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수연은 1987년 갓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 옥녀 역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한국배우 최초로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고 언론과 국민들에게 영화계의 상징적인 배우로 각인되었습니다.
1989년 강수연의 삭발 투혼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는데 당시 모스크바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혔습니다.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타고난 연기 재능, 여기에 완벽주의에 가까운 프로근성까지 강수연은 배우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완전체로 불리우며 해외 포함 국내에서도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등 총 10관왕을 달성했습니다.
1966년 8월 18일에 출생, 길거리 캐스팅으로 1969년부터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여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가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이미 대중들에게 일정한 이미지가 각인이 되었음에도 성인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아역배우 출신은 성인이 된 후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최초로 깬 첫번째 케이스입니다.
1985년 영화 <고래사냥 2>로 성인 배우로서 첫 활동으로 시작하여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전성기의 서막을 알렸고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 대종상에서 첫 여우주연상과 여자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등으로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습니다.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를 통해 개런티 2억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 연예계에서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은 여성 연예인으로 기억됩니다.
2001년에는 드라마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으로 출연해 배우 최초로 회당 출연료 500만원 시대를 열었고 최고 시청률 35.4%이라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본인의 연기 경력 최초로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2015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 활동을 통해 식지않는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으며
엄청난 여장부로 알려져있는데 <씨받이>가 개봉후 베드씬으로 집중되던 언론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이후연기력에 대한 찬사로 바뀐 웃픈 에피소드를 호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평소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대 대적할 자가 없는 전설적인 주당으로 불리우며 촬영하던 영화가 끝나면 항상 본인의 돈으로 뒷풀이를 하면서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스태프들과 무명의 단역들에게 한턱을 내는게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자주 하던 말이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는데 무명시절의 류승완 감독은 이 말이 너무 멋있게 들려서 자신의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서도철'의 대사로 인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이>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팬들곁에 사랑받는 월드스타 강수연님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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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허무하게 가버리셔서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