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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련다(4)
20221009 / 마태복음 5-7장; 마 7:24-27
8. 이제부터라도 영적 성장을 위해 나름대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라.
1. 의지적(意誌的 -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믿음을 가져라.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해주셨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여호와를 섬기며 살아가되, 온전히 여호와만을, 진실하게 여호와만을 받들고 살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만일 여호와를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들이 누구를 섬기며 살아갈 것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백성들에게 ‘당신들 마음대로 선택하라. 누구를 섬길 것인지, 당신들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하라. 당신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와 내 집안은 여호와만을 모시고 살아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그분께 등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애굽에서 우리를 끌어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신데, 우리가 어찌 그 하나님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시종 우리를 지켜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하며 다짐까지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면, 지금까지 오랫동안 여러분을 보살펴주신 분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쳐서 멸망시키실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백성들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 『주님은 나의 최고봉』(정지석 목사 해설)에 있는 것이다.
❶ 의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 당신은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을 만분의 일이라도 의지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 앞에 세워 놓은 새 명제에 대해서 특별히 자신을 신뢰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거룩하게 만들도록 결정할 수 있다.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당신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는 장소에 자신을 세울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을 밝히 드러내시기를 기대할 만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가?
❷ 의지적으로 믿어야 한다. /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21절). 이것은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기를 맡기는 공약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기까지는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실 수 없어. 나는 무가치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야.’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이 틀림없다. 당신이 연약할수록 더 좋다. 무엇인가 기댈 것이 있는 자는 ‘나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기가 매우 힘든다. 문제는 ‘내가 정말 믿을 수만 있다면’이 아니라, ‘내가 정말 의지적으로 믿을 것인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신의 죄에 대하여 크게 강조하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 13:58).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의지적으로 믿었다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있는가?
▮ 묵상해설 / ‘의지적 믿음’은 성도의 삶 속에서 왜 중요한가?
믿음의 의지적 표현 = 순종이 따르는 믿음
성도가 자기 스스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도록 의지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라고 챔버스는 말한다. 이러한 의지적인 믿음은 제일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는 장소에 서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세대는 1세대와 달리 가나안을 정복하는 자리에 믿음으로 들어갔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지만 앞길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다. 믿음의 의지적인 표현이 바로 ‘순종’이다. 참으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의지적인 순종으로 표현되게 되어 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말한다. 왜 그런가? 기꺼이 하나님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좁은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갈 때에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불신이다.
챔버스는 예수님은 불신의 죄에 대해 크게 강조하셨다고 말한다. 즉 예수님은 불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마 13:58). 사람이 의지적인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능력을 행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병이 걸린 사람이나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도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의지가 아주 박약한 사람도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맞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 예수님은 신격적인 관계 속에서 능력을 행사하신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믿지 못하게 할까? 아직도 비빌 언덕이 많아서이다.
챔버스가 말한 대로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나 사람에게 의지하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을 밝히 드러내시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 이외에 조금이라도 더 의지할 수 있는 여지를 소멸시키신다. 본토, 친척, 아비를 의지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고, 믿음의 선진들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고 기뻐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마음에 역사하게 된다. 강제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없다. 물론 강력하게 권면하며 역사하시지만 절대로 강제적으로 집행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의지적인 믿음을 요구하신다.
의지적인 믿음의 장애 = ‘내 뜻대로 해 보겠다!’는 불신
아직도 나 자신에 믿을 만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 안에 어떤 ‘불신’의 영역이 남아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나의 뜻대로 해 보겠다!’라고 하는 부분이 바로 불신이다. ‘내 자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보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인생에서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성령님은 문제제기를 하신다. 내 육체의 소욕대로 하지 말고 성령의 뜻대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전 삶의 영역을 터치하기 원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터치를 거부하는 불신의 의지적 표현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터치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은 죄이다. 나의 삶에서 내가 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예수님이 능력을 행해 주기를 원하는 것 역시 불신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제대로 나타날 수 없다. 내 뜻이 포기되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불신’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아사 왕은 조상들이 세운 우상들을 제거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했던 왕이었다. 그래서 35년 동안 전쟁이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위협할 때, 아사는 하나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의 모든 은과 금을 동원해서 시리아의 벤하닷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나님보다 시리아 왕을 더 의지했다. 아사는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여 심하게 아프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세상 의사만을 의지하였다(대하 16장). 아사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죄’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더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사람이 되자.
마 5:48 /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사람은 사람답지 못 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
■ 로마 신화 이야기이다. 제우스신이 밑에 신들에게 사람과 짐승을 만들라고 하였다. 조금 후 보니 짐승이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다시 명령하였다. “짐승이 너무 많으니 사람으로 바꾸어서 사람이 더 많게 하여라.” 그래서 많은 짐승들을 사람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사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되었다. 이에 사람으로 만든 사람과 짐승으로 만든 사람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는 사람다운 사람과 짐승같은 사람이 공존하여 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온전하기를 기대하신다. 예수님도 온전한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온전하기를 원하신다.
히 12:2 /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온전하여지기를 권면하였다.
롬 12:1-2 /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2)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온전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온전케 될 수 있다.
벧전 5:10 /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짧은 고난 뒤에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여러분이 흔들릴 때마다 그 자리에 굳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온전할 때 일을 마치게 된다. 집을 지을 때에도 준공 검사가 나야 완벽한 건물이다.
개도 훈련을 시킬 때에 3일간 굶긴다. 그리고 개가 좋아 하는 고기덩어리를 앞에 던진다. 주인이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개 훈련을 마치게 된다.
아라비아에서 왕이 타는 말을 훈련시킬 때에도 그렇다. 사막을 30리 뛰게 한다. 땀을 쭉 흘려 목이 타게 만든다. 그리고 물가로 데리고 간다. 주인이 ‘마셔!’라는 말을 하기까지는 마시지 않아야 말이 훈련을 마치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온전하여지기를 원하신다. 온전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마태복음 5-7장에서 하신 말씀대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를 강조하려고 한다.
❶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약 3:1-12 /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일에 열을 올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많은 과오를 범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판단력을 가져야 할 우리 교사들이 악을 행한다면 더 큰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2) 누구든지 자기 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아무리 큰 말이라도 그 입에 물린 아주 작은 재갈 하나로 우리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또 아무리 큰 배라도 작은 키 하나면 어떤 바람 속에서도 선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혀도 매우 작은 것이지만 잘못 놀리면 엄청난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거대한 숲도 극히 작은 불티 하나로 살라 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6) 혀는 불꽃입니다. 혀에는 악이 가득 차 있어 몸 전체에 해독을 끼칩니다. 또 지옥의 불이 타오르고 있어 우리 인생의 행로를 멸망과 재앙의 화염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7) 인간은 온갖 짐승과 새와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어류들을 지배해 왔고 또 지배할 수 있습니다. 8) 그러나 자기 혀만은 마음대로 길들이지 못합니다. 혀는 언제나 죽음의 독을 뿜어 내려고 도사리고 있습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어떤 때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찬양하고 또 어떤 때는 ㄱ)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을 저주합니다. 10) 그래서 축복과 저주가 같은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11) 한 샘에서 단물이 나왔다가 쓴물이 나왔다가 할 수 있습니까? 12) 무화과나무에서 올리브 열매를 따거나 포도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딸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짠 못에서 단물을 퍼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말은 인격이 겉으로 들어나는 것이다. 칼로 난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입으로 난 상처는 오래 가는 법이다.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잠언에는 많은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온전한 삶이다.
잠 10:11, 19, 28 / 12;17-18 / 16:24 / 18;6 / 20:15 / 21;6, 23 / 25;11, 15, 23,
■ 살인범 김기환(1968~1995년 11월 2일)은 연쇄살인 사건을 일으킨 지존파의 두목이자 대한민국의 범죄자이다. 1994년 10월 31일 지존파 전원에게 살인, 강도, 사체유기, 범죄단체 조직죄 등이 적용되어 사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어 1995년 11월 2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기환이 사형당할 때 마지막이 보도되었다. 김기환의 유아시절 가정환경을 보면 너무나 가난했고 불행했다. 3살 때 아버지가 술과 노름에 빠진 가운데 결국 암으로 병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본처가 딸 셋을 낳고 죽자 후처를 얻었고 거기서 딸과 아들 남매를 낳았는데 그 막내가 김기환이다. 1977년 겨울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으로서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지고 오지 못하여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김기환에게 와서 미술 선생님이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이 새끼!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 다음 미술시간을 앞두고 또 그렇게 심하게 맞을 것이 두려워서 미술 도구를 훔친 것이 첫 번 도둑질이었다. 도둑질이 나중에 살인범으로 자랐다고 고백하고 죽었다. 선생님의 말 한 마디 실수로 빚어진 모욕적인 벌을 받은 것이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김기환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죄를 합리화시키며 회개할 줄을 몰랐던 김기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세까지 받았다고 한다.
❷ 완전하게 되려거든 구제에 힘써야 한다.
마 19:21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두 학생이 학비 마련을 위해 세계적 명성의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다. 그러나 실패였다. 출연료 2,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1,600달러 수입이 고작이었다. 두 학생은 하는 수 없이 400달러 차용증서를 주었다. 피아노를 연주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차용증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1,600달러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 돈으로 경비를 지불하고 돈이 남거든 둘이 10% 나눠 가지세요. 그리고 돈이 남거든 나한테 주시오." 세월이 흘러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의 총리가 되었고, 두 학생 한 명이 후버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폴란드는 세계대전과 경제 공황으로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너무나 힘든 시기였다.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할 총리로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때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원조 식량이 도착했다. 미국 대통령 후버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신세를 갚았을 뿐이지요.’
❸ 인내해야 한다.
딛 2:2 /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는 신중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시오. 그들은 분별력과 참다운 믿음을 지니며 모든 일을 사랑과 인내(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말하였다.
약 1:4 /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인내하면 온전한 삶이 되는 것이다. 반면 참지 못하는 삶은 온전을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이 온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온전하시다는 말은 예수님은 어떤 것도 참을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침 뱉음을 당하시면서도 참으셨다. 인내하여야 온전을 이룰 수가 있다. 아무리 고통이 찾아와도 인내할 수 있는 삶이 참 온전이다.
어느 분이 <고통받는 자의 8복>을 만들어 냈다.
‘고통속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희망찬 내일이 저희 것이요
아픔속에서 하나님의 눈동자를 의식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치유를 받을 것이요
억울함과 공격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의 상급이 저희 것이요
실패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재기의 힘을 받을 것이요
허물속에서도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늘 나라 평화를 받을 것이요
고독속에서도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솟는 기쁨의 샘을 받을 것이요
눈물속에서 새 것을 창조하시는 주님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의 일을 합동하여 유익하게 될 것이요
시련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배나 되는 축복을 받을 것이니라.’
1980년대 미국 윌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광고 문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이제껏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당신은 넘어지고 말았지요.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 당신은 물에 빠져 죽을 뻔했지요. 처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야구 방망이가 공에 맞던가요? 강타자들, 홈런을 제일 많이 치는 타자들은 아웃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R. H. 메이시는 7번이나 실패한 뒤에 간신히 뉴욕의 가게를 성공시켰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존 크리씨(John Creasy)는 564권의 책을 출간하기 전에 753통의 거절장을 받았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714번의 홈런을 날렸지만, 1,330번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실패를 걱정하지 마세요. 실패하여도 인내하시고 끝까지 나가세요.’
❹ 사랑해야 한다.
요일 4:12 /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강(온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 것이고 온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다.
■ 십여년 전에 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보도되었다. 소망교회 오병용장로는 71세로서 삼립산업 주식회사의 사장이다. 소망교회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장로였다. 이유는 소망교인 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으면, 사장이고 나이가 많지만 달려가서 시체를 닦아 주며 수의를 입혀주는 염을 25년간 1,826명을 하였다. 어느 때 장례가 나더라도 언제든지 달려갔다. 회사일보다 우선으로 하였다. 어느 때는 부패된 시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다 닦아 주었다. 염으로 수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늙었다. 그런데 아들 오윤식 집사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교회 염을 도맡았다. 사람들이 물었다. “부족한 점이 없으신 분이 왜 이런 일을 대를 이어서 합니까?” 부자는 대답하였다. “가장 슬플 때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이렇게 사랑하면 마음문에 열여 쉽게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도 기도 노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에 3시간 내지 4시간씩 기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그 교회에서 그 분야로는 그 분이 최고라는 인식을 받을 무엇을 찾아서 사랑하여야 한다.
❺ 믿음을 행하여야 한다.
약 2:22 / 아브라함은 조그마한 의심도 없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기쁨으로 복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가 실제로 취한 행동과 선행으로 완전해진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믿는 바를 그대로 행하여야 온전한 삶이 된다. 믿음과 행함은 일치되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뒤따른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온전이 아니다. 믿고 행하면 온전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도 그가 믿는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롬 4:17-22 /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이 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아브라함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다 받아들이십니다. 이 약속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장래에 될 일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처럼 확실성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 아들에게서 많은 자손이 나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런 약속이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9) 그의 강한 믿음은 자신의 나이가 이미 백 살이 다 되어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거나 아내 사라 역시 아기를 갖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하는 사실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20) 염려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강하게 자라 아직 그 일이 실현되기도 전에 자기에게 베풀어질 복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0)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약속도 실행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2) 아브라함의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죄 없는 자'라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9. 환란과 핍박과 연단에서도 사랑하는 자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붓고, 그의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왕으로 삼았는데 그 순간에 여호와의 성령께서 다윗을 사로잡고, 그 이후로는 그에게서 떠나지 않고 함께 계셨다. 이에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 다윗과도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위험도 막아주시는 방패되시는 하나님이시며 승리를 안겨다 주시는 나의 힘, 나의 산성이신 하나님이시다.
시 18:2 /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다고 하시며 여러 약속들을 해 주셨다. 물론 이 약속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달하는 사명자들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다.
마 28:18-18, 20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들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다니엘서 6장에서 다니엘의 정적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 다리오 왕에게 요청을 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저희들의 결의를 어명으로 공포하셨으면 합니다. 곧 다음과 같은 금지령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삼십 일 동안 임금님 외에는 그 어떤 신이나 그 누구에게도 빌거나 기도하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려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금지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조항도 아울러 덧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임금님, 이 금지령을 어명으로 선포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곧 이 어명을 조서로 꾸며 임금님의 도장을 찍어 우리 제국 메대와 바사 안에서 결코 바뀌지 않는 법령으로 공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단 6:7-8) 이에 다리오왕이 이 금지령에 도장을 찍어 어명으로 공포하였다.
다니엘은 그 금지령에 왕의 도장이 찍혀 어명으로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층방으로 올라가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는 창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매일 감사 기도를 드렸다(단 6:10). 다니엘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자들은 다니엘이 어떻게 하는가 엿보고 있다가 그가 날마다 세 번씩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며 무엇인가 간구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왕에게 몰려가 그가 금지령을 어겼다고 고소하였다. 다리오는 ‘아뿔사!’하며 뒤늦은 후회를 하였지만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게 되었다. 왕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대가 늘 섬기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여기서 구해 주시기를 바란다’라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해 주신 것처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에게도 함께 해 주신다.
단 6:19-23 / 이튿날 새벽 왕은 일찍 일어나 다니엘을 가두어 둔 사자굴로 뛰어가서 20) 큰소리로 외쳤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 다니엘아, 그래, 아무 일 없느냐? 그대가 늘 섬겨 오던 하나님께서 그대를 구해 주셨느냐? 사자들이 그대를 해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느냐? 대답해 보아라.' 21) 다니엘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 22)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무사합니다. 상한 데 한 곳 없습니다. 내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것으로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임금님, 나는 또 임금님께도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임금님께 해를 끼친 적이 있었습니까?' 23) 이 말을 듣고 왕은 너무나 기뻐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올리라고 명하였다.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려 보니 정말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단 9:24-27 /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모조리 잡아들여 사자들이 우굴거리는 굴속에 집어 던지도록 하였다. 그들 몸이 사자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뼈까지 씹어 삼켜 버렸다. 25) 다리오왕은 제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 곧 인종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 글을 써서 어명을 내렸다. `그대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빈다. 26) 나 다리오가 그대들에게 명을 내리노라. 내가 다스리는 제국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니 그분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그분의 권세는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 27) 그분은 사람을 건지시는 분, 사람을 구해 내시는 분,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이적을 베푸시는 분,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 바로 그분께서 다니엘을 구해 내셨다. 사자굴에서 아무 흠도 없이 건져내셨다.'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다스리던 시대와 바사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단 1:21). 그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던 소원이 성취되어 유대인들이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돌아가지 못하고 바벨론에서 죽게 되었다,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다니엘이 고레스 왕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이것은 다니엘의 영향력이 고레스 왕에게까지 미쳤음을 보여주는 좋은 대목이다.
▶ 다니엘 1장을 보면 다니엘은 그의 3친구와 더불어 겅건하게 살기를 위하여 뜻을 정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상상치도 못할 큰일을 해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역시 큰 교훈을 받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였으면 한다.
아침에 기도할 시간과 말씀 묵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매일 신앙이 중요하다. 일상의 신앙이 중요하다. 일상의 신앙을 놓치면 우리는 주일날 한번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마는 종교인이 된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으로 확보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계획을 세워야 하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체크하고 구체적인 노력해라.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라. 예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매일 해야 할 일들도 있지만 매월 단위로 해야 할 영적 훈련들도 있다. 나아가 평생토록 해야 할 신앙의 목표 즉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힘써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곁길로 가거나 형식적으로 때우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기점검을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 공동체와의 관계 등을 점검하라. 개인의 영성 관리와 가정과 공동체를 섬기는 일의 균형은 맞는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모호한 신앙의 자세로는 변화가 어렵다. 늘 그 자리에서 맴돈다면 성장이 멈춤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퇴보가 찾아올 수 있다. 영적빈곤 상태에 빠져 있지 않도록 주의하자.
예수님은 매우 강도 높게 말씀하셨다.
마 7:21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과연 믿음이겠는가? 행함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누구를 막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모습을 7가지로 분류하셔서 예리하게 지적하셨음을 보면서 저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 23:33 /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하겠느냐?
마 23:37-38 / 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38) 너희 집은 버림을 받아 황폐해질 것이다.
행함은 성장으로 이끈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반석과 같은 견실한 신앙으로 되어간다는 것은 성도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의 성장은 분명한 결과를 가져온다.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결코 무너짐이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 반석처럼 견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초점을 맞추자. 영적 성장은 열매를 맺게 된다. 성장의 과정은 힘들지만 큰 기쁨을 얻는다. 예수님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일러두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서 너희는 많은 시련과 슬픔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 16:33).’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들과 더불어 후일 그 길을 가는 모든 성도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 주셨다.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였으면 한다. 아울러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우리가 되자.
마 25:21, 23, 34 / 주인은 그가 일을 썩 잘해 낸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23)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하고 말하였다. 34) 그리고 왕인 나는 내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들아, 와서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에 들어가라.
마 25:45-46 / 그때 왕이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을 곳으로 쫓겨날 것이고 바르게 산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글‘단지 입술로만’을 소개한다.
너희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도 나의 말에 순종치 않았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찾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도 그대로 걷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소망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도 나를 따르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애인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영원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자비롭다고 하면서도 나를 신뢰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고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예배하지 않았다.
◉ 어느 목사님의 기도를 보면서 나의 기도로 삼고 싶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믿는 자녀들이 어떠한 기독교적인 윤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천국을 풍성하게 누리는 축복의 방법을 말씀하셨으며, 또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어떠한 행함이 있어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 살게 되면 삶의 이득이 있습니다. 우선 인생의 시련이 올 때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게 합니다.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위를 보면 교회안에서는 주님을 잘 믿는 행동을 하지만 교회문을 나서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님을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산상수훈의 삶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저희는 단지 말로만 믿기를 좋아합니다. 말로는 무엇이든 다 한다고 하지요. 말로는 무슨 의인이나 된 듯 말하지만, 아무런 행함의 따름이 없는 죽은 신자와도 같습니다. 저의 마음이 완악하고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 저의 마음을 생명수로 부드럽게 하옵소서. 부드러운 땅이 물을 남김없이 흡수하듯이 저의 마음도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생수로 충만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이 땅에서도 미리 천국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저와 같이 완악하고 패역한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로만 주님의 제자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제에서 착한 행실를 통해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천국의 축복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신문기자가 남미의 한 부흥하는 교회의 카를로스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성도들이 많이 늘어나고 교회가 부흥해서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매일 시체가 세구씩 들어옵니다. 일 년이면 천개의 시신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시신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아무도 그 공동묘지가 부흥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날마다 죽은 영혼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톨스토이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근거로 하여 평등, 자유, 형제애의 집단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 부와 권세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다른 권력 집단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 화이트 헤드라는 철학자는 말하기(과정과 실재)를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하면서 거꾸로 로마는 기독교를 정복하였다.’고 했다. 왜 생각이 깊은 이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가 하면, 기독교가 물질적이고, 상업적이며, 기술적이고, 대중적인 분별심 없는 현대 정신에 정복을 당했다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니체는 한 술 더 떠서 기독교를 이렇게 말했다. “참된 기독교인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다.”
■ 서울 신촌 로터리 인근에 5층짜리 와우 시민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1970년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붕괴되어 33명이 죽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사고가 있었다. 이 와우 아파트는 지은 지 불과 네 달밖에 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입주한지 20일밖에 되지 않은 새 아파트였 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아파트가 왜 그렇게 붕괴되었는지 건축전문가들이 나중에 알아보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이 아파트는 기둥 하나에 19㎜ 철근이 70개가 들어가도록 되어 설계되었지만, 설계 규정의 1/12 밖에 안 되는 5개 정도씩밖에 넣지 않았다. 또 콘크리트 배합비율도 시멘트를 충분히 넣어야 했지만 시멘트 비용은 업자들이 떼어먹고 시멘트는 넣는 시늉만 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기초가 전혀 약한 의도적인 부실공사였다. 우리나라 건축물이 다른 나라 것보다 비교해서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부실공사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아파트는 우리처럼 20-30년이 아니라 최소 100년 이상 간다.
반면 동경에 있는 제국(imperial)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라이트라가 건축하였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기초공사를 하는 데만 무려 2년이나 쏟았다. 기초공사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비용도 두 배 이상 들었다.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으로 기초공사 하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비난했다. 그는 기초공사에 2년, 나머지 시공에 2년에 걸쳐 이 호텔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이 공사는 과잉투자하여 지은 대표적인 경우가 되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52년이 지난 후 동경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많은 건물과 도로들이 파손되었지만 이 호텔만큼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튼튼한 기초 공사가 이처럼 중요하다.
■ 탤런트 중에 한인수 장로는 지방의 어느 작은 교회에 간증 집회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기간에 드라마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10회분 고정 출연’ 나이가 많은 연기자에게 10회분 고정 출연이라는 기회는 큰 행운이라고 한다. 특히 극중의 역할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해서 한 번 뜨게 되면 광고로 연결이 되어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런데 한인수 장로는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 작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어디든지 부르는 곳이면 가서 은혜를 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가겠다고,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겠다고 약속했던 것이고, 그 약속을 지켰다. 특별히 그에게 그 배역을 마련해 준 담당 PD나 드라마 작가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들의 배려를 저버린 그 분의 신앙이 어떻게 비쳤을까? 다음부터는 배역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인수 장로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교회를 섬기고 오랜만에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에게 ‘50회분 고정 출연’이라는 또 다른 드라마에서 더 큰 역할이 결정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을 바라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의 근거를 두고 행동했을 뿐이다.
■ 1992년에 폭풍 앤드류가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지역을 강타했다. 수천의 집들이 다 무너지고 쓰러졌는데 그 폐허 가운데 한 채의 집만은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신문기자가 주인을 찾아가 물었다. “이 집은 어떻게 지었기에 그 폭풍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합니까?” “이 집은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저는 폭풍이 잦은 플로리다 주의 건축규정에 따라 이 집을 지었습니다.” 플로리다 주에는 여름마다 폭풍이 닥치기 때문에 다른 주보다 건축규정이 까다롭다. 법대로 짓지 않고 대강 지은 다른 집들은 폭풍에 다 무너졌지만 플로리다의 건축규정대로 지은 그 집은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을 튼튼한 기초 위에 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따라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갈 때 우리는 폭풍 같은 위기에도 쓸려가지 않는다. 유혹의 비바람이 불어와도, 고통의 역풍이 몰려와도, 우리를 믿음과 순종의 튼튼한 기초로부터 절대로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역경은 항상 있다. 언제나 올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서, 그분의 말씀 위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하면 어떤 풍랑과 역경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주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 영혼은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성경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신뢰가 가지 않거니와 결국은 누구 말대로 교회 또는 하나님 앞에만 왔다 갔다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듣고 행동해야만 그 말씀의 깊이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을 알고 어떤 일에든지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롬 8:35-38 / 그러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이나 재난을 당할 때, 또 박해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습니까? 굶주리고 헐벗고 위험을 당하고 죽음에 직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겠습니까? 36)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종일토록 죽임을 당하고 도살당할 양처럼 취급당하며 살아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결국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큰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38)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생명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옥의 모든 세력을 다 합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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