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들어갈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른아침인데 그냥 들어가면 안되냐고 물어하니.
안된다고..
그래서 매표소앞에서 좀 지체를 하고...
결국 표를 사서 들어가기로 하고
표를 삽니다.
갑사입장료가 계룡산국립공원입장료1300원+문화재관람료1300원=
모두 2600원..!! 헉 더럽게 비싸네..!!
입장료를 내고(나중에 받으면 되니까..)
매표소를 통과...
좀 올라가니 계곡이 옆에 보이고..
철당간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려올때 보기로 하고...
좀 걸으니 어느덧 갑사경내에 이릅니다.
*갑사는 계룡산연천봉아래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백제구이신왕원년인 420년에 아도가 창건하고 위덕왕3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 679년 신라의 의상대사의 의해 화엄종10사찰중 하나가 되었다.
진성여왕원년인 887년에 무염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임진,정유란으로 불에타 폐사된것을 선조37년인 1604년에
대웅전등을 중건하고 1654년에 사우를 개축하는등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다.
갑사의 원위치는 지금의 대적전이 있는 곳으로 사명또한 조선초에는 계룡갑사라
했으나 후기에 갑사로 바꿔 지금에 이른다.
갑사에 부속암자(갑사의 똘마니격 암자)로는 내원암,신흥암,대성암,대적암,
대자암등이 있다.
경내에는 국보298호 삼신불괘불탱과 보물4점 지방문화재 다수가 있다.
자세한것은
http://city.kongju.chungnam.kr/culture/k324.htm 참조
갑사에 들어와서 제일먼저 본것은
갑사 강당!!
이건물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제95호로 조선후기 건물
대웅전 전면에 위치한 이 강당은 다포집 계통으로 정면 3칸(9.09m),
측면 3칸(3.94m)의 규모의 건물로.
이 강당은 본래 갑사 본전의 정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얼마 전 건물의 해체 보수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정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량문에 이 건물의 창건은 만력 2년인 1614년의 일로 기록되었고,
이어 1798년에 보수가 있었으며 다시 고종 27년인 1890년에 중수된 것으로 전한다.
강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갑사대웅전이 나옵니다.
이 건물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조선시대 건물입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
대웅전은 다포집으로는 드문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모두 겹처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여 외부로 노출된 부재들을 풍우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이 대웅전 건물은 선조 37년(1604)에 중건된 이후 효종 5년(1654), 고종 12년(1875)에
중수되었다.
대웅전부근에 무슨 종각이 있어 가보니
갑사동종 이 종은 보물 제478호!!
조선시대종으로 국왕의 성수를 축원하는 기복도량인 갑사에 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제작되었다.
종의 전체 높이는 132.5㎝, 입지름이 91.5㎝이고 구연의 두께는 8.5㎝인데 종의 정부에는
종의 기본 형태와 양식에서 신라종.고려종을 계승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전반기 동종의
양식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이다.
현재도 조석 예불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종신이나 용뉴에 아무런 손상이 없는 완전한 형태이며,
보존도 잘 되어 있다.
이종을 한번쳐볼까하다가 주위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더 위로 올라가니 삼성각이란 건물이 있군요.
이건물은 충남지방문화재자료 제53호.!!
이 곳은 칠성<七星>·산신<山神>·독성<獨聖>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삼성은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건물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하였다.
본래 각각의 건물을 지어 삼성을 모시나 이 삼성각 에는 한 곳에 모신 것이 특징이다.
삼성각을 쳐다보고 대웅전으로 내려옵니다.
이상명님과 희정누나등은 사진을 찍고 있군요.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아직 사람들은 다 오지 않았구..
나는 갑사의 왼쪽부분인 표충원쪽으로 갑니다.
강당에서 왼쪽으로 가니 표충원이란 건물이 나오는데
표충원은 충남지방문화재 자료 제52호!!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우리나라를 침범한 왜적을 승려의 몸으로
승병을 모아 격퇴시키는 데 공을 세운 서산대사· 사명대사·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이 건물은 영조 14년(1738)이분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
건물은 맞배지붕형태의 건물이군요.
표충원을 보고 옆건물인 팔상전으로 갑니다.
길이 얼음으로 되있어 좀 미끄럽네여..
팔상전도 표충원과 같은 맞배지붕형태의 건물
충남지방문화재자료 제54호..!
이 건물은 석가모니불<釋迦모尼佛>과 신중탱화<神衆>를 모신 곳이다.
팔성전<八相殿>은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화를
모시는 곳이나 이곳엔 신중탱화 한 폭만 봉안하고 있다.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을 묘사한 그림으로 호법신은 대개 우리 나라 재래의 신들이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외관을 다포식<多包式>으로 꾸며 격식을 갖추었다.
팔상전을 보고 나오니 일행몇명이 오는군요.
다시 강당쪽으로 가니 용석형이 오네..
희정,민경누나도 오고..
강당쪽으로 갔다가 표충원근방에 무슨 비가 서있어서
그것을 보러 다시 표충원쪽으로 나갑니다.
밖으로 나가는 길로 좀 가니
무슨 비가 있는데
바로 갑사사적비!!
이비는 충남지방유형문화재 제52호
자연암반에 장방형의 대좌를 마련하고 그 앞에는 연꽂 무늬가 조각된 비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비문의 내용은 갑사의 내력에 대한 기록이다.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 숭정 17년 갑신 후 16년 기해 9월 일 세웠다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효종 10년인 1659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높이는 225㎝이고
너비는 133㎝, 두께는 49㎝이며 비의 개석은 사모 지붕의 형태이고 꼭대기에 벽석의
보주가 있다.
비석을 보고 올라오니 몇명이 이쪽으로 오면서 그쪽에 뭐있냐고 물어보는데
사적비가 있다고 그러니 같이가서 보여달라고..
다시 사적비쪽으로 와서 사적비를 보고 다시 표충원쪽으로 올라옵니다.
표충원에서 절경내를 보니 승려들이 모여서 무슨 장작을 때는거 같군요.
경내에(일반인 출입금지지역)에 무슨 건물이 있구 안내판이 있군요.
뭔지 확인해보니 보물582호 월인석보란 고서적을 보관하는 건물이군요.
(이것은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것임..)
다시 강당쪽으로 가니 양치기님과 김아영님,김현경님등이 와있군요.
이때시간이 8:50분경
양치기님이 9:20분까지 강당앞으로 모이라고 그러고 각자 볼일을 보는데
강당에서 오른편에 무슨 찻집이 있네여.
몇명을 그쪽으로 들어가고.
계곡건너편에 무슨 탑이 있네여.
정한수,민경,희정,지은누나등과 함께 계곡을 건너 그 탑쪽으로 갑니다.
그 탑은 3층석탑으로 공우탑이란 탑이군요.
이 탑은 백제시대때 갑사창건당시, 공사에 필요한 나무를 옮길때 부려먹던
소가 죽자 그 소를 화장(火裝)하여 만든 탑입니다.
공우탑에서 남쪽으로 길이 있네여.
그길로 갑니다. 좀 얼어있군요..
그길로 넘어가니 건물이 나오고 그 앞에 부도가 나옵니다.
그 부도는 보물 제257호로 지정된 갑사 부도.!!
갑사 부도는 보물 제257호로 지정된 나말 여초의 탑파 양식을 지닌 부도로
현재 갑사의 대적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1917년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 부도는 높이 205㎝로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양식을 겸비하고 있고 또한 탑의 조출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부도.
부도 주위를 맴돌다가 부도앞에 건물인 대적전으로 갑니다.
대적전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제106호.!!
이건물은 갑사 좌측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 원금당지로 추정되는 지역에 위치한다.
건물은 정면 3칸(8.63m), 측면 3칸(7.41m) 규모로 평면은 장방형의 형태이다.
나를 포함 용석형,희정,민경누나,정한수등 몇명이 여기서 부도와 대적전을 보고
다시 강당쪽으로 갑니다.
길이 미끄러워서 가기가 힘들군요.
남자들과 여자몇분은 다넘어왔는데 여자2분이 못넘어오자
용석형이 그중 1명을 구출해?내고 가네여(그1명은 여기회원이 아니였다는..)
민경누나가 아직 못넘어오고 있었는데 그건 그냥 두고 가다니..
그래서 내가 나섰다는..
다시 강당쪽으로 옵니다.
시간이 9:10분경..
희정누나가 커피마시자고 해서 커피를 뽑아마실려고 몇분들과 자판기앞으로 가는데
나는 잠깐 용석형과 이상명님과 갑사안내판를 보는데
아직 안본 문화재가 몇개 있네여.
그중 월인석보와 괘불탱은 비공개문화재라 볼수가 없고
천진보탑은 거리가 좀 멀어서 거기가 좀 그렇고
갑사석조여래입상이 여기서 거리 50m에 있다는 내용을 보고
그것을 보러 가자고 내가 제안..
용석형과 이상명님과 그것을 보러 올라갑니다.
갑사안내판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길이 2갈래.
용석형이 그길중 왼쪽길로 앞장서서 올라갑니다.
우리도 뭣도 모르고 쫓아가고.. (오른쪽길로 가야햇는데..)
좀 올라가니 옆에 대나무가 있군요.
50m거리라는데 이상하게 보이질 않네여.
길을 잘못들어섯나..
200여m올라가니 갑사의 부속암자 내원암?앞에 이르고 여기서 반대편 내려가는길로
가는데 눈으로 덮여있어 겨우겨우 내려오니
냇가에 석조여래입상이 있군요.
이런 오른편길로 50m면 갈거리를 괜히 400여m를 빙빙돌았네여..
어쨌든 석조여래입상에 도착했습니다.
이 불상은 충남지방유형문화재 제50호로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이 불상은 갑사동쪽 소로를 따라 약 100여m 떨어진 개울가 인조석굴 내에 위치한다.
여래상이 안치된 석굴은 높이 220㎝, 폭 150㎝의 상협하광의 형태로,
여래불은 원래 갑사의 뒷편 중사자암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불상뒤에는 대나무가 우거져있군요.
불상을 감상하고 강당쪽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거의다 모여있군요.
여기서 커피좀 마시고 ..좀있다가
사람들이 다모이자 내려갑니다..
앞에 3분(이름몰라 죄송)이 앞장서 가고 그다음 나와 희정,지은,민경누나와
정한수가 가고..
좀 내려가니 아까전 철당간으로 가는길이 나옵니다.
나는 이것을 보고 가자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이쪽으로 가면 철당간 나오거든요 이거 보구 가죠..!"
내가 철당간쪽길로 가자 뒤에 따라오던 분들이 모두
나를 따라서 철당간쪽으로 가고.
좀 가니 마을이 보이고 다리건너 철당간이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 가는데 길이 얼음판이군요..
나와 용석형,정한수와 여자몇분이 먼저 올라가고
나는 중간에서 여자분들이 올라올수있도록 잡아주고..
양치기님포함 몇분은 안올라오고 그냥 다리에 서있고..
그럭저럭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라왔습니다.
이 철당간과 지주는 보물 제256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갑사의 원금당지의 서측 끝부분에서 계단을 내려와 약 30m 지점 평평한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철당간은 지름 50㎝의 오절철통 24개를 연결하여 두개의 지주에 연결하여 세운 것으로
현재 24개의 철통만이 남아 있지만 본래는 28개였는데,
고종 35년(1899)에 폭풍우에 의해 4개의 마디가 부러져 결실되었다고 한다.
당간의 기단은 장대석 2매를 쇠목으로 고착시켜 장방형이 되게 만들고 이 기단에 안상을
조각하고 있는데 좌.우측에 2구씩을 전.후측에 3구씩을 각각 음각하였다. 또한 기단의 상면
중앙에는 당간을 받든 원좌도 마련하고 있다. 이외 양쪽의 지주 내외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으며 지주의 꼭대기 외측면의 모서리는 모를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철당간의 남아 있는 전체 높이는 15m, 지주는 3m이다. 전언에 의하면 이 철당간은
신라 문무왕 19년(680년)에 만든 것이라 하나 지주와 기단부의 양식 수법에 의하면
신라 말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멋있게 생긴 철당간을 보고 내려옵니다.
역시 빙판길인지라 모두 조심조심..
여자분들 내려올수있게 잡아주고...
다리를 건너 왔던길로 내려옵니다.
내려오면서 이것저것이야기를 햇는데 기억이 안나서 모르겟고.
어느덧 매표소를 지나 고목으로 둘러싸인 길을 지납니다.
제일앞에 용석형이 가고 그다음에 정한수,이상명님
그다음에 나와 민경,지은,희정누나와 80년막내
광주,창원에서 온 여자 3분..
끝으머리에 양치기님과 김아영님일행..
어느덧 상가촌에 이르고
여기서 나와 용석형,이상명님이 은행과 밤등을 사서 일행에게 나눠줍니다.
배고픈지라 금방 동이 나고..
10시에 숙소에 도착합니다.
9. 갑사->공주
숙소에 도착하니 실종된줄알았던 종호형이 태연히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있네..
사람들이 이광경을 보자 놀라면서 한마디씩 "어디갔었어여" 물어보고..
약 30명의 사람들은 방에 앉아서 밤을 까먹으며 추위를 녹이고..
공주나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10:20,45분에 있군요.
양치기님이 뭐좀 먹고 가자고 10:45분차를 타자고 그러네.
나는 10:20분차타고 우선 공주로 나가는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그리고 상당수 여기에 호응을 하고..
밥은 공주에 나가서 먹기로 하고 부지런히 갈준비를 합니다.
방치우고 자기짐정리하고...
10:05분경 나가기 시작..
나와 몇명이 선발로 먼저 버스종점에 갑니다.
버스종점에 가니 공주가는 시민교통소속 공주시내버스2번이 대기하고 있군요.
10:10분쯤 되자 버스운전사는 앞문을 열고 승객을 태우고
나는 회원분들을 버스에 태우고 짱님을 기다립니다.
마침 공주2번버스옆에 논산역가는 덕성여객소속 논산시내버스bf101차량이
서있군요. 이놈은 10:35분에 출발하는 차인데
논산으로 해서 부여로 가면 좀 빨라서 논산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1990원 헉~~ 그냥 공주로 간다.. 공주는 730원이니까..
용석형이 오고..
그런데 짱님이 안오네..(방값지불하고 오느라 늦은것임)
버스시간은 다되엇는데..
10:19분 양치기님과 현경님이 뛰어오네
버스표 19명분을 사고 (730원*19=?)
버스에 오르니 버스는 바로 앞문을 닫고 출발.(10:20분)
버스안에 좌석은 다차고 나와 몇명은 입석으로..(나도 입석으로)
계룡저수지를 지나 게룡에서 사람이 좀타네
시골인지라 노인들이 많이 타고 용석형과 몇명은 자리를 노인들에게 넘겨주고
입석으로..
종호형은 부여답사지에 대해 공부하고 있고..
광주,창원에서 오신분들은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밤을 먹고 있구
(내가 바로 앞에 서있었죠.)
몇명은 자구..
공주대교남단을 지나 10:50분경 산성동종점에 도착합니다.
10. 점심먹고 부여로..
산성동시내버스종점에 도착하고 모두 내립니다.
여기서 부여로 가기위해서
부여는 금강건너 시외터미널에서 타야되는관계로..
택시탈까 버스탈까 하다가 거리가 가까우니 걸어가자고 해서
걸어가기로 결정..
공산성입구를 지나 금강교에 이릅니다.
이다리는 어제 후발대5분과 건넜던 그 낡은 다리..
금강교에 이르자 몇몇분들은 이런걸 어떻게 건느냐며 겁을 내시구..
결국 그냥 금강교를 건넜죠..
다리가 협소해서 위험하기는 하지만 1줄로 서서 모두들 잘 건너가구..
아래로 금강을 바라보며 옆에 어제 갔던 공산성을 보면서..
금강교를 건너 공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갑니다.
여기서 양치기님이 점심먹고 가자고 해서 부근 한식당으로 갑니다.
모두들 지치고 배고프고..
한식당에 들어가서 갈비탕과 된장찌게를 먹는데
맛있군요. 난 갈비탕먹엇는데 밥2그릇먹고
오랜만에 밥다운밥을 먹었다는..
반찬도 맛있구..
서비스로 커피와 요구르트까지..
다보구 제2실인 역사실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원삼국시대(마,진,변한)와 삼국시대의 백제시대유물,후기신라유물,
고려시대문화재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백제시대 옹관과 능산리절터등에서 나온 토기들,
사택지적비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주요한 유물들은 종호형이 설명을 해주고..
옛날 벼루와 동전,갑옷투구같은것들이 있습니다.
칠지도의 모조품도 있군요.
칠지도는 백제왕 근구수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한 칼이죠.
(일본놈들은 백제가 일본에 바친거라고 헛소리 하고 있죠..)
다보구 제3실인 불교미술실에 들어갑니다.
이곳은 백제시대 불상과 관련유물, 신라불상등이 있습니다.
입구에 서산마애3존불(국보84호)의 모형이 있군요.
불교미술실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것은 백제금동대향로..
이 향로는 능산리사지의 공방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향로의 뚜껑위에는 턱밑에 여의주를 낀 봉황이 앉아있고 몸통은 연꽃 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각은 용이 앞다리를 치켜든 채 용트림을 하고있는 자세이다.
뚜껑위쪽 봉황주위에는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잇고 5개의 산봉우리에
각각 1마리의새가 앉아 봉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명상에 잠긴
사람을 비롯하여 각종 짐승,인면수신(人面獸身),수면인신등의 상상속의 진금기수
(珍禽奇獸)를 비롯한 각종 도상이 표현되있다.
이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
백제시대 대표적인 불교문화재...
진짜 잘만들었더군요. 아름답고 백제사람들의 섬세한 공예술의 찬사를 보냅니다..
종호형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금동대향로옆에 큰 돌덩이가 있어 보니
'백제창왕명 석조사리감'이군요..
이것은 부여능산리사지 목탑터 심초석위에서 발견된 화강암제 사리감으로
발굴당시 사리감 내부는 남아있는 용기가 없으나 이 사리감 입구 양쪽에는
'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百濟昌王十三秊泰歲在丁亥妹
兄公主供養舍利)'라는 명문이 새겨져있어 이사찰건립연대를 비롯하여 백제사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문화재.
국보 288호로 지정..
이것을 보고 백제시대 불상들을 봅니다.
조그마한 백제시대 불상들..
상당수 금동으로 만든 불상들이군요..
그중에서 국보293호로 지정된 금동보살입상이 주목을 끕니다.
1907년 부여규암면(부여에서 서천가는 길목에 있는 동네)에서
발견된 불상. 전형적인 백제불상..
섬세하고 화려한 백제불상들을 보고
이곳을 둘러보고 나오니 아까전 들어온 입구군요..
많은 분들이 다 둘러보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군요.
용석형등 몇명은 기념품을 사는군..
양치기님이 다모인것 같다고 갈려 그러는데
한명이 안보입니다.
그 한명이 민경누나군요.
찾아보니 불교미술실에 있군요..
그래서 데리구 나옵니다.
박물관을 나오고..
박물관뜰에 석조문화재들이 몇점 있군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매표소 못미쳐에 비각이 있어 가보니
보물107호인 보광사중창비..
자세히는 못보고 나옵니다.
12. 정림사지 관람
박물관을 보고 부소산성에 가려했으나
정림사지를 보고가자는 의견이 있어 정림사지로 갑니다.
정림사지는 걸어서..
10여분 걸어가니 정림사지가 보입니다.
정림사지는 밖에서도 다보입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기로 하고..
정림사지입구에 이르자 종호형과 한수등 3명은 몰래 절터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일행이 그뒤를 따라가려 하자 직원이 나와서
입장료내라고 그러는군요..
확실히 정림사지 역사적인 가치는 높지만 터가 좁기 때문에
입장료내고 들어가기 아깝죠..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그사이에 직원의 감시가 소홀한틈을타서
나도 절터에 몰래 들어갑니다.
이곳 정림사지는 사적301호.
백제시대 대표적인 사찰이였죠.
지금은 터만남았지만 옛날에는 규모가 꽤 큰 절이였죠.
5층석탑과 석불좌상이 남아있습니다.
연못을 지나 건물터를 지나 5층석탑에 이릅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국보9호.!!
이석탑은 백제시대석탑으로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5층석탑(국보11호)
과 함께 백제시대석탑입니다.
초층탑신에는 당나라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한후
기공문(紀功文)을 새겼는데
이것은 석탑건립후 한참뒤에 일입니다..
석탑은 균형잡힌게 잘만들어졌습니다.
백제시대의 화려했던 불교문화를 느끼게 해주는 문화재입니다.
5층석탑 뒤에 한 건물이 있군요.
공사를 하고 있어 출입이 통제되있는데
그것은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각입니다. 공사를 하고 있군요.
그래서 석불좌상은 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건설중인 보호각안있어서
이 석불좌상은 보물 108호입니다.
고려초기석불입니다.
뭐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는 그냥 평범한 고려초기 석불입니다..
종호형등이 석불좌상을 보기위해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나도 들어가고 남자몇명이 따라 들어갑니다.
보호각안에 들어가서 보물108호 석불좌상을 바로앞에서보고 나옵니다.
보고 나오니 입장료때문에 못들어오던 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네여.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다는데..
5층석탑앞에서 종호형의 설명과 희정누나의 질문공세,80년막내(이름몰라 미안)
까지..
석탑을 배경으로 사진좀 찍고..절터를 나옵니다.
절터를 나오고 부소산성으로 가는데
몇분들이 집에 간다고 하네..
김아영님일행 3명과 지은누나등 6명이 가는군요.
못가게 말렸지만 소용없었다는..
짱님은 이들에게 차비를 주고 잘가라고 인사를 하고
나를 비롯한 20여명의 회원분들과 먼저가는 6분과 작별인사를 하고
13. 부소산성관람
6분이 간다음 남은 일행은 택시를 잡아타고
부소산성으로 갑니다.
아까전과 같이 4명이 1대에 타서 가는 방법
역시 요금은 2000원..!!
오늘 부여지역 택시들 땡잡았군..
택시를 타고 부소산성정문인 사비문앞에서 내립니다.
일행들이 다모이자..
입장료(2000원이던가??)를 내고 사비문으로 들어갑니다.
사비문으로 들어가면 길이 좌우로 있습니다.
어느길로 가던 상관이 없습니다.
길이 순환형이라 한바퀴 돌게 되있기 때문에..
이곳 부소산성은 백제시대 사비성의 도성이였으며 부여제일에 관광지다.
백제시대 궁궐과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지금은 부여지역 대표적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부소산성은 사적5호로 성은 토성형태로 남아있다.
낙화암,고란사,군창터,서복사지,여월루,태자천,
반월루,궁녀사등에 많은 유적이 있으며
나무가 울창하고 경치가 좋고 바로앞에 금강이 흐른다.
부소산은 해발 94m이다.
일행들은 오른쪽길로 갑니다.
용석형과 종호형,광주,창원분들등이 먼저 가고
나와 짱님,현경님,희정,민경님등이 뒤에 갑니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의논을 하는데..
시간이 남으면 부여에서 먹고 시간이 촉박하면 서울에서 먹기로..
삼충사정문앞에서 모인다음 다시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광주,창원(이진수님)분들이 앞장서서 가는군요.
그다음에 나와 민경,희정누나와 종호형,정한수등이 따르고
뒤에 짱님과 현경님,
제일뒤에 용석형과 막내(이름 몰라 미안)가 나란히 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올라가니 누각하나가 보입니다.
그것은 영일루(迎日樓)..!!
2층누각으로 충남지방문화재자료 101호..
조선말기 누각입니다.
누각위에 올라가서 사진좀 찍고 사방경치를 보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매점을 지나니 무슨 터가 나옵니다.
그것은 군창터(軍倉址)!!
이 군창터는 백제시대 군량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곳입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공격으로 불탔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식량창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군창터가 좀 넓군요.
예전 건물이 있던 터가 선명합니다.
지금도 이 군창터에서 탄화된 쌀이 나온다고 합니다.
(탄화된 쌀은 썩지 않습니다..!!)
이 군창터는 충남문화재자료 109호입니다.
군창터를 보고 왼쪽으로 갑니다.
좀가니 부소산성의 토성이 보입니다.
사적5호입니다.
그앞에 무슨 유적이 있고 건물이 있군요.
바로 수혈병영지(竪穴兵營址).
이 유적이 백제시대 병사들이 야영했던 병영터로 추정되는곳입니다.
그 집터 옆에는 그시절 야영막사를 복원한 움집이 있습니다.
그옆에는 목책(나무로 세운 방어시설 같은것)이 세워져있고.
옆 건물에는 수혈터유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옆으로 가니 2층누각이 보입니다.
바로 반월루(半月樓)..!!
위에 올라가서 부여시내와 백마강을 봅니다.
사진도 찍고..
좋군요.. 종호형말대로 이런데서 술마시면 좋을듯..
보고 좀 가니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길에서 왼편으로 가면 서복사터와 부소산성후문
앞길로 가면 낙화암과 고란사
오른편길로 가면 궁녀사와 태자천이 나옵니다.
부소산성에서 제일 대표적인곳이 낙화암이죠..(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듯)
역시 관람객들이 많군요. 사진찍고 구경하고
백화정이란 정자에는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백마강을
보고있습니다.
낙화암은 충남문화재자료 110호로 지정되있습니다.
낙화암은 흔히 3000궁녀가 떨어진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공격을 받고 사비성도 함락되자
많은 여자들이 이곳에서 백마강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약 수십에서 수백명정도 였는데 후대에 와서 3000으로 과장한것입니다.
낙화암은 백제여인의 굳은 절개와 고귀한 충절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낙화암에 세워진 백화정은 1900년대초기에 세워진 정자입니다.
낙화암에서 아래 백마강을 바라봅니다.
멋있군요.. 강건너 부여군규암면지역이 보입니다.
몇분들은 여기서 사진찍고 나도 찍고 찍어주고..
백화정에 올라가서 경치도 즐기고..
낙화암을 보고 고란사로 가는듯하다가
다시 왔던길로 올라가는군요..
사람들이 모두 피곤해서 고란사는 안간다는군요..
아쉽습니다. 고란사가 낙화암 버금가는 유명한곳인데..
(나는 2000년8월에 가봤습니다.)
다시 왔던길로 올라갑니다.
종호형은 멀정한 길놔두고 산길로 가네여.. 역시..
짱님과 용석형등이 앞에 가고
나는 뒤에서 민경,희정누나와 같이 걸어갑니다.
뻥튀기도 사먹고..
옆으로는 금강이 보입니다.
어느덧 내려가니
서복사터가 나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았는데 백제시대 절터입니다.
백제왕궁소속 사찰로 생각됩니다..
터만 남아있습니다. 절터는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터를 보고 계속 내려오니 충령사란 사당이 나오고
부소산성후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갑니다.
14. 부여->서울
후문으로 나와서 일행은 정문쪽으로 가는군요.
나는 뒤에서 따라가는지라 그냥 따라가고..
정문쪽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여있군요.
여기서 가는분들이 있군요.
대구,창원(이진수님)에서 온분들이 간다고 하네여.
여기서 이분들과 헤어지고..(이진수님과 작별..)
다 같이 서울로 가면 좋겠으나.
인천에 가는분 전라도로 가는분이 있어서
결국 인천방면 3명(희정누나,정호형,이상명님)
전라도전주방면(광주에서온 2분)
나머지는 모두 서울서초동..
여기서 버스표를 사고..
인천가는 분들은 17:50분버스를 타고 가고(부여->인천 12200원?)
전주가는분들은 17:55분버스(부여->전주 6000원?)
서울은 18:00 서울행 직통을 타고(부여->서울 1명당 9400원)...
표를 구입하고 부근 식당에 들어가서
김치,된장찌게를 먹습니다.
모두들 배고프고 지친상태라
먹을것이 나오자 금방 먹어치우는데..
서울일행과 인천,전주일행이 따로 앉아서 먹었죠.
17:40분이 되자 인천,전주일행5분이 갑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희정누나 왜 때리고 가!!)
서울일행은 부지런히 먹고 17:50분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식당이 좀 불친절해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죠.
터미널에 가니 서울행 직통버스가 대기하고 있군요.
여기서 볼일보고 과자좀 사고 사람들좀 기다리다가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는 만땅으로 차고..
나는 여자옆에 앉았고 나머지분들은 뒤에.
민경누나는 내맞은편에 현경님은 중간부분에 정한수는 내뒤에 앉습니다.
18:00에 버스는 출발하고..
이번에 탄 버스는 금남고속소속 부여발 서울행 직통버스입니다.
직통버스는 말그대로 중간경유지없이 논스톱으로 가는 버스죠.
직행버스의 고급수준..
부여->서울은 직행버스가 3:10
직통버스는 2:40분걸립니다. (운전사실력에따라 시간차이가 남)
모두들 피곤한지라 모두 잠이 들고 나도 잠이들고..
깨보니 공주시내..
여기서 인천일행중 1명인 희정누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예산통과중이라는..
또 자고 깨보니 천안..
어느덧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고..
깨보니 오른편으로 아파트단지가 보이네여.
바로 용인 구성,죽전지구와 분당신도시..
차가 막힐줄알았는데
잘뚫리는군요..
어느덧 서울TG를 지나 서초IC를 지나
2:18분만인 20:18분에 서초동남부터미널에 도착합니다.
금남고속 운전사에 운전실력에 감탄을 하며
버스에서 내립니다.
모두들 지친 모습..
양치기님이 커피한잔 마시자는데..
모두들 피곤한지 그냥 집에 가네여..나두 그렇구..
남부터미널역에서 아쉬운작별을 하며 다들 각자의 길로...
나는 민경우나와 80년생막내 그리고 성수동사는 분과 같이
지하철3호선을 타고 갑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민경누와 작별을 하고 나머지 3명과
7호선을 타고 가는데 뚝섬유원지역에서 성수동사는분 내리고
중화역에서 막내 내리고
나는 수락산역에 내려서 집에 오니 21:30분
이것저것 하다가 익일 1:00에 잤습니다.
15. 마무리
이번 부여,공주답사는 모든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발대는 무녕왕릉과 공주박물관을 봤지만 후발대는
공산성에서 늦게 합류해서 위에 2곳을 못본 아쉬움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