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컷
이미영
어느 날 하얀 문조文鳥 한 마리가 당신의 손에 앉았다면
날이 잘 선 가위 한 자루를 장만하십시오
새의 날개깃은 자유와 맞닿은 살
흠 없는 영혼과 흠뿐인 말의 간극을 기꺼이 두려워하십시오
새는 한여름 빛의 기억에 골몰하고 있을 테니
윙과 컷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지러운 빛의 굴절에 취해 솟구쳐 날아다니지 않도록
편애하는 꿈을 찾아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가위의 유일한 재능은 단호한 금지의 힘이므로
주저하지 마십시오 안쓰러워하면 안 됩니다
하늘을 품은 깃털 조각들이 잘려나가도
차가운 가위의 의지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무수한 깃털이 달린 날개의 언어들에게
벽과 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십시오
방종의 부피를 잊고 고독의 질량을 깨닫게 하십시오
새에서 인간으로 추락시키십시오
발간 부리와 눈시울로
땅에서 벌어지는 서술어의 세상을 만나게 하십시오
삶을 오독하던 날개깃을 강철 펜으로 벼리어서
얼어붙은 인간의 무지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게 하십시오*
*카프카
계간 『시와 정신』 2023년 가을호 발표
출처: 시작은모임(young570519) 원문보기 글쓴이: 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