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 유자&석류축제 -
새벽 댓바람에 길을 나섰다.
고흥에 도착하니 팔영산에 물든 형형색색의 단풍과 가을걷이로 바쁜 들녘이 가을 깊숙히 들어와 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비록 차창 밖으로 보는 가을풍경이지만
갖가지 색채로 물든 산야는 우리에게 조화로움과 어울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듯 했다.
유자, 석류 축제가 벌어지는 풍양면 죽시에 도착해 죽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마당에는 오래된 대봉감이 붉은 등불마냥 주렁주렁열려 객을 맞이한다.
여느 전라도 식당처럼 수많은 반찬으로 상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지만 전라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정갈하고 맛있게 차려져 나온다.
전어회와 잘 삶은 수육,
잘 구워진 갈치구이와 유채나물이 입맛을 돋구게하고 장어양념구이와 돌게장이 밥 한그릇을 더 부르게 만든다.
마침 공영민 군수님이 축제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다.
얼마전에는 고흥 농수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유럽에 가서 큰 성과를 남기고 돌아왔다.
유자와 석류축제를 열면서 1차 산업이 아닌 부가가치를 늘릴 수 있는 6차 산업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노령화된 농촌이 단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인구감소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에는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식사를 마친 후에 풍양 유자공원으로 향했다.
유자막걸리를 생산하는 풍양주조장과 천등산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대나무밭 사이로 흐른다는 죽천마을을 지나
'땅고개'라는 산 등성이에 오르니 푸르디 푸른 유자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자공원 입구에는 고인돌군이 가득하다.
산 좋고 물좋다는 말은 있지만 하늘과 바다까지 좋다는 곳은 없다.
고흥 땅이 그렇다.
모든 것이 풍족한 탓인지 이곳 고흥 땅에는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를 거쳐 국가가 형성되기까지 막강한 세력과 찬란한 문화가 꽃피웠던 것이 밝혀지고 있다.
유자공원에는 다른 지역 과수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다.
힘들여서 생산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땅을 사서 논밭을 일구면 제일먼저 하는 것이 경계를 두르는 것이다.
그것이 돌담이 되었건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가 되었건 이 땅 안으로 함부로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뜻으로 세워두는 것이다.
하지만 유자공원에는 경계가 없어 누구의 땅인지 알 수가 없다.
땅 한 뼘 늘리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시대에 진정한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축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부터 가볍고 기분이 좋다.
수만평에 이르는 한동리 일원에는 지금 향긋한 유자와 보석같은 석류가 나무에 주렁주렁열렸고 유채나물과 청보리의 푸르름이 운치를 더해준다.
억새의 은빛 춤사위와 까치밥으로 남겨둔 농부의 따사로운 마음은 이 가을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유자나무 사이를 걷는 산책로
그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장소가 있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코 고향을 다녔구나 하는 자책감을 가지게 만들정도로 아름다웠다.
산책로 곳곳에는 아름다운 싯귀가 쓰여진 팻말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고 시간만 잘 맞추면 버스킹 공연도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여느 축제장에 가보면 인파에 휩쓸려 일방적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고난의 행군이 많지만 이곳 유자 석류 축제장 산책로에는 편안하고 자유롭게 쉴 곳이 많다.
여기에다 곳곳에 고흥 농수산물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점과 미니 카페가 들어가 있어 일상에 지친 마음과 몸에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 줄 수가 있다.
많은 음식중에 권해드리고 싶은 것이
황칠나무와 함께 삶아낸 바베큐와 커피나무를 직접 재배해서 커피콩을 생산하는 고흥커피다.
황산화 성분이 풍부한 황칠나무는
유자,석류,커피나무와 함께
고흥에서 가장 많이 자생하는 나무다.
황칠나무 바베큐는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가 없는 특선메뉴고 커피생산량이 전국1위답게 최고의 바리스타들도 많다.
그들이 내려준 커피 한잔에서 일상의 여유를 찾아보시길 권해드린다.
산책길에서 유자밭을 일구는 이명현 한동마을 이장을 만났다.
"사계절 향기로운 나무가 유자나무입니다.
유채꽃이 필때면 별모양의 하얀색 유자꽃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릅니다.
잎에서도 향기가 나고 가을날 이렇게 짙은 향기를 내뿜는 과일이 어디 있답니까.
유자공원 산책길은 사계절 향기에 취할 수 있는 곳입니다.
유자가 익어가는 가을밤에 밤하늘에 달까지 떠보십시오.
사람이 미쳐부러요"
얼마나 순수한가?
저와 같은 마음으로 짓는 농사라면 믿지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시인보다 더 시적인 시어를 쏟아내는 이장을 보면서
나도 달뜨는 밤에 노란 유자열매 밑에서 유자막걸리 한 잔과 황칠 바베큐를 유채나물에 싸서 한볼테기 먹으며 달빛 어린 그 풍경에 미쳐보고 싶어진다.
아마도 현시대에 달을 쫒다가 이승과 이별한 시성 이태백이 살아있었다면
풍양면 유자공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거란 엉뚱한 상상을 잠시 해봤다.
행사가 시작되는 유자축제장으로 들어섰다.
이태원 참사로 안전이 부각되는 이 때에
여기저기 안전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탐방객들을 안전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이번 축제의 특징은 주민들의 참여가 우선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느 축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음식들이 아니라 고흥을 대표하는 건강한 먹거리와 고흥 농수산물 제품 홍보와 소비촉진에 주안점을 둔 것이었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 송가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인터넷 판매와 연계한 라이브 커머스를 쇼호스트와 함께 진행하면서 유자와 석류제품 판매를 촉진하고 300대의 드론이 밤하늘에서 고흥을 상징하는 로켓발사와 유자,석류를 그리는 프로그램은 모든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유자공원이 있는 이 작은 한동마을에는
고려말 왕을 수행하면서 원나라에 다녀왔던 유청신 공이 살았다.
공은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을 위해 기름이 많고 목재로 쓰기에 좋은 호두나무를 가져와 천안에 심어 퍼뜨린
것이 지금의 천안 명물이 된 것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서 백성들을 구제했다.
볼거리,먹거리, 즐길거리가 다채롭고
한 조각 구름, 밤 하늘에 달까지도 축제의 향연에 풍경이 되는 아름답고 멋진 축제는 흔치 않다.
이 가을날 뒤집어 읽으면 '자유'가 되는 유자공원에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한없는 자유와 풍요로움 그리고 넉넉한 인심을 느끼고 오시라.
긴 글이지만 이 한마디로 축제의 감흥을 전해주고 싶다.
"안 오면 당신만 손해"
(유자 석류 축제는 11월10~13일까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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