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산~수디산~금성산~작성산
"BMW"는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프리미엄 자동차의 브랜드 명칭이기도 하지만 버스(Bus),
기차(Metro),그리고 걷기(Working)의 영어단어 첫머리 글자를 합성하여 만든 조어(造語)다.
번개산행의 주된 이동수단으로 자주 이용되는 방법이기도 한 BMW 라는 조어는
프리미엄 자동차를 갖고있지 못한 일반대중의 시기와 질투심이 묻어있고 자조(自嘲)와
자탄(自歎)이 숨어있기도 하다.
번개산행의 이동수단으로써의 개인차량 운행에는 산행경로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짐이 되는 수가 양립하고 있으니 간절한 이동수단은 아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산우들은 BMW 방식을 선호하게 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영업용 택시의
도움을 받아 불편함을 극복하는 방식을 선호하곤 한다.
오늘 떠나는 산행도 별 반 다를 바가 없다.전철(수원역 7시20분,오산역 7시30분)을 이용해서
천안 역에서 내리면 우선 들머리인 비암사까지는 영업용택시의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방법이고 간편하고 편리한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천안 동부역 앞의 버스정류소에서 전의역 행(700번,70번)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리면
전의 역(全義驛) 앞에 도착한다.곧바로 영업용 택시(15000원)을 이용해서 들머리로 향한다.
비암사(碑岩寺)! 텅 빈 주차장에서 경내로 오르는 돌 계단을 오르면 일주문 역할이 주어 졌는가,
우측으로 거대한 느티나무가 위압적이다.나무의 몸피는 7.5m에 키높이는 15m 라 하고,
나이는 무려 810년이라고 우쭐거린다.
현재 도(道)나무로 품격이 정해져 있고 보호수(고유번호 8-17)로 지정되어 목하 대접중이라고.
절 마당에 들어서니 마당을 가운데 두고 시계방향 반대 방향으로 요사채,극락보전,대웅전,
명부전 그리고 또 한 채의 요사채와 법종각이 서 있고 대웅전과 극락보전 뒷편으로는
산신각도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절 마당 한복판에는 삼층석탑도 세워져 있다.비암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확실한 연혁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극락보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를 묘사하고 그 주제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아미타불은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주는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일을 하고 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부르면
서방극락의 아름다운 정토로 맞아가는 부처님이다.
극락보전 왼편 윗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은 본존불상을 모신 이곳 비암사의
중심 법당의 이름이다. 그리고 대웅전 뜰 아래로는 괘불탱화를 위한 걸개 구조물이 우뚝하다.
괘불탱화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비암사 전경
극락보전 앞 쪽 마당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조형 기념물이고,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탑은 고려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옥개(屋蓋) 부분이 탑신(塔身)에 비해 둔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단아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 탑이다.
절 구경을 마친 뒤 산행을 시작하려면 경내를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돌계단을 따라 절 마당을 내려서면 절 주차장 오른쪽으로 산행안내도가 보이고
그 옆으로 나 있는 오르막을 따르면 된다. 이곳을 출발하여 비암산,수디산,금성산,작성산를
차례대로 이어가는 산행경로를 밟을 예정이다.
주차장 한구석 비암사 해우소 옆으로 숲으로 오르는 목재계단 산길을 오르면
비암산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비암사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희뿌연 흙먼지 연막이 마치 아침안개가 드리워진 듯 비암사는 사뭇 고즈넉하고
신비스러운 기운까지 드리워져 있다.
길섶에 뜬금없이 부도1기가 모습을 보이고 산길은 산뜻하고 어느 누구인가
빗질을 해 놓은 듯 깨끗하다.
들머리를 뒤로하고 1.1km(이정표에 표기된 수치)지난 산길 우측 10여 미터 거리의
언덕이나 구릉에 불과한 얕으막한 멧부리가 모습을 보인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에는 아무 표식도 발견할 수가 없고
조망도 터지지 않아 무명봉 신세나 다름이 없다.비암산 정상으로 등산지도에는
해발 387m의 높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다. 비암산의 멧부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이정표가 금이성 4.2km라고 알린다.
소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솔가리를 뿌려놓으며 단장을 해놓은 산길은
게으른 과객들의 발걸음을 부추기는데 여념이 없다.비암산 멧부리를
1.3km정도 지난 지점에 두 번째 멧부리가 또 다시 산객의 발길을 잡는다.수디산이다.
해발 337m,고복산이라고 이름을 달아 맨 다른 의견의 표시기도 보인다.
그러나 1;50000의 지도(영진문화사 간행)에는 수디산 337m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니
"수디산"이란 이름이 맞지 않을까.멧부리의 모습은 비암산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으로
극성(?)맞은 열혈산꾼들의 흔적인 표시기만 바람에 나부낄 뿐 오래 전 부터 발길이 끊긴
성황당만큼이나 쓸쓸한 멧부리다. 수디산을 벗어나면 산길은 시계방향 반대로
U자형의 곡선을 그리며 금성산을 향하여 줄달음 치고 있다.
왼편 산 골짜기 일대는 목축을 주로하는 농원으로 보이며 산길은 임도삼거리로 연결이 된다.
임도삼거리! 우측으로 향하는 임도는 쌍류리와 연결이 되는 길이고 좌측으로의
하산길은 달전리로 향하는 길이다.
금성산은 가운데 맞은쪽 임도를 따라야 한다. 농장 쪽 골짜기에서 가축의 분변냄새가
솔솔 바람에 묻어 온다.
금이산성(金伊山城)
임도삼거리를 뒤로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우측의 소나무 숲으로 산길이 보이고
금이성 안내문과 함께 금이성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산길을 안내한다.
금이산성! 안내문을 들여다 보면,
성내에서 발굴되고 있는 유물로 보여지는 항아리,대접,사발 등 토기 조각 등으로
미루어 금이산성은 고려시대 때 축조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성이라고 한다.
해발 430m의 금성산에 축조된 길이 714m에 이르는 테뫼식 산성으로 성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철옹성 같다하여 쇠성 또는 금성이라 부르기도 한다고.성의 폭은 4.5m~5m에 이르고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3m 정도라고.남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고 시설물은
성의 북단과 동남,서남단에 망루지의 형태가 남아있고,동,북,서쪽에서 문터가 확인된다고 한다.
그리고 성내 정상부에 건물터의 흔적이 있으나 자세하지는 않다고 전하기도 한다.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오르면 이내 거뭇거뭇한 석성의 모습이 형체를 드러낸다.바로 금이성이다.
원래의 높이는 허물어진 상태에 따라 낮아졌고 성의 폭도 옆으로 무너져 내려 두터워졌다.
거뭇한 물때가 세월의 무심함을 드러내고 꺼뭇꺼뭇하게 변색이 된 이끼는 검버섯 모습으로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대변한다. 산길은 성을 따라 진행이 된다.
금성산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있고 정방형의 바위로 쌓은 5~6평 넓이에 2m높이로 제단이
축조되어있다. 주변으로는 커다란 참나무 세 그루가 삼각을 이루며 주변을 감싸안은
자세을 취하고 대형향로를 닮은 물건은 용도가 쓰레기통인지 중심을 못잡고 서너 곳에서
비틀거린다.제단 주위에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한다. 이곳에서 작성산은 2km의 거리,
금이성을 뒤로하는 계단길을 내려서면 곧바로 임도가 기다린다.
작성산 1.7km을 알리는 이정표의 지시대로 물때와 세월의 검버섯이 돋아 난 임도를 따르면
거대한 송전철탑을 지나가게 되고 이윽고 임도삼거리를 내놓는다.
작성산은 왼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지고 오른쪽 임도는 송성리를 향하는 길이다.
좌측으로 난 임도를 따르면 머지않아 도로옆으로 공터가 나오는데 공터 맞은쪽으로 안내표시가
작성산으로의 이동을 제시한다.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서까레 굵기의 통나무로
만들어 놓은 계단길을 오르면 작성산 멧부리에 오르게 된다.
거뭇한 바위돌들이 대여섯평의 넓이로 멧부리를 둥그스름하게 쌓아놓았다.해발 331.6m.
청아대장과 막걸리 한잔씩 나누어 마신 뒤 작성산 멧부리를 뒤로한다.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는 하산길은 고도를 서서히 낮추어 가더니 왼쪽의 급경사진 산길로
뜬금없이 방향을 바꾼다.능선을 따라 시나브로 고도를 낮추어 나가는 능선자락은
산기슭에 위치한 채취장으로 말미암아 산길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급경사 내리막 산길은 다행스럽게도 목재를 이용한 계단으로 이루어져 이동에는 불편이 없다.
비탈진 산길은 임도로 꼬리를 내린다.
오른쪽 방향으로 임도를 계속 따르면 우측에 채석장과 레미콘 그리고 아스콘을 생산하는
공장(흥진)이 나온다. 골재채취를 위해서 작성산 중턱까지 파들어 갈 기세다.
임도는 그 공장 입구에서 송성천을 가로지르는 송성교까지 이어진다.
송성교에 도착한 시각이 13시 30분쯤이니 산행에 들인 시간은 3시간 30분 가량이지 싶다.
비교적 산행이 수월하고 편안한 진행이었기에 다시 비암사까지 되짚어 넘어 갈 수 있는
기력들이 넉넉하게 남아있는 모습들이다.
점심을 치룬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모두들 전의(全義)에서의 뒤풀이를 천안으로
이동을 한 후에 치르기로 하고 오전의 이동수단으로 삼았던 BMW 방식을 재차 꺼내든다.
오전내내 파란 하늘을 뒤덮은 희뿌옇던 빛깔은 거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그늘지고 우울하고 수심이 가득한 모습이 역력한 하늘빛이다.
바람이 불어야 한다.그 바람이 명주바람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을테고 어둡고 그늘지고
우울한 기색을 닦아줄 바람이라면 여북이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