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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부산지역대학 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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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학년과목수강생(09) ★ 스크랩 오래 된 마을 - 수허구쩐 5
민들레(성혜숙)2005 추천 0 조회 46 08.11.21 14:4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 (5)수허구쩐 (束河古鎭)
가난하지만 '훈훈한 인심' 살아 숨쉬다
'차마고도' 역참 중 한곳
96년 대지진 후 알려져
조용한 휴양여행 '적격'
입력시간 : 2008. 09.12. 00:00


 

 

새로운 개발구역에서 군것질 거리를 파는 납서족 여인.
속하고성(束河古城)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 고촌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선 속하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물과는 뗄 수가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겠다. 마을의 형상을 살펴보면 뒤로 세 개의 산에 의지하고 있고, 앞으로는 세 줄기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렇게 '삼 좌의 산과 세 줄기

물이 함께 하는' 형상(三山共三河)을 하고 있다. 속하촌은 물로 골격을 삼고 물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또 물을 곁 하여 길을 내었다.

물과 길과 다리와 집들이 하나로 녹아 일체를 이룬 것이다.

그래서 속하촌 혹은 용천촌(龍泉村)이다.

지형에서 나온 이름이 '속하(束河)'라면 이 마을 특산품인 가죽제품에 얽힌 전설에서 온 이름이 '피장촌(皮匠村)'이다.

 

 

새 마을과 옛 마을 사이에 놓인 청룡교 위에서 바라보는 속하 옛 마을. 큰 지진에도 잘 견뎌 준 집들이 대견스럽다.

명나라 초의 어느 대보름날 난징(南京)의 이름난 피혁장이 동심이 발동하여 신발을 닮은 큰 등(燈) 하나를 만들었다. 재미있는 등 모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관심을 받지 못한 등을 만든 어떤 사람의 시기를 받게 되었다.

시기와 질투에 속을 끓이던 이 사람은 곧 바로 관부로 가서 고해바친다. 새로운 황제인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내인 마황후의 큰 발을 빗대어 등을 신발 모양으로 만들고, 그 그림자로 황후의 큰 발을 비웃은 것이라는 말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여 피혁장은 영문도 모른 채 운남성의 여강(麗江)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속하마을까지 이르게 되었다.

빈 몸으로 낯선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진 재주밖에 또 뭐가 있으랴. 대도시 남경에서도 이름난 솜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의 물건은 이 근방에서 유명해졌다. 마을을 떠나 장삿길로 마방들이

 

 

속하 마을 서북쪽 끝에 자리한 용천사. 깊은 밤 물속으로 반영되는 용천사의 불빛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나무를 비추는 조명과 기와지붕의 환상적인 어울림은 오히려 낮에 본 선명한 모습보다 훨씬 더 기억 속에 각인된다.

길 위서 사용하는 가죽제품들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온 물건들로 속속 채워졌다.

속하마을에서 만든 가죽제품들은 날이 갈수록 널리 알려져 티베트를 지나 인도나 네팔까지도 팔려 나가게 되었다. 모자란 손은 제자들과 또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채우고 모여든 제자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 전용공간까지 생기게 된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마무리가 깔끔하게 잘 된 가죽제품을 파는 가게가 여럿이다.

"속하의 피혁장! 한 자루 송곳으로 천하를 주유하다(束河皮匠 一根錐子走天下)"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수많은 분점을 가지고 있으니 수백 년 전부터 천하를 주유하던 솜씨는 아직까지 세인들의 관심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속하에서는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어도 시골모습을 만날 수 있다.

속하촌은 차마고도의 주요한 역참 중의 한 곳이며 납서족(納西族)들의 나라 동파(東巴)왕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동파라 하면 납서족들의 문화와 역사, 그들만의 종교까지 말 그대로 납서족의 모든 것을 뜻한다. 여강(麗江)고성과 함께 납서족들이 주류를 이루어 사는 지방이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그리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어서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편이다. 여강고성만 해도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였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운남성의 한 벽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96년 겨울에 이 지역을 덮친 대지진이 새옹지마가 되어 세인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여강고성과는 달리 아직까지 인파로 북적이는 번잡함은 훨씬 덜해서 조용한 휴양여행이라면 적격인 곳이 바로 속하촌이다.

건물의 재료만 해도 참으로 소박하여 자연스런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긴 담뱃대를 들고 나타난 납서족 노인. 멀리서부터 천천히 걸어온다. 의상도 상당히 화려하다. 될 수 있는 한 의식하지 못하도록 카메라 셔터를 여러번 끊었다. 나를 지나치는 가 싶더니 살짝 돌아서서 약간은 계면쩍은 웃음을 띠우며 손을 내밀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내 깐에는 공손하게 드렸다. 담뱃값이나 하시라면서. 노인도 나도 무안하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마을 근처의 산야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모아 담을 쌓고, 구불구불한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세웠다.

용천하에 걸린 돌다리 청룡교를 중심으로 관광지로 개발된 지구와 옛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역의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옛 마을에도 카페가 있고 게스트하우스가 있지만 그 분위기는 여타의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차분한 것이 마치 우리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느낌이다. 마을 골목을 걷다보면 곱게 늙으신 할머니가 파는 해바라기 씨앗과 삶은 옥수수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입맛을 당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가의 호젓한 카페에 앉아 마시는 한 잔의 맥주도 여행의 흥을 조용히 돋우어 준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결이 다 드러난 따스한 나무 벽이 삐뚜름하게 기울어진 집은 그대로 한 장의 파스텔화가 되어 나는 그림 속에서 노니는 이름 없는 촌부가 된다.

 

 

차마고도의 역참이 있던 건물과 말을 매어두던 나무기둥.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800년 가까이 견뎌온 목조건물이다. 지진에 무너진 현대식 건물에 비해 아주 약해 보이는 이 목조 건물은 지진 이후 세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자동차 경적소리도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되고 시끌벅적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아련한 노래처럼 들린다. 맑은 물위에 비치는 붉은 등을 베개 삼아 잠이 들고 산뜻한 아침안개에 잠이 깨면 그대는 어둠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오래된 마을 속하촌을 새롭게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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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1.22 18:52

    첫댓글 참 멋진곳을 소개해 주셨네요. 특히 세련된 글귀들이 돋보입니다. "노인도 나도 무안 않기를 빌었다""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 오는 아련한 노래 소리처럼.....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謝!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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