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 재래시장의 신자 상인들이 5일 성지순례에 나섰다.
부산 상인 540여명과 서울 상인 200여명이 집결한 성지는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손님이 있건 없건 문을 열어놓아야 하는 게 장사지만 이들은 이날 하루 눈 딱 감고 점포 문을 닫았다. 시장 한구석에 쪼그려앉아 행상을 하는 할머니들도 좌판을 걷고 기쁘게 따라 나섰다.
이날 합동 성지순례는 장터가 사목지인 이윤벽 신부(부산 시장사목), 양형석 신부(서울 평화시장성당 주임), 김성만 신부(서울 남대문시장성당 주임)가 주선했다. "경기불황 때문에 장사가 안돼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신자들을 위로하려는 소박한 마음으로 기획한 성지순례다.
하지만 참가자수는 소박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700명이 훨씬 넘는 대규모 순례단이 되었다. 부산에서는 전세버스 12대와 승합차 2대가 동원됐다.
이날만큼은 상인들 얼굴에서 경기불황의 그늘이 걷혔다. 참수형과 몰매질은 말할 것도 없고 생매장을 당하면서까지 천주 신앙을 지킨 무명 순교자들의 피가 배어 있는 성지를 순례하면서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친교시간에 한데 어울리는 동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김성만 신부는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아 마음 고생이 컸는데 신자들이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내가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부산교구장 정명조 주교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성지순례에 동행해줘 신자들 기쁨이 더 컸다.
정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경기불황과 대형 할인매장 때문에 재래시장 상인들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격려했다.
상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취지로 2차 헌금을 해서 147만원을 남대문 노숙자 쉼터에 전달했다.
이윤벽 신부는 "두 도시 상인들이 신앙 안에서 친교를 나눈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예수님은 오늘 시장바닥으로 내려오시어 상인들 애환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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