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농구공도, 농구를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스페인은 축구의 나라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래, 메시와 호날두가 자기 나라에서 뛰는데 인기가 많을 수밖에..
실제로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인기는 상상초월이다.
결국 내가 꼬마들 틈에 섞여 축구를 하게 되었다. 다들 겨우 열 살 남짓이나 되었을까.
그러나 나는 '축구 최강국은 꼬마들도 뭔가 다를거야'라며 괜히 주눅이 들었다.
계속해서 소심하게 플레이를 하다 보니, 한 꼬마가 다가와서 'Fxxx, man' 이러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버렸다. 요 귀여운 녀석!!
숙소로 돌아왔더니, 우리 외에도 다른 한국인들이 있었다. 태병이와 정란누나다.
둘 다 마드리드에 살며 학업과 생업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까미노를 걷는다고.
태병이는 지금은 스페인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지만, 알고 보니 원래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1년 후배(!!!)였다.
이야. 세상 참 좁구나.
자신의 본래 대학과 전공을 과감히 놓고,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아 머나먼 타지로 떠난 그 용기가 정말 멋있었다.
“국어국문학은 나의 소중한 친구지만, 건축학은 제가 사랑하는 연인과 같아요.”
자퇴신청서를 내며 교수님께 드린 말이라고 한다.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태병이도, 정란누나도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돌이켜 보면 나는 풍경을 찍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내가 만난 이들과의 기억을 남기려는 노력은 소홀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까미노를 걷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가장 큰 생각 중 하나는
'이 길은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일까? 같이 걸어야 하는 길일까?' 라는 고민이었다.
물론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욕심과 기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과 자발적인 고독에 좀 더 무게추가 실려 있지 않았나 싶다.
정답이 있을까?
한 달, 800km 라는 긴 여행은 그 길을 걷는 이에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혼자 걷기에도, 인연을 만나기에도, 풍경에 흠뻑 빠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느 하나만 취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이기에, 균형을 잡는 것이 최선이리라.
그러나 당시 내 마음은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동행에 회의감이 들었다.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