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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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출생. 1945년 귀국. 1962년 <한국 일보> 신춘 문예에 '생명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함.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 문학상 수상,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
지적 체험을 감각적, 정감적 체험과 마찬가지로 직접적, 구체적으로 표출해 냄으로써 한국 현대 문학을 한 차원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가 좁은 의미의 지적인 작가란 의미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저변에서 경이를 조성하면서 환상과 현실을 희한하게 조화시키는 허구적 능력, 기지가 번득이는 분석력, 만화경(萬華鏡)같이 다채로운 의식의 요술도 결국은 참신한 언어 재능에 의존하고 있으며, 새로운 감수성이란 요컨대 이 언어 재능이 성취한 혁신의 이명(異名)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내면성과 사회 관계의 윤리 문제를 파헤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개인의 고립성 문제를 생생하게 형상화하여 1960년대 대표적인 소설가로 평가받았다.
작품으로는 '무진 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60년대식', '시골 처녀', 환상 수첩', 들놀이' 둥이 있다.
<김승옥 소설의 특징>
① 50년대 문학이 거의 예외없이 보여주었던 강력한 문제의식 내지 교훈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점
② 경직된 엄숙주의에서 탈피하여 재기발랄한 감수성과 위트, 이국적이며 애상적인 문체가 돋보인다는 점
③ 인간의 숙명적 조건으로서의 고독을 존재 그 자체의 생생한 모습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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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4?19 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김승옥은 1962년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현, 최하림 등과 더불어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이 동인지에 <건>, <환상수첩>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김승옥의 소설은 대체로 개인의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관념체계, 사회조직, 일상성, 질서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성의 관념체계나 허구화된 제도, 내용 없는 윤리감각이라는 일상적인 질서로부터 일탈하려는 열망이 김승옥 소설의 중심적이고 일관된 내용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김승옥의 초기소설은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현실을 압도하는바, 낭만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환상수첩>, <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생명 연습> 등의 초기소설은 환각이나 환상을 좇는 삶 혹은 현실을 초월한 삶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두드러진다. 김승옥의 소설은 <무진기행>이후 현실의 엄정한 법칙성을 인정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여, 그의 후기 소설은 초기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 대신에 꿈이나 환상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의지로 가득찬다.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차나 한잔>, <염소는 힘이 세다>, <1960년대식>, <서울의 달빛 0장>등 김승옥의 후기 소설은 산업사회의 한 기호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실감을 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로스적 열정으로 기성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담은 <보통여자>, <강변부인>등에서는 김승옥 소설이 지녔던 문제적인 성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승옥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원리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4?19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다.
<대표 작품>
무진기행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서른 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이다. 4년 전, 미망인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으며, 며칠 후면 아내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될 몸이다. 그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잠시 동안의 휴가인 셈이다. 그에게 무진의 의미는 자별하다. 그곳은 참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미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출세 가도에 올라 있다. 그는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인 박, 중학 동창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음악 교사인 발랄한 처녀 하인숙 등이다. 문학 소년이었던 박은 그를 우러러보고, 출세한 속물인 조는 갑자기 출세한 그를 동류로 취급한다.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의 유혹에 몸을 맡기며,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하며 그와 일주일 동안만 멋진 연애를 경험하고 싶다는 하인숙에게서, 그는 자신의 옛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그는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한다. 서울로 가겠다고 작정한 후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다가 찢어 버린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서울로 되돌아간다. <
무진 기행>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하나는 서울로 표상되는 일상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무진이라는 탈일상의 공간이다. 아내와 제약회사 상무 자리가 있는 서울은 비록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가치의 중심이다. 이에 비해 안개와 바다, 자살한 여인의 시체와 하인숙의 노래가 있는 무진은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공간이다. 그러므로 아름답지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진은 2박 3일로 족한 것이다. "나"는 이미 전쟁과 실직과 실연의 쓰라림을 맛본 30대의 성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진과 하인숙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서울과 아내에게로 가야 한다. 무진은 꿈이지만 서울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가 하인숙을 택한다면 그것은 이내 소설이 아닌 동화의 수준으로 물러설 것이다. 말하자면 이 두개의 이질적인 공간은 <나>의 내면에서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무진 기행>이 지니는 또하나의 독특함은 문체에 있다. 그것은 작가 김승옥의 독특함이지만 <무진 기행>에서 더욱 빛난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하는 부분에서,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와 같은 대목이나, "세월이 그 집과 그 사람들만은 피해서 지나갔던 모양이다. 주인들은 나를 옛날의 나로 대해 주었고, 그러자 나는 옛날의 내가 되었다"와 같은 대목에서 그의 문체는 정채를 발한다. 그것은 섬세하고 치밀한 언어의식의 산물이며, 무진을 무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서울, 1964년 겨울
1965년 6월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의 소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파리 따위와 꿈틀거리는 것 등 사소한 것에 대해 말하다가, 그들은 자기만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그들이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설 때, 기운 없어 보이는 30대의 사내가 동참하고 싶다고 말을 건네 왔다. 그들은 30대 사내의 인도로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자신이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밤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 등을 말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돈을 쓰기 위해 넥타이와 귤을 샀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갔고 그들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을 보고 남은 돈을 불 속으로 던져 버린다. <나>와 안은 이제 돌아가려고 했지만 사내의 만류로 같은 여관에 들게 된다. 사내는 한 방에 있기를 원했지만 안의 주장으로 그들은 각기 다른 방에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고 안과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 안은 사내가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으며,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나>는 안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안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1965년 6월 <<사상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작가 김승옥에게 동인 문학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나>와 안이라는 새로운 인물유형이다. 그들은 25세의 동갑내기 청년들로,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느꼈던 것만을 주고 받을 뿐이다. <나>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구청 직원이고 안은 <내>가 보기엔 어마어마한 대학원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내 친구가 된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30대의 사내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인물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으며, 자신이 진 무거운 짐을 상대방에게 덜어 놓으려 한다. 그는 말하자면 자신의 고통을 함께 나눌 공동체적 심성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자들인 <나>와 안에게는 그러한 사내의 태도가 부담스럽고 내키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 못해 응하지만, 이내 떠나고 싶어 한다. 그 둘이 보여 주는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이전까지 우리 문학의 주류로 존재했던 엄숙주의에 대한 거부이자, 60년대의 김승옥에 의해 탄생한 새로운 감수성의 영역이다.
<작가 김승옥의 생애>
작가 김승옥의 생애
60년대 초 김승옥이 문단에 출현했을 때 한 작가는 "너 하나의 탄생을 위해 전후문학은 10여년을 기다려야 했다. 는 탄성을 발한 바 있다. 다소 과장된 이 말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문학풍토에서 김승옥의 등장은 신선했고 충격적이었다.
'생명연습'에서 '무진기행'을 거쳐 '서울 1964년 겨울'로 이어지는 그의 일련의 단편소설들은 전후 문학의 음울한 분위기와 허무의식을 일거에 떨쳐버리고 내용과 형식 양면에 걸쳐 한국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근대인의 개인성을 포착하는 뛰어난 감수성과 위트와 지적 세련을 반한 그의 문체는 한국문학의 성숙을 성큼 앞당긴 찬란한 행보, 바로 그것이었다.
오사카와 순천
김승옥은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나 1945년 해방과 함께 가족이 전남 순천에 정착함으로써 순천이 그의 실질적 고향이 된다. 순천 북국민학교 때에는 '새벗'지에 동시를 발표하고 순천중학교 시절에 교지에 콩트 수필을 발표하는 등 일찍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내었다. 그는 그림에도 재능을 보여 서울 문리대 불문과에 입학한 1960년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만화 '파고다 영감'을 그리고 문리대 학생신문 '새 세대'의 '학원만평'과 컷을 그렸다. 이듬해엔 '세새대'의 기자가 되어 문예면과 논문면을 맡아보았다.
김승옥 문학의 출발선
1962년 김승옥은 단편'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학생신분으로 화려한 등단을 한다.
이를 계기로 그해 여름 같은 문리대생이던 김현, 김치수 등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한다.
김현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산문시대'창간사의 문구는 다소 과장된 대로 김승옥 문학의 출발선의 풍경을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태초에 같은 어둠 속에 우리는 서 있다(중략)
우리는 이 투박한 대지에서 새로운 거름을 주는 농부이며 탕자이다. 비록 이 투박한 대지를 가는 일이 우리를 완전히 죽이는 절망적인 작업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손에 든 햇불을 던져 버릴 수 없음을 안다.
우리 앞에 끝없이 펼쳐진 길을 우리는 이제 아무런 장비도 없이 출발한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죽음의 팻말을 새기며 쉬임없이 떠난다." '우리는 화전민이다'라는 구호로 기성세대를 우상이라 규정하고 그 우상파괴를 외침으로써 50년대 전후 문학을 대변하고자 했던 이어령의 외침과 흡사한 이 거창한 선언의 이면에는 바로 그 50년대 전후 문학이 작품의 실제에서 제대로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 사정이 깔려 있었다.
손창섭의 냉소적 허무주의와 장용학의 관념적 알레고리로 양극화된 50년대 전후문학의 황폐한 풍경은 한편으로 역사의 폭력에 압도된 자아의 왜소함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이나 이념을 글쓰기의 중심에
놓은 창작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다. 김승옥은 이와는 매우 다른 자리에서 출발하는데 글쓰기의 중심을 스스로의 자아의식에 두는 창작방법이 그것이다. 4.19혁명에서 5.16군사 쿠테타로 이어지는 격동기의 현실을 청년의 나이에 겪은 김승옥 세대는 희망과 절망, 가능성과 좌절, 자부심과 패배의식의 극단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었다.
흔히 4.19세대로 불리는 김승옥 세대가 현실 속의 좌절을 문학적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은 것이 이념이나 현실을 보편적으로 받아 들이는 대신 개별자아의 내면 세계를 절대화하는 창작 방법이었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을 수락하되, 거기에 '의식내부의 섬세한 조작'을 가해 '자기세계'로 향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의식내부에서 조작된 세계를 산다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세계를 살아나가거나 아니면 가상의 관념세계속에서 어우적대는 재래의 인간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며 도전이었다.
확고한 자아의식
김승옥이 데뷔작 '생명연습'과 뒤이어 산문시대 동인지에 발표한 '환상수첩, 누이를 위하여' 등에서 보여준 새로운 감수성의 정체는 그러므로 전후세대와 대비되는 확고한 자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아의식이 의식적 조작을 통해 성립된 만큼 불가피하게 '자기기만'적인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다는 점인데 김승옥은 이를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한다.
등단과 함께 '새세대'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공인되고 전후세대 문인들과 당시의 신진 비평가들 사이에 대대적으로 전개된 '세대논쟁' 속에서도 가장 큰 논점으로 부각된 김승옥의 문학적 개성은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었다.
밤이면 몰래 혼자서 수음을 하는 선교사. 유학을 가기 위해 잔인하리만큼 투명한 계산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범하는 대학교수-생명연습, 사보텐을 세코날로 키우며 춘화도의 주인공 노릇을 하는 시인. 자살을 하나의 도락으로 생각하는 오영빈-환상수첩, 누이의 병을 대신 앓아 버리는 사람-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의 주인공들은 '자기기만'을 통해 '개 같은 놈'으로 전락하는 김승옥 소설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김승옥 문학의 이러한 방법론이 가장 휘황하게 빛나는 작품은 '무진기행'일 것이다.
'목포의 눈물'을 노래하는 여선생에게서, 서울로 가고 싶다고 바다로 가는 긴 둑에서 매달리는 여자에게서,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다는 그런 여자에게서 주인공 윤희중은 동거하고 있던 희를 잃어버렸을 때의 자기자신을. 모두가 전쟁터로 몰려갈 때, 골방 속에서 수음을 하고 있을 때의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의식 내부에서 그의 쓰라린 과거가 되살아 나온다. 그는 마치 그 과거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인 듯 그녀와 정사를 맺는다.
그러나 김승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김승옥은 그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의 생활인을 꿰뚫고 있다. 그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아내와 장인의 후광이 있다. 그는 이미 그의 과거를 살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열한 타협안을 작성한다. 그것으로 그는 쓰라린 과거와 결별하려 한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독한 자기기만과 그것이 빚어내는 인간희극에 전율하게 된다. 전후문학의 위축된 눈에는 잡히지 않던 인간성의 한 국면이 김승옥이라는 새로운 감수성에 의해 문학의 전면으로 떠오르는 빛나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개인주의와 구원의 문제
그러나 김승옥의 문학이 '자기기만'적 인간형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김승옥은 1965년에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을 발표하여 그의 문학적 성과를 또 한번 높이게 된다.
제10회 동인문학상이 이 작품에 주어짐으로써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최연소 수상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거니와'서울 1964년 겨울'은 김승옥 문학의 또 하나의 절정으로 기록될 작품이다. 거의 말장난에 가까운 무의미한 대화를 통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통렬한 위트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김승옥이 새롭게 제시하는 것은 인간구원의 문제이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버린 가난뱅이 서적 외판원의 자살을 확인한 일행 두 사람은 한밤중에 서둘러 여인숙을 빠져 나온다.
그중 '안'이라는 대학원생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수락하고 살아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묻는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 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안'의 두려움은 부끄러움의 다른 이름이다. 가난뱅이 사내가 자살한 것을 알면서도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수 없었던 '안'의 태도. 닫힌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이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는 그렇게 물으면서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전까지 자신만의 성(城) 속에서 의식의 조작을 통해 세계를 자기화하려는 '안'의 태도에 브레이크가 걸렸음을 의미한다. 무진을 떠나며 느꼈던 윤희중의 부끄러움도 이와 유사한 것이었지만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안'의 부끄러움은 좀더 심화되면서 타인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는 자기만의 구원이 갖는 한계를 심각하게 되묻는다.
문학적 침묵
그러나 '서울 1964년 겨울'을 고비로 하여 김승옥의 소설은 더 이상의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현대 산업사회의 병리학에 대한 보고서라 할 만한 '다산성'과 꽉 짜여진 도시적 일상으로부터 탈출욕망과 좌절 그리고 공포감을 보여준 '야행, 들놀이' 계열의 문제의식은 상식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70년대 들어 김승옥은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하면서 소설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을 발표,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음으로써 새롭게 주목을 받았으나 더 이상의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다.
김승옥은 1980년 새로운 의욕을 갖고 장편'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광주사태로 인한 집필의욕 상실'을 이유로 15회만에 자진 중단했으며 그로부터 1년 뒤인 1981년에는 '나는 이제 허무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기독교 입문 선언문을 발표한 뒤 소설창작을 중단하고 전도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955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김승옥 전집'이 전 5권으로 기획.간행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십오 년만에 창작 재개를 선언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의 신작을 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