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의 인식과 성찰의 서정적 탐색
--황인선 시집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나”와 삶을 통한 공존의 공간 탐구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앞만을 본다. 그러나 나는 자기의 내부를 본다. 나는 오직 자기만이 상대인 것이다. 나는 항상 자기를 고찰하고 검사하고 그리고 음미한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외적인 형상만을 보면서 살아가는데 번지러한 겉치레에 매료(魅了)되어 진정한 자신 “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몽테뉴는 자신의 내부, 속마음까지도 관찰하면서 검사하거나 또는 스스로 음미(吟味)하고 있어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재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황인선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다』를 일별하면서 우선 이러한 “나”에 관한 문제들을 상기해보는 것은 그가 인생에서 심취(心醉)하는 사유(思惟)의 범주(範疇)가 통념적인 보편성을 벗어나 지적(知的)으로 지향하는 시법이 상당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곧 스러질/ 실낱같은 하현달의 미소를 보면서/ 詩와 / 예순한 번째 생을 생각한다.”는 아련한 생(生)에 대한 연민과 함께 그의 삶과 공존하는 “나”를 인식하고 다시 인생에 대한 성찰을 탐구하는 심연(深淵)에는 현실과 이상이 상호 보완하는 사유를 시적으로 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친구여,
먼 옛날 신시(神市)의 드넓은 뽕나무 숲이
벽해(碧海)가 되었다 하니
봉래(蓬萊)의 하늘은 어디쯤 있는가!
내 그리로 가서
원시림 푸르른 혈맥에 들어
자세한 말씀 들은 후
쪽빛이 되려 하네
쪽빛으로 해류를 따라 흐르다
수증기 타고 올라 구름이 된 다음
백산(白山)에 쏟아져 내려
솔씨를 싹 틔워 깃들 것이니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홀로 청청한 장송 되거든.
잘 벼린 톱과 칼로 베고 다듬어
간직한 말씀 올곧이 새겨
다음 세상에 전해주게나.
--「만취晩翠」 전문
황인선 시인은 인간들이 늙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만취晩翠」 에 대하여 심도(深度)있는 내면 정서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먼 옛날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삼천명의 무리를 거리고 내려와 이룩했다는 이 신시(神市)에서 찾아보는 상전벽해(桑田碧海)나 중국의 전설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은 어디쯤에 있는지를 작품의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어서 그가 탐구하고자하는 진정한 인생관은 그에게 관류(灌流)하고 있는 내면의식이 시적으로 여과(濾過)하여 분사(噴射)하는 현실의 현장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 그리로 가서/ 원시림 푸르른 혈맥에 들어/ 자세한 말씀 들은 후/ 쪽빛이 되려 하네” 그리고 결론으로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홀로 청청한 장송 되거든./ 잘 벼린 톱과 칼로 베고 다듬어/ 간직한 말씀 올곧이 새겨/ 다음 세상에 전해주게나.”라는 다소 강직한 어조로 우리들에게 전언(傳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에 대한 인식은 작품 「눈 내리는 밤」에서 “전등 빛만큼 물러나는 어둠/ 그 경계를 하얗게 메우는 눈/ 이제 나는 공존의 공간을 지나/ 어둠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또는 “눈 내리는 무저갱의 어둠 속”을 기도하면서 가야하는 역경(逆境)에서 자신은 공존의 공간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러한 무저갱(無底坑)의 악마의 구렁텅이 속을 가야하는 인생행로가 거칠고 어려운 난관의 경지에서 헤매지만 “연꽃 피고 풀꽃 피었으니/ 너도 이제 나의 정원에 들어/ 나와 같은 꿈속에 살자/ 산 그림자 위로 구름이 흐르고/ 백로 나래 깃 펴는 정원에서/ 투명한 물빛이 되어 그렇게 살자.(「양수리에서」 중에서)”라고 단념하면서도 긍정적인 향태로 변화하는 양상의 어조를 이해하게 된다.
먼 길을 달려와 잠시 세워둔 화물차 앞 유리에
빗방울이 달라붙는다.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는 흔적을 남기면서도
기어이 딱 달라붙는 물방울들로
어느새 시야가 모호해지고 경계가 뚜렷해져
마침내 세상 모든 것들과 차단이 되면
비로소 나의 자폐증은 꽃눈을 틔우기 시작한다.
“이대로 잠들어도 좋을 거야.”
어릴적 장롱 속의 아늑함과 소나기 피해
헛간에 들어선 안도감
이 고단한 일상의 끝에서 영원히 잠들어도 좋겠지
그리하여 권능이라도 한 꺼풀 묻어있을
산비탈 너머 자작나무 숲에서 불어온 하얀 바람으로
창백한 이마에 안수해 주기를 …….
어둠 속에서
시나브로 추락하는 삶의 깊이를 가늠하며
고요히 놓인 징검다리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다.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다」 전문
황인선 시인은 다시 “마침내 세상 모든 것들과 차단이 되면/ 비로소 나의 자폐증은 꽃눈을 틔우기 시작한다.”는 상황이 차단에서 자폐증으로 연동(聯動)하는 형태의 불가시적인 현상에서도 “이 고단한 일상의 끝에서 영원히 잠들어도 좋겠지”라는 긍정의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하여 권능이라도 한 꺼풀 묻어있을/ 산비탈 너머 자작나무 숲에서 불어온 하얀 바람으로 / 창백한 이마에 안수해 주기를 ……. ”하고 기원의 의지로 다시 나와 삶에 대한 추락의 그 깊이를 예측하고 있어서 그가 진실로 가치관으로 설정하려는 작심(作心)의 한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결론으로 “어둠 속에서/ 시나브로 추락하는 삶의 깊이를 가늠하며/ 고요히 놓인 징검다리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다.”는 가늠의 깊이와 거리 그리고 그 공간은 의미 그가 설정한 이 작품 표제시의 진의(眞意)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추락”이 제시하는 그의 내면에는 “원인모를 조바심이 덜컹거리며 내려앉는다/ 억눌린 삶은 이렇듯 매양 분주하다 (「쳐다보기」중에서)”거나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후에도/ 뒷모습이나 헤고 있을는지 (「역방향」중에서)” 그리고 “끝나지 않는 노동의 시간/ 직선으로 향하는 시간의 횡포 속에서/ 고된 삶 또한 이어져야 하는가(「또 한 번의 이별」중에서)”라는 예측불가한 어조도 동시에 적시하고 있어서 자신도 나와 삶에 대한 명징(明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2.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의 반응과 형상화
황인선 시인은 청각적 이미지에 남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소리는 생명의 증거”라고 했다. 그리고 “현실에서 소리를 빼내면 유리상자에 갇혀버린 미이라가 된다(『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중에서)”라는 말로 소리야말로 인간의 존재에서 간과할 수 없는 형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저 새는
어떤 어둠 속에서 왔길래
저토록 맑고 높게 우짖는가
함박눈 송이송이
삭발한 맨머리에 부딪는
통찰(洞察)한 감촉
자궁 속에서
양수와 함께 쏟아져 나온
첫 울음소리 같다
별을 따먹고
천 년쯤 벙어리 되었다가
마침내 토해낸 소리
출근길 길모퉁이에서
희미한 첫 햇살을 깨우는
카랑카랑한 오도송(悟道頌)
--「첫새벽 소리」 전문
오래전에 박목월 시인이 글 「목탁」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소리가 목탁소리라면 의아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목탁소리는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가 우리들에게 인상지어주는 것은 결코 상시에 머물지는 않는다.”라는 언지로 청각에 대한 숭고한 사려(思慮)의 이미지가 있음을 암시한 바가 있다.
이와 같이 황인선 시인이 이 “첫새벽 소리”에서 적시하는 것은 “함박눈 송이송이/ 삭발한 맨머리에 부딪는/ 통찰(洞察)한 감촉”이라는 양질(良質)의 은유로 소리를 청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를 “별을 따먹고/ 천 년쯤 벙어리 되었다가/ 마침내 토해낸 소리”라는 탁월한 비유로 고승(高僧)들이 불도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노래 즉 오도송(悟道頌)을 듣는 시적 상황이나 전개와 결론은 괄목(刮目)할만한 시법의 경지를 들려주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
어둠을 밀어내는 푸른 물결이
산협을 타고
안개를 헤치며 내려온다.
천상에서 내려와 흐르는 소리
땅속까지 미물을 깨우고
잔물결로 끊겼다 이어지는가.
저승길이 문밖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오는 소리
미망을 깨트리는 소리
번뇌를 털고 일어나는 소리
사생구계*를 허공에 걸어놓고
안개구름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끊겼다 이어지는 인연의 울림.
* 사생구계(四生九界) : 범종에 새겨 넣은 네 개의 연각과 아홉 개의 연꽃으로 모든 중생과 중생계를 뜻함.
--「범종소리」 전문
다시 황인선 시인은 이른 새벽에 “천상에서 내려와 흐르는 소리”라는 “범종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그는 “저승길이 문밖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오는 소리/ 미망을 깨트리는 소리/ 번뇌를 털고 일어나는 소리”로 계시(啓示)하는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른 새벽 산사에서 울리는 범종소리를 “인연의 울림”으로 정의하고 “사생구계”에 까지 경종을 울리는 거룩한 불교의 의식(儀式)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탁월한 평형 청각기관의 활용에 공감의식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활용하는 “밀물의 끝을 알리며 시작된 파도소리가/ 기적소리처럼 점점이 멀어져/ 바다 끝으로 밀려 나가고/ 온통 빈 바다엔 거친 바람소리와(「장봉조 Ⅱ」중에서)”와 같이 파도소리, 기적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들과 교감하면서 비장한 메시지를 띄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달빛 밟고 끌려온 사람들을/ 생매장하고 도주한/ 짐승들의 웃음소리 들린다.(「계양산」중에서)”, 또는 “이 땅 위에서/ 여전히 빛과 어둠이 한 몸으로 부둥켜안고/ 산짐승은 저리 울고(「산노을」중에서)” 그리고 “갑갑증이 일어 창문을 열면/ 일제히 쏟아져 오는/ 햇볕과 바람 그리고 소음들 (「창 안에서」중에서)”과 같이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또는 소음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청각 이미지를 활용하는 그의 시법에서는 자연의 풍광뿐만 아니라, 그 속에 침잠(沈潛)해있는 미지(未知)의 음향(音響)도 탐지하는 순수 서정성도 엿보게 한다.
3. 생명의 발원지 “어머니”에 대한 효심
김남조 시인은 그의 글 「그 먼길의 길벗」 중에서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는 말로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정감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나의 생명을 탄생시킨 모태(母胎)로서의 위대한 존경과 효성을 발휘할 대상이다. 또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불망(不忘)의 존재로 나의 영육(靈肉)이 동반하는 숭엄(崇嚴)한 위치에서 항상 효도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작품 「눈맞춤」 중에서 “거실에서는/ 아내와 큰아들 내외, 둘째, 막내 웃음소리가 / 왁자지껄 들려오고/ 눈앞에선/ 굴피껍질 같은 구십 노모의 손이/ 마알간 아기 볼을 쓰다듬는다“거나 작품 「만추」 중에서도 “낮보다 밤이 많이 길어졌으니/ 홀로 계신 노모의 밤은/ 그보다 몇 배 더 길 것입니다/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습니다.” 또한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의 시간은/ 어쩌다 오는 시골버스 기다리며/ 언덕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기다림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신발이 먼저」중에서)”는 그의 어조로 보아서 그는 “홀로 계신 노모”에 대한 애틋한 정감으로 “구십 노모”를 흠모(欽慕)하면서 노모에게 쏟는 정성어린 효심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꽃차를 마시며
장독대에 핀 서리꽃을 봅니다
잘 덖은 갈색 바삭한 꽃송이가
깊은 향기 머금고 있듯
주름꽃으로 간직한 어머니.
과중한 시집살이 견디시다가
자식 학비 벌어보겠다고
친정 다녀와서 우셨지요
아버지 병수발하며
가슴 쓸어내리시던
수많은 낮과 밤도 지금은
빈 잔에 남아있는 꽃송이처럼
홀로 계신 어머니
꽃차를 마시며
어머니와 제 생을 봅니다.
--「꽃차를 마시며」 전문
황인선 시인은 “꽃차를 마시”면서 어머니의 한 생애를 간략하게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과중한 시집살이 견디시다가/ 자식 학비 벌어보겠다고/ 친정 다녀와서 우셨지요”라거나 “아버지 병수발하며/ 가슴 쓸어내리시던/ 수많은 낮과 밤도 지금은/ 빈 잔에 남아있는 꽃송이처럼/ 홀로 계신 어머니”라는 애절한 어조는 누구에게나 가슴 뭉클한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은 두 칸 방에 갇혀 계시지/ 버스가 문학터널을 통과하자/ 청량산을 보고 우측으로 돌아간다/ 지금쯤 버스정류장에는/ 꾸부정하고 휘청휘청한 어머니가/ 마중 나왔을 것이다(「미중」중에서)”라거나 “어머님 시집올 때 따라와/ 긴 세월 눈물이 배여/ 지문처럼 아로새겨진 모습”으로 그의 내면에 관류하고 있는 자비로운 어머니의 상(像)이다.
얼마나 기다렸기에
바다 빛깔이 하얗게 바래었을까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으로
창백한 낮달이 가고 있다
그물질하는 어부들과
조개를 캐는 아낙들,
꼬부랑꼬부랑 울엄니도
그리움을 캐고 있었다
아득한 수평선 저 멀리
바라보기만 해도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던
추억의 그림자
석양이 내려앉은 해변에
나란히 놓여져
빈 바람 맞는
고무신 한 켤레
--「송도 앞바다에서」 전문
황인선 시인의 뇌리에는 “아득한 수평선 저 멀리/ 바라보기만 해도/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던/ 추억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서 어머니에 대한 애련(愛憐)과 사모(思慕)의 정감이 적나라하게 잘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4부 “오냐 오냐” 장(章)에서는 전편을 어머니에 대한 작품으로 할애하고 있어서 어머니와 함께 그의 서정적인 시법이 동행하고 있어서 “꼬부랑꼬부랑 울엄니도/
그리움을 캐고 있었다”는 추억이 재생되고 있는 상황이 더욱 감응을 깊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어머니의 생생한 모습을 음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저녁 어스름/ 하염없이 앉아계신 어머니/ 어찌 이리도 서러운 가요.(「반닫이」 중에서)
-고요 속에 다시 초침 소리 커지고/ 귀뚜라미 소리 겹쳐질 때/ 어머니 돌아 눕는 기침 소리에/ 번쩍 눈 뜨는 이른 새벽.(「이른 새벽」중에서)
-헛헛한 바람만 양푼에 가득하다/ 오메 이쁜 내 새끼들 지랄 맞게 잘 자라라 잉/ 어미는 마지막 남은 몸통 던져주며 / 오냐 오냐(「오냐 오냐」중에서)
-바닷물 드나들 때 몽돌 소리/ 조개 잡아 오시는 어머니 바랑에는/ 갯내음 묻어오는 바람 소리(「키질하는 소리」중에서)
-가뭇한 기억의 가장자리 길/ 언 듯 언 듯 / 찔레꽃 분칠한 듯 굳은 어머니 얼굴 보며/ 알싸한 향기에 코끝이 시큰했던/ 그때/ 꼬옥 쥔 땀 배여 축축한 손은/ 오롯이 남아있는 일곱 살 꿈길.(「외갓집 가는 길」중에서)
이어령 교수도 “어머니에게는 잔잔한 물결 같은 사랑만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향수가 서려 있다.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본다.”는 말로 어머니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리움의 진원지와 서정적 자아 탐구
황인선 시인은 그리움의 진원지를 탐색하기 위해서 서정성 짙은 자연이나 현실적인 여건을 자신의 혜안으로 응시(凝視)하거나 관망(觀望)하면서 상황설정과 전개하는 시법을 간과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살아오면서 체험하면서 학습한 자아의 서정성을 심도있게 탐구하는 한 과정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산돌림」 중에서 “잔물결로 밀려와 물안개로 피어난/ 내밀한 그리움을 품고/ 물 위에 투영된 푸른 산 그림자 속에 / 흔들리는 벗풀/ 그 가녀린 흰 꽃이 되어 너에게 간다”거나 “목화솜만 한 그리움이/ 먹장구름 되어 소나기로 뿌려지고 있”다는 등에서 “산돌림-산기슭에 내리는 소나기”에서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인 자아의 인식은 더욱 명민(明敏)하게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키다리 소나무 위로 새털구름 떠있고
파란 남쪽 하늘 끝으로
사연들을 실은 여객기가 멀어집니다
달맞이꽃 씨방 위에 앉은
고추잠자리 날개가 맑은 햇살에 반짝이는
이런 날에는
수작을 부리는 선들바람 따라
그대에게 가고 싶습니다
쑥부쟁이며 수레국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잠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에 대해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코스모스 지천인 이 가을에
하늘이 높아지는 만큼 그리움은 깊어지고
물결에 일렁이는 달빛 사연들을
추억이라는 편지지 위에
한 자 한 자 새기며
주소 없는 편지를 쓰고 또 쓰렵니다.
--「가을편지」 전문
황인선 시인은 가을에 편지를 쓰면서 깊은 그리움에 대한 사연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는 시적상황에서 순서대로 키다리 소나무와 새털구름, 파란 하늘, 달맞이꽃, 고추잠자리, 맑은 햇살, 선들바람, 쑥부쟁이, 수레국화, 코스모스 그리고 일렁이는 달빛 등 많은 외적인 사물들로 형성되어 이것들이 제시하는 내적인 관념의 그리움으로 이미지를 재생하고 있어서 그가 탐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서정성이 잘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억에서 탐구하는 그의 어조는 “봄볕 머문 목련꽃 자리/ 살포시 어둠에 젖고/ 그 사연만큼이나/ 따사한 온기 여윈 듯 배어있어 (「목련꽃 자리」 중에서)”라거나 “고향집 안방에 돌아가 누우면/ “그동안 고생 많었쟈.”/ 덥석 두 손 잡을 것 같은/ 어머니 목소리/ 늦가을 그 쓸쓸한 숲에 서면/ 여기저기서 가슴 치는 소리.(「낙엽 그 소리」 중에서)”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로(心路)를 따라 오른다.
나무 하나하나 이름을 외고
지저귀는 산새 모습 찾아내어
물소리 밟고 오르는 산
능선 너머 기웃거리는 봉우리
흘깃 바라보고 총총히 돌아선
가겟집 계집에 눈빛 닮았다
수줍게 내민 손 단박 거절한
미안함 새삼스러운 데
산 오르면
지난날 퍼렇게 날 선 기억들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젊은 시절 발끝만 보던 걸음에
나무 하늘 구름도 보이니
하늘과 점점 가까워지라고
가슴에
포물선 하나 그어 놓았나 보다.
--「산길」 전문
그렇다. 그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자연 현상에서 응시한 사물의 형상화에서 획득한
불변의 섭리와 인간의 순리가 우리 인간들의 기억(혹은 추억)으로 재생하여 새로운 관념의 세계를 조성하는 순환의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 “산길”에서는 나무의 이름을 외고 산새들의 모습을 찾아내고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르는 산봉우리- 여길 오르면 그는 “지난날 퍼렇게 날 선 기억들/ 부끄러워 고개 숙이”지만 “젊은 시절 발끝만 보던 걸음에/ 나무 하늘 구름도 보”인다. 너무 서정적이다. 옛날에 그냥 지나쳤던 나무와 하늘과 구름도 볼 수 있는 안목(眼目)이 그만큼 성숙해 있어서 그의 서정적 자아의 발견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작품 「달과의 거리」 중에서도 “이따금 직선으로 떨어지던 별동별 같은 순간들/ 각각 한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 손끝과 손끝이 닿지 못함은 / 서로의 하늘만 바라보는 겨울나무이기 때문이다/ 불면의 창을 열면 / 안쓰럽게 안겨오는 그믐달 하나/ 저 혼자 흑백사진 찍는다.”는 서정성이 넘치는 그의 심저(心底)에는 잔잔한 호수에 순풍이 일렁이는 안온한 정감적인 시혼(詩魂)이 잠재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작품 「춘광」 「산골 살이」 「우화」 「풍경」 「감꽃 목걸이」 「소일」 「끝의 의미」 「만추」 등등에서 착목(着目) 하는 소재마다 자연계 또는 인간세의 안정적인 서정의 발현은 곧 인본주의(humanism)의 실현에서 구현하려는 정서의 결정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가 탐색하는 서정적 자아의 중심에는 항상 자연과 인간의 복합적인 생존의 진실이 필요하제 되는 것이다.
5. “그대는 -시에 대하여”와 에필로그
황인선 시인은 이 시집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다』에서 그가 주안점을 두고 천착(穿鑿)하는 것은 나와 삶의 공존에서 탐구하는 진실이며 다시 그는 만유의 청각적인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인생의 향방이나 행로와 합일하는 정점을 무색하거나 생명의 발원지인 어머니에 대한 효심적인 애환 그리고 그리움의 진원지인 자연과 인간의 서정성 탐색에서 시적인 주제를 정립하고 진실을 구가(謳歌)하였다면 그의 시적인 공감이 독자들과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에 대하여” 그의 집념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작품 전체에서 여과된 그의 사유와 정서가 시적으로 승화하는데 이의(異意)가 있을 수 없지만, 특히 “사월은/ 꽃잎만큼이나 가벼운 치장을 하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사월의 산책」 중에서)”거나 “이 세상 꿈이 저세상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 헤아릴 수 없어도/ 계절이 변검술 하듯 바뀌니/ 머잖아 만장 휘날리며 첫눈 찾아오겠네.(「꿈의 끝에는」 중에서)”와 같이 자연 섭리와 인생론이 융합하는 시법에서 그는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엿보게 한다.
그대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빛나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은은한 연록으로 만상을 품고 산다
겨우내 모진 바람과 혹한을 견디어낸 그대는
인고의 결정체
생명의 깃발 흔들며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둔중한 에밀레종 소리다
싱그러운 언어들로 빈 들녘을 가득 채우고
산기슭을 타고 앉아 온 산을 애무하는 손길
그대는
물비늘 반짝이는 생기를 출렁이며
쪽빛 바다에서 왔으리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그대는
안식과 사랑과 생명의 양지이다.
--「그대는 -詩에 대하여」 전문
그는 시에 대하여 이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현실적인 상황이나 관념적인 이상향 등에서도 시는 오로지 “물비늘 반짝이는 생기를 출렁이며/ 쪽빛 바다에서 왔으리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그대는/ 안식과 사랑과 생명의 양지이다.”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시인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시인의 집에는/ 빈 소주병이 쓰러져 산다// 취하지 않는/ 별빛도 하나 들어와 살고// 마뜩잖아 하는 아내의// “이 웬수 같은 인간”도/ 앵겨서 산다.(「시인의 집」 전문)“는 자조(自嘲)의 어조로 적시하고 있으나 이는 통시적(通時的)인 보편성에서 분출하는 그의 진솔한 독백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황인선 시인은 시를 창작함으로써 마음을 정화(淨化-catharsis)하거나 자신이 거기에 도취(陶醉-narcissim)하는 시의 기능을 충실하게 활용하여 자신인 지향적으로 모색하려는 시적인 주제를 정립하는 시인으로서 우리 시단에 우위에 서 있는 점에 찬사를 보낸다. 시집 출간을 축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