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석이 돋보이는 거시기한 산
- 제천 동산&작성산의 산행기
괴산․제천․단양․보은의 산은 고결하고 기풍이 있다. 깔끔하고 옹골져 보이는 화강암이 매력적이고 그 단단한 바위틈새를 비집고 자란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고매한 성품의 선비를 연상시키는 암릉과 기암괴석과 분재 같은 소나무와 아름드리 노송이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제천의 동산과 작성산은 처녀산행이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아침에 흐리던 날씨가 점점 개이더니 산행들머리인 금성면 성내리에 도착하자 햇살이 보였다.
무암사버스정류장이 있는 “성내슈퍼” 앞 마을공터의 길가에는 친절하게도 작성산․동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도로 아래 청풍호(청주호)의 수몰지역을 벗어나 새로이 조성된 듯 주로 식당으로 이루어진 동네 길을 따라 오르는 계곡 입구의 너럭바위가 범상치 않았다. 뒤돌아 내려다보이는 청풍호반이 산속 바다처럼 아름답고 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동네를 벗어나면서 송어장과 무암 저수지를 지나고 매표소의 주차장에 이르니 그곳에는 “비단폭 무릉도원 무암계곡”이라는 바위 표지석과 “동산․작성산의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찻길을 따라 올라가니 영화 “신기전”의 SBS 세트장이 나타났다. 낡은 세트장을 구경하고 무암사로 오르는 찻길을 벗어나 숲길을 걷다가 다시 찻길을 만나는 지점에 장군바위 능선을 따라 동산(東山)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는 그 갈림길을 지나쳐 무암사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무암사의 표지석 앞에 버젓이 세워놓은 남근석 사진의 안내에 따라 새목재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 새목재로 통하는 너른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작성산과 동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에서 동산으로 통하는 이정표를 따라 올랐다. 된비알을 오르다보니 숨이 찼고, 시야가 트일만하니 밧줄과 암벽과 암반이 나타났다. 오늘은 힘 꽤나 써야 할까보다. 스틱이 다소 거추장스러웠다.
밧줄을 타다가 암벽을 남겨 놓고 우측 능선을 바라보니 장군바위와 그 뒤의 버선바위가 능선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계곡 맞은 편 작성산의 줄기의 가파른 화강암의 암벽과 암벽 사이의 소나무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한 숨 돌리며 눈요기를 한 다음 다시 힘을 내어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니 조망은 점점 더 좋아지었다. 옆 능선의 장군바위도 계곡건너의 무위사 위 배바위를 중심으로 주변의 화강암의 암벽도 소나무도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지나온 무암저수지와 청풍호반의 새파란 물이 더해지면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냈다.
한 폭의 산수화가 눈길을 끄는가 싶더니 턱하니 앞을 가로막는 거시기한 바위, 남금석이 힘찬 모양새를 하고 우둑 솟아 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달랐겠지만 “참, 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탐스러운 남근석의 주위를 맴돌며 보고 또 보고 그곳에서 시간을 좀 보냈다.
남근석을 지나면서부터 50여m의 능선은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어지고 조망이 좋다. 푸른 물줄기를 자랑하는 청풍호반이 멀리서 산자락 끝을 품고 있었다. 암릉을 비집고 자란 소나무는 푸르디푸르렀다. 깨끗한 화강암의 절벽과 여러 형태의 기암괴석이 병풍을 이루고 거기에다가 분재처럼 아름다운 소나무가 어우러지어 줄곧 탄성과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였다.
청풍호(충주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암릉을 오르면 흙길이 나오고 경사가 만만찮다. 그 된비알을 오르니 주릉 갈림길이었다. 그곳이 능선삼거리. 그곳 이정표에는 “동산 2.0㎞ 성내리 3.5㎞, 남근석 0.6㎞”라고 표시되어 있다. 능선 길은 의외로 가팔랐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 조망도 트이고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0.35㎞쯤 오르니 첫번째 봉우리와 돌무덤이 나타났다. 그곳이 성봉(城峰, 825m)이었다. 2시간가량 산행을 하고나니 아직 12시는 채 안되었지만 제법 배가 고팠다.
바윗길을 지나 능선으로 내려가자 갑자기 날씨가 꾸물거리기 시작하였다. 마침 선두로 가던 일행이 길가의 숲속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자리를 펴고 있었다. 합류하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변덕스러운 날씨가 기상청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인지 점점 더 흐려지었다. 그곳에서 중봉으로 오르는 비알은 활엽수가 숲을 이루는 흙길인데도 경사가 꽤나 심하였다. 다리 힘 좀 쓰고 숨을 몰아쉬며 봉우리에 오르니 또다시 돌무더기가 나타나고 그곳이 중봉(892m). 그곳에서 성봉은 0.92㎞, 동봉은 0.72㎞이었다.
중봉에서 동산의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의 직전에 무암사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그 샛길을 지나 작성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동산은 290m를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였다. 일행들은 배낭을 벗어놓고 갔으나 나는 그냥 메고 갔다. 평탄한 능선을 지나 비알길이 나타나자 그곳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동산에는 “동산 896m"라는 오석의 정상석이 놓여있다.
다시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와 능선을 따라 작성산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새목재까지는 400m남짓의 된비알 내리막길이다. 가랑잎이 쌓인 흙길인데다가 눈이 녹아 매우 미끄러웠다. 오르막보다는 훨씬 걷기에 불편하였다. 잔뜩 긴장하여 곡예라도 하듯이 지그재그의 흙길을 내려갔다. 다리 힘이 쪽 빠졌다. 깊은 안부에는 새목재라는 표지목이 세워져있었다. 그 푯말에는 “무암사 2㎞, 장성산 1.35㎞, 동산 0.68㎞”라는 거리표시가 되어 있었다. 새목재는 동산과 작성산을 가르는 길목이다. 한양에서 배를 타고 와서 무암계곡을 따라 올라와 단양으로 넘어가는 보부상들의 큰 길이었다 한다. 그 모양새가 새의 목을 닮은 데서 새목재라는 이름이 연유한다고 한다.
새목재에서 숨을 좀 돌리며 물 한 모금 마시려니 갑자기 날이 흐려지고 바람도 불기 시작하였다. 비가 올 모양. 우비를 미리 꺼내 놓을까 하다가 그냥 작성산을 향하는데 오르막길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배낭 깊숙이 넣은 우비를 꺼내어 다 입기도 전에 비바람이 불었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이 세어지면서 날이 어두워지고 갈 길은 바빠졌다. 구경은 감히 엄두도 못냈다.
능선길과 우회로를 따라 40여분 오르니 “까치산(鵲城山) 848m”이라는 정상석과 “까치성산”이라는 표지목이 나타났다. 그 푯말에는 “작성산 0.25㎞, 새목재 1.1 ㎞”라고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불과 2분 남짓 걸으니 “작성산”이라는 표지목이 나타났고, 그 푯말에는 “무암사 1.85㎞, 까치성산 0.21㎞”라고 표기. 또한 표지목의 안쪽 작은 돌무덤과 그 옆에는 “작성산 771m”라는 정상석이 놓여 있었다. 그 뿐 아니다. 지도를 보면 그 너머에 “까치산(635m)”이라는 봉우리가 또 하나 더 있다. 헷갈렸다. 작성산(鵲城山)의 원래 이름은 “까치성산”이다.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문표기인 ‘까치 작(鵲)’자를 사용하여 작성산이라고 표기하였다 한다. 그런데도 “작성산” “까치성산” “까치산”으로 봉우리 이름하나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까치성산”이란 이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왕이 이 산에 신하들을 데리고 들어와 궁궐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아침 왕이 신하들에게 동쪽 바위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 위에 까치가 앉을 것이니 무조건 활을 쏘아 까치를 죽이라고 명했다. 신하들이 마침 바위 봉우리에 앉은 까치를 쏘아 죽이니 그 까치는 다름 아닌 일본의 왕이었다 한다. 정말 믿거나말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전설이다.
작성산의 정상에서 771봉을 거쳐 무암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비바람은 여전하였다. 가파르고 비바람으로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지는 않아도 쉽지 않은 하산이었다. 그렇게 30여분 내려가니 비가 그치고 소뿔바위가 나타났다. 소뿔바위는 바로 옆의 소나무의 가지를 잡고 요령껏 오르고 내려야 한다.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바위에 올라서서 소뿔의 사이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남근석과 장군바위가 한눈에 들어오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운무가 낀 풍경이 여간 환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점은 운무가 점점 짙어지더니 아예 풍경을 삼켜 버렸다.
소뿔바위 아래의 통나무 계단의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소부도”와 “사리탑”이 나란히 서 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무림사(霧林寺)를 세우려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다듬어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하여 준 덕에 손쉽게 절을 세웠다고 한다. 얼마 뒤 소가 죽어 화장을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舍利)가 나와 소의 불심에 감동한 대사는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무림사는 위의 일로 인하여 그 후 우암사(牛岩寺)로 바꾸어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산사태로 절이 무너져 새로 세웠다 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낙보전 건너편 서남쪽 산등성이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안개낀 모습을 보면 늙은 스님이 팔장을 끼고 깊은 참선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노장암(老丈巖) 혹은 안개바위라 불린다. 이 암봉이 안개가 드리워졌을 때에만 보인다 하여 무암사(霧巖寺)라고 하였다 한다.
소부도와 사리탑을 지나 개울을 건너면 다시 새목재로 오르는 길과 동산으로 가는 갈림길인 원점이 나오고 개울을 건너 시멘트포장도로에 이르러 우측으로 올라가야 무암사가 나온다. 무암사로 오르는 도로변에는 엉덩이를 깐 채 요상한 자세로 바위에 걸터앉은 느티나무가 있다. 남근석에 엉덩이를 까고 앉은 나무에, 어째 좀 거시기 한 분위기였다.
무암사는 작성산을 등지고 ‘Y'자 계곡 합수머리 위에 터를 닦아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서북쪽에 시커멓게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바위가 암벽등반지로 유명한 배바위다. 특히 북한산 인수봉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배바위는 암벽훈련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한다. 무암사의 입구 커다란 바위 틈새에는 약수가 있고 약수 옆에는 부처를 모셔놓았다. 엉금엉금 기어들어가야 부처를 만나고 그 앞에서 약수를 마실 수가 있었다. 무암사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만이 있고 대웅전은 없다. 그곳 마당에 올라서면 바위 절벽에 올라선 듯 조망이 탁 트인다. 건너편 운무로 뒤덮이는 암릉과 기암괴석의 모양에 신기롭다.
다시 SBS세트장을 지나 매표소 주차장에서 포장도로가 아닌 무암저수지의 오른쪽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저수지의 둑에 서서 오늘 산행을 한 동산과 작성산을 뒤돌아보니 운무 가득한 산과 계곡의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깊은 계곡과 절벽을 이루는 능선과 기암괴석의 화강암의 모습이 매표소 주차장 입구의 표지석의 표현처럼 "무릉도원"이라 해도 별로 과장됨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산행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동네 앞 청풍호반을 배경으로 조성해 놓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느티나무에 파묻혀 있는 “봉명암(鳳鳴岩)”도 그 모습이 역시 예사롭지가 않다. 흡사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봉비암”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봉황이 앉아 울던 바위라는 뜻으로 “봉명암”이라 한다. 그런데 나의 눈에 비친 바위는 표호하는 사자의 기상이 서려 있는 듯하였다.
경치가 아름다운 동산(東山)의 산행은 조망이 비교적 터진 맑은 날씨 속에서 진행하였고, 작성산(鵲城山)은 비바람이 거센 우중산행으로 진행하다가 마지막 소뿔바위에서부터는 다시 날씨가 좋아지어 제대로 구경을 하였다. 겨우 5시간 남짓 산행을 하면서 행복과 역경과 다시 기쁨의 사이클을 그리게 되었다.
산행은 늘 보람이 있다. 청명한 날씨와 우중충한 날씨, 한파 속의 산행과 폭염 속의 산행, 우중 산행과 눈 산행, 각기 그 맛이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산행은 인생살이 같다. 다양한 인생살이가 살맛이 나듯이 산행도 역시 다양한 게 좋다. 이런 저런 산행을 하다보면 산행을 통하여 인생살이를 복기하기도 하고 미리 예행연습을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뒤풀이를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들른 근처의 “금월봉 휴게소”의 바위동산은 마치 조경업자가 꾸민 인공정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화산재에 묻혀있던 고대 로마의 유적 폼페이를 찾아내듯 이곳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바위산을 드러낸 것이라 한다. 아름답기는 하나 역시 개발과정에서 깨낸 바위동산이라 그런지 손을 가한 흔적이 너무 보여 자연미는 없었다. 그래도 산행의 덤으로 보는 구경거리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2010년 3월 20일 제천 동산&작성산을 다녀와서 씀).
첫댓글 이렇게 산행기를 적으려면 산행 전에 공부 많이 하고 가야할듯 싶습니다. 산행도 힘든데 빠뜨리지 않고 다 볼수 있는 여유, 멋진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정말이지 늘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시는 운선님..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다음에 어디에서든 제천의 동산과 작성산을 보게되면 마치 가본듯이 반가울 듯 싶습니다..감사합니다^^
연두색 티셔츠가 넘 잘 어울리시는 운선님^^*
언제나 선두에서 산행 하시는 모습 넘 멋지십니다.
그리고 마치 한국의 산하를 접속한 듯한, 자세한 정보와 운선님의 마음이 듬뿍 담긴 멋진 후기글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함께 산행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운선님의 산행기를 보면서 다시한번 즐거웠던 거시기한산의 풍경들을 떠올리게 하네요. 오래 기억에 남을거같은 산이예요. ㅎㅎ 멋진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
산행 시작할때 햇살이 비치니 반갑더라구요, 새목재이후론 운선님 산행기로 대신합니다...ㅎ
운선님 산행기 읽노라면 다시한번 산행하는 느낌이 듭니다.산행기 올리시느라 늘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섬세한 산행후기 감사합니다...다녀오신산은 책을 내셔도 될것 같아요...
운선님의 산행후기엔 늘 학습도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동산의 산행후기 즐감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끝까지 못했던 산행에 대한 아쉬움을 운선님 후기를 통해 대신할 수 있어 감사 드립니다.
거시기한 산은 가지 못했지만 산행기 통해 아쉬움 달랩니다~~참 거시기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