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월요일
천신만고 끝에 병원 입원 시간을 끝내고 집사람이 집으로 오는 날이었습니다.
마를대로 말랐고 눈만 쾡 하니 나와있는 내 아내가 부산역 플랫홈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어이 없다는 미소인지, 안도의 힘없는 미소인지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보내며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면서 힘겨운 걸음을 조금씩 조금씩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전서부터 집사람이 퇴원하면 해줘야 할 계획들, 프로그램들, 하루 일과들 등등등....
해야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집에 그 긴 여정을 풀고 만들어둔 이부자리에 앉히고 누이고 베게를 받쳐주고... 일일이 내 손으로 해주었습니다.
일반병실에서도 목넘기기 불편하다면서 잘 먹지를 못했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밥 한 술에 물 한컵으로 말아서 천천히 천천히 씹어서 넘기는
차라리 '밥 한 술 떠기 운동(?)'이었습니다.
딸아이는 해방감에... 집에 온 엄마는 뒷전이고 친구만나러 못 다 한 일들, 스케줄들에 하루가 모자랐습니다.
나는 일에, 아들놈은 학교와 그 주변생활에 여념이 없고.. 그러다 보니 아내 혼자서 힘겹게 움직여서
밥을 채려먹는 둥 마는 둥 했겠죠.
옆에서 붙어앉아 챙겨줘도 물이 만 밥 한 숟가락만큼의 양을 먹을까 말까인데..
일찍 퇴근해도 5시를 넘겨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전화로만 상황체크만 했을 뿐이었고
집에 와보면 힘겨워하는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얼마나 걸었느냐.. 밥은 얼마나 먹었느냐...
그래서 그렇게 너부러져 있는 아내가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내의 힘겨워하는 몸짓들은 애써 무시해버리면서
그렇게 3일을 보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딸아이가 10시쯤에 들어와서부터 아내의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이 세브란스병원에 예약된 외래진료받으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데 말입니다.
새벽 1시 30분.
그러니까 세브란스병원에 외래진료 예약일 새벽 1시 30분쯤. 39도를 육박하는 열.
온 몸에 붉은 열꽃이 피고 열을 내리려는 딸아이의 얼음팩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뜨거운 열에 못견뎌하는 아내를 차에 태워 가까운 해운대 백병원 응급실로 달렸습니다.
겨우겨우 열만 내려서 아침 6시 30분 KTX열차에 실어보냈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그 날이 6월 14일 목요일.
전화로 전해오는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열차 내에서도 한기와 열을 동반한 심상찮은 일이 벌어져서
겨우겨우 병원까지 도착을 해보니 당장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며 일반병실에 입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날부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감기증세로 인한 폐렴증상과 요로감염, 신장기능저하 등으로 중환자실로 내려가서 치료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그날(6/15)로부터 지금까지 또 43일째 중환자실에서 힘들어하면서 여러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중환자실 3일만에 소변이 나오지 않아 24시간 투석을 시작했고,
4일째 되는 날부터 알 수 없는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면서....
그러면 산소호흡기를 기도삽관하고 몇 일씩을 재었습니다.
집사람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심장 폐부분 CT촬영, 뇌파검사 등등 여러 검사를 했습니다
그 원인을 찾는데 3주 정도가 들었습니다.
심장내과와 신경외과가 협진에 들어갔다는 얘깁니다.
심장내과에서는 신경외과쪽의 뇌파검사를 정밀히 해서 확인을 해보자..
신경외과에서는 뇌파검사상 이상이 없으니 수술한 심장쪽에 쑈크가 원인이다....
그렇게 떠넘기기를 하는 그 3주 동안 깨어나면 하루 정도 버티다 또 경기발작으로 기도삽관하고...
부정맥이 원인이다 해서 심장세동기(동맥으로 심장가까운 곳에 시술)를 달고 지켜보자...
그 걸 달고도 또 경기를 일으키니까 달았던 세동기를 다시 빼내고...
죽어나는 건 집사람이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명확한 사실이었지만 우리가 뭐라고 항의를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에 자기네들이 전문의사니까 믿고 따르는 수밖에.... 싸인만 열심히 해대는 수밖에....
면회를 하러들어가서 아내를 보면...
꼭 튁환자 아이들처럼 뭔가에 의해 손발이 움찔거리고 눈썹 미간이 움찔거리면서 계속 떨리고...
보고만 있으면서 받아들이기만 하다보니 모든 걸 다 뒤집어 엎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혼란이 왔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람은 중환자실 1주일이 지나기 전에 '선망(중환자실정신증)'현상과 함께 정신이 반쯤은 나가버렸습니다.
헛소리와 중얼거림과 촛점없는 눈동자, 공포스런 눈빛, 고함소리, 발광발작 등등
그때부터 손발이 묶여서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있고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니 온몸에 구멍을 뚫어 주렁주렁 몸 속으로 심어놓은
기구와 관들을 뜯어내기 때문이었습니다.
체격좋은 장정도 1주일이면 선망현상과 함께 못견뎌하고 반쯤 정신병자가 된다는 그 중환자실에 손발이 묶인 채
누워있어야 하는 집사람. 벌써 43일째....
매일밤 잠을 청하러 누우면 집사람의 잔상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미칠 노릇입니다.
달이 바뀌어 7월.
7월 6일.
이틀 전부터 신경외과의 대단한 양보(?)로 경기와 간질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를 중환자실 그 많은 장비들
사이로 침대전면에 차렸습니다. 그 큰 병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하신(?) 장비를 말입니다.
특수장비인 듯 했습니다. 머리두피 머리카락이 안보일만큼의 센스들이 가득 두피에 덮여져서 붕대와
정신과 수술 후 씌우는 모자와 함께.
뇌파그래프가 화면 속에 계속 그려져 나가고 우측에는 환자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장착되어서 한 화면에서
뇌파그래프와 환자의 움직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발작하는 타이밍을 면밀히 검사해서 포인트를 찾아내는 실로 대단한 장비였습니다.
끝내 그 포인트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심장내과가 이긴 것이죠.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는 증거가 남은 셈이죠.
여하튼 그 날부터 신경외과 처방으로 약으로 복용중입니다.
그 날 저녁 그러니까 그 포인트를 찾아내기 전 바로 그날밤 12시 반경에 딸아이 핸드폰으로 중환자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 핸드폰은 내가 잠결이라 못들었나 봅니다.
경기의 최고 극점에 이르렀던지 굉장한 발작과 함께 7초 정도 숨이 멎었고 심폐소생술로 숨을 돌려놓았고
환자의 완강한 저항으로 산소호흡기를 기도삽관해야 하는 데 근육이완제를 써도 입을 벌리지 않아서
강제로 호흡기를 입을 벌려서 집어넣다가 심홍구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준 윗이빨 한 덩어리인 의치 4개 덜렁거린다고
중환자실 래지던트로부터 전화가 왔을 정도로 위급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또 그렇게 기도삽관으로 일반병실로 옮겨서 선망현상도 없애고, 정신적인 안정도 찾고 활동을 해가면서 차츰 지켜보자던
주치의와의 약속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의사들의 용어로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신통방통하게도 신경외과 처방약으로 발작과 경기와 움찔거림이 한꺼번에 잡아버린 것입니다.
누워있는 것만은 '생물학적'으로 편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위급상황 때 기도삽관한 인공호흡기를 빼내야 하는 데
집사람이 폐렴으로 가래가 심하고 자가호흡을 무척 힘들어한답니다.
빼서 연습을 해보면 자가호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턱밑 목젖 아래부분에 기도절개(구멍)를 해서 가래도 빼내고 입으로 들어간 호흡기의 존치기간이 길면
오염이 돼서 폐렴보다 힘겨운 사태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서 꼭 해야한답니다.
의식이 있을 때 집사람이 내게 부탁을 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절개만은 않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어쩝니까 의식이 혼미하니 자가로 가래를 뱉아내지를 못하는 상황이고
가래를 못빼내면 가래로 인해서 기도가 막힐 수도, 폐로 내려가서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데......
가족이나 보호자나 배후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설명 듣고 "예... 살려야죠. 그렇게 하세요." 그 말밖에는 더 이상......
기도절개로 목소리나 기침소리 등 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소리는
아예 나지도 않고 말을 해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더 문제는 의식이 돌아왔다는 겁니다. 중환자실에서는 드문 예 중에 하나입니다. 정신이 돌아온다는 게...
자기를 인식해보니 자기 상황에 기가 차서 죽을 노릇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정신이 있으면서 발광을 해서 몸에 붙은 호스들을 뜯어내고 간호사들 힘으론 어쩔 수가 없어서
이제는 손까지 붕대로 봉해서 묶어뒀습니다.
안정제와 수면제로 또 재웁니다. 그렇게 재우고 깨고 하는 반복의 시간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를 비웃듯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식도성폐렴(코로 넘겨놓은 음식공급 호스가 환자의 움직임이 심해서 폐에까지 음식성분들이 올라와서)으로
치료 중이며
일반병실로 올라가기 위해서 열심히 인공호흡기로 자가호흡 연습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흔해빠진 게 인공호흡기지만 일반 병실에서는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의 비상한 머리로 생각해낸 것이 일반병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없는 저녁 수면 시간만이라도 사용하기 위한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리스(본인부담)해서 시험해보고 괜찮으면 다음주 월요일(7월30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기로 한
주치의 말이 공치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중환자실 인공호흡기는 집사람이 호흡하기에 대단히 자연스러운 도움을 주는 기계지만
리스해온 인공호흡기는 집사람과 잘 안맞는 갑습니다. 바꿔끼우기만 하면 호흡곤란을 호소한답니다.
그 후로 기계 재쎗팅을 하고 부속들과 호스들을 모조리 새로 갈아끼우는 등 그 인공호흡기와 집사람의 호흡패턴을
맞추느라 또다시 보름이 흘러 드디어 일반병실로 올라갔습니다. 8월 14일(화요일)
실로 몇 일만의 낭보입니까?
재입원 후 정확히 60일 두 달만입니다.
항생제 과다 사용으로 발생한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1인실(격리)로 옮겨서 회복 중입니다.
말이 일반병실이지 환경만 바뀌었지 병상에 그대로 누워서 생활해야 합니다. 목에 걸린 인공호흡기를 떼기까지는 말입니다.
중환자실을 빠져나오니 심리적인 부분 안정이 되었던지 중환자실 60일 내내 소변이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일반병실 이틀만에 소변을 봤고 그 소변 때문에 일주일에 3번하는 투석치료를 앞으로는 회수를 줄이겠답니다.
4월달 후반(4/21)에 수술로부터 시작한 인고의 시간이 벌써 꼬박 4개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태우며 기다려야 할 지..... 또다시 시간이 해결할 문제이겠습니다만
여러 지인들의 걱정과 염려와 기도 덕분에 이 시간까지 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화이팅해서 온전한 여자로 서도록 만들 것입니다.
너무 장문이라 송구합니다. 전문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뭐라고 위로 해야할지~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화 이 팅 한번더하세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라이온님. 네스님 분명 쾌유하실겁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라이온님이 힘내셔야 네스님도 힘내실 수 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네요/
그렇게 오랬동안 투병 생활하는 내스님의 건강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여 건강이 완꽤되기를 기원합니다.이럴때 일수록 환자 보호자의 의지가 강해야 되리라
생각 되고,.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일들이 환자와 보호자는 불행한 일이엇지만 어떻게 보면 불행중 다행스러운일로 생각하고 최동수L 힘을냅시다.
최동수L 무어라 위로의 말을할지 모르겠군요, 힘 냅시다. 분명 쾌유를 할것입니다. 최동수L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환자의 의지도 강해질것으로 생갹됩니다. 남의일이아닌 우리모두의 일 일수 있습니다. 힘냅시다. 저또한 무사회복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