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함양오씨 대종중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이집트 문명전(2)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32 09.07.20 08:3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이번 이집트 문명전과 작년 페르시아 전을 보면서

야코가 죽는 것은 연대가 터무니 없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뭐 하나 보려고 하면

보통 기원전 2천년, 3천 년으로 우리 단군보다 같거나 이르다.

이런 기분을 그리스어(語)와 신화(神話)를 전공하는 친구에게

털어 놓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야 ! 1군하고 2군하고 같아?

우리나라도 2군 치고는 대단히 잘 한 편이지만

그래도 1, 2군 차이야 있는 거고,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

 

하긴 이집트나 페르시아는 인류문명의 발상지 아닌가?

또 일찍 했다고 계속 잘난 것도 아니고, 늦었다고 끝까지 쳐지는 것도 아니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고 영국과 프랑스가 국가 꼴을 갖춘 것은

우리 고려시대 말이고, 피터 대제가 러시아 기틀을 잡은 것은 광해군 때였다.

 

 

바바에프 두상(頭像)

 

 

 

 

 

고왕국, 제5왕조 초기, 기원전 2,450년 경

H 13.3cm, W 11cm, D 12cm, 재료 : 방해석

 

곱슬머리에 균형이 잘 잡힌 귀여운 얼굴에서

언뜻 우리 불두(佛頭)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연대가 BC 2,450년 !

단군 할아버지가 도평양성 시칭조선 (都平壤城 始稱朝鮮)한

단기 원년-BC 2,333년 보다 약 100 년이 빠르다.

 

더욱이 우리 단기는 신화에 기반한 따라서 좀 켕기는 계산인데

저건 진짜 연대가 저렇게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 불상이 한참 만들어 지던 때와 비교하면 근 3천 년이 앞선다.

 

 

소를 물어뜯는 사자

 

 

 

 

말기왕조-제 30왕조, 기원전 4세기 중엽

H 28cm, W 13cm, L 61.5cm, 재료 : 이석

 

이번 이집트 문명전 전시품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것 같다.

주최 측 생각도 마찬가지인지 도록 두 page 에 걸쳐 사진을 올려 놓았다.

전시장에서는 못 찍게 하고, 도록은 너무 커서 스캐너에 들어가지 않아

디카로 도록을 찍었더니 가운데 부분이 접혔다.

 

사자가 소를 뒤에서 올라 타서 목 줄기를 사정없이 물어 뜯고 있다.

소는 실제보다 작게 표현되었고, 잔뜩 성이 난 사자의 다리에는 힘이 솟구친다.

 

티브이에서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 이야기 틀어 주는 것을 보면

사자가 사냥할 때 자세가 꼭 저런 식이다. 사자가 소를 물어 죽이는 장면을

정말로 본 사람이 만들었음이 틀림 없다.

연대가 기원전 4세기라면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도 같다.

 

 

 

따오기

 

 

 

말기왕조 시대, 기원전 6세기

H 32.2cm(받침대 포함), W 9cm,  D 22.2cm,

 

고대 이집트에서 따오기는 ‘토트’ 신의 신성한 동물인데

토트는 지혜와 서기(書記-Scriber)의 수호신이다.

 

재료는 몸통에 하얀 스투코를 발랐다고 되어 있다.

(스투코를 찾아 보니, 이탈리아 어 stucco : 벽돌이나 목조 건축물 벽에

바르는 미장 재료다. 이렇게 들어도 뭔지 확실히 모르겠다.)

, 꼬리, 다리는 은(銀)이고, 눈은 유리와 다시 그 ‘스투코’로 만들었다.

 

따오기 머리에는 구부러진 숫양 뿔, 갈대다발-다발 위 타원형은 태양,

타조 깃털과 우라에누스 뱀(코브라)를 올려 놓았다.

 

이 따오기가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보기 위해 요즘 중국에서 들여와

우리나라 우포 늪에서 복원한다는 따오기와 비교해 본다.

 

 

 

사진: 우리나라 따오기

 

 

아메넴헤트 3세-흑인(黑人) 파라오

 

 

 

중왕국, 제12왕조, 아메넴헤트 3세, 통치시기 기원전 1843-1797

현무암, H 22.5cm, W 18.9cm,  D 10.5cm,

 

예술성이 좀 떨어진다고?

연대를 보라.

기원전 1843년이면 단군치세로, 기자(箕子)조선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 상에 관심이 갔던 것은 예술성 보다는 두개골 생김새다.

오늘 날 이집트 인들은 함, 셈 계통이니 백인종-코카시안이다.

 

그런데 저 파라오 얼굴은 넙적한 것이 흑인(黑人) 같지 않은가?

조각 솜씨가 너무 고졸(古拙)해서 잘 모르겠는데, 어째 우리 현생인류의 사촌

네안데르탈 인() 같기도 하다면 다음 조각을 보자.

 

 

아메넴헤트 5세-흑인(黑人) 파라오

 

 

 

중왕국, 제13왕조, 아메넴헤트 5세, 통치시기 기원전 1783-1780

이암, H 35cm, W 17.5cm,  D 20cm,

 

다시 한 번 기죽는 것이 저 뛰어난 묘사가 4천년 전 솜씨라는 점이다.

앞서 아메넴헤트 3세의 연대와 별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메넴헤트 5세의 얼굴을 보면 분명히 흑인(黑人) 아닌가?

 

 

고대에 인종(人種)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사람 생김새 가지고 차별하지 않았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중국 모든 왕조의 사서(史書)에는 반드시 외이전(外夷傳)이 붙어 있다.

(그 중 가장 꾸준히 기술해 온 것이 우리나라에 관한 동이전(東夷傳)이다.) 

 

그런데 이 외이전(外夷傳)에는 풍속이나 종족의 역사 등 다른 것은

잘 적어 놓고도, 그 종족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하여는 서술이 없다.

 

다 똑같이 생겼으니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요즈음 한참 말썽 많은 신강성.

그 신강성, 옛날 루란(樓蘭) 이라는 나라의 유적지에서 1980년 미라가 나왔다.

생김새가 백인 여성인데, 백인이라도 중국과 이웃한 아랍 계통이 아니라

놀랍게도 머나먼 서유럽 인종에 가까웠다.

이 미라가 그 유명한 루란의 미녀(樓蘭美女: Loulan Beauti)’ 다.

 

 

 

사진: 루란의 미녀-지금 신강 위그르 자치구 박물관에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미라가 살아 생전 정말 예뻤는지는 알 수 없다.

여자니까 그냥 미녀(Beauti) 라고 한 것뿐이다. 미인과 못 생긴 여자는

피부가 약간 두껍고 얇고의 차이일 뿐이다. 죽어서 미라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이 먹으면 예쁜 O이나 미운 O이나 다 똑같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위그르 인들은 이 루란의 미녀를

자기네 상징처럼 여긴다는데,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골격으로 보아

서유럽 쪽에 가깝지 위그르인 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이 꼭 실재와 부합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 시대 손권은 벽안적염(碧眼赤髥-푸른 눈에 붉은 수염)였다고 한다.

검은 색도 보기에 따라 약간 푸른 기, 붉은 색을 띨 수도 있지만

손권이 실제로 푸른 눈에 붉은 수염 즉 백인이었을 수도 있다.

 

서융(西戎), 견융(犬戎) 훈육으로 이름을 바꾸며 나오던 흉노(匈奴).

그 흉노가 한 무제 때 서쪽으로 쫓겨가서 훈족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유럽인들 기록에 훈족 지도부의 생김새는 찢어진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로

전형적 몽골 인종이다.

 

그런데 흉노 이동 뒤에도 중국 변방에 남아 있던 흉노 지파에 갈족

이라고 있었다. 이 갈족이 심목다수(深目多鬚)라는 기록이 우연찮게 남았다.

 

심목다수(深目多鬚)-눈이 깊고 수염이 많은 것은 백인종의 특색 아닌가?

갈족은 흉노의 지파(支派)니 흉노도 심목다수(深目多鬚) 아니었을까?

 

흉노가 동쪽에서는 심목다수(深目多鬚)였다가 서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찢어진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가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야기가 옆으로 빠져 흉노까지 갔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중국에

백인종 계통 종족들이 뒤섞여 살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럼에도 용모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것은

중국인에게 그 점이 별 중요치 않았기 때문 아닐까?

 

서양에서도 백인이 중심이 되어 문명의 우월성을 지킨다는

인종적 생각은 근대 이후에 싹튼 것이다.

 

1987년 마틴 버널(Martin Bernal)이 “블랙 아테나(Black Athena)”라는 책을 냈다.

 

 

 

사진: 책 블랙 아테나 표지

 

내가 읽진 못했지만 책에는 서양인들이 자기네 문명의 발상지라고 여기는 그리스,

그 그리스 중에서도 가장 중심 되는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이

원래 흑인(黑人)이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건 아직 검증된 이론이 아니지만 신화란 전파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Probability)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사진: 그리스 도기에 나타난 흑인

 

 

이집트에 흑인(黑人) 파라오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음검색
댓글
  • 09.07.20 20:58

    첫댓글 아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사자의 용맹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감사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