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해변풍경
31, 1국가 2체제의 나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차창으로 스쳐가는 초록산과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길가에는 노랑꽃 야생화 스팔라토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잔잔한 바다는 눈이 부시는데 버스는 쉬지 않고 해변 길을 달려간다.
1시간이 지난 5시 30분에 크로아티아 국경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마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안을 구경하면서 달리던 차가 내옴의 어느 휴게소에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거기에 있는 슈퍼마켓에는 일본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인지 상품마다 일본어로 이름과 가격을 적어놓았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 관광객들이 이외로 많았고 오사카에서 왔다는 관광객을 만나서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들도 여행사를 통해서 왔다면서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물건을 사느라고 야단을 했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국경검문소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출국하고 크로아티아로 입국하여, 1시간 정도 내륙으로 들어가서 크로아티아를 출국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입국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국경을 넘어선 버스는 이제 네레트바강을 따라서 내륙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오후 7시가 지나서야 헤드치코비나의 카플리나(Capina)에 도착하여 마카르트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북부 보스니아 지방과 남부 헤르체고비나 지방 이름의 합성어다. 남부유럽 발칸반도 서부에 있는 이 나라는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고, 북서남쪽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좁은 회랑을 통해 아드리아 해의 네레트바 해협에 있는 네움에서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이 회랑이 크로아티아 달마치아 해안 가운데 드브로부니크 북서쪽 약 40km 지역을 크로아티아 본토로부터 갈라놓았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토면적이 5만㎢이고 인구는 460만 명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인이 44%이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이 31%이며,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이 17%,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이것은 이 나라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이상 계속된 보스니아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 나라는 1878년부터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08년에 헤르체고비나 주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합병되었으나, 그 결과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914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암살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 후 1920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1992년 유고 연방에서 세르비아계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분리 독립하였다.
이에 유럽연합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승인하자 신유고의 주축인 세르비아가 반대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이 깊어졌고 세르비아군이 사라예보를 침공하여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하면서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고연방의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보스니아에 인종청소를 단행했는데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이 대표적으로 1995년 이슬람교도인 주민 8,500명을 세르비아군이 학살한 것이다.
이처럼 인종청소가 시작되자 나토와 유엔은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하게 되었고 3만 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으나 휴전과 확전만 되풀이되었다. 그러자 미국의 주도하에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내전 당사국들과 미국, EU,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평화협상이 시작되었고 1995년 데이턴평화협정에 공식 조인함으로서 보스니아 내전은 끝이 났다.
이로써 희생자 20여만 명에 100여만 명의 난민을 낸 보스니아 내전은 막을 내렸고 이슬람-크로아티아 연방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국가연합의 형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공화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국가 2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국토의 51%)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릅스카 공화국(48.5%)으로 갈라져 있고 브르치코 행정구는 양측 모두에 속하는데 그들은 각각 입법부와 대통령을 가지고 있어서 3인 공동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보기에는 아직도 이 나라의 갈 길은 멀기만 했으니,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반도의 평화는 과연 어제쯤 정착될 것인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위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경 1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경 2
내전의 흔적-총탄자국들
세계 제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 라틴다리-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이 이 다리 위에서 보스니아 민족주자인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다
내전 때 총탄으로 만든 볼펜
사라예보 묘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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