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숭늉
▲..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면 못 만들 글자나 표현하지 못할 소리가 없는 것이 한글이라지만, 눈에 익지 않은 글자들이 눈에 띈다. ‘숭늉’에 쓰인 ‘늉’도 그중의 하나여서 왠지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어에서나 쓰일 글자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늉’이 쓰인 고유어는 ‘시늉’밖에 없고 외래어에서도 쓰인 예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숭늉’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제사를 지내본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리는 물을 따로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발음이 [숭냉]이어서 도대체 뜻과 어원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한자로 써 놓은 ‘숙랭(熟冷)’을 보고서야 표기와 발음이 이해된다. 그래도 문제가 남는 것이 짧은 한자 실력을 동원해 봐도 ‘익다(熟)’와 ‘차갑다(冷)’의 조합이 어색하다. 결국 찬물을 뜨겁게 한 것이라는 뜻일 텐데 굳이 이런 조합의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런 느낌은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15세기 의학 관련서에 ‘슉□’이란 표기가 나오는데 이후에는 ‘슝농, 슝□, 숙륭’ 등 혼란스러운 표기들이 나타난다. 우리말에서는 ‘ㄱ’과 ‘ㄹ’이 연달아 발음될 수 없으니 말소리의 변화가 일어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숙랭은 뜨거운 물을 지칭하는 것이지 밥을 푸고 난 누룽지에 물을 부어 만든 그것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우리말의 어원을 한자에서 찾는 것은 오래된 습성이다. 아마도 숙랭이란 단어 이전에 우리가 숭늉이라 부르는 대상과 이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이름의 발음이 숙랭과 비슷해 억지로 한자를 가져다 붙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고유어 숭늉이 먼저이고 한자어 숙랭이 나중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가져다 붙이려면 뭐든 가능하고 해석도 자유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조선족을 들고, 그들의 고유한 옷 한복을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시켰을 때,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해석처럼 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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