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희생, 그로 인해서 다시 태어난 시민들, 이게 세월호 참사 아닌가 싶어요”

[꼼벗]

“304명의 희생, 그로 인해서 다시 태어난 시민들, 이게 세월호 참사 아닌가 싶어요”

- 성미산마을 활동가, 느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날 이후, 사무국이 있는 성미산마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과 울분에 공감해서 함께 행동해 왔다. 이에 참여하는 마을 사람들은 이 활동을 세월공감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활동을 기초로 마을의 여러 단체들과 함께 4.16마포모임을 이뤄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도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마을 사람들 중 느리를 만나 보았다.

느리와는 벗 사무국이 마을에 정주한 이후 연대 활동을 계기로 알게 되었으며, 또한 느리는 당시 민중의 집 활동가 안성댁, 하품 등과 함께했던 자리에서 막걸리 7병의 낮술로 기억을 온통 사라지게 한 추억을 안겨 준 이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과 마을, 대동계, 울림생협 등 마을에서 꾸준하게 이웃활동을 벌이고 있고, 416연대상임위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38호 《오늘의 교육》의 특집 주제가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다. 경기도교육청은 ‘416교육체제’라는 말까지 써 가며 참사의 비극을 교육에 아로새기려 하였으나, 아직은 말이 더 높을 뿐이다.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라면, 어떤 염원으로 그 씨앗을 뿌려 가야 할까. 우선 마을에서 활동을 열심히 해 온 이를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하여 4월 18일, 마을카페 작은나무에서 느리를 만났다.

풀씨 : 처음 세월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저는 상황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중계 방송 보듯이 했어요. 설마, 그 많은 학생들이, 사람들이 희생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요. 충격은 사실 그날 당장 온 게 아니고 천천히 왔어요. 누군가 자꾸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과 분노가 쌓이고. 느리는 어땠나요?

느리 : 저는 텔레비전이 없어요. 그래서 당일 생중계하는 것을 보거나 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사람들의 들썩임으로 알게 된 거고. 그때 “기적” 같은, 간절한 기도로 사람을 구출해서 데려올 수 있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어른이 미안하다고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전 오히려 미국의 목사님인가 하는 분이 말한 우리는 몸의 기도를 할 때라는 게 더 다가왔어요. 또 백화점이나 다리가 붕괴됐을 때 구조대원들이 며칠 지나서도 구출했잖아요. 물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은데 거기서는 오줌도 받아 마시고 그렇게 산 사람들의 생환을 조명할 때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고 소비하는 느낌이 싫었거든요. 나중에 어떻게 잘 산다는 것이 없이 묻혀요. 이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 이후에 이 사회는 이 사람을 어떻게 보듬었고 치유했다는 얘기는 없거든요. “내탓이요”라는 흐름도 안 좋아했죠. 세월호 관련해서는 누구의 책임인지를 명확하게 가려내고 처벌해야 하는데, 내 잘못이라 할 때 확 동의되지는 않았어요.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마음이 우리가 무엇을 해서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방임, 분명히 성년으로 이 사회의 주체로 책임을 다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삶만 살아 왔던 사람들의 참회, 거기에 나도 포함돼 있구나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안산 분향소 앞 펼침막에 써 있는 “내 자신만 지키려고 해서는 내 자식도 지킬 수 없습니다”라는 것을 가슴에 안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많은 부모들과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이고. 304명의 희생, 그런데 그로 인해서 다시 태어난 시민들, 이게 세월호 참사 아닌가 싶어요.

맨 처음에 거리에 나갔던 건, 공동육아랑 대안학교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모이자고. 그래서 어린이날 즈음해서 시청역 출구 앞에 모였어요. 준비물은 내 마음을 담은 수건 한 장이었어요. 한울이(아들 이름)랑 같이 나갔던 것 같아요. 그때 마음은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나처럼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이 모임은 조금 긴 호흡으로 이 나라의 교육, 백년지대계를 세우는 일로 가닥을 잡아서, 저는 이후에는 그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안산의 집회라든지 여러 집회에 나가면서 외쳤던 구호 중에, “잊지 않을게” “끝까지 밝혀줄게” “끝까지 함께할게”라고 손팻말 들고 구호 외쳤고 그 팻말을 집에 가져 와서 거울 앞에 놨었죠. 이랬던 모습들이 지난 3년이었고, 그리고 앞으로를 이끌어 갈 약속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풀씨 : 저마다 형편에 따라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말하는 것 말고 넌 뭘 하니?”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하죠. 예전처럼 희생이나 헌신을 바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뭔가라도 하자, 이런 걸 텐데, 세월호 참사의 경우가 그렇게 행동에 나서게 했던 것 같아요.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나와 같이 생각하는 존재가 또 어디에 있는가 찾잖아요. 뭘 하더라도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으니까. 혼자라는 것을 넘어서는 그런 것이 느리에겐 있었을까요?

삶의 부채감이 확 밀려 왔던 시간

느리 :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때 마을의 한 300~400여 명에게 메일을 네 번 정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버스 대절해서 안산 다녀왔던 기억이 나고요.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새삼스러울 것 같은데,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무엇을 해야 좋을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해야겠는 마음, 나 혼자만의 마음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인 거구. 그때 마음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 생각했던 게 내 아이가 세월호에서 희생됐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무엇을 바랄까 시민들에게, 시민들이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랄까.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울고 있기만을 바랄까. 아니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랄까. 사실 깊은 상실과 깊은 분노와 깊은 비탄이라기보다 무엇이든 해야 하겠다 하는 이때까지 삶의 부채감이 확 밀려왔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철거민들이 망루에 오르고 해고 노동자가 자살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어도 다른 사람의 일이었던 거예요. 뭐라도 돕고 싶고 보태고 싶지만 지금 이 사회는 예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건데, 나의 이 미약한 힘으로 어떤 보탬이 될까 이런 거였죠. 그런데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나와 내 아이가 그 배에 탔었어도 죽었겠다고 다가왔던 것 같아요. 세월호는 공감 이상의, 같은 처지로 느끼는 것이 훨씬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풀씨 : 당시 유가족인 부모들의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씀이 아이가 원하던 걸 해 줄 걸. 대학에 가서 하라거나 나중에 하라거나 했던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던 거예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아이한테 부모가 돼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숙제가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주위 부모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 대학 등으로 학생들의 삶을 유보시키는 그런 길로 가고 있는 걸 봅니다.

참사 이전에도 청년학생들의 문제를 짚어 볼 때 미래를 위해서 현재적 삶을 유보하지 말아야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나 학원에 잡아두고 파리한 얼굴로 청춘을 다 보내게 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랬었잖아요. 참사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면 적어도 그러한 시간을 뒤집어엎는 것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거든요. 지금 말씀하신, 그것인 것 같아요. 내가 그 안에, 내 아이가 그 안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거요. 이 인식이 문제를 푸는 가장 큰 연결 고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느리 : 저는 시사지를 읽고 주변에 조금 촉을 세우고 내가 취할 정보만을 선택했죠. 공중파에서 무차별로 쏟아 내는 것에서는 비껴나 있어요. 내가 챙겨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 있다 우체국에 가서 약을 부칠 거거든요. 오빠가 약을 계속 먹어요. 제가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공부하라고 한 번도 하지 않고 키운 데에는, 우리 오빠가 고3때 아팠던 것과 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내가 그런 것을 통해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나라 부모들도 세월호 참사를 겪고 마땅히 다른 선택을, 미래에 저당 잡혀서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어 주어야 하는데.

그리고 사실, 난 큰 걱정 안 하거든요. 왜 어른들이 자기 먹을 거는 타고났다라고 하는 그런 낙관이 아니라, 우리 자녀 세대가 지금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게 살 첫 번째 세대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데 뭐, 그 가난이 어때서라고 생각해요. 지금 자신들이 중산층이라며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포기, 아이는 나보다 더 좋은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 거라고 하는 것을 내려놓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해서 주변에 눈을 돌리면서 살아갈 텐데, 뭐가 그렇게 걱정인가 생각하거든요. 사람의 성공이 월급봉투의 두께라든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라든지 이런 것에 매여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내 아이가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빠가 있거든요. 달동네 집에서도 자기 집이 아니라 방 한 칸에서 살아가는 아빤데, 전파사를 하는데, 자기가 뭘 잘하는지를 알고 무엇으로 이웃과 나눌 수 있는지를 알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이었어요. 이런 행복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전파사 하는 사람의 한 달 벌이가 시원찮은 것은 사실 사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계속 일하고 고치고 해서 쓰레기가 안 되고 다시 쓰이도록 하는 유의미한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 일부 대형 로펌의 사람들이 자기가 배운 지식을 동원해서 법망을 빠져 나가고, 거대한 연봉을 챙기는 거잖아요. 이런 구조가 잘못된 거지, 이 사람의 삶이 거짓이라고 생각 안 하고 내 아이가 이런 삶을 살아도 좋아라고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살 것 같지 않거든요.

우리는 청소년 자살율도 제일 높은데 그 일 순위가 성적 비관이에요. 제가 충격 받았던 것 중 하나가 〈사랑이 이긴다〉는 영화를 보고서였는데,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게 있다. 아이가 자살을 하는데, 어떻게 엄마가 보는 데서 뛰어내리냐 했더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라는 거예요. 어느 아파트에서 한 해에 4명이나 자살을 했고, 그중 2~3명인가가 엄마가 보는 데서 뛰어내렸는데 그 이유는 엄마가 보라는 거였다는 거죠. 나 이래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감독은 또 이 영화를 학교에서 상영할 때 아이들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아이들 반응이 “어, 우리 엄마랑 똑같네!”였다는 거예요. ‘어떻게 저런 엄마일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어, 우리 엄마랑 비슷해요. 우리 엄마도 저런데?’라는. 영화에서 등장한 엄마는 분초를 다퉈가면서 공부하라고 아이를 몰아쳐요. 아이가 자살에 이르렀던 것은 계속 3등을 하다가 1등을 해서 통지표를 엄마에게 갖다 주고 이제 됐지 그랬는데, 엄마가 뺨을 올려부치면서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여태껏 이걸 하지 않았어, 하니까 아이가 뒷걸음질 치다가 가방을 벗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거든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너무 가슴 아팠어요. 행복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재단해서 강요하고 있는 거죠. 행복을 찾는 몫은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뭘 잘하는지, 점수가 이러니까 너 이 대학에, 이 과에 가야 돼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구나 이것을 할 때 행복하구나 찾을 수 있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똑같이 입시경쟁 속에 몰아넣는 것은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풀씨 : 주변에서 어때요? 주위 사람들도 그러한가요? 아이를 닦달했던 삶에서 부모가 조금 물러나지 않을까 했거든요.

영혼을 갉아먹으면서 존립하는 사회

느리 : 전체가 안 바뀌었을 때는, 경쟁사회인데, 내가 그것을 좇아가지 않는다면 뒤처질 것 같은 거겠죠. 이 마을에 있으면서는 제가 주변과 학원을 상담하고 그럴 일이 없잖아요. 강남에 이사 간 사람을 알아요. 학군 때문이죠. 전의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받아서 갔는데, 집은 훨씬 못한 거예요.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숙제 이런 걸 다 해야 재우고. 명절 때도 숙제 같은 것 다 싸갖고 가서 하고요. 이런 사람들이 주류겠죠. 마을 살이 하면서는 속으로는 모르지만 드러내서 경쟁해야 해, 인류대 가야 해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요.

풀씨 : 요즘에는 염치를 모르는 뻔뻔한 사람들도 많고,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하면 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안 하고 있으면 불안이 증폭돼서 쓸려갈 수밖에 없는. 이 상황들 보면 마을살이라고 얘기하는 이것이 뭐라고 할까, 생각의 건강함을 일정하게는 유지시켜주는 장치일까요?

느리 : 남편도 자기 또래를 만났을 때, 그들은 촌지, 학원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자신은 그 속에서 비껴나 있어 편하다고 해요.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런 화제에서 자유롭지 않겠죠. 이 사회는 불안을 조장하면서 그 불안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으면서 그 위에 존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권이 이전투구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오히려 정치에 혐오감을 불러일으켜서 신경 안 쓰게 하는 장치 같기도 하거든요. 이것이 누구에게 이로운가 하면 권력을 쥔 이들에게 이로운 거고 사람들이 성찰하지 않고, 스펙 쌓고 이기적으로 경쟁에 길들여지고 부품 같은 존재가 되는 건 누가 바라는 거냐. 그래서 전교조 선생님들이 주체적인 학생들 교육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때 경쟁보다는 협동이었고 전교조도 그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풀씨 : 보통 사람들은 주위에서 막 얘기하면 동요하잖아요. 불안감을 느낄 때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서 너만 불안한 거 아냐. 나도 불안해. 그렇지만 우리 견뎌 보자, 이럴 수 있는 손을 건네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고, 이런 점에서 성미산마을을 느슨한 공동체라고 한다면 일정하게 그런 역할을 해주는 걸까 하는 질문을 받는 거죠. 어땠어요?

느리 : 좀 전에 만났던 도깨비도 공부하지 말고 나가 놀아라 노래 하잖아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거죠. 그래서 뭐 다른 곳에서 학벌이 좋아야 하고 출세를 해야 하고,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박근혜 지지해야 돼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서울대 보내야 돼 이런 사람도 없는 거죠. 다 다양하죠, 뭐.

풀씨 : 성미산마을처럼 적당하게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대소사를 풀어갈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면 세상 살아가기 괜찮겠다, 아이 키우거나 인생사나 세상일에 대해서 고민을 풀어 가는 데 굉장히 좋은 터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싶긴 해요.

세월호 참사는 큰 재난이잖아요. 그 재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공동체 성격을 말해주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마을에서 참사에 대응한 방식이 또 다른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선례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다른 사람이 겪는 슬픔에, 사실 슬픔을 대신할 수는 없잖아요. 옆에 있어 주고, 손잡아 주는 것. 그것이 가장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거고. 끝으로 벗 조합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함께 맞는 비

느리 : 유명하지 않은 단체를 의미 깊게 지원하고 있는, 안목 높은 조합원들이십니다. (웃음) 요즘 제 인생에서 큰 변화가 인권활동가를 하겠다는 결심이에요. 여러 의미 있는 활동을 하다가 풍광 좋은 곳에 가서 글을 쓰면서 늙어 갈 거야,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 늙어 갈 거야, 하는 게 제 미래 계획이었는데, 그 전단계로 인권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 선 거죠. 세월호 참사 이후 416운동을 하면서 바뀐 거예요. 이에는 부채감이 커요. 제 인생의 화두는, 초등학교 때 도덕, 중고등학교 때 윤리 책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인가 무릇 인간이란 어떠해야 하는가가 제 화두인데,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함께 맞는 비”라는 것이 내내 걸렸었어요.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 우산 없을 때 씌어 주고 빌려 주면 되는 거지, 왜 비를 함께 맞아야 할까, 함께 맞고 싶지 않은, 우산이라 하는 이것을 놓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하게 있었는데, 이제 같은 처지가 된다는 그것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게 됐어요. 내가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 그 미안함의 곁가지로 조금 내미는 손길이 아니라 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인권활동가로 사회적인 약자, 억압받는 이들에게 달려가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눈물 닦아 주고 흘려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이 생긴 거죠. 사람들이 지치는 적은 없냐고 물을 때 지치지 않은 것은 치열하지 않아서인 것도 있지만 가족분들 곁에 서 있으려고 달려 간 자리에서 오히려 더 힘을 받고 다짐을 하면서 돌아오게 되는 매번 그런 경험을 쌓아 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을 밖에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간담회에서, 집회에서, 행사 속에서 내가 각성되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 많아서,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416연대를 통해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만나고 그들에게 받는 감동으로 내가 다시 고양되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지속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느리는 앞으로 활동 계획을 힘주어 얘기하는 이유를 “내 자신에게 한 약속과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416연대활동은 내년 3월 총회까지 1년을 더 이어간다고 한다. 지난 3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진상조차 규명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정권이 바꾸어 성큼 진도를 나가야겠지. 마을활동가로서 따듯한 동료가 되어 주었고, 깊은 슬픔과 분노를 건너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서 손을 잡아 준, 또 앞으로는 인권활동가로서 길을 걸어갈 그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