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27.) 홍시
공존과 까치밥
신근식
진정한 경쟁자는 서로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함께 성장해 간다. 경쟁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한 강력한 동기 부여자이기도 하다. 그런 경쟁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한 강력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가끔 축구경기장에서 깊은 백태클로 상대방을 다치게 해 선수 생명에 영향 주는 비인격적인 행위가 발생한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共存)을 외면한 경쟁은 공멸(共滅)의 길이다. 건강하게 경쟁하며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공존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서 홍시도 나누어 먹어야 할 것이다.
조상들은 수확기에 잘 익은 홍시 모두 따지 않고 일부러 몇 개 남겨두어 새들에게 나눔을 베풀었다. 이것을 ‘까치밥’이라 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수확 풍습 중 하나이다. 수확 시기에 과일이나 곡물을 까치와 같은 야생 동물들을 위해 남겨두는 풍습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까치밥은 곧 자연과 동물에 대한 선조들의 ‘자연에서 베푸는 무한의 사랑과 나눔’의 징표요,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깊은 슬기요, 지혜의 으뜸이다.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는 경주 근처에서 감나무 끝에 달린 몇 개의 홍시를 보고는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저건 까치밥입니다. 배고픈 겨울새의 몫이지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라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DNA에 숨은 공존의 지혜가 돋보였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는 농촌을 대표하는 과일이 감이다. 고향인 경남 창녕에는 감나무가 많다. 집마다 서너 그루씩의 감나무를 가꿨다. 우리 집에도 다섯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단감나무 한 그루와 땡감이 네 그루이다. 어린 시절에 감은 좋은 추억거리다. 동생들과 같이 갈고리가 달린 긴장대로 주렁주렁 열린 감속에 빨갛게 익은 홍시를 찾아, 서로 따려고 다투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식구들에게 감은 소중한 식량이었다. 특히 60~70년대 어린 시절에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좋은 간식이었다. 지금은 시골에 노인들밖에 없어서 많이 열린 감을 높은 곳에는 딸 수가 없어서 그대로 방치되어 나무에 매달린 채 온전히 겨울을 난다. 새들에게는 잔칫상이다. 연시를 쪼아 먹기 위해 모여드는 새들의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아파트 살다가 2015년 11월, 성주 선남면 소학리 전원주택에 이사 왔다. 대지 전체가 835㎡ 주택과 뜰을 제외하고도 텃밭이 165㎡로 작은 농사짓기에 알맞다. 텃밭에는 뽕나무 세 그루와 나머지는 감나무가 열여섯 그루가 되어 온통 감나무 밭이다. 사실 감나무는 그늘이 많이 져서 땅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몇 그루만 남기고 베어버릴까 하다가, 주인 이야기로는 단감 세 그루를 제외하고 모두 좋은 대봉감이라고 하여 그대로 두었다. 이사 온 첫해는 감이 열린 대로 두어 수확이 좋았다. 대봉감이라 씨알이 좋아 장모님 댁에도, 서울에 있는 애들에게도 보내 주어 흐뭇했다. 이것이 농사짓는 농부의 보람인 듯하다. 이듬해 가을에도 감 농사에 대해서 알지 못해 약을 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 감이 많이 열렸으나 익기 전에 많이 떨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이 나무에도 퍽, 저 나무에도 퍽하고 힘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깝다. 무슨 일이든 쉽게 되는 건 없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작은 거라도 노력해야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러나 아무리 감 수확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까치밥 남겨놓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 외국인도 ‘푸른 하늘, 마른 가지, 빨간 홍시를 늦가을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았다’는 가십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누가 봐도 마음이 따뜻하고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감 하나로 추운 겨울이 따뜻해질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남겨준 아름다운 풍습, 앙상한 가지 위에 매달린 까치밥을 보면서 우리들이 갖는 삶의 여유와 관심, 그리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런 풍경은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까치밥으로 남겨두었고, 할아버지가 남겨두었고, 또 아버지가 남겨두었다. 이제 아들이 남겨두고 있다. 다음에는 손자가 남겨둘 까치밥이다.
속담으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가 있다. 공존과 까치밥은 서로 다른 개체나 집단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까치밥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 동물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다. 자연과의 공존도 중요한 가치이다. 이러한 공존의 가치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공존은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풀었다고 공존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공존에는 상대가 있다. 내가 베푼 것은 덕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사심 없는 “함께”라는 은연중에 베푼 결과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베푼 것으로 자기에게 덕을 보려 하였다면 더더욱 공존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도드라진 결과는 겨울철에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둔 까치밥을 보면 주인의 덕도 없을뿐더러 지정된 까치가 없다. 마을에 사는 텃새 까치이면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까치밥 남겨두는 이유는 사람의 저마다 의도한뜻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미물 까치에게도 마음 쓰는 사람이다.’라고 은연중에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렇게가 실용주의사회 미국 사람도 몰랐던 것을 조상들은 동양 사고로 넉넉함을 보여 준 것이 까치밥이다.
(202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