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연의 ‘분옥정’
문득 오래된 집이 그립고 넉넉한 숲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살아오면서 난데없이 떠오르는 그런 생각을 오늘은 억제할 수가 없다. 의식이 일어나니 몸도 덩달아서 움직인다. 도시에서 곤두선 촉수를 거두어 길을 나선다.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내달리다 서포항으로 빠졌다. 푸푼 둘펀울 애두르고 기계 쪽으로 가다가 ‘분옥정’이란 이정표를 보고 마을로 접어 들었다. 삼백 살이 넘은 왕버들 두 그루가 지키는 말미평 저수지를 끼고 구붓이 돌자, 목적지가 나왔다. 오래 묵은 흙냄새가 코를 찌른다. 별세계 같은 공간,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 나온 느낌이다.
늘어선 흙담 한 켠을 대문 크기만큼 허물어 누구든 들고 나기 쉽게 해놓았다. 집사처럼 맞아주는 허리 숙인 노송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호수 표석을 보증하듯 400년 장수목으로서의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대지의 자양분을 송두리체 끌어올린 긁은 몸통에 내 작은 가슴을 맞댄다. 그 동안 사연도 많았다고 들려주는 듯하다.
분옥정은 초목에 싸여 있다. 빗장을 푼 대문이 세월에 바래지고 약해지기는 했으나 건장하다. 여름새의 맑은 소리를 들으며 징검다리처럼 놓인 널돌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정자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세 칸의 마루는 계곡으로 향하고, 가운데 칸 뒤로 한 칸짜리 온돌 방 두 개를 이어 만든 고무래 丁자형 이층 우조였다. 일층은 계곡 암반 위에서 높낮이가 다른 기둥이 맞물려 맞물려 떠받치는 형상이고, 이층은 계곡을 내려다보게 해놓았다. 가장자리에 난간을 둘렀지만 마루를 디딜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에 조심스럽다.
이 정자는 조선 숙종 때 유학자인 김계영을 기리기 위해 순조 20년(1820)에 후손 김종한을 중심으로 경주 김씨 문중에서 건립했다. 분옥정 외에도 용계정사 화수정 청류헌으로도 불렸다. 그중에서도 분옥정은 계곡에서 부딪혀 솟아오르는 물방울이 마치 옥구슬을 뿜어내는 걱 갇타는 뜻이 들어있다.
나는 당파에 휩쓸려 벼슬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시를 쓰며 일생을 보낸 김계영과 마주 앉는 상상을 한다. 아득히 먼데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고혹의 향기가 묻어나고, 뿌리를 조선에 두고 흘러온 물은 현재를 돌아 미래로 굽이친다. 우리는 시 한 수를 읊으며 권커니 자커니 약주를 주고 받는다. 가야금 소리같은 새소리가 동당거리며 산 고개를 넘어간다. 늘어진 나뭇잎들이 냇물에 뛰어오르는 고기때처럼 보인다. 잎들의 살집이 탐스럽다.
오랜 세월이 깃든 고담한 풍정에 빠진다. 정자에 가득 찬 공기를 한입 마시기만 해도 푸르른ㄹ 피가 혈관 속으로 뛰어다닐 것 같다. 냇물 소리가 귓가를 적시고 바람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턱선을 어루만진다. 나른한 눈꺼풀, 풀 먹인 까슬까슬한 삼베 홑이불을 덮고 눕고 싶다.
팗레개하고 드러눕는다. 분옥정을 일컫는 이름이 많은 만큼 여러 편액과 기문이 네 벽에 당당하게 걸려있다.그중 용계정사, 화수정은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썼고, 분옥정과 청류헌은 30대 중반의 김정희가, 가문은 당시 우의정이던 추사의 6촌 형 김도희가 썼다. 단정하고 와노한 기품이 서려 있다.
정자 앞 계곡이 용계다. 물소리에 이끌려 계곡으로 내려간다. 분옥정의 또 다른 이름인 ‘청류헌’이 그대로 느껴진다. 깊은골에 비해 계류는 좁지만 물소리가 청아하다. 초록이 쏟이질 뜻한 계곡이 200여 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눈앞에 펼쳐진다. 김계영도 이 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거닐었으리라.
조금 더 오르니 너럭바위에 무슨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세월에 풍화되어 알아 볼 수 없다. 누군가 그 주위를 흰색 페인트로 표시해 놓았다. 서성거리다 폭이 좁은 호젓한 길로 나왔다. 나지막이 선 세이탄(洗耳灘) 표석이 앞을 가로막는다. 글자의 의문이 풀린다. 너럭바위 글은 낙향한 김계영이 새겼고, 세이탄이란 글귀는 귀를 씻는다는 의미를 넘어 난세와 결별하겠다는 의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는 성균관 생원에 입격해 대과를 준비하다 당쟁에 얼룩진 정치상에 염증을 느껴 벼슬길을 접었다. 더럽혀진 자기 귀를 여울에 씻었다 하여 씻을 세, 귀 이, 여울 탄을 계류의 너럭바위에 새겼다. 어렴풋이 사라지는 글자를 안타까이 여긴 후손들이 2016년 이 표석을 세웠다. 사연을 알고 나니 분옥정도, 계곡도 ,흐르는 물도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분옥정에 앉는다.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마을 쪽에서 보면 나직한 단층집이고, 계곡에서 올려보면 하늘을 치솟은 누각으로 보인다. 앞의 개울이나 바위가 정원을 이루고 잘 뻗은 산과 깊은 골짜기도 뜨락이다. 앞에 우뚝하게 선 벼랑이 담벼락이 되고 머리 위를 덮는 수만 개의 잎이나 나뭇가지는 지중을 대신한다. 이토록 격조 높은 집이 또 있을까. 창문 하나 없는 고색창연한 풍경에 젖어 옛 선비이 기개를 흠모하여 눈을 감는다. 도시의 일상에 넌더리가 날 때 홀로 떨어진 분옥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도 좋으리라. 퐁기조차 보약이 될 것이다.
어느 새 선비의 도포같은 산 그림자가 분옥정을 덮는다. 백일몽에서 깨어나 귀갓길을 서두른다. 둥근달이 집까지 따라온다. 분옥정에는 달빛이 만발하겠지. 여름이 숲을 떠나고, 가을이 그곳에 들어서는 날, 다시 걸음하리라.
*이 글은 대구일보와 경북도청이 주관하는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의 장려상(2023)이다.
말하자면, 이 공모전은 순수 수필이라기보다는 문화유적지를 알린다는 목적을 가지고, 수필 형식으로 표현하라는 전제를 단 공모전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유적지를 표현하고, 소개한 글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요구하는 글이 수필형식이니, 수필로서는 문제가 없을까를, 우리가 한 번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글의 시작은 문장을 다듬고,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공모전의 작품이니 수없이 다듬었을 것이다. 멋지고 화려한 묘사문은 칭찬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글이란 너무 다듬으면 진솔한 맛이 줄어든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치이다. 말하자면, 의미 전달보다 아름다운 글 다듬기가 먼저인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올바른 글쓰기가 아닙니다.
유적지의 소개는 당연히 있어야 하겠고 ------
그 보다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문화유산을 소재로 쓰는 글이 소개로 끝나버리면,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공모전에 응모하실 때는 유념하셔야 하겠습니다.
지난 유적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가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무조건 칭찬하는 것도 있지만, 자기반성을 하도록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냥 우리가 배워야 한다. 아니면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니고, 따끔한 자기 반성이라든지 ------, 우리에게 어떤 긍정적인 가르침을 주는가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히 피상적인 말로서만이 아닌,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글은 문장을 다듬고, 다듬은 흔적이 많이 보이므로, 수필을 배우는 사람에게 문장을 다듬는 기법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거기에 마음까지 담아내는 표현 기법이라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
글쓰기를 공부하실 때는.. 이 수필에서 보여준 문장 다듬기도 연습으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참, 나식연 선생님은 우리 수문대 출신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을 소개 해주시고
평가까지 해 주시니 많은 가르침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푸푼 둘펀울'이 무엇인지요?
나석연 이 아니고 나식연
수필문예대학 17기 수료하신 선생님입니다
"푸른 들판을 에두르고" 인데 오타 입니다.
@김광규(18기) 회장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