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내가 만들어 낼꺼야!"
언제부턴가 내 가슴속에서 항상 나 자신에게 말하던 이 말을 처음으로 내뱉었다.
"그래..알았어..니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잖아..도와주기로 할게.
하지만 말야 만약 실패 버린다면 그땐 어쩔꺼야?
그때 상처받는걸 너 혼자가 될뿐이야."
"상관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이대로 다시 못만나게 되는건 나한테 더더욱 큰 상처가
될 것만 같아. 뭘랄까..뭐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날 추스르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뭐 알았어...도와주긴 할게.."
2003년 3월6일 정확히 말하자면 내 19번째 생일 바로 다음날 난 내가 항상 믿고
따르던 정말 친누나같은 경진이누나에게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내이름은 조운, 1985년 3월5일생, 2003년 올해로서 딱 19살,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한 평범한 한국의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역시 평범하기만한 일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 작년 3월19일, 난 한국에서 낯선 나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예전 러시아
연방국가였던 카자흐스탄의 번화한 도시 알마타로 유학을 오게 된 것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때부터 우리 가족은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장남인 나의
강력한 반대로 인하여 무기한 연기되고 있었지만,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인 되던
2002년 난 유학을 결심했고, 곧바로 우린 2002년 3월19일 한국땅에서 발을 떼었다.
경진이누난 내가 이곳 알마타에서 만난 나의 의누나다. 친누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에겐 많은 힘이 되어 주었었다. 유학생활의 시작점에서 많은
어려운점에 부딪히면서 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언제나 경진이 누나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나보다 11살 많은 이미 30살이 되어있는 어떻게 보면 거의 아줌마에
가깝지만,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채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난 내 속마음과
고민들을 그녀에게 털어놓기 시작하고, 언제나 좋은 말로 날 위로해주었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그녀 역시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어, 이젠 이미 나와 그녀 사이엔
어떠한 허물도 없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너무나도 좋은 누나일뿐이고,
그녀에게 역시 난 좋은 동생이었을 뿐이다.
그날 난 경진이누나에게 무엇을 부탁했었을까, 분명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어린나이에 불구하지만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할 수 있다.
아무리 주위에서 날 무시한다 해도 난 개의치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나의 이야기니까...
--part 2--
"안녕...꼭 믿을게..니가 나에게 한 약속.. 우리는 언제까지나 같이 있는거라는걸...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거라는걸.. 사랑해..."
내가 마지막으로 달님이에게 한 얘기였다. 작년 3월18일, 내가 한국을 뜨기로 한 전날,
당시의 내 여자친구 달님이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그 당시 난 나보다 한 살 연상이었던 '김달님'이란 한 여성을 만났다.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사랑한다 말해주었던 여성이었다.
그당시 달님이는 우리 동호회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받고 있는 여자였고, 나 역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전 한 여자로부터 받은 상처 덕분에 다른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더군다나 새로운 사랑을 한다는건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난 마지막으로 그녀를 믿고 한국을 떠나기 불과 20일전 그녀와 교제를 시작했다.
우린 무언가의 홀린 듯,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강렬하게 의식이나 한 듯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다.
그럼으로서 점점 내 속의 상처들은 치유 되기 시작됐었고, 난 겨우 나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고, 그녀에게 나의 많은
시간을 주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못내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게 우린 2002년 3월19일, 헤어졌다.
첫 나의 유학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낯선 땅에 홀로 서게 된다는 것이 이정도로
힘들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내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할 친구도,
힘든일이 있을 때, 서로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도...
모든 것이 나에겐 힘든 과제일뿐이었고, 그당시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인터넷을
통한 달님이와의 대화였다.
하지만 언제였을까... 내가 한국을 떠나고 약 한달이 지났을 때였다.
난 낯선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고, 달님이 역시 본격적인 수험생으로서의
생활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우린 그때 메신져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난 요즘 정말 힘들다...친구도 없고...이런 속마음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나 역시 비슷해, 수험생이라는 것이 이곳저곳에서 제약 받는것도 많고,
나만의 시간이란걸 이미 가질 수 없는 것 같아.. 언제부터인지 자꾸 내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드는것도 같아.."
우린 항상 하던 얘기를 평범하게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누나! 혹시 기억해? 나 떠나기 전에 누나가 나한테 한 약속.."
"응 기억해.."
"그래... 그런데 혹시 말이야... 누나 기다리기 힘들다면... 구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
혹시라도 누나가 그 약속 지키지 못하면 내가 상처받을까봐 억지로 참고 있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아....오해하지는 마..내가 이미 누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누나가 나에게
보여줬던 그 마음들 너무나도 고맙고, 나 역시 이젠 충분히 누날 사랑해..
그렇기 때문에 나 때문에 누나가 힘들어한다면 나 역시 힘들 것 같아.."
반은 진심이었다. 분명 나 때문에 달님이가 힘들어 했다면 나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놓아주긴 싫었다. 언제까지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남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뭐야 너. 지금 그런말 하는 의도가 뭐야?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는거야?
너가 그랬잖아. 믿는다고....내가 너에게 한 약속 믿는다고.. 그런데 지금와서...이게 뭐야?"
"아....아니야...믿고 있어... 하지만 누나가 아무 얘기 안해주면 난 지금의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난 누날 볼 수 없어... 지금의 누나 표정이 어떤지
난 알 수 없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지는것만 같아서 그래.."
"무엇이....무엇이 불안하다는 거야? 너가 불안할 이유가 없잖아? 안그래?"
"누나..오늘 왜 그래... 왠지 다른때와 많이 다른것만 같아..."
"그래...다른때와는 틀려... 지금의 난 니가 만들어낸거야.. 너 요즘들어 자꾸 나한테
어리광만 부리고, 이해 못하는건 아냐, 너 유학생활 힘들다는거...하지만 이제 겨우
한달이잖아..조금씩 이겨나가야 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건 위로뿐이야..
그런데 넌... 넌 도데체 나한테 뭘 요구하는거야?"
"아......."
그때 이해했다... 그 당시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를..
낯선 땅에 처음 와서 어느곳에서도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난 어리광을 부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어린애에 불과했었다. 정말 그때 난 달님이에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그건 아직도 내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지금은 너랑 길게 얘기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얘기했다간 정말로 일을
저지르게 될 지도 몰라."
"아...미안해.. 괜히 이상한 얘기 꺼내서... 그냥 못들은걸로 해주면 안될까?"
"아니...이미 넌 시작해버렸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결말은 지어야 겠어.."
" 그....그래...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
그 이후로 달님이와의 대화가 일절 끊기었다. 매일 들어오던 메신저에도 더 이상 접속
하지 않았다. 혹시나 차단을 한게 아닌가 생각됐지만, 다른 친구들 역시 달님이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어딘지 걱정 스러웠다..
그렇게 2주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난 무엇을 찾았었는지,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약간의 해답은 나와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난 '사랑'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놓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사랑'... 힘든 생활 속에서 돌파구로 내가 찾은 것은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런 어리광을 부리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주일 후 하나의 메일이 내 메일함에 와 있었다. 달님이가 보낸 답장이었다...
그동안 난 달님에게 수없이 많은 메일을 보냈다.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걱정도 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약간이나마 알게 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것들을 달님이에게 하루빨리 얘기해주고 싶었다.
드디어 메일이 왔다는 생각에 기뻐 한시바삐 메일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나의 모든 것들이 날아갔다. 내 얼굴에 비추어져 있던 미소역시
사라졌다.
그 메일 속엔 나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만들어내는 문구가 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part 3--
[나... 많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힘들겠어.. 너에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더 이상 너에게 한 약속...지키지 못할 것 같아..
더 이상 너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버거워..
니가 힘들다는 것..그래서 날 필요로 한다는 것....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난 니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강한 여자가 되지 못해....
나 역시 지금의 내 상황이 편하지가 않아..그건 너 역시 잘 알고 있잖아....
나에게도 역시 필요한건 이런 날 지탱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니가 나에게
도움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는거...잘 알고 있어서..그래서 너한테 특별한 부탁
안하고 꾹 참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왜 넌 참아내지 못한거니? 왜 넌 기다려주지 못한거니?
이젠 더 이상 너의 믿음에 상처를 줄 수 없어.. 물론 지금 당장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상처가 될지 모르지만... 하지만..우린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잖아... 그냥 너의 친한 누나로 남아줄게.. 니가 힘들때...위로의 말 한마디
건내줄 수 있는 그런 여자로 남고 싶어. 널 사랑해...하지만 더 이상 널 계속해서
사랑하긴 힘들어..
난 이미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냐....
하지만 이것만은 꼭 믿어줘. 니가 나보다 한 살 어리고 무심하게도
만나고 한달도 안되서 떠나버린 너지만.... 정말 사랑했었고....지금도 사랑해......
이것만은 믿어줘..]
그때 난 더 이상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너무나도 슬프고 충격적이었고,
어떻게든 그녀를 잡아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다. 어짜피 우린 더 이상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젠 서로에게 있어서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약속은 깨어졌지만... 또다시 새로운 신뢰가 생길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하지 않을까?'
그 당시 난 그렇게 생각 했었다. 나 역시 더 이상 어리광 부릴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녀에게 도움을 줄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약은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더 좋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한번
나에게 이런 질문을 되새겼었다..
'난 정말 달님이를 사랑했을까? 그저...힘들어하는 날 숨길만한 도피처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아직까지 그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내 생각엔 이미 필요없다고 생각된다..
그때 난 달님이에게 한통의 메일을 보내고 그것으로 나와 달님이의 사랑을
끝마치려 했다.
메일에는 약간의 문구를 남기고 끝냈다.
[그래.. 나역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이대론 우리에게 남을 것이 없는것만 같아..
하지만 누나 역시 이것만은 이해해 줘...
난 누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역시 누나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누나를 사랑할게.... 어떤 모습으로라도... ]
--part 4--
이제부터 내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는 시작됐다. 물론 내가 달님을
사랑했다는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같이 있던 시간이 짧았던 만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짧을 수 밖에 없었다.
한가지 고마웠던 점은 적어도 나의 믿음을 짓밟지 않은 달님..
그런 사람을 내 일생에 만났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서 있는 내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어째서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난 이렇게 떠나와야 했었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되새기곤 했엇다.
달님과 난 그렇게 봄의 끝자락에 우리의 사랑을 접어 두고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의 한 구석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소득도 있었다. 난 그때의 내모습에서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한 것이 있었다. 확실히 난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 속에 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달님은 이미 나의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난
어떤 기적을 만들려 했던 것일까? 내가 자주 보던 에니메이션에
"기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야!"
라는 대사가 있다. 얼핏 지나칠 수 있는 대사였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 말은 나에게 와 다았다.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나에게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는걸까?
또다시 달님과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 정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고, 지금 그사람과의
사이에서 난 내손으로 기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난 이 글을 쓰고 있고, 항상 그녀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뒤흔들게 한 여성의 이름은 '타찌아나'
애칭으로 '타냐'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계의 한 여성이다.
이야기는 200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part 5--
2002년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난 그 어느곳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가지도 역시 변변찮은 친구하나 만들지 못했던
난 미친 듯이 러시아어 공부에 메달렸다.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다.
나와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를.. 친구라도 좋았고, 새로운 사랑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준비해야 될 것은 준비해야 되었던 것이었다.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2년 6월 그때로 돌아가 보려 한다.
[학기말 시험 당일날]
"으우악!!!!!!!!드디어 끝이구먼! 이제 3개월동안 방학인가?
확실히 아직 이쪽 문화는 모르는게 많아서 말이지....쩝...."
"그래..이제 방학이다. 근데 너도 참 대단하다. 이렇게 빨리
말 배우는 애는 처음 본다. 내가 2년에 걸쳐 배운 말을 단
4개월만에 배워버리다니...."
"히히...누나도 알잖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내가
무엇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거.. 아무것도 없이 혼자 뭐 하라구?"
"어이.....난 사람도 아니냐? 죽어..."
"아....뭐 누나야 누나자너 확실히 고민상담 털 수 있지만 친구는
될 수 없어...안그래? 누나 나이를 생각해야지.."
"그래..미안하다 늙어서...."
"그나저나 누나 오늘 람스토르 갈거지?"
"그래야지. 이제 방학도 시작했고 가게는 내가 봐야 되니까.."
"그래..그럼 나도 누나 따라가야지. 거기 일하는 애들 나이또래도
맞고, 또 이번에 새로온 여자애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
"너 그거 무슨 뜻이냐....너 혹시 걔한테 관심있냐?"
"음...뭐랄까..이성으로서 보다는 먼저 친구로서 관심이 가는 것 같아.
근데 진짜....걔 이름이 뭐야?"
"이름? 나도 몰라..."
"뭐야 누나...누나 정말 거기 주인 맞아?"
"뭐...시험이라 신경쓸 새가 없었자나...."
"그래 어쨌든 출발하자...배도 고프고...얼렁 가서 밥먹고 말 배우기에
열중해야지...이번엔 실전이다!"
나와 경진이 누나는 지금 알마타의 한 대학의 외국인 대상 노어과에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었다.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악착같이 공부만
한 끝에 간단한 생활용어등은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어
있었다.
경진이누나의 가족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람스토르라는 곳에서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나였기에 경진이 누나가
가게에 나가 있는 동안은 나 역시 나가서 일도 도와주며 그곳에서 일하는
애들과 얘기도 나누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애들의 대부분의 나이대가 20대 초반에서 중반대였기에
가까운 친구로서 사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전 한 여자애가 새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타냐'.
나보다 한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나와 가까워졌다.
그당시 나 역시 방학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람스토르에서 경진이누나와
보냈었기 때문에 자연히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우린 금방
친해졌다.
물론 아직 서투른 러시아어 실력이었기 때문에 이렇다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우린 외국인과 현지인의 사이, 더 가깝게는 친구사이로서 2002년
여름의 시작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기적은 내가 만들어 낼꺼야!--
part 6
그날은 한.일 월드컵의 4강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 하며 한국을 응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난 여간 슬픈게 아니었다. 그 당시 난 경진이누나와 여러명의 터키
사람들과 함께 한국과 터키를 응원하게 되었다. 결승전에서 한국과
터키가 만나 우승컵을 놓고 다투기를 응원하며 열렬하게 응원했다.
하지만 결국 경기는 한국이 독일에게 1:0으로 패하는 결과를 보여줬고,
아쉽지만 월드컵의 열기는 여기서 끝마쳐야 했었다.
그날 밤 타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 한국이 졌지?"
"응..아쉽게도 1:0으로 졌지.."
"그래...오늘밤에 술한잔 하자..."
"니가 사는거야?"
"음...술은 니가 사...나머진 내가 살게...."
그녀가 처음 내게 신청하는 데이트였다. 그날 밤 우리는 일이 끝나고
꼬냑 한병과 쥬스, 과자를 들고 공원으로 갔다. 그당시 호프집의 시끌
벅적한 분위기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술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꼬냑 한잔씩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너 혹시 마음에 드는 애 있니?"
"음...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달까?"
"뭔 뜻이냐....그게..."
"음..확실히 남자인 내가 여자를 맘에 들어할 수는 있지만 말야..
너도 알잖아....쉽게 다른 여자 사랑하지 못하는 날..."
"달님이....때문이구나...."
"뭐....그렇다고 해야 할까...."
"있잖아...운아....우리 친구사이지?"
"그렇지...넌 내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사귄 맘 맞는 친구사이지.."
"만약에 말야....어떤 여자가 너가 좋다고 그랬어.. 넌 어떻게 할꺼야?"
"너 그 얘기 하는 의도가 뭐냐..? 혹시 너...요전부터 나한테 누군가가
굉장히 맘에 든다고 하던데....혹시 이제 말할 생각인거야?"
"뭐 그렇다고 봐야겠지...."
솔직히 난 이런쪽엔 너무나 둔했다.. 누군가가 날 좋아하고 있다...절대
눈치채지 못할뿐더러 직접적으로 나한테 얘기하지 않는 한 아마 평생동안
알지 못하고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이런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건 아니다.
한참 나중에야 다른 사람한테 전해들어 그사람이 날 좋아했었고, 내가 그걸
알아주길 기다리다 지쳐 떠나버린 여자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딴에는
'외국인인 날 누가 좋아해줄까..'
라는 자기피해 방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때 타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니가 좋아... 니가 좀더 우리말을 잘하게 되는걸 도와주고 싶어...
비록 아직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미 넌...
나에게 사랑하는 남자로서 생각되.."
그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건 아닐까..'하는
의문점도 생겼었다.
"음...? 에구 미안.;;뭐라 그랬니?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아.."
"야 쩨뱌 루블류! 므녜 누즌 띄!"
(널 사랑한다구! 나에겐 니가 필요해!)
상당히 간단한 어구들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타냐는 나에게 이렇게
소리쳤었다.
part 7
그때의 난 확실히 무엇을 해야 될지 아무것도 몰랐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복잡했었다. 그 짧은 시간속에 많은 생각과 과거의 일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난 무엇을 해야하지? 얘가 날 놀리는건 아닐까? 하지만....이런 짓으로 사람을
놀릴만한 애는 아니것 같은데...그리고....그리고 난? 난 저녀석을 어떻게 생각
하는거지? 아직까지 한번도 저녁석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잖아...그런데
갑자기 애인으로서 생각하라니...나한테 너무 어려운거 아냐?
그렇다고 지금 내가 시간좀 달라 한다면 뭔가 도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니....침착하게 생각해보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타냐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며 빨개진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렇다.. 난 결정해야 됐다.. 두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이 날 부르고 있잖아.. 이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까운 일인 것 같긴 한데.. 하지만....만약 사랑하지 못한다면... 다시 상처
받게 될까? 그리고 타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정말로 이녀석이 나에게
깊게 빠지게 된다면... 거기다가 여긴 결혼도 엄청 일찍 하자나...결혼이라도
하자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확실히 타냐 녀석 성격도 좋구 거기다가 어디가도 뒤질만한 외모는
아닌데.. 하긴..그동안 이녀석한테 꼬인 남자가 많았지만 다 차였었지..이런 기회
가 이렇게 쉽게 찾아오기도 힘들꺼야...그래 어디 한번 해보는 거야..녀석이 날
필요로 한다면 한번 만나보는 거야.. 그리고 노력하자..이제 그만 달님인 잊는거야.'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엉망진창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약간의 알콜의 도움으로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난 내 옆에 앉아 계속해서 날 응시하는 타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내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래.. 이해했어...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런데 말이야....너도 잘 알잖아..
내가 어떤지는..."
"그래 알아... 그건 니 사정이야.. 난 그냥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을 뿐이야."
"뭐 그래....괜찮겠어? 나도 니가 싫진 않아...하지만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상처받는건 니가 될게 분명해."
"그것도 상관없어. 니가 날 사랑하게 하면 되는거고. 니가 날 사랑하게 될
그때까지 난 언제까지고 널 기다릴꺼야."
뭐...누구든 안그럴까... 처음 누군가를 사랑할땐 누구나 그런다...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라는 것을.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여자를 만나고
정말 사랑하게 된다면 평생동안 사랑할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런 악순환은 언제나 반복 되 왔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이런 사랑이 아니었다. 조금은 유치
하지만 그래도 난 영화같은, 소설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 심하게 싸워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 이겨내고 내가 같이 있고 싶어하는 사람과는
어떻게든 같이 있으려 했다. 뭐 하지만 누군가가 날 좋아해서 그런 입에 발린
말을 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이런 입에 발린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기뻐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그래... 믿을께...지금 니가 나에게 한 약속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도록..
나 역시 널 사랑하도록 할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언젠간 분명!"
그렇게 우리 사랑은 시작되었고, 여름의 시작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part 8 #첫만남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확실히 지나고 나면 너무나도 즐거운 것.
그것이 추억이라는 말.... 틀린말 같지가 않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해도 지금 돌이켜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보면 너무나도 즐거운
생각만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직접 써 나가며
다시한번 그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하며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그날 밤 우린 흔히 말하는 '좋은식의 결말'을 짓고 내가 타냐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으로 처음 시작하는 그날의 추억을 만들어 냈다.
다음 날 오후 1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우리였다. 마침 그날이 타냐가 일을
쉬는 날이기도 했기에 우리는 '사귀기' 시작한 첫날에 만날 수 있었다.
1시에 약속한 우린 람스토르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역시 난 약속 시간 30분전부터 타냐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찍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이유가
'할일이 없어서!' '기다리는 설레임음 은근슬쩍 즐기는 성질' '집에 있기 싫어서!'
뭐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오늘은 굉장히 기다려지고 은근히 시간도 늦게 가는
듯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와버렸던 것이다.
'아어...또 일찍 와버렸잖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내심
상상해 보았다. 왜냐하면 언제나 일하면서 있는 유니폼만을 입고 있기 때문에
사복을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일하러 오는 날에는 그냥
편하게...거의 츄리닝 수준의 옷만 입고 오는 그녀였기 때문에.. 나로선
처음으로 그녀의 사복 차림을 보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12시 55분이 되었다. 항상 즐겨 듣던 ZARD의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2번 버스가 내 앞에 섰고 그곳에서 눈에 익은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순간 무지 기뻤다... 한눈에 척 봐도 다른 여자와
다르게 화사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흰색에 가까운 단정한 단발의 금발 머리, 선명한 하늘색을 띄고 있는 크고
맑은 눈, 한치의 티도 없이 말끔한 하얀 피부, 175는 되 보이는 훤칠한 키,
군살 하나 없이 적당한 몸매, 조금 위축되리 만큼 쭉 뻗은 다리!
확실히....누구나 딱 보기에 '예뻤다!' 이런 여자가...날 좋아한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난 170에 간신히 도달한 키에 까만 머리, 평범한 얼굴, 평범한
몸매, 갈색 눈동자, 보통 사람보다 약간 하얀 피부.. 한마디로 '보통남자'였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는것도 사실이다. 난 이렇게 '보통남자'로서 서 있지만
타냐는 달랐다. 타냐는 누가 보기에도 이뻐 보였고, 실제로도 상당히 많은
남자가 프로포즈 하러 오는 것을 내 두눈으로 지켜보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여자가 날 좋아한다.. 하지만 난 평범하다...나의 이평범한 모습을 알아
챈다면 실망해 떠나버리진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금방 그만두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타냐의 마음을
나 자신이 스스로 짓밟아 버리고, 타냐의 마음 자체를 우습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그녀를 믿어줘야 했다. 그녀가 날 믿고 어렵게 고백했듯,
난 그녀를 믿어야 했다.
'우선은 믿고 즐기는 거야!'
그냥 이런 낙천적인 생각으로 어물쩡 넘겨버리고 말았다.
"브리비엇~" (안녕~)
"브리비엇~" (안녕~)
서로 볼에 살짝 키스하며 인사를 나눈 둘은 잠시 살짝...어색한 시간을 가졌다.
먼저 말은 건 사람은 타냐였다.
"우리 오늘 뭐하고 놀지?"
"글쎄..난 아직 여기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어디 가고 싶은대라도 있어?"
"그럼 우선...악산나 놀리러 람스토르 갔다가 내가 이곳저곳 대려다 줄게.
너 아직 우리 도시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오늘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부터는
니가 날 에스콧트 해야하는거다.. 씨익~~~~~"
"그....그래..;;;[무섭군..'] 그럼 우선 람스토르 가볼까..경진이누나 있을지도
모르겠네.."
타냐와는 동기이면서 타냐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자연적으로 친구가 되버린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악산나. 타냐와 같은 독일계 태생으로 나보단
2살 연상이었다. 타냐보다 약 3일 늦게 일을 시작했고, 왠일인지 악산나와는
대화를 그리 많이 나눠본 적이 없었다. 타냐와는 시작부터 허물없이 이것저것
잡담을 많이 했다지만 악산나와는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 그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악산나는 타냐와는 약간 틀리다. 짙은 갈색의 머리에 백인이라 보기엔 약간
짙은 색깔의 피부, 밝은 갈색의 눈동자, 165정도 되보이는 키에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한눈에 척 보기에 '이쁘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구지 타냐와 비교를 하자면 타냐의 경우 발랄하고 상큼한 느낌의 여자라면
악산나는 단정하면서도 색시한 느낌의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타냐와도 성격차이가 상당히 크다. 옷을 입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별한 날이 아닌이상 언제나 대충대충인 느낌의 타냐와는 달리
악산나는 언제나 차려입고 다니는 성격이었다.
오늘 같은 경우 타냐는 무릎까지 오는 까만색 치마에 하얀색의 티셔츠와
레몬빛의 반팔 셔츠를 걸친 모습이었지만,
악산나는 쫙 달라 붙는 바지에 약간 심하게 파인 듯이 보인 쫄티를 입고
나왔다고 한다..(?)
'유니폼 차림이었기 때문에 경진이 누나한테 물어봐서 알아냈다'
뭐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출근을 할 때 보면 확실히 악산나는 대담한
옷차림을 즐긴다. 반면에 타냐는 그와 정 반대되는 느낌의 화사하고 발랄한
느낌의 의상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을 비교하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눈엔 타냐가 더 이뻐보인다..*^^*
part 9 #난 니가 너무 좋아..>.<
"흐흐흐...오늘이 첫 데이트다.... 여기와서 여자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하여간 무지 신기하다...."
"아... 그러셔 잘났다...30먹은 노처녀 앞에서 놀리는 거지?"
"흘.....응.;;왠지 그러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여튼....... 너네 낌새 보니까 조만간 소식 있을줄 알았더니...
결국 어젯밤에 시작된거냐? 어제 같이 술 마시러 간다더니
누가 먼저 고백한거야?"
"아.... 타냐가 먼저... 나야 뭐 전혀 그런쪽으로 녀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뭐 나로서도 무지 황당했지... 뭐 좋은게 좋은거지"
"그래....좋겄수다......나중에 밥이나 사라...."
"왜? 내가 왜 누나에게 밥을........"
"너 죽어!"
"아 그래......알았어...사긴 살께.....근데 뭣땜에?"
"뭐 종합적으로 보면 내가 너네 둘 만나게 해줬잖아...안그래?
넌 여자 만나서 좋고 난 밥 얻어 먹으니 좋은거지~"
"그건 어디서 나온 논리야....뭐 어쨌든 좋은 날이니까 오늘 저녁은
내가 사주도록 하지..."
"그래그래~ 그렇게 나와야 착한 동생이지... 오늘 하루종일 여기
있을거니까 밥 먹으러 갈 때 나 데리러 와~ 알았지?"
"그려...."
타냐가 악산나와 수다 떨며 놀고 있는 동안 난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경진이누나에게 얘기해주고 있었다. 아직까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왜 그날 내가 경진이 누나에게 밥을 사줘야 됐을까..라는 문제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밥값으로 엄청난 양의 돈이 깨졌기 때문에...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아까운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다..
그렇게 잡담아닌 잡담을 주고 받으며 수다 떨고 있는 중에 누군가가
내 등뒤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뭐 당연히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은 타냐밖에 없었다.
"담배나 피러 가자~"
서로 손을 꼭 잡고 나가는 우리 둘에게 뒤에서 경진이누나가 외쳤다.
"어이~~~~~그림 좋은데~~~좋겠네~~~"
'머지....쪽팔리게...'
"경진이 언니가 뭐라고 하는 거야?"
"아....우리 둘이 잘 어울린데....하,하,하"
"그래....뭐 대충 뜻은 이해했어...."
"그래...너 무지 똑똑하구나...."
"훗~"
람스토르의 오락실은 3층에 위치해 있었고 2층에 람스토르의 후문이
있었다. 우린 2층 문으로 나가 여름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악사나가 뭐래?"
"아....내가 새치기 했다는데..."
"뭔 뜻이야...그게...."
"뭐 맘대로 생각해...너한테 특별히 얘기해 주고 싶지도 않고...
지금 니가 알아봤자 좋을거 없으니까.."
"우씨...사람 궁금하게.....뭐 나중에 내가 알아내지 뭐..술을 왕창
먹인다음.....중얼중얼중얼..."
"한국 음식 한번 먹어볼래? 내가 할줄 아는 몇가지 안되는 음식중에
떡볶이라는 음식이 있는데...맘에 들꺼야..근데..너 매운거 잘 먹냐?"
"응! 잘먹어....히히...첫 데이트부터 직접 해주는 밥도 먹어보고....
왠지 나 남자 너무 잘 고른 것 같은데~"
"그럼 우선 우리집으로 출발~"
람스토르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우리집으로 온 우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 떡볶이 만들 준비를 하고 타냐에게는
컴퓨터속에 있는 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대충 정리가 되고 떡을 끓이는 동안 난 우리집을 소개 시켜
줬고, 그 당시 우리집에 있던 '미카엘'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청나게 커다란 개를 소개 시켜주면서 그런데로 시간을
떼웠다. 물론 집에 단둘이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특별히 이상한 생각을 하고 타냐를 집에 데리고 온건 아니고,
타냐 역시 그런 나를 믿고 있어줬는지 잠자코 매우 편하게 시간들을
보냈다.
약간 덜 맵게, 그리고 약간 달게 만든 떡볶이를 서로 먹으며
젖가락 질도 가르쳐보고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로 떡볶이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차 한잔을 마시며 내 침대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근데 말야...러시아말로 키스해줘 가 뭐야?"
"왜~~~?"
"아...뭐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어서....괜히 영어로 kiss me~라고 얘기하면
좀...그렇잖아?"
"나한테만 얘기할거라고 약속하면 알려주지~~~"
'무슨 할 약속이 그리도 많은지...에혀...'
"당연하지....그럼 내가 악산나한테 키스해줘~ 하겠냐?
약속할게..."
"그래야지~흐흐...빠쩰루이 메냐~(키스해줘)"
"음~~~~~빠젤루이 메냐...라....잊어먹지 않게 적어 놔야지.."
침대 옆 협탁에 있던 공책과 펜을 꺼내서 재빨리 적어 놓고
절대로 잊어먹지 않기를 다짐하며 펜을 놓았다.
"야...빠쩰루이 메냐..."
"그래...알았어...."
"너...바보라서 그러는거냐...아님 눈치를 못채는 거냐?"
"엥? 내가 왜 바본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달콤한 타냐와의 첫키스를 만난 첫날에
할 수 있던 기회를 바보같이 놓지고 말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단둘이 집에..그것도 침대에 걸터 앉아 얘기하고 있다는
상황이 내 정신을 흐트렀는지도 모른다...
"됐어...말자...그나저나..오늘 날씨 좋지?"
"응..정말 그렇다..이런날은 나무 울창한 공원에서 산책하는게 최곤데."
"가자!"
"어딜?"
"어디긴 어디야...공원이지~ 이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소개
시켜줄게. 먹을거 싸가지고 가서 산책하자. 마침 여기서 별로 먼
거리 아니라 걸어가도 되.."
"오~그래~그거 좋다 당장 가자..."
우린 집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간식거리들을 주섬주섬 사 들고
곧장 그 공원으로 향했다. 정말 걸어서 15분도 안되는 거리에 약간
나즈막한 산이 있었고 울창한 숲이 있는곳, 넓은 들판으로 이루어저
있는곳, 어디든 쉴만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공원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정도로 아름다운 공원은 본적이 없었다.
"어때? 맘에 들어?"
"와~진짜 이쁘다..한국에는 높은 빌딩만 많았지...이런 아름다운 공원은
없는데 말이지.."
"뭐 그래~"
우린 먼저 들판 가장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온 간식 거리를
먹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우린 팔짱을 키고 숲속 산책로를 산책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가로이 숲속을 거닐며 산책을 즐기는 도중 내 왼쪽 팔에 팔짱을 꼭
끼고 있던 타냐가 나에게 말했다.
"운아...나 할말이 있어.."
"응? 뭔데?"
"너...날 사랑할 자신 있니?"
"음....확실히 지금 당장은 널 사랑할 수 없어...하지만 오늘 널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았어...분명 빠른 시일내에 내가 너에게 먼저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거야."
"그래...약간 서운하긴 하내...뭐 모르고 널 만난건 아니니까 용서할게.
그리고 말야...넌 외국인이고..또 아직까지 너랑 나...쉽게 의사소통 할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도 말야... 나 믿어줘....나도 너 믿으니까..
우리가 서로 믿어주기만 한다면... 오래오래 이쁜 사랑 간직 할 수
있을거야...
난...니가 너무너무 좋아.....사랑해~"
그 순간 내 얼굴이 확...달아오는걸 느낌과 동시에 타냐의 하얀 얼굴 역시
빨갛게 상기되는걸 알 수 있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왠지 또 다른 삶이 이제서야 시작되는 듯 했다..
한국을 떠나며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 나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원래 내 삶을 버리고 이곳으로 떨어져 아무것도 아닌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가 주는 그런
행복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타냐와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도 나에게 미소 지으며
날 초대했다.
part 10 #첫키스
첫 데이트는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결말을 지었다.
공원을 벗어나 람스토르로 찾아가 경진이 누나와 함께
밥 한끼를 먹고, 그 앞 공원을 잠시 산책하고 나서 내가 타냐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짐으로서 우리의 첫 데이트는 끝이 났다.
그날 밤 난 오랜만에 매우 즐거운 꿈을 꾸었고 마치 몇 년동안을
악몽 속에서 살고 있다가 그 악몽에서 께어나 이제는 모든 상처를
치유한 듯한 기분으로 꿈을 꿀 수 있었고, 그런 행복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었다.
다음날 난 아침 일찍 아침밥을 차려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때는 타냐가 일 하러 오기 10분 전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버스에서 타냐가 내렸고,
타냐는 굉장히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걸어왔다.
"어떻게 된거야? 아침 일찍부터 어디 가는거야?"
"응. 어디좀 가볼데가 있어서.."
"응....먼데야? 그럼..오늘은 람스토르에 안오겠네...."
"아니야 엄청 가까워.."
"어딘데?"
"타냐한테 가는 길이야..."
"으........응?"
"뭐 그냥 쉽게 말해서 너 기다리려고 나와 있었다구.."
"왜?"
"어이......내가 널 기다리는데 이유가 필요하냐? 그냥 보고 싶으니까..
1분 1초라도 더 같이 있고 싶으니까...이렇게 너 출근 시간에 맞춰서
나온거잖아..."
"와....왠지 무지 거짓말 같은데....어쨌든 무지 고마워..."
"뭐 이정도가지고..가자, 이러다 너 지각한다."
"그래..^^"
나라는 인간이 한 여자의 기분을 이정도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고, 그런 모습이
난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느낌이 좋았다... 아직까지 내가 어떤지는 확실히 잘 모르지만
어느샌가 타냐와 함께 있는 그 순간 만큼은 달님이와의 추억속에
감춰져 있던 상처들과 아픔들이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 순간 만큼은
어디까지나 추억이었고, 그 순간 그 추억을 회상한다면 그 추억들은
아픔들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난 이 순간을 평생 놓지고 싶지 않았다...
"오오...우리가 1등이잖아...아무도 안왔네..."
"그러게...나도 일찍 온거 아닌데...다들 어제 나이트라도 갔다 왔나.."
"설마...."
"뭐...일은 시작해야지..."
"그래. 모처럼이니까 나도 도울께..에헴! 이래뵈도 장래에 내 부인이
될사람 일정도는 매일이라도 도와줘야지!"
"하하! 장난이라도 기분은 좋다~"
난 대답 대신 살짝 웃어 줬다. 그리고 우리는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시간
가는줄을 모르고 있을 때 직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계산대를 맡고 있는 아이게림, 우리들의 친구 악산나, 요즘 자꾸
말썽만 일으키느 나즘, 그리고 경진이 누나 순대로 속속들이 도착
하고 있었다. 뭐...경진이 누나야 2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부시시한
모습으로 도착했었지만.....
"누나. 그냥 여기 오락실 나한테 넘기지 그래? 어째..내가 더 부지런
한거 같아."
"야야... 나도 날 기다려주는 애인이 있으면 젤 먼저 올 수 있어.."
"이 모습으로? 그랬다가는 있던 애인도 도망가겠다..."
"아.....뭐.......아쒸....꾸미고 오면 되지! 애인만 있어봐! 나도 새로 태어난다!"
"그래 뭐.....연애사업 열심히 해봐..."
대충 준비가 끝나고 한두명 손님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아침
10시가 약간 넘은 상태, 나와 타냐는 잠시 쉴겸 밑으로 내려가 담배
한 대를 피고 올라오기로 했다. 우린 어제 있던 일을 화재로 대화를
나눴다.
"그래..어제 집에는 잘 들어갔어?"
"응..당연하지 니가 집까지 바래다 줬잖아...너야말로 너무 늦게 들어
간거 아냐?"
"뭐 늦게 들어갔다면 들어간거지만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뭐 그정돈
문제없어.."
"그래...부모님이 뭐라 안그러나봐...우리 엄만 조금만 늦어도 엄청 난리
피는데..."
"우리 부모님도 옛날에 그랬어...지금와서 많이 나긋나긋해 진거지.."
"휴우..학교도 졸업하고 이렇게 내 일까지 찾았는데 어째서 우리 엄만
날 인정해주지 않는걸까.."
"언젠간 인정해 주실 거야.."
"뭐 그래.."
그렇게 하루의 모든 시간을 타냐와 함께 보내다 시피 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사귀기로 하고 3일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나와 타냐는 같이 퇴근을 할 예정이었다.
그날 타냐가 오늘 맥주나 한잔 마시면서 공원에서 놀자는 얘기를 했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 역시 바라고 있던 터라 우린 당연한다는 듯이
맥주 두병과 안주거리를 사 들고 근처 공원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장난치고...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운아."
"왜?"
"잠깐 귀좀 대봐"
"어 그래...이상한 짓 하면 죽어..."
"내가 너냐?"
"내가 언제 이상한짓 했냐?"
"어쨌든.."
"빠쩰루이 메냐!"
"응?"
"기억하지?"
"나한테 하는 얘기야?"
"그럼 누구한테 하겠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각조차 못했다. 뭐 이런 내가 타냐가
첫키스일리는 없을 것이다. 중1때 첫키스를 했던 나로서는 키스에 관해
특별히 창피해 하거나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여자를 멀리했었고, 타냐와 만나면서 기분만 좋으면
모든게 다 좋았기 때문에 키스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급하게 진행해 나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타냐는 달랐다.
여자가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 처음 본 난 약간 어리둥절 했고
한편으론 좋기도 했다...뭐 다 그런거 아닐까..
"음~너 의외의 면도 있구나..."
"의외라니..."
"아니 뭐....잘 모르니까...이곳 정서는 말야.. 뭐 어쨌든 니가 허락만
한다면 맨날 해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장난 스러운 얘기를 거쳐 만난지 3일만에 우린 우리만의
첫키스를 경험했다. 그때 느낀 감정은 사뭇 달랐다. 중1때 처음 한
키스의 두근거림 역시 상당히 강했지만.. 지금 한 타냐와의 첫키스는
또 사뭇 달랐다. 굉장히 두근거린건 둘째치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 당시 난 또다시 나의 새로운 삶이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걸
세삼 느끼게 되었고, 또 확실하진 못하지만 이미 그 순간부터 나의
모든 상처들은 말끔히 치료되었을지도 몰랐다.
우린 약간 서늘하기까지 한 초여름 늦은 밤에 간간히 귀뚜라미가
울고 있는 한적한 공원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