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찾기 (11)
훌다, 종교개혁을 이끌다 왕하 22:3-20
1. 먼저 오늘은 한국교회사 가운데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서울에 있는 새문안교회를 아십니까? 얼마 전에 거기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건물을 허물고 으리으리한 교회를 지어서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이야기는 새문안교회의 초창기 이야기입니다.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 집에서 시작되어서 설립된, 한국교회사 속의 두 번째 교회이고, 서울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가 바로 새문안교회입니다. 아무튼 서울 땅에 새문안교회가 설립이 되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천민들이거나 가난한 농부와 가난한 상인들이 주축이이서 제대로 된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95년 여름, 서울에 무서운 전염병인 콜레라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서양 의료 선교사들과 목사 선교사들은 콜레라 퇴치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앞서 1886년 콜레라가 서울에서 발생한 바 있었는데, 당시 6152명이 그 콜레라로 죽었습니다. 당시 서울 인구 15만명 대비, 100명당 5명이 죽은 꼴이었으니 당시 상황은 정말 심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선교사들에게는 백신이 있었고 또 소독약을 뿌리고 음식을 날 것으로 먹지 말고, 잘 씻으라는 선교사들의 지침을 따랐던 사람들은 안전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미신에 의존해 무당을 찾아가 굿이나 하고, 비위생적 방법을 따르다가 많은 사람들은 대거 콜레라에 걸려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95년, 서울에 다시 콜레라가 퍼지자 조선 조정은 살고 싶으면 모두 서양 선교사들의 기독교 병원을 찾아갈 것이며 그들의 지침을 따르라고 시내 곳곳에 방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언더우드를 중심한 선교사들의 인력은 턱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조선인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언더우드가 설립해서 사역했던 새문안 교회 성도들이 적극 봉사자로 자원했습니다. 선교사들과 봉사자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콜레라에 맞서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콜레라가 마침내 퇴치되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언더우드와 선교사들에게 현금과 큰 선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나아가 선교사들을 도와 목숨을 걸고 콜레라 퇴치에 앞장선 조선인 봉사자들에게도 큰 상금을 하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 새문안 교회 성도들이었던 그 자원 봉사자들은 그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가난한 삶으로 어려움 당하고 있었음에도, 교회 건축이 긴급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 돈을 감히 자신들을 위해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건축을 위한 그들의 오랜 기도의 비상한 방식의 응답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은 사실은 그들의 목숨 값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봉사의 대가로 받았던 상금을 교회 건축을 기꺼이 내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문안 교회는 최상의 건축 자재를 사용해서 크고 널직한 최고의 예배당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서울에 건축된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가 건축되었던 배경이었으며, 조선 땅에 뿌려진 복음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해 우리의 선조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분들은 중국이 전염병으로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중국이 선교사들을 대거 추방하고 기독교를 박해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면서 미개한 민족이라며 비하하며, 많은 기독교인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뜨는 사람들도 있지요. 중국은 빨갱이, 공산당, 사탄의 나라니 전염병으로 다 죽어도 싸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또 지금 한국 내에서도 광주 지역에 확진자들이 많은데 그걸 또 뭐라 하겠습니까? 예 광주에 좌파의 도시에, 공산당의 도시가 어쩌고 하면서... 참 불치의 병입니다.
여러분, 이게 교회입니까? 우리의 선조, 새문안 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조선 동포가 아니라 중국인이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있었더라도 발 벗고 나서서 전염병 시체가 즐비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도왔을 겁니다. 자신도 죽을 수 있었지만 당시 새문안 교회 성도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한 죽어가던 현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전염병으로 고통당하는 중국인들을 향해 최소한 같이 기도하며, 같이 아파하는 마음이라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한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심각한 것이 바로 이 혐오와 배제 그리고 공포를 퍼뜨리고 있는 가짜뉴스 바이러스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요즘은 늘 그렇듯이 기독교가 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야 말로 한국 사회에서 전염병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어서 참으로 답이 없습니다.
지난주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신종 바이러스는 사실 대단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치사율도 우한 지역에서만 높지 우한 지역만 벗어나면 사실상 치사율이 0.2-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건 감기나 독감 치사율 정도 밖에 안 되는 겁니다. 미국은 이미 만 명이 넘게 독감으로 죽었고 치사율도 우한 독감보다 높습니다. 지금 신종 코로나가 본격화된 지 한 세주 정도가 지났는데,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삼주동안 얼마나 많은 분이 자살을 했는지는 아십니까? 하루 평균 37명이니까 3주면 몇 명입니까? 벌써 한 700명이 넘습니다. 지난 삼 주 동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분들은, 그렇게 자살을 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도 하루 평균 한 명 정도 되니까 벌써 한 스무 명쯤 됩니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지... 그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좀 조심하면 됩니다. 다만 지금 우한에서는 도시가 봉쇄되고 생업이 파괴되고 하니까,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좀 더 관심을 가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런 위기 속에서 또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곳 중국 땅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우리 각자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을 또 열심히 사는 겁니다. 제발 좀 올바른데 관심을 갖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좀 삽시다.
2. 자, 이제 오늘은, 아마도 생소한 사람일 겁니다. 훌다입니다. 숨은 그림 찾기니까요. 여자 선지자 훌다. 들어보셨습니까? 유다 왕 요시야 때의 사람으로,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며 이끌어 낸 사람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그것은 이제 유다가 곧 바벨론에 망하고, 성전시대를 끝내기 전의 마지막 불꽃이었으며, 사실상의 가장 확실한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이었으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저물어 가는 성전시대를 끝내고 이제 성경의 시대를 준비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요시야에 이르러 비로소 성전의 시대를 끝내고 그 다음 시대인 성경의 시대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요시야 자신은 몰랐을 겁니다. 성전이 망하여 무너질 것이라고는 요시야 자신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깐요,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의 시대를 이제는 끝내고, 이후는 성경의 시대를 열어 가실 것이라는 것을, 사실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드디어 성전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성경의 시대가 열린다는 바로 그 사실이, 특히 우리에겐 중요한 것입니다.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해 나가고 있는 역사적인 상황과 그 전개를 우선 좀 보십시다. 우선 요시야의 아버지는 아몬 왕입니다. 왕하 21:19-26절입니다. 이 아몬 왕은 20살에 왕이 되었으나 그 아버지 므낫세가 행한 길을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우상을 섬겼고,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여 버리고, 그 아들 요시야를, 불과 8살 밖에 안 된 애를 왕으로 세웁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는 그 유명한 므낫세이지요. 자, 여기서 마지막 요시야에 대한 평가를 먼저 한번 봅시다. 왕상 23:24-25절. 한마디로 뭐라고 합니까?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 한 마디로 극찬이지요. 그야말로 최고의 극찬을 받은 요시야입니다. 그러나 바로 뒷 절, 26,27절은 뭐라고 합니까?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 아시지요.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한 이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므낫세 때문이었습니다. 열왕기서 저지는 한번 더 확실하게 이 모든 게 바로 므낫세 때문이다 라고, 아예 대놓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24장3,4절
자, 이 므낫세가 바로 요시야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 왕 역시 그 아버지 므낫세의 길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불과 2년 만에 신하들이 왕을 죽여버리고 8살짜리 꼬마였던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니까 므낫세 통치 55년, 아몬 왕 2년, 이렇게 57년약 60년간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어 버립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신하들은 자연스럽게 므낫세의 선조였던 히스기야의 길을 따라 여호와 중심주의로 다시 돌아갔던 겁니다. 그러니까 요시야가 처음부터, 무슨 개혁의 의지가 있어서 종교개혁을 한 것은 아니고, 정치적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던 것이고, 아무튼 본의 아니게 요시야는 어릴적부터 종교개혁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출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요사야 정권은 이렇게 출발했으니, 일단 초기에는 왕권보다는 신하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그 신하들은 주로 히스기야 시대를 사모하는 신하들 중심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히스기야의 본을 받은 통치를 합니다. 자, 왕상 23장 4절에서 14절을 봅시다. 바알과 아세라 신전은 물론이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고 분향하는 단을 헐고, 성전 안에 이미 들어 와 있는 남창의 집을 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산당들을 철폐를 합니다. 산당을 철폐를 한 것은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유일합니다. 게다가 또 알 수 있는 것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공공연 히 행해졌던 몰록 제사, 즉 맏아들을 바치는 제사를 폐지시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전에는 공공연하게 몰록에게도 제사를 드리면서 맏아들을 바치고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신 숭배의 본산인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또 모압과 암몬의 신 그모스와 밀곰을 다 찍어 버립니다. 자,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라는 것이 얼마나 뿌리 깊게 들어와 있는 것이며, 우리가 상상할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싶은 일들, 예를 들어 성전 안에 남창의 집이 있고, 당연히 여사제들을 수용하는 성전 창녀는 이미 상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죽여 제사를 지내는 몰록 제사도 있었고, 일월성신에 태양신에, 모압과 암몬의 신들까지 그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의 산이란 산에는 다 산당이 있었는데, 그 산당들은 사실상 각자 다 용하다는 신물을 다 갖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벧엘 산당에는 송아지를 또 어디에는 불뱀을, 또 어디에는 여호수아의 지팡이를... 뭐 하면서 각자 용하다는 신물 하나쯤은 다 갖고 있는 것이 산당이었습니다.
아니, 유대인들이라면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 같은 절기를 지키고... 뭐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자, 유월절을 한번 볼까요. 23장 21절을 봅시다. 지금 유대 말기입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그러나 뭐라고 합니까? 역사 이래로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좀 이상한데... 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아니 왜 유월절조차 전국적으로 안 지켰지? 간단합니다. 성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요시야 시대만 하더라도, 요시야 시대라 함은 이스라엘 말기를 말합니다. 그때까지도 유월절이 뭔지, 아브라함이 누군지, 모세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는 겁니다. 왜요? 그때까지는 창세기도, 출애굽기도 레위기도 신명기도... 그들에겐 책이 없었습니다. 오직 있는 건 뭐겠습니까? 그냥 성전 하나 덩그러니 지어져 있고, 관습적으로 제사를 지내오던 제사장들이 있었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건 예루살렘에나 있었고 지방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각 지방에선 각자가 다 알아서, 어차피 신전을 찾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까, 더 솔직히 말하면 여호와 신앙은 예루살렘에나 성전이 있으니까 있었고, 중앙정치를 하는 사람들한테나 중요했지, 각 지방에선 다들 자기들 수준에 맞게 성전은 아니라도 산당을 짓고 거기다 절하면서, 사실 우상숭배라는 개념도 잘 몰랐습니다. 왜 몰랐겠습니까? 성경이 없었으니까요.
3. 이게 정확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미래를 아셨습니다. 이제 성전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이 곧 망한다고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지자들을 보내, 너희는 이제 곧 망한다. 이 성전은 이제 곧 무너진다. 하나님께서 그것만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제 이 성전이 무너지면... 이제 이 성전이 무너지면... 그 다음은 성경의 시대다. 말씀의 시대다라면서 말씀의 시대를 직접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우선 요시야 왕으로 하여금 성전을 수리하게 하셨습니다. 요시야 왕은 서기관 사반을 성전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로 하여금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 수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다가 힐기야는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율법 책을 요시야에게 갖다 주니, 요시야는 그 율법 책을 읽고는 ‘이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을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갑니까? 여자 선지자 훌다에게로 가서 이 율법 책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래서 요시야가 그 율법 책에 대하여 듣고는, 드디어 우상들을 다 때려 부수고, 산당을 다 없애고온 백성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다가 오늘 우리가 읽은 요시야가 행한 종교개혁의 모습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그것입니다. 그때 요시야 왕은 왜 남자 선지자들인 나비를 제쳐두고 여자 선지자 네비아였던 훌다를 찾았던 걸까 입니다. 이 정도 질문으로 이미 훌다라는 그 이름에는 어머어마한 무게감이 실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눈덩이 같은 우리의 질문에 비해 성경이 이 사람 훌다에 대해 풀어놓은 정보는 손톱만큼 밖에 되지 않습니다. 훌다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상 오늘 읽은 본문과 또 거의 똑같은 역대하의 본문이 전부 다 입니다. 자 보시면, 책을 발견하고 제사장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이 왕이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왕의 자기의 옷을 찢고, 5명을 훌다에게 보냅니다. 그리고는 이 책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리고 훌다가 답을 하지요. 이 모든 저주대로 곧 될 것이다 라고. 이스라엘은 이제 곧 망한다가 이 책의 요지였던 것입니다.
자, 우선 왕이 보낸 5명을 한번 볼까요. 왕이 보낸 5명의 대사제들이 여자 선지자 훌다를 찾아가서 그녀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그림부터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무슨 독수리 5형제가 지구의 명운을 걸고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일행들 중 아히감은 이후 심판과 회개를 외치는 예레미야를 체포와 기소, 살해의 위협에서 구해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26:22-24. 이 때 악볼의 아들도 이 일에 관여를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 등 왕의 명령을 받고 훌다를 찾아간 사람들은 최소한 거짓 예언자들과 참 예언자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던 사람들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이제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고 활동을 시작한 지가 5년쯤 되는 해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아나돗의 제사장이었던 예레미야는 그 출신 때문에 사실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니,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왕명으로 훌다를 찾아간 이유는 뭐겠습니까? 당연하지요. 훌다는 이미 예루살렘에서 그 정통성이나 능력면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훌다, 그녀는 여자였지만 이미 충분히, 문제가 생기자 왕이 곧 바로, 가장 능력 있는 5명을 특사를 보내 찾을 정도로 그 정통성면에서나 그 능력 면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더 훌다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녀는 살룸의 아내라고 소개합니다. 살룸은 할하스의 손자요, 디과의 아들로서, 궁중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훌다가 제사장, 서기관, 그 밖의 왕이 측근들과 함께 나라의 앞날을 논의하고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은 왕이 예복을 손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의 역할이 좀 바뀐 부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왕의 시종이라는 남편의 지위가 예언자로서 훌다의 권위를 전혀 손상하지 않았다는 것도 오늘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신약시대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아내였던 브리스길라가 늘 앞서서 주도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룸의 아내였던 훌다에 대한 또 다른 정보는 그녀가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역대기서도 똑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예루살렘 제2구역이 어떤 곳이기에 ‘굳이’ 열왕기서나 역대기서 모두 다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던 또 다른 선지자 스바냐의 글에도 여기 제2구역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잠깐 찾아볼까요. 스바냐 1:10입니다. 1장1절을 보시면, 요시야 시대에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본문은 그 날에는, 즉 여호와의 날에는 제 2구역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문이라는 예루살렘의 문도 나오지요. 우선 예루살렘에는 문들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어문, 물고기의 문이지요, 양문, 양의 문, 수문, 물의 문, 분문, 똥과 쓰레기를 버리는 문... 그런데 이 문 중 2개의 문이 바로 훌다의 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의 훌다의 문이 바로 예루살렘 제2구역으로 가는 통로이고요, 이렇게 훌다의 문으로 해서 제2 구역에 가면 훌다가 거주했던 곳이 있는데, 그곳을 ‘벧 울파나’라고 부릅니다. 벧 울파나는 공부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훌다를 율법학자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율법학자였던 훌다가 그 시대의 장로들에게 토라를 가르쳤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훌다는 율법학자로서 토라를 가르쳤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제2구역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함께 예루살렘 제1구역이 세워지는데, 왕족과 제사장들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고위 관료들이 왕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습니다. 거기가 예루살렘 제 1구역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히스기야 때에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하면서 다시 성전에서 수종들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생겨 난 신도시가 바로 예루살렘 제2구역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수로를 파고, 다시 성벽을 쌓으면서 신도시를 세웠는데 이 도시는 그러니까 성전 중심의 필요를 채우는 도시였고, 1등은 아니었지만 2등과 3등정도 되는 시민들이 모여 살면서 ‘벧 울파나’처럼 말씀을 가르치고, 성전의 필요를 채워 가는 그런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 제2구역, ‘미쉬네’라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미쉬네라고 부릅니다.
4.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예루살렘 문들 중 2개를 지금도 훌다의 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결법의 규정 때문에 성전 주변에는 어떠한 무덤도 둘 수가 없는데, 여기에 예외가 둘 있습니다. 바로 다윗 집안의 무덤과 훌다의 무덤만을 이스라엘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윗의 무덤과 훌다의 무덤만이 성전 주변에 있습니다. 자, 이 정도면 훌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지만 훌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훌다는 남녀를 통틀어서 성경을, 그러니까 사실상 성경을 최초로 인정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판독하는 일에 종사한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야가 이 경전을 발견한, 기원전 621년까지는 어떤 문서도 ‘소위 말하는 ’거룩한 책‘으로 지정된 적이 없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성전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오늘날 우리가 아마도 신명기라 부르고 있는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훌다가 선언함으로 시작되었고, 훌다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속의 수 많은 문서들이 만들어지고, 수집되고, 편집되는 바로 그 성경의 길을 연 최초의 신학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훌다는 처음으로 성경의 시대를 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림이 좀 그려지십니까? 요시야 시대, 예레미야도 있었고 스바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수리하다 책을 발견한 요시야는, 당시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5명을 훌다에게로 보냅니다. 훌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그 책을 감정을 하고, 이제 이 말씀대로 곧 이루어져서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곧 망한다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진짜로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바로 그 시대, 성전이 무너지고 있는 그 시대를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굉장히 바쁘게 성전 그 다음 시대를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말씀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제2구역에서 훌다로 하여금 벧 울파나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며 말씀의 시대를 준비하게 하셨고, 아나돗의 제사장 예레미야를 세우셔서 조롱과 멸시 속에서 포로기를 겪어 나가며 그 역사를 남기게 하셨으며, 또 한편으로는 레갑 족속을 불러 내셔서, 이제 곧 시작될 본격적인 서기관의 시대를 준비케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해 나가신 성경의 시대였습니다. 이 성경의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께선 아나돗의 제사장을 다시 부르시고, 레갑 족속을 부르시고 또 예루살렘 제 2구역에 있던 훌다를 불러 내셨습니다. 레갑 족속, 아나돗의 제사장, 예루살렘 제2구역...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소위 말하는 성전의 시대는 메이저의 시대였습니다. 주류였던 대제사장이 존재했고 왕족이 있었으며, 귀족들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전이 망하고 그 주류들은 싸그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버립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 성전의 시대가 아닌 성경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이제 성경의 시대가 왔다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마이너의 시대가 왔음을, 사실은 말하고 있습니다. 미쉬네라 불리던 예루살렘 제2구역의 사람들이 말씀과 함께 여자가 선지자가 되어 일어났습니다. 페족이 되었던 아나돗의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렇게 일어난 것이 바로 말씀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성전의 시대는 거대한 메이저의 시대와 함께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메이저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작은 공동체의 시대, 마이너의 시대, 힘없는 사람들의 시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말씀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시대, 그런 시대가 이제 이 땅에서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누구를 부르십니까? 벧 울파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미쉬네, 제2구역에 모여서 함께 말씀을 연구하며 묵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그 여자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무너져 가는 이 성전의 시대에 다음 시대, 말씀의 시대를 준비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