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는 돼 있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큰 오빠는 여러 번 물어보았다.
예고가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나의 오랜 영웅을 만나기로 한 주에는 종일 가벼운 긴장감과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상상력에 꽤 아련한 기분으로 며칠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과,
"분명 멋진 쇼가 될 거야."라고 내뱉는 순간 스스로 각오와 다짐을 하게 된다는 것.
강요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나중에라도 어떤 핑계가 있을 수 없다.
드디어 공연 날.
좌석을 지정받는 건 솔차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날 하루 또는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 내내 같은 좌석에 앉아 있다는 건,
순간순간 나는 오직 그들을 위해서만 그 장소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긴 그들이 아니면 내가 그곳에 있을 일이 없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들이 머리를 잘랐다고 또는 음악이 변했다고 비난하며 매정하게 등을
돌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좋았다.
아니 오히려 그저 시끄럽기만했던 그들의 예전 음악보다 지금 사운드가 더 좋았다.
내 열여덟 인생에 있어서 처음 만나는 록 콘서트가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 너무 흥분되고
설레였다.
유독 오빠들에게만은 말괄량이처럼 말을 지지리도 안 듣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순순히
큰 오빠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엄마에게 둘러댄 여행을 위한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더욱더 말도 안 되게 안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가죽 재킷.
몸이 무겁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늦은 봄에 가죽 재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건 좀 어이가 없었다.
이윽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두껍게 입고 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 이럴 줄 알았다니까
큰 오빠는 가죽 재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특유의 미친듯한 폭소를
연발했다.
"걔네들도, 이젠 가죽 재킷 안 입는다고, 근데 네가 왜 입어?"
여기에 곧바로 응수를 했지.
"옵!!! 그럼 걔네들이 머리 깎았으니까 나도 머리카락 잘라야 되는 거야?"
헤헷... 이 한 마디에 오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공연장에 입장하기 전 7분 전 오빠와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얼마 전에 장가를 간 새신랑 오라버니는 양복 차림이었는데 꽤 근사했다.
메탈을 싫어하는 새언니는 집에 두고 고등학생 여동생과 공연장을 함께 온 오빠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맑았다.
내가 만약 머리를 바짝 친 그들의 공연을 보고 실망하면 어떨까?
오빤 아마도 그리 유쾌하진 않겠지?
순전히 여동생을 위해 바쁜 시간 쪼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밴드를 보러 왔는데,
막상 내가 재미없다고 투덜댄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겠지?
물론 우리 착한 오빠는 절대 짜증을 내진 않겠지만,
이런 생각은 속으로만 하고 담배 한 대가 거의 타들어가자, 오빠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담배 다 피우면 입장하자."
담배가 타들어가는 걸 보니 긴장 백배다.
긴장은 내게 흥분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 씨발!!! 좆나 잘 하네."
감히 키보드로도 쳐본 적 없는 이 상스러운 말이 나의 고운 입에서 절로 나왔다.
가장 좋았던 건, 그들의 사운드가 음반으로 들었을 때와 거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옛날 곡들도 많이 했는데 전혀 사운드가 말랑말랑 하다거나 나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10세 이전 내가 들었던 음반 속의 사운드처럼 포악하고 맹렬한 들짐승처럼
악기로 일제히 울부짖었다.
짧은 머리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면 솔직히 뻥이지만,
무대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절대 추하지 않았다.
꽤 가까운 곳에서 보았는데 가끔씩 그들이 날 내려다보며 연주를 할 때 가슴이 설렜다.
이렇게 가슴이 설레기는 처음이었다.
이건 남자 친구들과 연애를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설렘이었다.
마치 미친 기관차가 전속력으로 내 눈 앞으로 돌진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 같았다.
긴장되면서 흥분된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두려워 죽을 것 같으면서 심장이 쿵쿵 뛰는 건 또 뭐람.
이런 걸 가리켜 '짜릿하다'라고 하는 걸까?
"짜릿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
심리적 자극을 받아 마음이 순간적으로 흥분되고 떨리는 그 느낌.
오. 정확하다.
또 한 번 국어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의 첫 록 콘서트 경험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아마 처음이라서 더 긴장하고 흥분했을 것이다.
그들의 노래를 목청 높여 따라 부를 때마다 현기증이 났다.
특히 거기 모인 수많은 청중들과 더불어 기타 솔로 부분을 따라 부를 땐 순간 숨을 못 쉴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공연 후반부에 가서 목이 너무 아파서 가만히 있으려고 하면 다시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명곡들로 인해 나는 다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행복했다.
살짝 옆을 돌아보았더니 오빠 역시 즐겁게 공연을 보고 있었다.
크게 티 나지 않지만 분명히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들의 멋진 쇼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역시 목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헤드뱅잉을 계속하다 보니 목디스크 걸릴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행복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휴휴. 속옷을 벗어던지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악! ㅋㅋㅋㅋㅋㅋ
한참 공연을 즐기다가 생각했다.
대체 저 무대 위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느낌일까?
그들도 나와 같은 청중들처럼 쇼를 즐기고 있는 걸까?
리얼리?
어쩌다 한번 공연을 한다면 모를까, 저 사람들은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똑같은 곡을 몇 년 동안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쇼를 하고 있잖아?
적어도 오늘 처음 록 콘서트장에 온 나 같은 아이 같지는 않겠지?
어쩌면 아무런 느낌도 없이 "봉사"하는 게 아닐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함께 보냈던 두 시간의 공연은 처음 만나는 자유였고, 환상이었고,
찬란한 신기루였다.
온 국민이 힘들었던 암울했던 그 시절, 환율로 급등한 개런티를 포기하고 원래 책정한
가격으로 이 땅에 와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던 그들의 의리에 감동하며,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던 그들의 해맑고 아름다운 모습이 들려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메탈 사운드를 되돌아보니, 입가에 절로 금이 그어지네 -_-
끝으로, 신혼생활에 신입사원으로 힘든 스케줄을 보내면서도 철없는 고딩 시스터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준 울 오빠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싶다.
첫댓글 재밌는 추억이었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이해해주는 동생이 있어서 행복하겠습니다 ^^
GRRRR~!!! ^^ 메탈리카의 역사적인 첫번째 내한공연에 대한 카린님의 소회! 정말 잘 읽었습니다...^^
GRRRRRRRR
마지막까지 누굴까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묘한 필력이 인상적이었어요~~♡♡
히익
부러운 남매예요~~ 너무 이뻐보이네요 ㅎㅎ
특히 큰오빠의 막내동생을 위한 마음도 보이고..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족입니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나바요 ^^
물보다 진한껀 뭐가 있을까요 언니
낭만의 90년대의 정경이 절로 그려지는데요~~ 아주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언니
카린님도 글 정말 잘 쓰세요~ 일반적인 공연후기와는 달리 밴드의 곡에 대해 분석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공연장의 생생한 열기를 정말 레알하게 써주셨네요~ ㅎㅎㅎ 친오라버니와의 교감, 우상과의 끈끈한 의리, 인간적인 고뇌 등등 여러모로 감동적인 후기였다긔~ ㅎㅎ;; ^^
어머, 원탑 언니가 이렇게 과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런 글 너무 좋아요ㅋ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이십년전 이야기^^b
언젠간 저도 오라버니만큼 들어있겠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이좋은 남매의 모습 넘 행복해보여요!!
공연장의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밝은성격의 카린님의 글 넘 재미지게 읽었어요!^^
저 실은 어두워요
초반의 흥미가 끝까지 유지되네요...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