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피란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피란민들이 몰려 들면서 부산의 평지들이 시가지로 가득 차
어쩔수 없이 산비탈까지 마을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재개발이 추진까지 되었으나
원주민의 반대에 부딛혀 흐지부지 되었다.
개발하는 대신 보존형 재개발로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했다.
산비탈의 특이한 지형구조로 생긴 전망좋은 경치를 활용해
집 외벽을 도색하고 계단을 수리 하는등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관광지화된 이후로 가장 큰 변화는 동네 상권이었다.
예전에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술집이나 식당이 많았는데
현재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카페나 음식점, 기념품 판매점들이 많다.
사업 덕분에 훌륭한 미술관이 되고 길거리와 골목은 커다란 캔버스가 되었다.
그러나 해당 주민들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감천문화마을이 유명해지고 나서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기웃거리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이미 외지 사람들이
정보를 얻어 마구잡이로 위치좋은 주택및 상점을 구입했다고 한다.
골목길의 상권은 모두 외지인 소유라고 보아도 된다.
서울 북촌이나 동대문 이화마을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허락없이 남의 집에 불쑥 들어와 기념사진 찍고 시끄럽게 떠들곤 한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벽화나 계단에 그린 그림을 페인트로 지워버린 경우도 많다.
.
넓어도 너무 넓다.
북촌 한옥마을, 동대문 이화마을, 홍제동 개미마을 비교대상이 아니다.
가도가도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골목의 미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작은 집은 아지가기하게 붙어있어 마치 레고 나라에 온 듯하다.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관광객들이 걸을 수 있는 골목길은
바닥에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다.
원주민의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골목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골목을 끊이지 않고 미로처럼 연결되어 골목 여행의 진면목을 느낄수 있다.
어서 오시요... 여기가 우리 집이요....
이곳에도 건물외벽은 아름답게 도색되어 있는데
골목 안쪽에는 폐허가 된 빈집들이 제법 많이 있다.
원주민들이 노령화되어 타지로 떠나거나
죽음으로서 빈집이 자꾸 늘어난다고 한다.
생활환경도 열악해서 입주하는 사람도 없다고하고.......
이 골목이 산 중턱에 있는 큰 도로이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상점들이 즐비한 곳으로
일부 관광객은 미로같이 아름다운 골목길은 제쳐두고
이곳에서 사진만 찍고 다른곳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