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간택과 내명부 직첩
왕에게는 왕비 이외에도 후궁이라는 배우자들이 있었다. 이 후궁들은 공식적으로 내명부(內命婦)의 직첩을 받고 왕을 모시는 여인들이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 대략 100여명 이상의 후궁들이 내명부의 직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후궁들도 왕비와 마찬가지로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간택을 거쳐 선발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후궁간택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대신 2차까지의 왕비 간택에 선발되었다가 최종 3간택에서 탈락한 2명의 여성들을 의례히 후궁으로 하였다.
이외에 궁녀 중에서 왕의 눈에 든 여성이 졸지에 후궁이 되는 수도 있었다.
후궁들에게 내명부의 품계를 내려주는 것은 사실 왕의 마음이었다. 보통은 왕의 아들이나 딸을 낳은 후궁들이 내명부의 직첩을 받는다. 그렇지만 후궁이 예쁘고 마음에 들면 왕은 그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명부의 직첩을 내리기도 한다.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이를 기화로 권세를 흔들던 후궁 들도 적지 않았다. 연산군대의 장록수, 광해군대의 김개시, 숙종대의 장희빈 등은 왕의 후궁으로서 일세를 풍미하던 여인들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의 내명부]
품계 |
정1품 |
종1품 |
정2품 |
종2품 |
정3품 |
종3품 |
정4품 |
종4품 |
명칭 |
빈 (嬪) |
귀인 (貴人) |
소의 (昭儀) |
숙의 (淑儀) |
소용 (昭容) |
숙용 (淑容) |
소원 (昭媛) |
숙원 (淑媛) |
경국대전중 후궁에 대한 내용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