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파주 교하서 임진강과 합수하며 폼나는 이름을 하나 얻습니다.
할아버지의 강,祖江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광화문~육조 거리~운종루를 거쳐 숭례문을 지납니다.
숭례문을 나선 어가 행렬은 마포 나루서 멈춥니다.
한편,이른 아침 강화도를 출발한 배들은 조강(祖江)을 거슬러 오릅니다.
김포,양화진을 거쳐 서둘러 마포나루에 접안합니다.
태조가 승선하고 합장의 예를 표합니다.
무슨 일이 길래,만인지상(萬人之上)이 친이 한강엘요?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판이 한강 물길을 이용,합천 해인사로 옮겨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길에 부처와는 뗄라 뗄 수 없는 태조가 전송하러 나온 것입니다.
배는 양수리,양평 지나 남한강 변 여주 신륵사 앞에서 잠시 머무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고려말 선승 나옹화상의 詩 <청산은 나를 보고>입니다.
신륵사는 말년에 나옹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나옹은 이성계의 지기 무학대사의 스승입니다.
배는 충주 초입 목계나루,강변 중앙탑 앞을 지나고는 충주서 멈춥니다.
충주~제천~영월을 지나는 38번 국도는 북충주서 남한강을 가로지릅니다.
시선으로 들어오는 거리에,
위쪽으로 중앙탑과 충주 보조댐이 있습니다. 다리 아래쪽이 목계나루입니다.
남한강 시인 신경림은 詩 <목계장터>에서 나옹의 싯구를 빌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나루는 당시 남한강변 최고 나루터였습니다.
세곡을 실어나르는 조창이 있었습니다.
세운 판관은 당시 충주 목사 보다 끗발이 좋았습니다.
그런 목계나루에 펼쳐진 장터이니 흥청망청이였습니다.
남한강서,600년의 시차로 신경림과 나옹이 이렇게 만납니다.
나루는 인산인해입니다.부처님 공덕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백성들은 머리에 대장경판을 이고 문경새제를 넘습니다.
(새제는 태종 때 열린 길이니 하늘재일 가능성이,,)
종교적 자발이요,이면을 보면 부처님에 기댄 노역입니다.
문경 지나 상주서 낙동강 물 따라 이동 후 칠곡서 내립니다.
남부여대(男負女戴)로 해인사 까지 이동합니다.
그래서 해인사에는 머리에 대장경을 이고 순례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합천군은 팔만대장경 축제를 해마다 엽니다.
아낙들이 대장경판 이고 당시를 재현합니다.
해인사 없는 합천을 생각할수 없듯 팔만대장경 없는 해인사도 그렇습니다.
<월광사터의 동서 3층 석탑. 명작,명곡,명품은 아류를 낳는 법.
석가탑의 모방작이다.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태자가 이곳서 전사했다>
합천(陜川),,,
좁은 천이라는 말이 웅변하듯 합천은 내륙 산간 지방입니다.
해인사를 필두로 청량사,월광사터,영암사터 등 사찰로 유명합니다.
한우,한과,도자기는 특산물입니다.
88고속도로 합천 나들목서 빠져나와 10 여분 달리면 왼쪽에 월광사 터라는 푯말이 보입니다.
월광사터는 절 터만 있는 곳입니다.소위 폐사지(廢寺址)입니다.
중 떠나고,절 망하고 터만 남은 곳입니다.
사람은 늘 화려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인생사는 그늘진 이면(異面)이 본 모습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폐사지에 가면 그런 이면을 느낄수있어 괜찮습니다.
옛 영화는 간데없고 흔적만 있는 그곳엔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월광사터(月光寺),,,,
3층 석탑 두기만 뎅그라이 남아있습니다.
여섯 가야 중 마지막으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합니다.
마지막 태자가 월광태자입니다.
월광은 이곳 월광사 인근서 은거했다 합니다.
이후 월광태자를 기리는 절이 들어서는데,월광사입니다.
역사는 아리러니 입니다.
수백년이 흘러, 그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 나라를 바칩니다.
아들이 마이태자입니다.
한 나라가 망했는데 말들이 없을리가 없습니다.
마이태자,도포에 죽장 짚고 금강산으로 떠났답니다.
글쎄요??
일국(一國)을 이끌 태자가 천년사직이 무너지는 데 순수히 죽장짚고 떠났을리가요.
왕건의 논리,승자의 논리입니다.
역성(易姓)혁명의 논리를 하늘의 뜻으로 색칠한 것입니다.
설악산,오대산,대관령,백봉령을 내달려온 백두대간은 태백,소백산서 급속히 서남(西南)으로 휩니다.
그리고 월악산,주흘산,속리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서 대장정을 마칩니다.
영남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려면 백두대간을 반드시 넘어야 합니다.
최초로,문경~충주 월악산 자락에 삼국시대인 156년 하늘재가 열립니다.
10여년 후 영주~단양의 소백산에 죽령 길이 열리구요.
주흘산 자락 문경새제는 조선조 초기 태종 때 열립니다.
그 하늘재에 미륵사지가 있습니다.
절은 없고 불상,탑 등 터만 남아 있습니다.
마이태자가 머물렀고 이길 따라 금강산으로 떠났다는 전설이 깃든 곳입니다.
고려말 공민왕도 홍건적 난 때 이길을 지나 안동으로 몽진합니다.
맞은 편에 덕주산성이 있습니다.
덕주산성은 마이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지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신라 재건을 위한 오누이의 최후 보루인 셈입니다.
이후 원주 거쳐 인제로 빠집니다.
인제 인근 설악산 한계령 부근엔 작은 산성이 있습니다.한계 고성(寒溪古城)입니다.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결국 금강산까지 밀렸습니다.
마이태자의 이동 경로가 바로 전투 흔적 등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마이태자,정말로 금강산에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전투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권력은 이렇게 마이태자를 스산한 역사의 잔영으로 묘사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런 월광사지입니다.그래서 폐사지는 녹음방초의 여름 보단 가을,겨울이 제격입니다.
해질녁이 좋습니다.
4년전 바로 가을녁,해질녁에 한 폐사지를 들렀습니다.
<영암사 석등,사자 두마리가 낑낑대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석등은 석탑과 함께 우리나라만의 의장실안이다.
통돌을 깍아 만든 계단.1000년 전의 작품이다>
늦가을 비구니 사찰 청도 운문사를 갔습니다.
귀경길에,통일신라 시대 사찰 장연사 터를 들르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헤맸습니다.
대구 시민의 식수인 운문댐의 하류 하천을 넘고 야산 몇개를 지났습니다
해는 서산서 뉘엿 뉘엿 합니다.
순간,저 멀리 사과 나무 사이로 석탑이 보입니다.
발길을 재촉합니다.동강난 당간지주가 우릴 반깁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 사찰의 영역을 알리는 국기봉 같은 것입니다.
실개천이 흐르고,너머로 두기의 3층 석탑이 확연합니다.
사과나무는 튼튼합니다.잿빛의 튼실한 줄기가 마치 보디 빌더 같습니다.
주렁주렁 열리기에,힘을 받을 수 있도록 가지 치기를 잘해준 결과입니다.
사과 나무들 사이로 드러나는 삼층 석탑의 두기,마치 보디 빌더 월드 남녀 챔피언 같습니다.
서둘러 뒷 야산으로 향합니다.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둠이 깔려 흐릿하지만 석탑 뒤엔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 터가 그려집니다.
앞 마당엔 두기의 저 석탑이 있습니다.
좌우로 스님의 거처 요사채가,대웅전 마당 진입 지점엔 보제루 같은 누각(樓閣)이 보입니다.
중생들은 열심히들 고개 숙여 누하(樓下) 진입하고 있습니다.
좀더 멀리엔,잡귀를 억누르는 사천왕상이 모셔저 있는 대문채가 보입니다.
뒤로 저 실개천이 흐릅니다.
일주문(一柱門)이 보이고,너머로 두 동강난 당간지주는 본 모습으로 깃발을 나부끼고 있습니다.
버스쪽서 고함 소리가 들립니다.빨리 승차하랍니다.
미적 거립니다.
바람이 휑하니 붑니다.
대웅전 처마에,석탑 머리에 달렸을 풍경소리가 땡그랑~!하며 답합니다.
다들,차마 발을 떼지 못하나 봅니다.
해거름,1000년의 인고를 견딘 저 석탑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일까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 보다 더 강렬합니다.
발길을 돌리는 데 고개가 자꾸 뒤로 향합니다.
벌써 어둠이 깔리고,희미한 자태로 1000년 지기(知己)는 살짝 손을 흔듭니다.
"어서 속세의 처자에게로 돌아가라"고,,,,
지금까지 유적지 관련 경험 중 최고였습니다.
다신 그런 경험없을 듯합니다.
경복궁 옛 중앙박물관 뜰에는 집떠나 옮겨온 탑,부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보도 두 기나 있습니다.
개별의 유물을 보면 조형적으로 정교하고 멋집니다.근데 감흥은 별로입니다.
아마 저 유물이 원래 그 폐사지에 있었으면 멋진 미적 대상으로 다가올 겁니다.
역시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그리고 알고 느낄 때 최고의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일제 때입니다. 동경대 한 일본 학생이 경주를 방문했습니다.
온통 불국토(佛國土)인 경주 남산에 올랐습니다.
남산 부처골엔 감실석불좌상 한분 계십니다.
남산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하숙집 아줌마 같은 분입니다.순간 반했나 봅니다.
텐트를 치고 이틀 동안이나 밀애를 즐겼답니다.
남산 위로 둥실 떠오른 보름달 아래서요.
달빛의 은은한 조명에 아줌마 상호가 환상이였나 봅니다.
울나라 문화제 60%가 불교 문화재입니다.그래서 절터 관련 지명이 많습니다.
탑리,탑동이라는 지명이 실례입니다.전에 탑이 있어서 붙혀진 이름입니다.
탑이 있는 곳은 전에 절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강진군 읍내에 탑동이 있습니다.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의성군 금성면엔 탑리도 있습니다.
탑 조형사에서 기념비적인 탑리 오층탑이 있는 곳입니다.
이 오층탑 하고 담 하나로 사이로 여중(女中)이 있습니다.
의성군에 있기에 의성 여중일까?금성면에 있기에 금성 여중일까요,,,,,,,
탑리 여중입니다.
대대로 탑의 중요성에 대한 주민들 인식의 반영입니다.
남안동(南安東) 나들목은 일직면 조탑동(造塔洞)입니다.
공민왕이 홍건적 침략을 피해 안동에 피신합니다.
손홍량(1287~1379)이 홍건적을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공민왕은 일직(一直)이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그래서 일직면이요,일직 손씨의 시조입니다.
그 나들목에 오층전탑이 있습니?전탑(塼塔)이란 벽돌로 만든 탑입니다.
탑을 세우는 작업이 거대했기에 조탑동이라는 지명까지 얻었습니다.
주변을 살피면, 절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왕권 중심 교종서 선종이 힘을 비축하는 상징적인 곳,설악산 진전사터와 선림원터,,,
그래서 둘은 우리 사상사에서 기념비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한여름 백일홍이 멋진 여주 고달사터,,,
사찰 사이로 개울이 흘러 도시락 까먹기 좋은 서산 보원사터 등등,,,,,,,,,,
영암사터(靈巖寺)도 그런 곳입니다.
건물 초석도 선명히 남아있어 과거 흔적이 확연합니다.
불상을 놓았던 대좌,석등,석탑도 있습니다.
절의 로케이션이 뒷산과 어우러져 환상입니다.
황매산(黃梅山)입니다.
영남의 금강산으로 불릴 만큼 기암괴석으로 화려합니다.
근데 매화가 아닌 철쭉이 유명,매년 황매산 철쭉제가 열립니다.
영암사는 황매산의 꽃잎에 둘려쌓인 꽃술의 위치입니다.
혹자는 합천 기행의 정점은 바로 영암사랍니다.
영암사터는 식사 후 슝늉 같은 개운한 맛이 있는 곳입니다.
석등(石燈)은 대웅전 앞 뜰서 부처님의 진리를 설파하는 상징성을 지닙니다.
우리 나라만의 독창적인 조형물입니다.석탑도 그렇습니다.
석탑은 석가의 사리를 모시는 무덤입니다.
일본은 나무로,중국은 벽돌로 만듭니다.
우리 나라만 돌로 만듭니다.그것도 대리석이 아닌 단단한 화강암입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는 대리석 문화입니다.대리석은 물러 조각이 쉽습니다.
석탑 문화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석등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석등은 스리랑카,중국에 각각 두기가 있습니다.
우린 약 70 여기가 온전한 형태로 있습니다.
석등은 조형상으로 3가지 형태로 분류합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치는 간주석(지주)의 형태에 따라 구분합니다.
삼국시대 부터 8각형을 시작으로 장고 모양의 고복형으로 발전합니다.
또 하나는 이형(異形)으로 동물의 형상이 있습니다.
영암사 석등은 사자 두마리가 화사석을 바치고 있습니다.
불가서 사자는 코끼리와 더불어 사성수(四聖獸)로 신성시 합니다.
두 사자가 앞다리를 치켜 세우고 낑낑거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납니다.
바로 한국의 美,해학의 美입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조형 형태입니다.
가끔 어린 학생들,소풍이라도 오면 저 사자에 기대여 사진을 찍곤합니다
저러다 사자에 물리면 어쩔려구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그것도 두 마리.
석탑 양 옆으로 민가 두채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눈에 거스릴 겁니다.하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일제가 관(官)과 짜고 석등을 반출하려고 몇번을 시도했습니다.
주민들이 막아 냈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전무할 때입니다.
해방후에는 절터를 사들였고,주민들이 거주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영암사지는 지난 여름 남해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녹음방초의 여름이여서 일까,,,남은 유적지의 화려함 때문일까,,,?
폐사지의 쓸쓸함 같은 건 없고 단아한 느낌에 황매산의 절경만이 눈에 선합니다.
차는 월광사지를 지나 해인사로 향합니다.그 길은 가야산이 품는 길입니다.
길은 오르막으로 이어집니다.
20여분을 달리다,왼쪽으로 난 새길을 택합니다.
청량사(淸凉寺) 가는 길입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의 그 청량사가 아닙니다.
해인사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는 매화산의 청량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암사지는 황매산이요,청량사는 매화산입니다.
재법 구비구비입니다.시디선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가 흐릅니다.
패트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 받습니다.
베르너 토마스의 첼로 소품 앨범입니다.
우리에게 유달리 인기있는 베르너 토마스입니다.
86년 앨범 <저녁의 선률>이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수록곡 <쟈클린의 눈물>이 드라마 ost로 사용되면서 탄력이 붙었습니다.
쟈클린의 눈물은 베르너가 청년 시절,오펜 바하의 희귀 악보를 발견,녹음하면서 유명해진 곡입니다.
카잘스가 바하의 첼로 무반주 악보를 스페인 고서점서 발견,세상에 알렸듯이.
엘범 원 타이틀 보다 자클린의 눈물로 더 유명합니다.
근데,쟈클린의 눈물에는 상업주의 해괴함이 들어있습니다.
상업주의는 거짓도 진실로 만드는 괴력이 있습니다.
자클린 뒤푸레,,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처입니다.
데뷔 초기 잘 나가던 첼리스트입니다.
둘은 결혼합니다.자클린,불치병에 걸립니다.
병상서 14년을 고생하다 죽습니다.
간호도 열심이였답니다.
음반 제작사는 베르너의 85년 엘범에 <쟈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유명 챌리스트가 불치병에 걸려,결국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쓸쓸히 병상서 죽어간
비극의 첼리스트를 추모하는곡"이라는 허구도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구매자를 삼류 신파적 감상으로 유인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렌보임,한국서는 비정의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바렌보임,유테인계 아르헨티나 産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젊은 음악가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도 만들었습니다.
민족,종교 보다 예술을 상위 개념으로 본 음악가 입니다.
최초로 이스라엘서 바그너의 음악을 공연했습니다.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입니다.
유태계 주빈 메타는 1세기는 더 지나야 가능할거라 했습니다.
그런 바렌보임 입니다.
넷상의 허황됨은 한술 더 뜹니다.
음악 관련 어느 커뮤니티를 가봐도 쟈클린의 눈물의 음원은 있습니다.
근데 자클린 뒤프레 연주 음원으로 존재합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자신의 추모곡을요.
인터넷,정보의 바다이지만 쓰레기 바다일수도 있습니다.
여하튼,<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베르너의 연주로 명곡이 되었습니다.
가을 악기,첼로의 깊은 저음에 쿨합니다.
대가를 만나니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왼쪽 산등성이 아래로 미술관이 보입니다.
이름이 더 멋진 <바람 흔적 미술관>입니다.
22개의 노상 철제 바람개비가 우리 반깁니다.
<누가 다비드상만 찾는가?,,,청량사 대웅전 앞 뜰에 있는 석등.
로케이션이 호쾌하다.뒷 매화산서 해인사 향해 고함치면 들린다.
해인사 보다 이곳을 선호하는 이가 많다>
차는 갑자기 가파른 길을 만나자 힘들어 합니다.
멀리 석축이 보이고,너머로 매화산 정상이 반깁니다.
청량사는 통일신라 시대 사찰입니다.
최치원이 이곳서 머물렀다는 삼국사기 기록도 있습니다.
옛 절은 다 없어지고 석축,석탑,석등만 남아 있습니다.
대웅전 등은 최근에 지은 건물입니다.
그래도 위치하는 로케이션이 넘 멋들어져 사랑스런 절입니다.
앞은 망망대해요,매화산의 월류봉은 절터와 환상의 듀엣입니다.
月留峰입니다.
얼마나 청량사가 아름다웠으면 달이 매화산 정상서 머물렀을까요,,,
아스라이 청도 비슬산이 보입니다.
로케이션만 멋진게 아닙니다.
멋진 유물 3기가 있습니다.
대웅전 안의 석조여래좌상과 앞 마당의 석탑,석등이 그것입니다.
명작은,명품은,명곡은 그 아류(亞類)를 낳습니다.
명곡은 쉼없이 변주됩니다.
명품은 짝뚱에 이미테에션을 낳습니다.
명작은 모방작을 낳습니다.
명작과 모방작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실습 장소가 바로 청량사입니다.
화강함의 무거운 질감을 살려,신라의 로뎅들은 석굴암의 본존불을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이상미의 극치입니다.이후 많은 지역서 본존불을 모방합니다.
창령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군위 석불, 청량사 여래좌상이 그렇습니다.
이보다 이전,名品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 지역서 많은 모방작을 낳았습니다.
부여 대조사,서천 비인,익산 오층석탑이 그것입니다.
한국 석탑의 시원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부여 정림사지탑을 거쳐 통일 신라시대의 불국사 석가탑서 정점을 이룹니다.
이후 모든 석탑은 석가탑을 모방합니다.
명곡은 변주되어 더 멋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석가탑에 있어서는 모방작이 원작을 뛰어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관하는 권력이든,만드는 장인이든 종교적 열정으로 올인하기 때문입니다.
온 정신을 쏟아붇는 데 적당주의가,상업주의가 이를 능가할리가요,,,
이효리의 츄리닝 패션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듯이 옛사람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특별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도 우리 일상의 삶이였습니다.
청량사 석등,석탑이 아름다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서 있는 위치가 넘 호방합니다.
영주 부석사를 가보셨을 겁니다.절의 위치가 백미입니다.
절 앞 와이드 스크린에,일망대해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소백산맥의 산등성이란,,,,,
청량사 석등,석탑은 마당 끄트머리에 위치,대웅전서 바라보면 마치 절벽 위에 있는 착각이 듭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이쯤되면,조형적으로는 뒤떨어진다 해도 보는 이의 인문적인 감성은 석가탑을 이미 상회합니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 3층 석탑은 정상 부근서,절벽 바위를 기단으로해 서라벌을 향해 서있습니다.
상상만해도 호쾌합니다.
창령 관용사 용선대의 여래좌상도 그렇습니다.
신세대 방문객은 타이타닉 부처로 이름 붙혔다 합니다.
해인사는 유명합니다.
대장경판으로 유명하고,최근엔 성철 이라는 선승으로 유명합니다.
초입 홍류동 계곡을 따르는 길의 시원함이란 가보지 않은 자 느낄수 없습니다.
해인사는 여기까지 입니다.
대 사찰 중 가장 속세의 찌꺼기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 해인사입니다.
경내에 들어서면 숨이 막힙니다.
여기저기서 속세의 냄세가 납니다.
수십억을 들여 세계 최대 청동 좌상을,대장경판은 청동으로 제작하겠답니다.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순전히 역사성의 반영입니다.
수십,수백억을 들여 청동 대장경판을,아니 순금 대장경판을 만든들 무슨 가치가요,,,
그래서 일까요,
합천을 좀 아는 자,해인사 보다는 청량사를 더 아끼고 즐긴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다 보니,어느듯 해인사 초입입니다.
차는 홍류동 계곡 변 붉은 금강소나무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합니다.<下로>
첫댓글 역사적인 사안들이라 나의 주관이 많이 들어갔습니다.남의 기행이 아닌 나의 기행이기 때문입니다.대장경판 이동경로에 대한 이견도 많습니다.연안 해안을 이동설도 있습니다.한강 거쳐 충주서 합천까지 육로로 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마이태자 관련 주장은 더더욱 설이 많습니다.1000년전의 얘기니 더요.이도 나의 시각에서 입니다.어차피 역사는 쓰는 자의 몫이니까요,,,,,,,
합천엘 자주 갔었지요...해인사 뿐 아니라 ...............음~! 겨울에 얼어붙은 막걸리는 나눠먹던 그 친군..어디 있을까..
조은님 계시는 대구서 합천은 지척이더군요,,88고속도로 타면,,,냉막걸리 사고들고 해인사 홍류동 계곡서 발담구며 한잔 하심도,,,풍류가 따로 없을듯,,가을 단풍이 계곡 물에 내려앉아 紅流동입니다,,이가을에 꼭~^^
카토님은 모짜르트의 유명 피아노 협주곡 연재를 인기 절찬리에 마치고 지리산 안의 또 하나의 지리산 해인사 여행길에 오르다. 초입에 들어서기기도 전에 광하문에서 부터 방방 곡곡의 잊고 살고 있는 우리의 숨결을 들춰낸다. 옛 절터만 남은 곳에서 상상의 풍경 소리를 듣는가 했더니 잡다한 현실 세계의 아류와 오류와 고집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석탑 중심이려니했더니 석등이란 것도 우리 것이 최고요 다량 보유국이란다. 천년세월을 문화 유산으로 지켜본 카토님은 참 예술가들의 혼이 깃든 우리 문화재를 통해 터무니없이 상업주의에 희생된 자매예술 세계를 강하게 질타한다. 천재 모짜르트와 여행! 카토와 합천 해인사 기행의 연재!
지리산 선생님의 이 웅혼한 총평,뭐라 감사드려야할지,,,,,너무 많이 읽어주신거 같아 백골이 난망이옵니다,,,,,,,,,,,^^*
피치카토님의 기행기를 읽다 보면,교육 예술을 창안하여 새로운 인간학을 제시했던 루돌프 슈타이너가 자연스레 떠 오릅니다.문화적인 인간형...전방위 예술적 감성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생활화할 수 있는 인간형으로 자라나면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애고~에일린님 감사드립니다,,이렇게 까지나,,,,에일린님 다운 개념 정리이십니다,,큰 도움입니다,,,제가 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요,,,,,,몇번을 생각해봅니다,,,,감사드리구요,,^^*
머~언 옛날 어가 행렬을 따라서 함께 여행하는듯 합니다^*^피치카토님의 대단하신 다큐멘터리 작품속에 몇번이라도 다시와서 또 보고 뽀 보아야겠네요^*^수고 츠암 많으셧습니다^*^
조금전 산청군에 사는 처남댁과 통화를 하니 오늘 가야산에 다녀왔다는데 차에서 먹은 음식이 걸려서리 고생을 하며 가야산행을 햇다 하는군요...올봄에 합천 매화산 청량사는 못갔어도 봉화 청량산은 다녀왔구먼요^^*위에서도 얘기햇지만 시간 나는대로 또아서 읽고 또 즐감해야겠어요^*^
점심 시간입니다.주왕산은 도착하셨겠네요,, 달기백숙이라도 드시고계시는지,,ㅎㅎ,,내주는 해남 달마산에 미황사라시니 정말 부럽습니다,,,,봉화 청량사는 다녀오셨으니 합천 해인사 입구 청량사도 꼭 한번요,,,,의욕만 앞서는 글인데,이렇게 흔쾌히 읽어주심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요...뭐라고 답글을 달아야 할지 ..기냥 한참을 생각하다..점 하나 찍고 돌아설려다가... 너무나 수고하셧다고..멋진 작품 너무나 감사하다고 ...그러고 싶어져서 여기 발자욱 남겨 놓고 다녀 갑니다..ㅎㅎㅎ
애고~이렇게나 예쁘게 봐주시니 몸둘봐를요..참 참하십니다,,드러난 감성들이요,,,,전,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이 가을 마니마니 행복하시구요,,,,^^*
입은 있으되 할 말이 없다...<유구무언>이라는 사자성어가 오늘처럼 크게 와 닿기는 처음입니다..피치님의 글에 응대하기에는 저의 앎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도대체가 머리 속에 얼마나 많은 용량의 알 것들을 넣고 다니시기에 이런 글이 나오시는지....어찌하여 우리는 복이 많아 이런 글이 우리 차지가 되는것인지...조만간 아트힐,물꽃 버리고 어디 역사기행 출판사나 방송국으로 스카웃 되어 가 버리시지나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화산의 詩가 크게 와닿는 요즈음입니다....티없이, 성냄없이, 물같이,바람같이 살기가 도저히 될 수 없는 미물이기에...깊고 넓은 글 읽으며 또 한 수 배워갑니다...감사와 함께 작업의 고충에 위로를 드리며.....아름다운 독자올림.
애고~쌤요,무슨 겸손의 말씀을,,,공자도 촌부들에 많은 걸 배웠답니다,,전,그리 생각하렵니다,,물꽃쌤의 포텐셜하심의 반증으로 읽히구요,,,자신이 충만하면,남을 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지는 법이니 까요,,,그리고 쌤은 이미 나옹화상의 삶을 이미 살고 계십니다,,,티없이,성냄없이,물같이,바람 같이요,,,,그 이상이면,인간계 아닌 신선의 삶이니 거기까지 가시면 우린 어떡하라구요,,,,그러니,,,,,,,,,,글고,아름다운 독자올림에 찡~하옵니다,,,,따스한 격려,정말 감사드립니다,,,,,^^*
에혀 나는 음악이나 들어야겄당....창밖에 보이는 이 진풍경을 음악없이 즐길순 없지요...지난번 옥스포도에 갔다가...재클린의 뮤직갤러리 팻말을 보고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는딩...여기서도 그녀를 상기시키는구만요... 멋진 여행시켜주심 감사 드려요....(사실은 넘 머리 아포요....ㅎㅎㅎ)
뮤직갤러리 팻말 보고 누굴 생각하셨을 까나?,,,,근데 이상하네요,,,,인사님,矛盾아시죠,,뭐든지 뚫을 수 있는 창에,뭐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요,,,,멋진 여행시켜주심에 감사한다며 왜 머리가 아프단가요,,,실토하세요,,,,넘 장황하고 코드도 안맞아 억지로 읽었다고요,,,그래서 댓글도 마지못해서,,,ㅎㅎ,,맞죠,,,,근데 신경쓰지 마시소,,괜찮슴뎌,,,,인사님의 따뜻한 마음을 내 알고 있으니,,,,예쁜 흔적 무지 감사ㅠㅠ,,,^^
실은, 저두 저 글 끝까증 읽느라 무지 머리 아폿어욤...ㅋ...그쵸? 인사님~~
에고고~~ 뇌 용량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다시와서 읽어야 겠슴다~~ㅎㅎㅎ....문화유산 답사 기행문 잘 읽고 가요....저에게 많은 참고 자료가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지에님,갤러리서 많은 배우고 있답니다,,아시죠,,?,,,,,,,,,,,,,,,^^*
또 놀라움입니다 이 글을 어떻게 쓰셨는지요... 피치님 머리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뿐입니다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이 글 완성하느라 며칠 걸리셨나요? ㅎㅎ
ㅎㅎ 이렇게 멋지신 테순수님이 계시니,,,,,또 써야징,,힘네서,,,,,,^^
아자아자 화이팅~ 멋진 피치카토님 ~ ^^*
헉헉 상권도 드디어 다 읽었네요. 아~이 뿌뜻함..쟈클린 뒤푸레 얘기는 관현악방에서 얼핏 접했는데 여기에서 다시 상세하게 알려주어서 감사하고요. 카토님으로 인해 몰랐던 역사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갑니다. 그런데 하권 읽을 때보다 머리가 덜 아픕니다. 이유가 뭘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