모조리 쏟아내면 좋겠어요. 독자로서 제가 궁금한 건 할머니가 아니라, 그 사건을 겪은 필자거든요. 필자는 그때마다 마음이 어땠는지, 이 일은 필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요. 글의 주제를 할머니의 성차별 이야기로 모으고, 그 경험을 통과해 온 필자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자세하게 들려주세요.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글이 될 거예요.
은유 - “몸에 열이 나서 볼은 벌개지고 속은 답답해졌다”는 걸 보니 꼭 써야할 글이었네요. “명치에 얹힌 말이 밑으로 내려가 사라지”는 글쓰기가 계속 되기를.
배웅 - 구름돌
저도 친구가 죽은 뒤 주변에 안부 묻는 습관이 생겼어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는 글입니다. 그날 밤 “온 힘을 다해 뛰는” 어린 필자의 모습이 그려질 땐 가슴이 아팠고, “꼭 엄마를 바라보며 배웅”하는 필자의 모습에서는 절절함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편, 새벽 시간 잠을 이겨내면서 배웅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구름돌이 새벽잠을 이기며 했던 수많은 배웅이 아버지를 향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 글에서 구름돌이 아버지를 향한 자기 마음을 더 풀어내도 좋겠어. 아버지를 배웅하지 못한 안타까움, 시간 흐른 지금 아버지에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 할 수 있다면 그날 아버지에게 선물하고 싶은 배웅까지. 아버지를 중심으로 구름돌의 마음을 더 마음껏 풀어내 써도 좋겠어요.
은유 - “슬프지만 최소한의 사랑을 담은 배웅”의 가치를 느끼는 글입니다. 글이 생생해서 몰입했습니다.
가정환경, 부유하는 의미 - 산스
저도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어요.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할수록 더 잘 들렸다는 구절이 공감이 가요. 어른들에게 늘 안테나를 세우는 아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네요. 어른 이야기를 들으면 산스는 가족 하면 ‘가정환경’을 떠올리게 됐고, 자기 행동을 검열하게 됐다고 했는데요. 이후 “대학 졸업 때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를 느꼈다”라고 했는데, 그 계기가 궁금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길래 ‘나’에 관해 생각하게 됐을까요? 사소한 거라도 적어 주세요. 그 후 산스는 나를 알기 위해 “내가 들여다보는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데요. 산스의 나이, 가족의 직업이나 사는 곳 등등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그려볼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가 나오지 않아 궁금했어요. 독자가 가족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나와 가족에 관한 정보를 더 주세요. “엄마의 초록 사랑이 우리 집 식구들의 카키색 옷 취향을 만들었다” 이 발견이 재밌었는데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질문한다면, “엄마의 취향이 왜 가족들의 취향이 되었을까? 다른 가족 구성원의 취향도 모두의 취향이 되었나?” 생각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글을 쓰면 질문을 던지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니, 쓰면서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던지고 산스만의 답을 찾아보세요. 산스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거예요.
은유 - 가족 알아가기 실천 사례로 글이 끝나니까 흥미롭습니다. 다음 질문은 무얼까, 궁금하고요.
연지 씨가 궁금한 이유 - 백리향
목욕탕에서 식당으로, 족발집에서 오락실로, 다시 레스토랑으로.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연지 씨를 보며 감탄했어요. 연지 씨가 이렇게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장사를 벌일 수 있었던 이유,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생업이 아닌 생활에서도 어머니의 남다른 생활력을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적어줘도 좋겠어요. 그러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글에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주어 몰입해서 읽었어요. 첫 장면의 아버지 이야기도 생생했어요. 하지만 짧은 글에서는 도입에 나오는 인물이 곧 중심인물로 읽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글의 주인공은 연지 씨잖아요. 연지 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지 씨 이야기로 끝나면 좋겠어요.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글감, 주제만 다루는 것이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됩니다. 마지막에 필자가 왜 엄마한테 인색할까, 질문 던지는 대목도 좋았어요. 당연하다 여겼던 감정에 질문을 던지는 것, 글쓰기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시간이 인터뷰 과제인데, 어머니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은유 - 변한 아버지에겐 관대하고 희생한 엄마에 대해서는 점점 더 인색해지는 이유가 무얼지, 좋은 질문입니다. 그 생각을 끌고가서 쓴다면 좋은 글이 될 거 같아요.
언니 - 돌멩이
저는 첫째라서 늘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동생도 서운한 게 있겠구나 싶어요. 할머니가 “맛있는 박카스는 언니만” 줬으니 어린 필자가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엄마의 “남동생보다 언니를 더 챙겼”으니 필자는 늘 외톨이인 기분이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어머니의 행동이나 말이 나오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별을 한 건지 그려지지 않았어요. 돌멩이가 어머니한테 서운했던 장면을 붙잡고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박카스 이야기처럼요) 그래야 독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독자의 마음에 더 공감할 수 있어요. 할머니, 어머니, 수정 전에는 시어머니까지. 여러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희는 한 장 반의 짧은 글을 쓰는 이 글에서는 한 분만 다루면 좋겠어요. 돌멩이가 가장 애착이 가는 존재, 그 존재가 첫째 사랑으로 돌멩이를 서운하게 했던 그 장면에서 출발해 보세요. 아마 어머니가 아닐까 싶어요.
은유 - 네번째 단락에서 윗부분과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부분을 덜어내고 지금의 생각 “부모님의 기대가 첫째를 향해 있는 동안 내가 누린 자유”에 대한 부분을 강화하면 더 재밌는 글이될 것 같아요.
무궁화아파트 - 썸머
“우리집만 빼고 주위는 급속히 발전하고 개선되는 것 같았다.”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에서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다니 특별한 경험이네요. 커튼 수술 만드는 부업부터 치킨 장사까지 “주거 공간이자 생업의 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려요. 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무궁화아파트에 살던 시절을 “우리집이 가라앉는 거 같아 매사 위축되기도” 했지만, “피할 수 없는 관심을 받으며 안전하고 무탈하게 자랐던 시절”라고 해석하는데요. 이렇게 글을 끝내려면 무궁화아파트에서 “안전하고 무탈하게” 자랐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필요해요. 그런데 글이 끝날 때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 글을 마무리하기가 어렵거든요. 저는 안전하고 무탈한 공간이 아니었어도, 무궁화아파트(시대 변화를 압축해 놓은 주거 공간이자 생업의 장)가 가진 의미가 충분해 보여요. 편안하게 힘 빼고 화자가 느낀 그대로 마무리해도 좋겠어요. (“위축되고”, “가라앉는” 느낌이었던 유년의 공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서 다른 이야기 없이 이대로 끝나도 좋고요.)
은유 - 무궁화아파트. 이름조차 문학적이네요. 시대와 개인의 서사가 다 들어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시작 - 마리오
“펜을 움켜쥐는 동안 삶을 움켜쥘 힘이 자랐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라 밑줄 그었어요. 글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이 문장이 환기해 주네요. 쓰기의 세계로 돌아온 걸 환영해요. “마음에 맺힌 망울을 사색이나 글로 풀던 경험”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떠난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지원을 끊겠다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일을 시작한 지 6년. 6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회사의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은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그 이후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요. 회사에서 일하면 어땠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마리오가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어떻게 그런 의지를 낼 수 있었는지. 하나하나 풀어써 주세요. 문창과에 갈 때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도 적어 주세요. 독자는 궁금한 걸 못 참는답니다.
은유 - 쓸 사람은 어떻게든 쓰게 되네요. “6년 전 봉인해버린 혈기”가 다시 팔딱거리게 될 예고편 같은 글이었습니다.
무서움의 실체를 떠올리며 - 노마드
귀신을 무서워하는 필자가 귀여워 웃다가 강도가 나오는 장면에서 철렁했네요. “강도만 당한 게 천만다행” 저도 이런 위로를 했었는데, 반성하게 돼요. 고맙게도 이 말이 왜 문제인지 필자가 정확하게 알려주네요.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과 선을 긋고 있는 기분이라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글에서 필자는 혼란스럽다고 했지만, 저는 필자가 이 문제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느꼈어요. 자신을 믿고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보세요. 그 말이 왜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과 선을 긋는다고 느꼈는지, 선을 그으면 왜 나는 마음이 불편한지를요. 노마드의 솔직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배움이 될 거예요. 서두에 나오는 귀신, 놀이기구 이야기들은 필자가 겁이 많다는 걸 설명하는 내용인데요. 재미있지만, 길어서요. 내가 겁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만(한두 문장으로만) 줄이면 좋겠어요.
은유 - 마지막 문단이 좋네요. 피해자는 늘 원인을 찾는데 찾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대비가 안 되는 거 같아요.
구부러진 손가락 - 목소리
아이들의 옷을 매일 삶고, 양파를 잘게 다지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필자가 그 장면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왔나 봐요. 아니라면 이렇게 생생하게 쓰지 못했을 테니까요. 엄마에 관한 묘사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글입니다. “이제 엄마의 몸과 마음만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필자의 마음에 공감이 갔는데요. 이 글에는 엄마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요. 아픈 엄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누구의 돌봄을 받는지 써 주세요. 엄마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필자가 어떤 자리에서 ‘엄마의 자기 돌봄’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안 그러면 고민도 글도 추상화되어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자세하게 쓴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써 주세요.
은유 - “유통기한 넘지 않은 새 화장품도 찍어 바르면서 지내면 참 좋겠다”는 문장이 엄마의 검약한삶과 필자의 세심함을 보여줘서 좋네요.
기권합니다 - 두유
부모가 아이의 침대에서 새벽 2시까지 잔다니. 충격이에요. 그 아이 마음은 어땠을까요. 생각하면 먹먹해요. 특목고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난 학생들의 마음과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인데요.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한 특목고 이야기를 직접 들어 좋았어요. 특목고는 “평범한 십대가 버티기엔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곳이었다.”라고 했는데요. 지금 나온 내용만 보면, 특목고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다-> 경쟁이 치열해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온다 -> 좌절해서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생긴다”의 논리로 보이거든요. 그러면 이 좌절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읽혀요. 학교에서, 어른들이, 사회 제도가 어떻게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았는지, 그 시스템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공부는 못할 수도 있는 건데(못하니까 배우는 거기도 하고)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이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문화가 무엇인지 고발해 주세요. 자세히 적어서 특목고를 향한 사람들의 환상을 확실하게 깨주세요.
은유 - 특목고 준비하면서 읽은 책 제목들. 십대 때부터 성공지상주의를 심어주는 시대상을 잘 보여주네요. “등수가 안 나오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해서라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대목이 좋아요. 스스로 다독이며 힘든 시기를 잘 통과한 한 아이가 보여서요.
여자들의 흔한 다짐과 나의 경우 - 선우
“자기 갈증을 내게 은근히 투영”했던 엄마. 글쓰기를 “자유로운 표현의 창구이기 이전에 평가의 매개”로 느끼게 했던 엄마. 필자는 엄마를 떠올리며 “글로 인정받아 돈 벌고 싶은 마음은 내 것일까, 엄마의 유산일까.”라고 질문하는데요. 무엇 하나를 답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저는 필자가 엄마에게 받은 영향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좋겠어요. 답을 먼저 내리기보다는 과거를 뒤져서 펼쳐본다는 마음으로요. “엄마한테 칭찬받는 게 즐거웠”다고 한 구절이 나오는데, 엄마는 어떤 칭찬을 했을까 궁금했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그만큼 영향을 받은 장면이니까요. 어머니가 썼던 글은 장르가(수필, 소설) 나오는데, 필자는 어떤 글을 쓰려고 하는지, 장르나 주제가 나오지 않아 궁금합니다. 글에 관한 이야기이니 필자가 쓰려는 글의 장르나 주제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면 좋겠습니다.
은유 - 첫 독자이자 준엄한 비평가를 엄마로 둔 아이의 글쓰기. 여기서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보여요. 문체가 차분한데 내면의 격정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용돌이를 잘 풀어내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않은 일에 의문 가지기 - 들개
저에게는 이 글이 ‘실천적 이해’를 향한 갈망처럼 다가왔어요. 머리로만 아는 이해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이해요. 그러려면 자기 삶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세밀한 시선으로 여성의 삶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했지만, 저는 들개가 글을 쓰면서 여성으로서 자기 경험을 발굴해 냈다고 봤어요.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한 일, 외모를 지적하는 직장 상사(..), 대학 때 과 내에서 여학우들 외모 순위를 매겼다는 남자 선배들.” 저도 겪었던 일이라 이 부분이 특히 공감갔어요. 이 글에는 많은 사례가 나오는데, 이 사례들을 나는 왜 쓰고 싶었을까, 이 글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게 뭘까 떠올려 보세요. 에세이를 쓸 때는 항상 경험을 먼저 자세히 쓰고, 그걸 왜 쓰고 싶었는지, 그걸 통해 뭘 말하고 싶었는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이어가 보세요.
은유 - 하나씩 구체적인 장면을 드라마 장면처럼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써보면 글이 원론적인 문제제기에서 나아갈 수 있고, 쓰는 재미가 더 클 거예요.
엄마가 물려 준 갑옷 - 진
마지막 이모와 필자가 하는 대화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자주 했던 대화예요. 서로를 지키려는 여성 간의 연대가 보여 좋으면서도, 여성은 왜 늘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하는 장면이에요. “아무리 조심해도 위험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장도 좋았어요. 엄마가 나를 아무리 통제해도, 밤길을 아무리 조심해도 여성 폭력은 여전했다는 단순한 진실을 말해주어서요.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지, 그것이 여성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네요.. 그런데 이 글의 마무리가 저는 약간 허무했어요. “세상이 천국이었다면 엄마도 이모도 내게 갑옷을 입히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통제에 대한 비판에서 주제가 갑자기 확장돼요. 저는 주제를 좁히면 좋겠어요. 여성을 통제하려는 태도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쭉 밀고 나가 주세요. 주제는 좁힐수록 좋아요. 그래야 메시지가 명료해지고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를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은유 - 과자 파티 못 간 건 지금 읽어도 속상합니다. 저도 집에 우리반에 친구들 왔을 때 남자에 끼어 있으면 문 열고 놀라고 해서 싫었던 기억이 나고요. ‘엄마와 이모’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부분까지 같이 생각해볼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첫댓글 우와~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마지막 수정까지 (맘에) 걸렸던게 앞 부분 이었어요. 왠지 빼도 될 것 만 같은 아니 빼야할 것만 같은 단락...예전 에세이 수업에서도 늘 강조해서 들었던 말이 '하나의 에피소드 만!!' 인데, 막상 글을 쓰면 너무 많은 말을 쏟아붓게 되는것 같아요 ㅠ 도리 반장의 다정한 댓글 그리고 은유 작가님의 핵심을 찌르는 댓글 가슴에 담습니다.^^*
정성스런 피드백이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응원이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을 벼락치기로 해치우는 데 글쓰기는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고요. ^^ 감사합니다.
따뜻하지만 예리하게 글을 봐주는 두 분께 너무나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퇴고해야겠어요!!
피드백을 읽으며 도리님이 맨 처음 써주신 글을 다시 한 번 떠올렸어요. 내가 잘 쓰고 있는 걸까,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인데 두 분의 피드백을 읽으며 두리뭉실하던 두려움과 불안감이 약간은 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섬세하고 귀한 피드백.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퇴고 잘 해볼게요!
두 분 피드백 감사합니다. 공개된 장소에 내밀한 이야기를 적어야해서 부담이 컸는데, 이런 말씀 들을 수 있다니 앞으로도 용기 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