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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철
e-mail : scmoon5@naver.com
1959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효성중공업(주) 대표이사
2020년 『에세이스트』 등단
2023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축적의 시간
딸이 유치원 다닐 즈음, 나는 집에서는 TV 리모컨만 쥐고 뒹굴었다. 그러는 내게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아빠! 나, 만화영화 볼 거야.”
국가대표 축구 중계 중이었다. 그 경기를 꼭 보고 싶어 딸을 설득 하였다.
“아빠는 축구 경기를 봐야 되는데…. 축구 끝나면 보여줄게.”
그러자 딸은 축구 끝나면 만화영화도 끝난다고 떼를 쓰며 울려고 했다.
“진아, 집안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거든. 네 방에 있는 동화책과 인형은 네 것이고 그밖에는 다 엄마 것이지. 그릇도 냉장고도 밥솥도 모두 엄마 것이야. 사실 아빠 것은 TV밖에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딸에게 타이르듯 덧붙였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사용하는 거야. 네 인형은 네 마음대로 가지 고 놀아도 된단다. 그렇듯이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TV를 볼 수 있는 거야. 알겠지?”
이런 이상한 논리가 통했는지 의외로 딸은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그날 이후 딸은 나에게서 TV 리모컨을 뺏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논리로 거실에 누워 오직 리모컨만 쥐고 흔드는 나를 합리화하곤 했다. 모든 집안일을 아내가 도맡아 했지만 아내 역시 토를 달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아내에게는 내가 하늘 같은 남편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는 저녁 10시가 되어야 퇴근하고 일요일만 쉬었다. 아내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남편을 보듬어 주었다. 남편에게 있어 집은 쉬는 곳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나는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 가족은 아버지와 아들 사형제로 여자라곤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혼자서 하였고 아들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지냈다. 그 당시의 어머니들이 무릇 그러했듯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안일 특히 부엌일을 시키지 않았다. 당연히 며느리가 집안일로 아 들을 부려 먹는 것을 싫어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처가도 마찬가지였다. 장인어른과 두 처남 역시 집안일을 하지 않았고 밥도 제각기 먹어 장모님은 한 끼에 여러 번씩 상을 차리곤 하였다. 그렇게 자라오고 또 그런 곳에 시집을 왔기에 아내로서는 힘들지만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아마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나는 집안일을 할 줄도 모르거니 와 할 생각마저 없었다.
TV 외에는 내 것이 없는 상태가 참으로 오래갔다. 세상은 변해서 내 나이 또래의 남편들도 가사를 조금씩 부담하기 시작하였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핑계가 집안일을 회피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열외가 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딱히 말하자면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내에게 미안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그런 나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유쾌하지는 않다. 아내 역시 가사 일과 나를 연결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힘든 순간마다 어찌 저리 매정할까 하고 나를 원망했을 수도 있다. 이제 와서 물어보자니 본전도 뽑지 못할 것 같아서 과거는 묻지 않기로 했다. 어떻든 퇴직할 때까지 집에서 나의 가사노동 항목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퇴직 후 집에서 빈둥거리며 아내가 해주는 삼시 세끼를 받아먹는 삼식이가 되었다. 은퇴 후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밖에 머물다가 와야 한다는 조언을 듣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좋게 표현해서 ‘짐이 되지 않으려면’이지 실상은 ‘천대받지 않으려면’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처음에는 청소와 설거지를 내가 맡기로 했다. 따라서 TV 외에도 청소기와 그릇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래도 그 일의 대부분은 아내가 하고 나는 도와주거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도로 잘 지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서부터다. 이전부터 있었던 무릎과 허리의 통증은 일도 아니었다. 미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배와 옆구리가 칼로 찌르는 것 같다, 왼쪽 팔이 저리다 등 동시다발적으로 아내는 아픔을 호소했다. 약 두 달 동안 동네 병원에서 종합병원까지 부지런히 다녔다. 아내는 가사노동 때문에 자기가 아프다고 주장 하면서 당분간 밥을 하지 못하겠으니 미안하지만 내가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어쩌겠는가. 밖에는 코로나가 창궐하여 식당 가기가 두렵고 아픈 아내를 내팽개칠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나는 요리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아내의 지도하에 계란말이부터 시작하여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고기 두루치기, 김치찌개, 닭볶음탕 등을 하게 되었다. 감바스, 부추전 및 돼지고기 수육 등 술안주도 물론이다. 아내는 나보고 ‘간쟁이’라고 했다.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춘다는 뜻이다. 딸도 아빠 계란말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칭찬이 자자했다. 딱 일주일 지나니 일상이 되었다. 이제 다들 짜니 싱겁니 하고 냉정한 평가를 시작하였다.
요리를 하다 보면 의외로 중간중간 설거짓거리가 많다. 재료를 손 볼 때, 음식을 볶은 후 프라이팬 처리, 도마 등 물에 손을 담그는 일이 끝이 없다. 내가 보기엔 아내는 이미 다 나아서 건강해 보이는데 부엌을 다시 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TV를 하루종일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이감을 갖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열 받고 있다. 아내가 노는데 나 혼자 일을 하면 사실 처량할 때도 있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할 때 연속극을 보는 아내가 밉고 분하다. 그런데 아내가 거실 탁자를 끌어 주어 청소하기 편하게 해주면 반분이 풀린 다. 요리를 하면 아내는 냉동실의 재료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해동해 준다. 내가 설거지할 때면 아내는 식탁 위의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싱크대 위의 그릇을 제자리에 넣는 등 정리를 해준다. 그러 면 또 분이 조금은 풀린다.
아내는 기가 막히게 내가 기분 나쁜 순간을 알아차린다. 내가 그렇도록 표정 관리를 못하나 하고 자책할 정도로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행동한다. 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방 밖에서 소곤거 리는 소리가 난다. 나가보면 아내와 딸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를 보면 말이 뚝 끊기면서 웃음을 짓는다.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냥 시시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끼워주질 않는다. 생각해 보니 나의 것은 TV밖에 없다고 주장한 그 순간부터 나의 것이라곤 진실로 TV밖에 없었다. 모두 아내의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하여 생각한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들의 가슴 깊은 곳에 어머니처럼 스며들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남성 작가들의 글 속에 아들이나 딸보다는 손주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아들과 딸을 키울 때는 바깥을 돌아다닌다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들과의 공감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 람들 간의 관계에서 관심을 축적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벌어 온 월급도 중요하긴 하나 한 달에 단 한 번씩만 잠시 관심을 받을 뿐이었다. 그러나 밥은 수많은 횟수로 서로 간에 축적된다. 대부 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축적의 시간은 아버지의 그것 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아내는 35년 동안 밥과 청소하 는 시간을 축적했다. 그러니 연속극을 보면서도 설거지하는 내 심사를 알아차린다. 딸의 카톡 한 마디만 읽어도 바로 딸의 기분을 느낀다. 내가 그동안 축적한 지식에는 없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다.
다행히 나의 것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그릇, 식재료, 청소기, 냉장 고 등 가전제품 그리고 그것들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 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식 등이다. 나는 나의 축적의 시간을 서서히 늘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연속극을 본다. 아내의 손에 TV 리모컨이 들려 있다. 소금을 더 넣을 것인가 아니면 싱겁게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내 손안에 있다. 아내가 나를 부른다. 35년 동안이나 축적한 아내가 점심 먹으라고 나를 부른다. 아내가 내 점심으로 소고기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나가 보니 소고기가 해동이 되어 있다. 아차! 요리는 내가 해야 한다.
어쩌다 배우
연극배우가 되었다. 제 주제를 알아차릴 때도 된 나이에 용감하게도 얼굴에 화장을 하고 벗겨진 정수리에 흑채를 뿌리고 무대에 섰다. 무대에 한 번 섰다고 배우냐고? 당연한 지적이다. 뭐라고 토를 달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배우다. 무조건 우겨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내 나이나 연기력이나 체력 등의 제약 조건으로 미루어 볼 때 다 시 무대에 서볼 확률은 아주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배우라고 우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작년 말, 지인이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연극 모임에 초대했다. 나는 연극에 대한 강의 모임으로 오해하여 마실 가듯 들렀다. 책걸상이 쭉 놓인 강의실로 예상하였으나 넓은 공간에 연출가를 중심으로 10여 명의 배우가 학익진으로 삥 둘러앉아 있었다. 적잖이 당황하였다. 연출가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얼떨결에 그날 바로 배역을 받고 리딩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어쩌다 배우가 되고 말았다.
나는 발음이 좋지 않은 데다 경상도 사투리까지 쓴다. 게다가 키는 작달막하고 배는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팔자걸음이요, 소갈머리가 없고 주름살 대왕에다가 거북목까지 가졌으니 배우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연극 경험이 없어 어리벙벙한 데다 대사는 왜 그리 외우기가 힘든지 틀리기 일쑤여서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였다. 연습하는 내내 나로 인해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려 얼음처럼 굳어버린 내 모습, 당황하는 동료들의 표정 그리고 황당해하는 관객 들의 한숨 소리 등을 상상하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대학로 후미진 곳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큰 실수 없이 치렀다. 연극이 끝나자 목이 심하게 잠기고 기운이 빠져 이틀 꼬박 누웠다가 사흘째 되는 날 점심때에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연극이 나에게는 얼마나 무리한 놀이였는지를 몸이 스스로 반응했다. 수입은커녕 각자 돈을 걷어서 연습장을 구했다. 대사를 외우느라 죽을 고생을 하면서 동 료들과 손발을 맞추느라 눈치를 보고, 그 어리석은 과정을 삼겹살 뒤풀이로 마쳤다. 그제야 나는, 몸에도 맞지 않는 연극을 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을까 헤아려보았다. 어떤 힘이 나를 이끌고 갔을까.
중학교 때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서 왕 역할을 5분 정도 하면서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칭찬이란 것이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흔하듯 나 역시 가슴속에는 연기를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지인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연극을 시작했었다.
역시 연극은 재미있었다. 남의 인생에 빠져보는 즐거움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희곡 속 배역을 건성으로 흉내나 내다가 마침내 배역에 빠져서 웃고 춤추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벅찬 감동이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배역에 빠져드는 나와 동료들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동료들의 본명은 끝내 외우지 못하고 배역에서의 이 름으로만 기억할 정도로 어느덧 희곡 속의 삶에 빠져들었다. 내 배역 의 행동이나 말투를 집에서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아내가 오해하여 다투기도 하였다.
화려한 조명과 극적인 음악 속에서 노닐다가 막이 내려지고 칠흑 처럼 깜깜한 대기실로 들어오는 순간,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해냈다고 틀리지 않았다고 나도 모르게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너나없이 동료들 모두가 감동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말로 표현하 기 어려운 감동이 밀려왔다.
재미나 감동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작하고 보니 포기하고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나 하나 빠지면 그 피해는 함께하는 모든 동료들이 고스란히 받게 되니까. 나로 인해 자칫 무대에 올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동료들이 흘린 땀이 훤히 보이는데 이를 가벼이 볼 수는 없었다. 혹시 내가 대사를 잊어버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종일토록 앉으나 서나 미친 사람처럼 외우고 다녔다. 혼자서는 완벽하게 외웠다 싶은데도 막상 모여서 연습할 때면 갑자기 백지가 되어 버리니 불안에 떨었다. 내가 연습에 나타나 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내 대사를 쳐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미 배우들의 집중력이 떨어져 버리고, 연습의 효과는 반감된다. 어쩌겠는가. 적어도 연습 때는 꼭 참석할 수밖에.
그랬다. 연극은 교묘하게 디자인된 촘촘한 그물 같았다. 나를 관계의 노예로 전락시킨 그 그물 속에서 나는 빠져나갈 틈을 찾지 못 했다. 마치 주먹 세계의 룰처럼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고 보니 어째 익숙하다. 내가 언제 이런 처지에 있었던가. 회사를 퇴직하고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구속이었다. 아! 그렇 구나. 오랜 회사 생활 속에서 나는 구속을 당연시하고 적응했고 심지어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그 구속이 어쩌면 내가 연극을 끝까지 버티도록 해준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생 을 구속 상태에서 살아온 나에게 연극은 어쩌면 추억일 수도 있겠다.
연극은 끝났다. 며칠 지나니 연극하면서 겪은 노고와 괴로움은 멀 어지고 조명과 음악 소리가 담긴 무대의 화려함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첫아기를 낳기까지의 그 힘든 순간을 알면서도 둘째아이를 가진 엄마가 아기의 태동을 기대하고 기다리듯이 벌써 ‘다음 작품은 언제 하려나, 나도 끼워주겠지’하며 기웃거린다. 나에게 구속영장이 떨어 지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눈 발자국
한강으로 가는 길가의 헐벗은 벚꽃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그 눈꽃은 희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참으로 아름답다. 벚꽃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서야 피는 이유는 눈꽃의 눈부심에 자신이 가려질까 두려워서다. 또한 벚꽃이 갑자기 피어났다가 갑자기 사라 지는 것도 눈꽃을 보고 배운 것이다. 길옆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니 아무 소리도 없이 발등까지 눈이 올라온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밟아보니 뽀드득하는 눈 소리가 난다. 눈이 나의 발걸음에 소리 내어 답해주니 괜스레 흥겹다.
한강 물은 얼었고 그 위에 눈이 쌓여있다. 몇 마리 되지 않는 철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발이 시리지도 않은지 눈 덮인 강얼음 위에 서서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물새 몇 마리가 슬그머니 날아와 동작대교 교각에 내려 앉는다. 수십 마리의 물새가 이미 원형 교각에 몰려 있다. 교각 주변의 강은 얼어 있지 않다. 그 조그만 연못 같은 해빙의 공간에 물새들은 마치 온천에 모여든 사람들처럼 북적 거리며 오간다. 이 친구들 겨울이면 저 먼 시베리아에서 이곳 한강까 지 날아온다. 얼음으로 덮인 세상에서는 살 수 없어 물을 찾아왔나 보다. 무슨 깊은 의미가 있겠거니 했는데….
서서히 어스름이 내리자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눈 꽃이 하얀빛으로 어둠을 밝힌다. 갑자기 다가온 짙은 밤안개가 강을 덮는다. 밤안개 너머 고층 아파트는 꼭대기만 아스라하게 보인다. 강은 어둠과 안개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다만 강의 가까운 곳은 희 미한 눈빛이 아련히 보이며 강의 존재를 짐작게 한다. 강의 나머지는 검은 밤안개 속으로 숨었다.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도 눈 덮인 세 상은 눈빛으로 스스로를 은은하게 보여준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의 감촉으로 눈이 느껴진다. 발걸음에 부서지는 눈의 소리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본다. 밤안개의 흐릿함 속에서 가로등에 비친 눈 덮인 강가의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아름답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난 이번 생은 참으로 소중하구나. 오늘 한강의 눈 덮인 아름다움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오래오래 살고 싶어졌다. 나에게 있어 산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고통과 세상과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욕망이 살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오늘 나는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의 단맛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찾았다. 이러한 갈망이 일어남에 나는 스스로 놀라고 있다. 아! 떠나기 싫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그 행복을 누리고 싶다.
하나 나에게 이번 생에 남겨진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모든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어간다. ‘죽어간다’가 바른 표현이라면 문자 그대로 나는 ‘살아가고’ 싶다. 점점 젊어지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끝없이 보고 느끼고 싶다. 나에게 자손이라는 씨를 뿌리고 DNA를 전달하는 행위가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하지 말라. 나는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 과학은 나를 우주와 별의 폭발 에서 생긴 원소의 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나의 미래는 흩어진 원소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또 다른 자연을 이루는 재료로 쓰인다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내가 로봇과 다름없다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이번 생이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이어야 한다. 나에게만 영원한 생명이 있을 턱이 없으니 내 말이 맞으려면 우주의 모든 생명에게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말이 되냐고 나를 비난하지 말라. 나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에 기대어 살 것인가를 찾고 있을 뿐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으려는 몸부림이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영원한 삶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며 살았다. 그런 분들은 지금 영원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내가 기억하는 두 분을 떠올려본다.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인간을 존중하고 행동했던 사람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마치 대학 입시를 앞둔 입시생의 마음처럼 불안해서 후딱 시험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죽음이 가까워지니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스스로 평범한 인간임을 고백하였다. 성철 스님이 설하기를 한 번 깨달으면 그것으로 그만 더 이상의 경지는 없다고 했다. 누구나 눈만 뜨면 그 순간 자신이 원래 부처라는 진리를 알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밟으며 집을 향한다. 누군가의 발자취로 다져진 눈 발자국을 밟으며 따라간다. 이번 생의 터전인 지구는 참으로 아름답다. 내 생명이 영원하다면 다음 생은 어디에 있을까. 지구보다 더 아름 답고 행복한 곳에 갈 수 있을까.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서고 등에 서늘한 기운이 돈다. 나의 지난 행실을 비추어 보아 나는 생명에 대해 차라리 다른 견해를 가져야 될지도 모르겠다. 우주의 원소가 결합되어 우연 히 인간으로 태어났고 고장으로 죽어서 다시 원소로 분리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결말이 더 나아 보인다. 그래도….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문철 론
머묾의 시간 속으로
김종완
문철의 문장은 처음엔 순진하고 어벙벙한 듯 느껴진다. 그는 ‘안다’ 보다는 ‘모른다’에 방점을 두고 모든 사물과 사태를 대면하기 때문이 다. 수필에서 ‘솔직담백’하다는 찬사는 식상하기만 하다. 모든 수필이 이 찬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평자도 궁할 때마다 써먹는 수사다. ‘솔직담백’은 정직하다는 뜻인데, 정직을 오래도록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처럼 다층적인 것도 없다. 양파 껍질처럼 표피의 메마르고 때묻은 정직도 있고 벗기면 나타나는 다른 층의 뽀얀 정직도 있다. 또 벗기면 톡 쏘는 향기에 혼미해지고 마는 정직도 있다. 자신의 내부 로 얼마나 파고 들어갔는가는 문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를 발가벗기는 일이며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정직을 발굴하는 일인 동시에 그를 통해 자신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경험한 사실의 객관적 서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순간 이미 작가의 시선과 인식의 작용으로 해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층위로 인식할 수 있고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내가 봤다고, 내가 분명 들었다니까, 하는 확신으로 외려 자신에게 정직할 기회를 잃고 만다. 무엇보다 작가는 의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인식과 의식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서 나아갈 때 운 좋으면 또 다른 자신과 불현듯 맞대면하는 행운을 만날 것이다. 글쓰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직이란 차원에서 문철의 글 들은 대단히 용감하고, 그 용감성으로 하여금 독자를 매혹하는 탁월함이 있다. 자기를 파헤치고 무너트리는 데 거침이 없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려고 우회적으로 몸부림치는 작가의 제스처는 매우 유쾌하고 해학적이다.
먼저 표제작인 「어쩌다 배우」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작가가 연 극배우로 캐스팅되어 무대에 딱 한 번 서본 경험을 소재로 한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연극 모임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 자리에서 배역을 맡았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퇴자들의 예술 활동이 다양 하게 발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중 하나인 실버연극은 흥행에 상관없이 동호인들의 예술적 욕구와 제작 여건에 맞는 작품을 무대 에 올리기 때문에 배우를 구하는 일도 상업연극과는 다를 수밖에 없 다. 어쨌거나 그는 어쩌다(엉겁결에) 배우가 되었다. 배우의 자격 조건이 뭘까?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목소리가 낭랑해야 배우가 될 거라는 선입견은 당연하다. 일반적 통념이 이럴진대, 문철은 대뜸 배우가 되기 적합하지 않은 자신의 조건들을 적나라하게 열거한다.
나는 발음이 좋지 않은 데다 경상도 사투리까지 쓴다. 게다가 키는 작달막하고 배는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팔자걸 음이요, 소갈머리가 없고 주름살 대왕에다가 거북목까지
가졌으니 배 우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연극 경험이 없어 어리벙벙한 데다 대사는 왜 그리 외우기가
힘든지 틀리기 일쑤여서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였다. ―「어쩌다 배우」부분
연극은 쉽지 않았다. 대사를 외는 것도 그렇고 배역도 낯설고 동료들 눈치까지 봐야 하는 데다 “수입은커녕 각자 돈을 걷어서 연습장 을” 구해야 하는 정도인데, 그는 거부하지 못했다. 이러한 열악한 조 건이 그이로 하여금 스스로 구속을 자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만이 끝까지 버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약함과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움이나 연약함은 이 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다. 예민하면서도 따듯한 감수성은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강력한 연결고리로, 인간의 모든 치유와 기쁨은 여기서 얻어진다. 미래 관객들의 한숨 소리까지 상상하며 그들을 연민하고 우려함으로써 연습에 최선을 다하는 바로 그 자세를 갖춘 이가 문 철이다. 이 성실성으로 오늘의 문철은 탄생했다.
역시 연극은 재미있었다. 남의 인생에 빠져보는 즐거움은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희곡 속 배역을 건성으로 흉내나 내다가 마침내 배역 에 빠져서 웃고 춤추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벅찬 감동이었다. ―「어쩌다 배우」부분
무대를 통하여 타자가 되어 보기, 이것이 그를 붙잡은 것 아닐까. 이론상으로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전에선 대부분 여지없이 무너진다. 수많은 이유로 우리는 결국 타자에게 건너 가지 못하고 자기 안에 안주하고 만다. 어쩌면 자기속으로의 침잠과 감성의 빗장지르기를 기성세대라고 부르게 된 것인지 모른다. 세상 사 모든 일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감정의 낭비를 줄이는 법뿐이다. 무릇 어른이라면 쓸데없이 열정을 허비하지 말라는 거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심장이 굳어짐이다. 심장은 닫고 머리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은 종이꽃에 코를 박는 격이다. 그러나 깨끗하고 편리한 문명을 벗어나 정글 속으로 들어가면 꽃보다 대지 자체가 더 깊은 향 을 내뿜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철에게 연극은 낯선 정글이었다.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다만 동지들이 있는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향한 탐색을 시도한다. 정글에도 정글의 법칙이 있다.
일단 시작하고 보니 포기하고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나 하나 빠지면 그 피해는 함께하는
모든 동료들이 고스란히 받게 되니까. 나로 인해 자칫 무대에 올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동료들이 흘린 땀이 훤히 보 이는데 이를 가벼이 볼 수는 없었다 . ―「어쩌다 배우」부분
자연은 자연대로 질서가 있듯이 아무리 경제성과 무관한 일이라도 시스템은 존재한다. 그는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돌아가는 시스템 을 알아버렸기에 차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건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다. 정리해 보자. 연극에 대해 문외한인 그는 어쩌다 배우가 되었다. 이력이라곤 중학 시절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왕 역할 5분 정도 해본 경험이 전부다. 스스로 진단하기에 배우가 갖춰야 할 자격 조건은 미흡하기만 하다. 연습은 시작되었고 동료 배우들에게 폐를 끼칠까를 염려하여 열심히 연습에 몰입, 이윽고 무대에 올려졌다. 실수 없이 마쳤을 때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고 무대 뒤로 빠져나간 배우들은 하아파이프를 하면서 기뻐했다. 감성으로 접근하여 이성으로 견디다가 무의식적 몰입으로 역할을 소화하여 찬란한 감성 의 꽃을 피워냈다.
연극은 끝났다. 며칠 지나니 연극하면서 겪은 노고와 괴로움은 멀 어지고 조명과 음악 소리가 담긴
무대의 화려함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첫아기를 낳기까지의 그 힘든 순간을 알면서도 둘째아이를 가진
엄마 가 아기의 태동을 기대하고 기다리듯이 벌써 ‘다음 작품은 언제 하려 나, 나도 끼워주겠지’하며
기웃거린다. 나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지는 순 간을 고대하고 있다. ―「어쩌다 배우」부분
연습 중 그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속력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부자유의 시간이다. 이제 끝났으니 자유다. 그러나 다음 작품에도 자기를 끼워주길 바라며 극단을 기웃거린다. 배역이 주어지는 순간 구속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는 구속영장이 떨어지길 고대한다. ‘홀로 누리는 자유’보단 ‘함께하는 구속’을 지향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 을 그는 연극이란 소재로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야단맞아 술맛 좋은 날」도 낚시의 첫 경험을 소재로 한다. 처음은 언제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첫 경험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왜소함과 무지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아마 이것이 문철의 특장일 것이다. 새로운 것, 낯선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가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일상에서 낯섦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일상이라고 퉁 쳐서 하루하루를 ‘똑같은 반복’이라고 때론 지루하게 때론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말지만 기실 어느 순간도 처음이 아닌 것은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매 순간 첫 경험만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문철은 직업 전선에 있을 때보다 은퇴 후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머묾의 시간을 향유하는 여유로움일 것이다. 언제나 낯선 세계로 가고 있는 것이 인생이지만, 낯섦이란 멈추어 관조 하고 응시해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처음 낚시를 갔다. 자발적이기보다 엉겁결에(또 ‘어쩌다’이다) 홍 사장이라는 베테랑 낚시꾼의 무용담에 낚인 것이다. 민어를 잡으려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로 드는 순간부터 선객들은 일사불란 하게 선장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초보 낚시꾼은 구박덩어리다. 그래도 민어만 낚으면 그만이지, 대 물을 잡아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다, 낚시에만 열중했다. 속으론 칼 을 벼리었겠지. 웬걸, 장대만 여섯 마리나 잡아서 방생하고 말았다.
12시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하루종일 민어는 구경도 못했다. 그 대 신 쓸데없이 장대나 잡고
선장의 야단만 맞았다. 공짜도 아니고 비싼 뱃삯을 들였음에도 나는 손님이 아니라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야단맞아 술맛 좋은 날」
그래도 그는 모두를 관찰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왕에 버금가는 선장의 행태를 아주 차근차근 살폈다. 선장은 몰랐을 거다. 선객들을 깐깐하게 들여다보는 건 자신만의 특권인 줄 알았을 테니까. “(선 장은) 선장실에 앉아 백미러와 각종 모니터를 통해 낚시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마이크로 순간순간 지휘하였다. 낚 시꾼들은 훈련이 잘된 군인처럼 선장의 신호에 따라 군소리 없이 풀었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문철이 발견한 낯섦은 낚시질보다 그 배를 진두지휘하는 선장의 모습이었다. 왜 저토록 권위적인가? 물론 바다라 위험하고 일단 목적은 민어를 잡는 일이니까 선장의 명령에 복종해야 마땅하지만 선장은 뭔가 불안하고 서두르며 강박적이다. 놀자고 온 낚시다. 그런데 온종일 핀잔만 들었고 성과는 없었다. 선장에겐 자기 배에서 잡히는 고기 숫자와 크기가 자신의 명예와 이력이 되고 그것은 돈벌이와 직결된다. 초보들이 반가울 리 없다. 여가 활용 하는 취미생활이 붐이니, 이건 또 누군가에겐 블루오션이다.
무심코 놀러 갔다가 지청구만 먹으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이곳도 누군가에겐 절박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이었다. 경영자로서의 선장은 얼마 전까지 작가가 모셨던 회장님과 다르지 않았다. “여든 살이 넘 은 회장님은 환갑이 된 우리를 공부하지 않는다고 어린아이 야단치 듯이 가르쳤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술을 마시니 민어 안주 아니라도 술맛은 좋더라는 것. 더러 야단은 맞았을지 모르나 신망받으며 영광스럽게 정년퇴직한 그에게 ‘회장님’이란 인물은 어떻게 남아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 부분에서 침묵한다. 다만 회장님과 함께한 시간이 지시 하는 것은 생활전선에서 긴장되었던 자신일 것이다. 구속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술맛이 좋은 것은 과거의 자신을 소환해 함께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낯섦도 결과적으론 과거를 불러낸다. 축적된 경험과 현재적 체험의 관계는 이 렇듯 늘 변증법적으로 환원한다. 인간이 기억이란 능력이 있는 한, 엄밀한 현재도 없고 완전히 소거된 과거도 없다. 한 덩어리로 뭉쳐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이란 유동적이고 미결 정체이다.
끝없이 변할 수밖에 없고 또 아무리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이중모순 적 인간의 본질을 그린 작품이 「축적의 시간」이다.
딸이 유치원 다닐 즈음, 나는 집에 있을 땐 TV 리모컨만 쥐고 뒹굴 었다. 그러는 내게 어느 날 딸이 말했다. “
"아빠! 나, 만화영화 볼 거야.”
국가대표 축구 중계 중이었다. 그 경기를 꼭 보고 싶어 딸을 설득했다.
“아빠는 축구 경기를 봐야 되는데…. 축구 끝나면 보여줄게.”
그러자 딸은 축구 끝나면 만화영화도 끝난다고 떼를 쓰며 울려고 했다.
“진아, 집안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거든. 네 방에 있는 동화책과 인형은 네 것이고 그밖에는
다 엄마 것이지. 그릇도 냉장고도 밥솥도 모두 엄마 것이야. 사실 아빠 것은 TV밖에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딸에게 타이르듯 덧붙였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사용하는 거야. 네 인형은 네 마음대로 가지 고 놀아도 된단다. 그렇듯이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TV를 볼 수 있는 거야. 알겠지?”
이런 이상한 논리가 통했는지 의외로 딸은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그날 이후 딸은 나에게서
TV 리모컨을 뺏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축적의 시간」
요즘 세상에 ‘난 이런 아빠였다’고 하면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여성들로부터 맹공격을 면치 못할 게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책부터 내던질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우린 너무 성급하다. 파편적으로 읽고 파편적으로 흥분한다. 글을 읽을 땐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어이없고 낯설어도 처음 이렇게 글을 열 때는 뭔가 자신이 있어서 그러겠지, 믿어주는 마음도 필요하다. 사실 그다지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집이든 뭔가를 독점하는 사람이 꼭 있는 법이니까. 한 세대 전만 해도 채마밭이나 부엌이나 장독대는 금남의 장소였다. 여성 전용의 공간엔 내밀하고 은밀한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신비했고, 그래서 우리 남성들에겐 동경의 대상이며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신문이라든가 TV라는 정보 매체는 밖에서 사회활동을 하는(소위 돈 벌어오는) 가장의 전용이었다. 뭐든 공용은 불편한 거다. 남성 여성 가르며 전용 운운하는 것은 옛날 얘기다. 이젠 식구 마다 자기 공간과 자기 물건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식구마다 방 한 칸 씩 차지하던 것도 옛날 일, 이젠 어지간히 성장하면 혼자 살겠다고 나가서 독립 가구를 이루는 실정이다. 종이신문은 희귀해졌고 TV는 방치된 채 개인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더구나 여권 신장이 급격하게 이뤄져서 가장이나 남성의 지위는 주저앉고 말았다. 유치원 자녀가 있는 가장이 휴일에 그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다? 이건 사면의 공격을 면치 못할 대죄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그는 중년을 보냈으니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다. “돈을 번다는 핑계가 집안일을 회피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할 줄 모 르기 때문에 열외가 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일하지 않은 이유를 딱히 말하자면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내에게 미안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도 남편에게 기대하 지 않았다. 이제와 불만이 있었는지 물어볼 이유는 없다. 대다수 장년층이 동의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그랬으니까. 아 옛날이여! 문제는 퇴직하고 나서다. 삼식이가 되어 청소 설거지 등을 거들었는 데 아내는 무릎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다가 점차 “미열이 나고 머리 가 아프다, 배와 옆구리가 칼로 찌르는 것 같다, 왼쪽 팔이 저리다 등 동시다발적으로 아픔을 호소했다.” 병원을 다녔지만 다행히 특별한 병명은 없었던 듯하다. 그러자 아내는 가사노동 때문에 아픈 거라고 주장하였고 그는 급기야 요리까지 맡게 되었다.
아내의 지도하에 계란말이부터 시작하여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고 기 두루치기, 김치찌개, 닭볶음탕
등을 하게 되었다. 감바스, 부추전 및 돼지고기 수육 등 술안주도 물론이다. 아내는 나보고 ‘간쟁이’라고 했다.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춘다는 뜻이다. 딸도 아빠 계란말이가 최고 라고 치켜세웠다. 칭찬이 자자했다.
딱 일주일 지나니 일상이 되었다. 이제 다들 짜니 싱겁니 하고 냉정한 평가가 시작되었다.
―「축적의 시간」
작가가 정년퇴직해서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다. 요리는 요즘 남자의 기본교양이다. 요리, 청소, 쓰레기 분리배출, 육아 등등 요즘 청년 들은 결혼하기 위해 이런 일부터 학습해야 한다. 남자가 전업주부 역 할을 하는 가정이나 육아 휴직을 하는 경우는 이제 흔해졌다. 그 복 잡한 일 중 그래도 성취감이 확실한 건 요리일 것이다. 사실 평자도 작가가 만든다는 요리를 나열하는 대목에서 은근히 부러웠고 나도 한 번 도전하고픈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아직 신체 건강하니 요리나 청소 같은 일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엔 아내는 이미 다 나아서 건강해 보이는데 부엌을 다시 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TV를 하루종일 볼 수도 있다는 것 에 대해 경이감을 갖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열 받고 있다.
아내가 노는데 나 혼자 일을 하면 사실 처량할 때도 있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 소할 때 연속극을 보는
아내가 밉고 분하다. 그런데 아내가 거실 탁자 를 끌어 주어 청소하기 편하게 해주면 반분이 풀린다.
요리를 하면 아 내는 냉동실의 재료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해동해 준다. 내가 설거지할 때면 아내는
식탁 위의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싱크대 위의 그 릇을 제자리에 넣는 등 정리를 해준다.
그러면 또 분이 조금은 풀린다. ―「축적의 시간」
상황이 반전되었다. 부엌일을 남편에게 맡긴 마나님께선 무얼하시는 걸까. “인간이 TV를 하루 종일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이감” 을 느낀다는 문장으로 보면, TV를 즐겨 보시는 것은 분명하고, 혹시 전화는 안 하시나? 평자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 그녀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또 별 내용도 없는 통화를 왜 그리 길게 하는지 그걸 봐주 기가 가장 괴롭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최초의 문학은 여자들의 발명품이었을 것이라고. 글을 쓰는 주제인데도 나는 말을 하려면 늘 버벅거리고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을 잃고 마는데, 지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여자들의 수다를 듣고 있자면 기가 팍 죽는다. 전에는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었는데 요샌 몸마저 편치 않으니 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다. (문철 선생님, 사모님이 전화 통화만 길게 하지 않아도 복 받으신 겁니다.) 암튼 남자들이 살아내기 녹록지 않은 세상 이 와버린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꿈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그나마 가장 살 만한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
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방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가보 면 아내와 딸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를 보면 말이 뚝 끊기 면서 웃음을 짓는다.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냥 시시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끼워주질 않는다. ―「축적의 시간」
남자들이 세상 속을 채찍질 당하며 질주할 때 잃어버린 것은 이야 기다. 이야기는 사랑이다. 그것은 응시와 머무름의 시간 속에서만 길어 올려지는 법이다. 이 글의 결구가 걸작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관심을 축적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벌어 온 월급도 중요하긴 하나
한 달에 단 한 번씩만 잠시 관심을 받 을 뿐이었다. 그러나 밥은 수많은 횟수로 서로 간에 축적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축적의 시간은 아버지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아내는 35년 동안 밥과 청소하는 시간을 축적했다. ―「축적의 시간」
타자에게 건너가기는 결국 생활의 구체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얻어지는 능력이다. 삼십여 년 밥과 청소하는 시간을 축적한 아내는 TV 를 보면서도 집안일하는 남편 심사를 알아채고 딸의 카톡 한마디에도 딸의 기분을 알아챈다. 축적된 시간의 위대함이다. 그는 이제 가족을 위한 봉사로 사랑과 이해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으니 해피엔딩 이다. 작가의 성품은 한없이 부드럽고 유연하기만 한데,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강함이 있다. 외유내강의 전형이랄까. 몇 작품에 그 내강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대학 시절 영문 모르고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의 태도에선 서늘한 결기마저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에서 삐라를 주워 와 기숙사 친구에게 보여준 것뿐인데 죄목을 만드는 치안본부 사람 들의 태도가 기이하다.
“자네 긴급조치 9호 위반이면 학교 퇴학은 물론이고 적어도 이 년 이상은 감옥에서 썩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일세. 그래서 고향 동 생 같은 마음에 권하는 것이니 잘 생각해서 대답하게나.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 앞으로 일러주는 서클에 가입하여 지내다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서 우리랑 잠시 대화만 하면 충분하네.
그러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은 물론이고 생활비도 지원이 될 것일세. 고향의 부모님이 자네에게 등록금을
보낸다고 얼마나 힘들겠는가? 물론 이번일은 무마하여 감옥에 가는 일도 없도록 조치할 것일세.”
말이 끝나자마자 젊었던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람을 팔아먹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절대로 못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겁 없이 단호한 저 젊은이가 또한 문철이다. 그런 그도 어쩔 수 없 이 무너지고 말았다. 맞다. 어쩔 수 없었던 거다. 수원경찰서로 끌가 친구를 만났을 때 상황은 더욱 괴이하게 흘러간다.
나를 보자 기숙사의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철아, 미안하다. 네 이름을 말해서 정말
미안하다.”
수원 농대 캠퍼스에 다니는 네 명의 2학년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범죄는 나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부끄러움의 몫은 제일 마지막에 발각된 사람부터였다. 그들은 자기 앞사람의 이름을 말한 것에 대하여
미안해했다. 다들 얼마나 겁나게 취조를 당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에둘러 부끄러움을 달래고 덮어갔다.
앞사람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버틴 선배가 말했다.
“수원 경찰서 형사에게 취조를 받았는데 내가 전단을 주워서 전달 했다고 말하였다. 잘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이틀 지나서 치안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배를 한 대 맞으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대상은 없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언제 불려가서 얼마나 혹독한 괴롭힘을
당할지를 걱정하는 처지였다. ―「그날 이후」
그 시절 우린 모두 미안했다. 살아남아 미안하고 온전해서 미안하고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고, 젊은이들은 미안함으로 연대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문철은 11일간의 구금만 치르고 훈방되었다. 진술서를 작성한 후에야 그들은 그가 주웠다는 삐라는 보여줬는데 그 삐라는 그가 주운 것과 달랐다.
나는 내가 주웠던 삐라가 아니라고 외칠 수가 없었다. 훈방되는 마당에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될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진술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명을 했다. 내 눈에서는 남겨진
이들에 대한 안 타까운 눈물이 흘렀지만 나의 마음에는 나의 안위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왜 다른 삐라를 그가 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의 침묵과 진술서의 서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서명을 하면서 울어버린 청년에게 그 사건들은 하나의 상처로 자리잡았음에 틀림없다. 아마 그 경험은 그의 생 전체를 관통하여 통제하고 간여 하였을 것이다. 정직하지 못한 자신을 맞대면하는 일, 비겁과 자기본 위의 방어기제를 들여다 보게 되는 일은 형벌도 저주도 아니다. 외려 축복일 수도 있다. 그것은 무서운 각성임에 틀림없다. 모든 종교가 참회 또는 회개라는 장치로 새로운 삶으로의 이행을 열어놓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삶에 가정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치안본부의 권유대로 국가장학생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그날이 전단은 내가 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으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만약 부모님이 올라오시지 않아서 그 친구랑 밤을 새워 술을 마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연이 여러 개 겹쳐진 그날, 모두 그렇게, 나도 그렇게 드렁칡처럼 어우러져 산다는 것을 느낀 그날 이후 나는 눈물이 말랐다. 눈물의 심연부터 철저히 말라 버렸다. 부끄러워 도저히 멈 출 수 없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그런 뜨거운 눈물은 그날 이후 뿌 리부터 말라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그날 이후」)
더 천천히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할 우리의 현대사에 너무도 중요한 증언이다. 상처는 결과적인 것이 아니다. 상처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반복으로 깊어진다. 이제야 눈물을 흘리는 그를 뉘라서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대체불가능한, 그에게 더없이 중요한 역사의 한 발자국은 비록 그 한 사람의 몫은 아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양심적 선언이고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이기와 비겁이라는 본질을 파헤치는 심장의 절규다. 편을 가르고 양 진영이 다 선택적 정의만 부르짖으며 귀를 막고 있는 오늘의 정치 현실이 특 정 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눈을 떠야 한다.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가 내 곁을 외로이 스쳐가는 것을 보아야 한다. 혼자 고독에 물들어 유유자적하는 명상의 글도 아름답지만, 보다 치열하지 않으 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치열한 집중과 탐구가 새로운 문법을 탄생시킬 것이다.
문철의 감수성은 누구보다 풍부하다. 참담한 고해의 바다에서 건져 올 리는 진실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얼어붙은 강가를 서성이는 그에게 갑작스레 솟아나는 생의 환희는 차라리 눈물겹다.
아름답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 난 이번 생은 참으로 소중하구나.
오늘 한강의 눈 덮인 아름다움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오래오래 살고 싶어졌다. 나에게 있어 산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고통과 세상과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욕망이 살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오늘 나는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의 단맛이 아니라 자 연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찾았다. 이러한 갈망이 일어남에 나는 스스 로 놀라고 있다. 아! 떠나기 싫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그 행복을 누리고 싶다. ―「눈 발자국」
또 이런 문장도 있다.
나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에 기대어 살 것 인가를 찾고 있을 뿐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으려는 몸부림이다. ―「눈 발자국」
천천히 걸으며 자주 멈춰서고 오래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 도래했 다. 사람들은 노년이라 했다. 펄벅은 『대지』에서 노년의 고독과 공허를 양지바른 곳에 앉아 볕바라기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젊어 읽을 땐 그 광경이 그렇게 가슴에 사무치진 않았다. 그냥 우두커니 아무 생각 없이 무위로 앉아 있었으려니 했었다. 그걸 늙음이라고 믿었고 늙음의 평화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제 볕바라기하는 왕룽의 모습은 나의 심장 안으로 들어앉았다. 그는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자기 온 생을 들여다본 것임에 틀림없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연들을 그제 야 찬찬히 돌아본 거였다. 돌아봄이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수필이 중장년만이 참여하는 문학 장르가 된 지 오래다. 어떤 이들은 젊은이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걱정한다. 걱정이 되는 것,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우린 이제 겨우 육십대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새로운 길을 열어갈 시간은 충분하다. 첫 수필집 출간을 축하드린다.
kjw2605@hanmail.net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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