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황보명숙
작성일 2023년 1월 12일 오후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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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 짜: 2023년 01월 10일 화요일
2. 답사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통일신라관, 금속공예관, 불교조각관
3. 주요 일정
10:20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연못 팔각정 앞 집결
10:30-12:30 야외전시장 답사
12:30-13:30 박물관 내 식당 ‘경천사탑 두레’에서 점심
13:50-15:00 통일신라관, 불교조각관, 금속공예관의 일부 불교미술 관련 관람
15:05-16:20 티타임(투썸플레이스) 후 해산
4. 참가자(지인포함 27명,존칭 생략)
권화자, 김금복, 김금복지기, 김동임, 김여경, 김지선, 손영희, 송숙희, 신동수, 신종근,
신홍식, 오관석, 유동엽, 윤선경, 이청미, 이혜숙, 김혜영, 장정숙, 전성애, 정정옥,
지종석, 차상록, 최윤희, 최현숙, 한정숙, 홍의선, 황보명숙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 팔각정 앞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나오신 선생님들 속 반가운 회장님 모습
중박의 건물 중앙을 뚫어 놓은 것이 우리나라의 대청마루를 본떠 만들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시작으로
야외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5. 야외전시장 석탑 구역
이곳에 있는 석탑은 대부분 고려시대 작인데, 유일한 통일신라 작이 입구에서 쌍탑으로 맞이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대가 다른 작을 서로 비교해보며 시대별로 특징적 미감을 찾아보는 일이다.
*김천 갈항사지에서 수습해 온 쌍탑은 동탑(우측)은 3층 지붕돌 이상이 유실되었고,
서탑(좌측)은 상륜부만 없을 뿐 비교적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다.
상층 기단부에 758년에 건립하였다는 조탑기 명문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동탑 상층 기단(우측)에 남겨진 명문을 통해서 언제 누구의 발원으로 탑이 조성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완성한 불국사 석가탑과 비슷하 시기에 건립되어
기단부 탱주(2+2)와 옥개석의 층급받침(5개)과 적절한 체감율이 고전 양식 석탑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명확하게 구분해 볼 수 있는 특징이 옥개석 처마가 직선으로 이루어져,
정연하고 엄정한 통일신라 석탑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아래 고려석탑과 비교)
남계원지 칠층석탑
고려초 새 왕조의 치솟는 기상을 담아 조성된 대형 석탑
옥개석의 처마가 양단에서 살짝 올라가 통일 신라 석탑과 차이를 알 수 있다.
그 옆에 있는 홍제동 오층석탑은 휘어진 정도가 더 심하다.
이 탑은 고려 석탑에 많이 보이는 탑신석 받침(방석 같은 별석 받침)이 모든 층에 적용되어 다소 산만하다.
앞서 보고 온 통일신라 석탑의 정연하고 엄정함과는 미감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오전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계신 선생님들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전세계적으로 네발로 걷는 사자를 두발로 서 있는 조형물을 만든 최초이자 유일한 민족이 통일신라 한민족이다.
우선 통일신라 석등인 법주사 쌍사자석등부터 보고 가자.
고달사지 고려시대 석등의 쌍사자와 구분하기 위하여 소환된 법주사의 힘이 넘치는 쌍사자들.
입과 두 팔을 번쩍 들어 화사석을 받치고 있으니,
사자의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발굼치를 바짝 들어 생동감 넘친다.
즉, 통일신라-고려-조선의 미감의 일단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고달사지 석등에서 특이한 점은, 하대석을 이루고 있는 쌍사자까지는 사각방형이나,
간주석부터 화사석과 옥개석은 부등변팔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가지 조형이 간주석에서 아주 스무스하게 조화를 이루며 리듬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에서
외형만 보면 고려후기 석탑인데,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수습한 사리함에서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탑임이 밝혀져,
통상 부처님의 묘탑인 석탑 양식을 한 스님의 묘탑은 유일한 것이다.
고려후기까지 모든 스님은 1탑만을 조성하는데,
나옹화상에서 부터 사리를 나누어 (분사리) 연고가 있는 사찰들에 여러 기의 승탑을 세우는 문화가 생겨났다.
당시 사대부의 탄압에 대항하여 불교계가 생불로 숭상되던 나옹화상이 입적하자
주석처 (양주 회암사), 입적처 (여주 신륵사), 아마도 제자가 있던 영전사 등에 사리를 모시고 탑을 조성하였다.
6. 야외전시장 승탑 구역
1) 염거화상탑
가지산문의 2대 조사 염거화상탑은 844년 건립되었는데,
통일신라 승탑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팔각원당형의 시원에 해당되는 승탑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를 이루고 있는 승탑으로서,
바로 직후에 건립되는 실상산문의 증각대사탑과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쌍둥이 같다.
이 승탑의 감상은 조형미 못지 않게,
옥개석 아래 아름다운 비천상은 해가 질 무렵 볼 수 있으므로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하며,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상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통일신라 조각적 특징을 느낄 수 있다.
정토사지 흥법국사탑과 탑비
탑과 탑비는 이렇듯 함께 있어야 제대로 된 구색이 된다.
그 시대로는 기존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천재 작가의 미감을 느낄 수 있는 승탑
모양도 파격적이지만 탑신(?)에 두른 띠는 또 얼마나 독창적인지...
현대라면 그 다양성으로 더한 작품들도 나오겠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자면...그 시대의 피카소^^
그 옥개석 안에 새겨진 연화문양과 천의를 날리며 사뿐히 날아오르는 비천의 모습까지....
넘넘 아름답다!!!
선생님 말씀 대로, 승탑은 옥개석 아래까지 꼭 확인을 하다보면 보물을 발견한다고...
원주 흥법사지가 고향인 진공대사탑과 석관
함께 출토된 석관의 존재에 의해서,
고려 중기 이전까지는 다비식 장례법이 널리 시행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이 입적하면 일단 매장을 했다가 승탑이 완공되면 시신을 수습하여 석관에 넣어 탑 아래 땅 속에 묻었다.
야외전시장 끝에 있는 개성 현화사지 석등
개성에 있던 현화사는 고려왕실과 가장 가까운 사찰로서, 나름 공을 많이 들여 만들긴 했지만,
고려의 이중적인 미감을 대표하고 있다.
세부적인 문양은 정밀하게 묘사해 놓았지만,
짧고 가는 간주석에 비하여 화사석과 상륜부가 너무 커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금속공예관에서 만나는 '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병(아래 사진)'에서 보듯,
규방문화의 공예품은 세밀이 극에 달하여 공력이 집중된 반면,
대형 석조물은 투박해지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타출기법
(내부에서 정으로 금속판을 두드려 문양이 튀어나오도록 만드는 기법)으로
고려 정밀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석등의 시대별 특징으로서, 통일신라 때까지는 팔각이 고려시대가 되면 육각을 거쳐 사각이 주를 이룬다.
고려말에는 불전에 놓이던 석등이 공민왕과 노국공주릉 앞에도 놓이면서 사각의 장명등으로 발전하였다.
7. 경천사지 십층석탑
일본까지 밀반출되었다가 극적으로 돌아온 탑이 경복궁 야외에 있던 모습
탑은 원래 자리인 야외에 당당하게 서 있어야 제맛인데, 지금은 박물관 실내 로비에 있으니
관람객도 답답하고 탑도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재질이 대리석이라 빗물이나 비둘기 변비물로 손상을 당할 수 있어니,
실외를 고집하다가는 현재 탑골에 유리 감옥에 갇혀 있는 원각사탑 꼴이 날 것이니 만족해야 할 것 같다 .
8. 맛있는 점심 - 박물관 내 식당 '경천사탑 두레'에서
9. 통일신라관
철불
당당한 철불이 맞이하는데, 이전의 청동불(1000도 부근)에 대비하여 철은 용융점이 1500도 부근으로 상당히 높아
화력을 올리는 기술, 철광석, 제철작업 노동력 등등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통일신라 후기 지방 호족세력이 대두되면서 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철불의 특징으로서, 거칠고 강인한 질감과 함께 거푸집의 이음새로 높은 용율철이 삐져나와
당시로는 철보다 더 강한 재질이 없었기에 제거할 수도 없어 불상의 이곳저곳에 이음선이 남아 있다.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사리함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사리외함의 뚜껑 안쪽에 철필(쇠붓)으로 쓴 350여자의 명문과
외함의 사방 표면에 99기의 소탑이 점각되어 있음(아래사진)
무구정광대다라니의 내용중에
이 다라니를 99벌 써서 99개의 작은 진흙탑 속에 넣으면 99만 9천 보탑을 만든 공덕과도 같아서
일체 죄업이 사라지고 항상 일체 제불이보호해 준다는 내용을 보고
사리탑의 조성이나 수리 공덕이 불보살상의 조성이나 수리공덕만 못하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탑 쌓는 공덕을 지으려는 염원이 확산
황복사지 사리함에는 소탑을 넣는 대신에 표면에 그려 놓았다.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탑. 모두 무구정광대다리니경에 의거하여 업을 멸하려 조성하여 넣은 것이다.
황복사지 사리함에 들어 있었던 국보가 있었으니, 3층의 불교조각관에 있는 순금불상이다.
10. 세계문화관 인도관
오늘 실내답사의 메인 포인트인 우리나라 불상을 살펴보기 전,
세계문화관 인도관에 잠시 들러 인도에서 불상이 출현할 무렵 작품을 살펴보기로...
석가모니 입멸 이후 500년 동안 불상이 없었던 무불상시대를 지나,
기원전후 알렉산더왕이 동방원정 때 유입시킨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우수에 찬 얼굴에 곱슬머리를 한 불상이 출현하였다
부처와 대비하여 보관과 장식을 많이 한 보살상은 초기에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살상이 서역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오는 동안 여성화되었다.
11. 금속공예관
경주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함
12. 불교조각관
백제의 미소가 여기서부터 출현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미소가 아름답다.
1층 통일신라관에서 복선처럼 소개한 황복사지 사리함에서 출토한 순금제 불상
순금으로 만들어 졌다는? (왼쪽사진)촛불꽃 형태의 두원광이 특이
투각(맞뚫림 조각) 기법으로 만들어서 불꽃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
화려한 영락으로 장식된 보살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누군가 어느분이 보살이고 어느분이 부처님이냐고 물으셔서..
보관을 쓰고 영락장식이 많으신 분이 보살(좌측),
육계와 나발,그리고 장식을 하지 않은 분이 아미타 부처님(우측) 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설명은 모두 끝이 났다.
중박 내부는 너무 붐벼서 야외 투썸 플레이스에서 차를 마시고 해산.
작년에 공부한 것도 되새겨 보고 새로운 것도 알아본 것에 대해 만족도가 컸기도 했지만
서울을 벗어나 자연속에서 찾아보는 답사보다 피곤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신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늘 휙휙 지나가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보았던 박물관 답사가
왜 국보와 보물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늘 소중히 여기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인지를 알게되어
더 기억에 남는다. 또한 정토사지 흥법국사 승탑 아래 비천의 발견은 지금도 보물같이 반짝인다.
<찬조>
☆ 신홍식 회장님, 금일봉(처음 찾아 주시면서 금일봉까지..넘넘 감사합니다.)
☆ 김지선 ,송숙희, 이청미선생님께서 사탕과 대추야자,쵸콜릿등 이동하면서 당보충 제대로 시켜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