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역사 유적이 다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의 두 수도인 공주와 부여의 유적을 방문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사지에도 있으며, 이 두 유적 또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익산의 유적뿐만이 아니다. 매년 가을에 공주와 부여에서 개최되는 축제인 백제문화제를 통해서도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다. 백제문화제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표 축제로 손꼽힐 정도로 큰 축제가 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에게 공주와 부여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주역에 KTX가 개통되었지만 호남선이라 경상도 사람이 기차를 통해 가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KTX가 있든 말든 나에게 유일한 선택지는 대전에 먼저 가야 하는 것이었다. 터미널에서 곧바로 공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공주로 가는 버스는 서대전 버스 터미널에 있고,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가도 공주로 가는 기차는 서대전역에서 타야 한다. 환승하는 것도 서러운데 대전에 도착한 뒤 시내버스를 타고 또 다른 터미널이나 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백제문화제를 공주와 부여에서 번갈아가면서 개최하였지만 최근에는 두 도시 모두에서 백제문화제가 열린다. 대신 개막식과 폐회식의 장소가 매년 바뀌는데, 내가 방문한 해에는 공주에서 백제문화제의 개막식이 열렸다. 때마침 여행 일정이 폐회식보단 개막식과 겹쳤기 때문에 백제문화제를 보기 위한 첫 도시는 부여가 아니라 공주가 되었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33 -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백제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제의에서 시작된 조촐한 형태였지만, 전국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기 때문에 부여군내는 물론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백제문화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제의적 성격으로부터 종합 문화축제로서의 성격을 더해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축제는 전통사회의 붕괴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전통문화의 부활이라는 의미로 향토축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무려 886개의 지역축제가 개최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 2018) 그중 백제문화제는 역사성이나 개최 횟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문화축제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 축제의 출발은 1949년 경남 진주에서 개최한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가 시초였고, 백제문화제의 전신으로 1955년 시작된 ‘백제대제’는 두 번째 시작된 축제라 할 수 있다.
백제문화제는 1955년 4월 18일 부여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백제대제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백제대제’를 거행한 것이 기원이 된다. 당시 부여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부소산성에 제단을 설치하고 백제 말의 3 충신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에게 제향을 올렸으며, 백마강변에서는 부여 도성 함락 중에 강물에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水陸齋)를 거행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소산성에 삼충사(三忠祠)를 건립하고 제향을 하여 백제문화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개최시기는 처음에 4월이었으나, 1957년 제2회 백제대제 때부터 10월 초로 변경되었다. ‘백제대제’, ‘백제제’ 등으로 불리던 명칭은 1965년 제11회 때부터 ‘백제문화제’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순수한 민간 주도로 시작된 백제문화제는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1960년대 초부터 군에서 행사를 주관하여 프로그램을 확충하였고, 1965년 충청남도 주최로 이양된 뒤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처럼 백제문화제는 백제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제의에서 시작된 조촐한 형태였지만, 전국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기 때문에 부여군내는 물론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백제문화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제의적 성격으로부터 종합 문화축제로서의 성격을 더해갔다.
1966년에 이르러 공주군(현 공주시)이 백제문화제에 참여하여 백제중흥 5대 왕(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추모제, 백제 가장행렬 경연 등을 시작으로 해마다 축제행사를 거행하여 백제문화제는 부여군과 공주시가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2007년에 이르러 세계적인 축제로 육성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공주시, 부여군이 (재)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현 (재)백제문화제 재단]를 설립하여 백제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2010 세계대백제전 개최를 계기로 세계적인 역사문화축제로 나아가고 있다.
백제문화제 첫날은 공주에서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공주에 도착한 건 오전 9시가 넘어서였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별로라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곧장 무령왕릉으로 향한 이유는 개막식이 열리는 날 오전에 백제 왕들의 혼불을 채화하고 공주에서 백제를 이끈 네 왕을 추모하는 제사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백제문화제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개막식을 비롯해 금강을 수놓은 연등을 보러 오며, 백제문화제의 시초가 된 제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가 백제문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백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왕들을 기리는 제사였다.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을 수 있겠지만 공주 시민과 부여 군민은 매년 백제 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제사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10시에 혼불 채화가 열리고 11시에 4대 왕 추모제가 열리는데, 규모는 종묘 대제의 그것보다는 훨씬 작았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재위했던 왕들을 합친 데 비해 공주가 수도가 되었던 60여 년 간의 왕은 고작 네 명에 불과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통 복식을 갖춘 제관들이 나와 네 왕들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고 제문을 읽는 장면은 백제문화제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감동 깊었다. 비록 일본이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했지만 백제의 후손들은 역사와 문화를 잊지 않고 지켜왔다.
개막식은 오후 6시 30분에 열리기 때문에 공주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공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제민천은 오랫동안 공주 시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공주가 백제의 수도가 되었던 건 제민천과 금강이 풍부한 물을 공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도 공주를 충청남도의 중심 도시로 만들기 위해 역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양반들의 반대로 대전이 대신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공주는 발전한 도시였기 때문에 공주 시내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여럿 있다. 구 공주읍사무소, 중동성당, 공주 제일교회가 그것들인데 모두 붉은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모습이 보기 좋다. 구 공주읍사무소는 충남 금융조합연합회 회관으로 건립된 이후, 공주읍사무소 (1930-1985), 공주시청 (1986-1989)으로 사용된 후 현재는 공주역사영상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중동 성당은 1936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높은 종탑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이 돋보인다. 1931년에 건설된 공주 제일교회 또한 붉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을 버티고 서 있다.
공주 시내를 둘러본 뒤 금강에 펼쳐진 연등을 보러 갔다. 아직 대낮이라 불이 켜지지 않은 연등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연등으로 빛나는 금강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낮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개막식이 끝나고 밤이 되면 금강을 수놓은 연등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교를 건널 것이다.
저녁이 되고 밤이 되자 금강신관공원 주무대는 공주시민들과 여행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충청남도 최대 축제라 초대된 가수들의 면면도 화려했고 공연도 즐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불꽃놀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니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금강 쪽을 바라보았다.
백제문화제의 불꽃놀이는 충청도의 향토기업인 한화가 주관하며 규모도 상당하기에 반드시 봐야 할 행사로 손꼽힌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금강 전체가 환하게 밝혀지고 백제의 수도인 공주를 방어했던 공산성 또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서울 불꽃축제를 주관하는 한화답게 백제문화제의 불꽃축제도 화려했다. 15분간의 화려한 불꽃놀이가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금강으로 가자 화려한 연등이 강 전체를 물들인 모습이 보였다. 백제의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연등을 보니 백제의 숨결이 아직도 공주에서 살아 숨 쉰다는 걸 느낀다. 비록 6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였지만, 공주 시민들은 그 시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백제의 역사를 잇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