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랜드 힐은 '행군하라, 행군하라, 행군하라!'라고 외치며 설교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곧 평상시의 목소리로 설교를 계속하였다. "여러분은 나의 설교에 매우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내가 설교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악마가 와서 '로우랜드, 당신의 노력은 매우 고상하네. 영혼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네는 지칠줄 모르는구먼“ 이라고 나에게 속삭였습니다. 바로 그 때, 한 가난한 사람이 '성냥 사세요.'라고 매우 크게 외치며 창밑을 지나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양심이 나에게 소리쳤습니다. '로우랜드, 자네는 저 인간이 성냥을 파는 열성의 반도 못 미치는 열성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하려 하고 있군"
"최선을 다 하시오. 만약 당신이 한 시간을 설교할 수 없다면 30분이나 15분 간이라도 설교를 하시오. 다른 사람의 설교를 모방하려 하지 마시오. 설교의 주제를 가장 명료하고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시오.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환호는 생각하지 마시오. 비록 나는 나이도 많고(그는 48살이었다) 경험도 많지만 설교를 하는 매 순간마다 두려운 마음을 갖고 제단에 섭니다"- 마르틴 루터
당신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까? 전10:10 무딘 철 연장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7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6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7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예배와 말씀 선포 본문 : 시119:46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물론 말씀은 전도를 통해서도 선포됩니다. 하지만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일정하게 출석하여 양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혼자서 자수성가한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은 누구나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교회의 말씀은 영생과 생명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많이 물러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했을 때 주님은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라고 합니다. 교회의 선포는 영생의 말씀입니다. 이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냄(히6:1,2)
1)회개를 선포함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관문입니다. 어느 누구든 회개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는 매우 신랄합니다. 조상의 은덕으로 하나님 나라에 다다를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상이라고 자동으로 그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마3:9). 주님도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고 하셨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고서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보일 수 없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삭개오와 같은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19:8)고 했습니다.
2)구원이 선포됨 회개한 이후에 주어지는 것은 구원의 선물입니다. 자기의 행위로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수많은 죄악을 범합니다. 행위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이 자명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로서 만약 구원을 받았다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구원에 대하여 '행위로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그것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2. 성도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선포함(엡4:16)
1)봉사하는 것임 성도는 세상에서 권리를 누리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고 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좀 더 대우받고 무언가 자기를 주장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서로가 머리가 되려 하고 좀 구차한 것이나 작아 보이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단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11)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큰 자는 대우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망각함으로 조금도 고난이 오면 성도됨을 포기하고 교회를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함 어린아이는 어린이로서의 행동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합니다.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만약 나이가 먹어서도 어린이의 행동을 한다면 그는 사회에서 무시당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도도 행동도 자기 중심적으로 하다가 연륜이 붙게 되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고백하기를 '낸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했습니다. 또한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4)고 했습니다. 장성하되 예수에게까지 장성해야 합니다(엡4:15).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그 단계입니다.
3. 세상에서의 삶의 자세를 선포함(롬14:17)
1)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감 성도는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세상의 법칙은 한 나라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 나라에 속해 있으면서도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면 그는 그 나라 국민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국민이기를 포기한 사람은 그 나라 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보호해 주지도 않는 것임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했습니다. 고난과 환난을 기꺼이 걸머지고(살후1:5)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백성의 의무인 것입니다.
2)선교적인 자세로 살아감 우리는 세상에 보내진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를 보고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떤 곳인지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편지 내용은 우리의 말이나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운 것들은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선교적인 자세로 확립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나라를 자랑하지 못하고 자부심이 없다면 누가 그 나라 백성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선교적인 자세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증인이 되며 제자화시키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의 삶의 자세입니다(마28:19,20).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자신의 생명이요 삶의 지침이며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든지요, 우리는 말씀을 선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원하는 대로 몇 구절만을 골라서 사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어진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말씀 선포의 기쁨이요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