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 봉닭 / 한빛비즈 (2024)
[My Review MDCCLV / 한빛비즈 142번째 리뷰] 몽골역사는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왜냐면 '기록(역사사료)'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는데도 현재의 우리에게 거의 잊혀버린 '비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 무신정권과 조선건국 사이에 '고려 원간섭기'가 존재했던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면도 없지 않다. 우리가 전통혼례 때 신부가 입는 '활옷'과 머리에 쓰는 '족두리', 그리고 얼굴에 찍어바르던 '연지곤지'는 모두 몽골의 풍습에서 비롯되었고, 조선 군대의 행진 때 요란하게 들리는 '태평소'도 원래는 몽골의 군대에서 쓰던 악기였다. 원나라의 다루가치였던 '이성계의 군대'에도 자신의 참전을 알릴 때 바로 '태평소'를 울려퍼지게 했는데, 원나라 군대든, 명나라 군대든 이 '태평소'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고 싸우기도 전에 도망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벼슬아치', '양아치'라는 말도 원나라의 관직 '다루가치'의 '치' 또는 '아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몽골에서 유래된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참, '소주'를 빼먹었는데, 유통기한이 짧은 '막걸리'를 증류시켜서 '도수'도 확 높이고, 보존기간도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소주'는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사람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오늘날까지도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주를 만들 때 '소줏고리' 윗부분에 '이슬'이 맺히기 때문에 소주를 '이슬'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암튼, 우리는 이렇게나 '몽골'에 영향을 받았는데도 정작 우리의 '몽골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몽골사람들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몽고'라는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어리석을 蒙'에 '낡고 고루할 古'를 써서 '비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일본인을 부를 때 '쪽발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지금도 한국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꺼우리(고려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인이 한국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을 '이름, 그 자체'로 욕지거리로 만든 아주 야비한 짓이다. 요즘 말로 젊잖게 복수(?)를 하자면 "중국이 또 중국했네", "일본이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뭐!"라고 대꾸해주고 싶다. 그러니 우리 나라 사람들 만이라도 '몽고'라고 쓰지 말고, '몽골'이라고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몽골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솔롱고스'라고 부른단다. 몽골어로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몽골제국'은 얼마나 큰 나라였을까?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넓은 영토'를 자랑하지만, 중국제국의 일부라고 우기고(?) 있는 '원나라'는 사실 '몽골제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영역이었다. 그리고 원나라 역시 '몽골제국의 지도자' 카안(대칸)이 지배하던 지역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 영토는 '몽골제국'의 초원지대 상단부만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몽골제국'은 거대한 '유라시아 지역'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몽골제국이 아니었던 곳을 표시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서쪽으로 '헝가리', 남쪽으로 '중동', 동쪽으로 '만주'까지 지금의 중동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인도'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거의 전역을 몽골이 차지했었고, 인도의 '무굴제국', 고려도 사실상 '몽골제국'의 영향하에 있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 전부가 몽골제국의 영역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광대한 지역을 단 한 사람의 통치자(카안)이 다스리던 나라가 바로 '몽골제국'이었다.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말이다. 이렇게나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불과 200여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페스트'라는 질병이 엄청난 양의 사람과 가축이 '이동'을 하게 되니, 지역풍토병이었던 '페스트'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는 지금 찾는중이라고 한다. 워낙 사료가 태부족한 관계로 이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학술적 증거가 아직 부족한 셈인데, 현재의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몽골제국의 흥망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유럽이 페스트로 인해 전체 인구의 3/4이 줄어든 것처럼 '몽골제국'도 절반 이하로 줄었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추정한단다. 오늘날의 '고기후 데이터'로 14세기 무렵의 기후를 추정해보니,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기후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른바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이상기온'이 당시의 농업인구를 굶주리게 만들었고, 소와 말 등에게 먹일 '대초원의 풀'도 덩달아서 줄어들게 되니 '몽골제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카안의 수명'이 줄어든 것을 들고 있다.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의 평균수명이 10세~30세였다고 하니, 이는 몽골제국 내에 '질병확산'과 '경제악화'가 전반적으로 폭넓게 퍼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황실의 건강상태가 이 모양이니, 몽골제국 내 백성들의 삶도 상상이상으로 열악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 좋은 상황은 제국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확전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을 것이다. 흔히 'ㅇㅇ한국(칸의 나라)'이라 불리던 '울루스' 사이에 갈등이 높아지면서 황실 간 갈등은 높아져만 갔고, 이런 내부의 갈등은 '외부의 침략'으로 제국은 갈갈이 찢기게 되었다. 이때 훗날 명나라 황제가 되는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등장하는데, 장강 이남의 강남 출신이었던 주원장이 '원나라의 남쪽'을 차지하고 지금의 북경(원나라의 대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나라는 '북원'으로 밀려나고, 홍건적 떼거리의 일부가 고려 국경을 넘어 난리부르스를 치게 된다. 침략 이유는 다름 아닌 '원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려로 넘어왔기 때문이란다. 이들 '홍건적의 잔당'을 물리친 고려의 영웅이 바로 최영과 젊은 이성계였다. 그래서 최영은 깝죽거리는 명나라 군대를 만만히 보았던 것이고, 이성계도 조선 건국 이후 명나라 주원장이 깝죽거리면 "내가 직접 조선군을 이끌고 명을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고려 말 '요동정벌'이 결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몽골'과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아쉬운 것은 이를 증빙할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집대성'한 역사서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 책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도 읽다가 의아한 대목이 많은 편이다. 아니 '몰랐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와 비교하면서 읽어나간다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띄엄띄엄' 어색했던 역사적 흐름이 한층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몽골제국사'를 쉽게 풀어준 글쓴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https://blog.aladin.co.kr/728876216/15451344
https://sarak.yes24.com/blog/zizi0908/review-view/1964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