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땅 ㅡ3권 2
알렉산더는 금방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의 머리에는 매린의 시
체가 떠올랐다. 남자라도 그런 식으로 고문을 당하면 배겨 낼 장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놈은 보통놈이 아니다.
알렉산더는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크라우스한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협조해 주기는 할겁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겠지. 그것을 모두 들어 주도록 하게, 알렉산더."
"카를로스가 알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꾜
거야. 그는 밀리카가 어렸을 때 딸처럼 귀여워했어."
"그리고 밀리카는 고급 정보를 쥐고 있어. 어떻게든 빼내 와야 돼."
"알겠습니다, 페르난도."
머리를 끄덕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페르난도가 턱을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알렉산더, 밀리카는 지금 임신중이라네."
알렉산더가 멍 한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쳤다.
"비록 애비는 죽었지만 난 그 애와 내 조카를 꼭 살려서 데려오고
싶어,"
"페르난도."
"두 달 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결혼식을 하려고 했었네."
"그런 이야기는 크링거 쪽에 할 필요 없어."
갑자기 굵어진 목소리로 페르난도가 말했으므로 알렉산더는 가늘게
숨을 벨어 내었다.
"조건을 모두 들어 준다고 해. 밀리카를 찾아내면 말이야."
페르난도가 자르듯 말했다.
밀실로 들어선 이호윤은 장규식을 향해 슬책 머리를 끄덕여 보이고
는 앞자리에 앉았다. 사십대 후반의 둥글게 살편 체격이었고, 얼굴도
살집이 붙어서 두 볼이 늘어져 있었다. 그는 유장수의 자금관리를 맡
고 있는 회계사였다.
"웬일이시오? 총지배인넘께서 저를 다 보자고 하시고?"
그가 두꺼운 눈시울을 올리며 물었다.
"지난번에 빼내 온 20억을 다시 입금시켰소?"
장규식이 묻자 그는 눈을 끔뻑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 봐요, 내가 묻고 있지 않아? 그 돈은 어떻게 된거요?"
장규식이 눈을 치켜 뜨고 다그쳐 묻자 그는 입맛을 다시며 의자에
둥을 붙였다.
"사장넘의 말씀대로 처리할 뿐이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사장넘께
물어 보지 그래요?"
"이사장,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장규식이 말을 멈추고 한동안 한히 이호윤을 바라보았다.
"사장넘한데는 말할 입장이 안돼. 그래서 물어 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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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20억이 필요해. 사장은 내가 책임질테니까 그 돈을 빼줘야
겠어."
"지배인, 도대체‥‥‥‥
이호윤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를 한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 려고 이 러는거요?"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야. 더구나
말을 멈춘 장규식이 갑자기 턱을 들고는 길게 습을 내쉬었다.
"이사장, 내가 알기로는 당신이 우리 사장넘의 통장을 백여 개나 가
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 중에서 20억을 때냅시다.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난 못합니다. 책임을 어떻게 진단 말이오? 그렇게 되면 난 죽은 목
숨이오."
"누가 죽이는데?"
입술 끝을 올려 웃으면서 장규식이 물었다.
"내 손을 거쳐야 죽든지 살든지 하는 걸 모르셨나? 집행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란 말이오."
"지배인, 그렇다면."
이호윤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는데 두 눈두덩과볼의 살이 더욱
늘어져 있었다.
"배신하는 것은 아니오,지금 급하게 20억이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
니까. 그리고 만일 거절한다면‥‥‥‥
장규식이 힐끗 문 쪽을 바라보았으므로 엉겹결에 그도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닫혀 있을 뿐이다.
"이사장은 이 방에서 못 나갑니다. "
"지배인, 제발 이러지 마시오. 사장넘께 발각되면."
"글쎄, 발각되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20억이면 사장한테는 용돈이
야. 그 돈에 사람 목숨이 달려 있단 말이다. "
장규식이 마침내 눈을 부릅였다. 그는 상체를 숙여 이호윤에게 얼굴
을 바짝 들이대었다.
"만일에, 만일에 말이야, 이사장. 며칠 내로 사장넘이 교통사고나 심
장마비로 돌아가신다고 칩시다. 그때는 어떻게 되지? 이사장이 몽땅
챙겨 넣을 건가?"
"지배인, 도대체‥‥‥‥
이호윤이 눈을 치켜 줬는데 칠자위가 온통 드러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런 일이 ‥‥‥‥
"사람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소? 그럴 경우를 생각해
보란 발이야."
"그때는 당신이 나와 함께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누가 사장님의
뒤를 잇는다고 생각하지?"
"그거야."
이호윤이 침을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거야 지배인님이시지요."
"그렇지, 내가 이어야지. 부동산 관계는 어절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
도 사채 돌리고 있는 것이나 업소들, 그리고 다른 사업들은‥‥‥‥
"어때?이렇게 탁 털어툴고 이야기했는데 안되겠다고 말할 수는 없
겠지? 이해가 갈텐데, "
"현금이 20억은 채 못됩니다. "
어깨를늘어뜨리며 이호윤이 말했다.
"모두 사채업자들한테 나가 있어서,통장에 있는 것을 한꺼번에 때
면 은행에서 사장님한테 연락이 가도록 되어 있어요. 1억 이상은사장
이 직접 연락을하니까요."
"몇 개 은행이야?"
"신용금고까지 합해서 10여 개 됩니다. "
"그래,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은 얼마야?"
"15억쯤 됩니다. 이것은 사장이 며칠 후에 쓸 제주도 공사장 공사대
금으로 준비해 놓으라는 돈이어서."
"통장에는 얼마가 있고, 사채업자들한테 빌려 준 돈은 얼마"
장규식이 다그쳐 묻자 이호윤이 눈을 여러 번 깜박이면서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이봐, 이사장, 머리 굴리지 마 내가 하나하나 찾아다녀서 확인해
볼테니까 10원이라도 틀리떤 일가족을 몰살시킬테야."
그를 딘아보며 장규식이 이 사이로 말을 뱉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해 봐. 그러면 내가 알아서 한몫 떼어 줄
테니까."
"통장에는 28억좀 됩니다. 그리고 CD가 150억쯤 있는데 그것은 사
장님이 가지고 있고,사채업자들한테 차용증 받고 빌려 준돈이 2백억
쯤 돼요. 증권이 1백억쯤 되고‥‥‥‥
장규식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현금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
만 그가 상상했던 금액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5백억 가까운 현금에다 부동산은 그 열 배가 넘을 것이다.
"CD하고 사채업자 차용증은 모두 사장님이 가지고 있긴"
장규식은 이호윤에게 말을 놓고 있었는데, 이호윤은 그것을 자연스
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 내가 가지고 있을 리가 있습니까? 나는 통장관리와 매일 들어
오는 사채 이자관리나 하고 있어요."
"내가 이사장한레 10억을 주지. 이번 일이 끝나면."
이호윤이 눈을 치켜 뜨고 장규식을 바라보았다.
"지배인, 어떻게 하시려고."
"그건 알 필요 없어. 좌우간 통장에 있는 돈이나 모두 빼 와, 오늘중
으로. "
"지금 시간이 오후 3신데."
"잔소리 말고, 이사장."
장규식이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 스위치를 누르자 곧 밀실 문이 열
렸다. 박기석이 절름거리며 들어쳤다.
"부르셨습니 까?"
"응,너 애들 두어 명 데리고 이사장 따라가서 돈 찾아와라. 나한테
는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박기석이 힐끗 이호윤을 바라보았다.
"이사장이 그릴 리는 없겠지만, 사장님한테 연락을 한다거나 다른
첫 할 때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해 줘라."
"양평동 식구들이 불에 타 죽겠지요."
박기석이 선뜻 말을 받았다.
"지금 영수가 집에 앉아 있습니다. 전화 바꿔 드릴까요?"
이호윤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장규식이 호락호락 자신을 놓아 주리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까지 부하들을보내 인질
로 잡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박기석이 전화기를 들어 이호윤 앞에 소리나게 내려놓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사장, 집에다 전화를 해 보지. 매사는 확인이 중요한거니까.
전화기를 턱으로 가리키며 장규식이 말했다. .
홍성희가 됫자리에 오르자 안진홍이 문을 닫고는 조수석에 들어가
맞았다.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아파트 현관을 출발했다.
"지금 5시인데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죠?"
차가 아파트의 입구를 빠져 나와 큰길로 들어서자 그녀가 앞쪽을 향
해 물었다.
안진흥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차가 막히지 말아야 할텐데."
그는 커다란 머리를 한쪽으로 누였다.
"바쁜 일이 있으십니까?"
"아녜요."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흥성희는 머리를 돌렸다.
반히 바라보는그의 시선이 언짧았고 최대광과의 일로 두 번이나 허탕
을 친 그들의 감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따라오는 것도 보호보다는 감시하려는 의도라는 것도 안다. 유
장수는 용서는 해 주었지만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경솔한 짓을 했던가를 느끼고 있었
다. 유장수는 생각처럼 쉽게 넘어가거나 매장당할 사내가 아니었다. 이
번 일로 홍성희는 유장수의 힘을 새롭게 인식한 셈이 되었다. 한강대
교를 승용차는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경부선 고속도로는 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속도로 가면 두 시간이면 온천에 도착할 수 있
을 것이다.
홍성희는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는 눈을 감았다. 최대광은 이제 자신
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우직스
러움이 우둔하게 보이고 넘치는 힘은 그저 단순한 짐승의 힘처럼 여겨
졌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의 벗은 몸과 언제나흥분이 되었던 정
사의 장면이 연상되어 왔으므로 홍성희는 눈을 였다. 문득 그가 이 세
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그렇게 안된다면
한시라도 빨리 유장수의 손에 잡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장수의 의
심도 사라질 것이고 상반신만 커서 고릴라에게 양복을 입힌 것 같은
이런 놈과 같이 차를 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좌석의 머리받침에 머
리를 기댄 안진홍은 잠이 든 것 같았다.
차 안에는 희미한 엔진 소리만 들려을 뿐 조용했다. 홍성희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온천에서 며칠 휴양을 하면서 유장수에게 멋진 추억을
남겨 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는 차체의 진동에 가법게 흔들리다가 이
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창밖이 곁은 어둠에 싸여 있을 때였
다. 고속도로를 벗어났는지 승용차는 어두운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차
안에는 그녀 혼자만이 남겨져 있는 것을 알았다.
와락 불안감이 치밀어 오른 홍성희는 창 밖으로 머리를 돌려 사내들
을 찾았다
사내들은 길가에 서서 제각기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불똥이 밝아
졌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다. 가끔씩 한두 대의 차량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갈 뿐 주변은 인가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흥성희가 문
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그들이 그녀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안친홍이 땅바닥에 담배를 버리자 불똥이 튀었다.
"들어가 있어요."
계세요가 아니라 있어요였다. 그녀의 직감이 채빠르게 움직였다.
"여기, 어디예요?"
차에 둥을 대고 서서 그녀가 묻자 안진흥이 긴 팔을 휘저으며 다가
왔다.
"말해 줘도 상관없겠군. 여기는 천안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국도요."
그는홍성희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굳어져 있는 그녀의 얼굴을들
여다보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당신과 헤어져야돼.아마 영영 얼굴을 못보게 될
거 야."
"집으로 돌아가요."
안간힘을 써서 흥성희가 겨우 말했다. 말끝이 떨려 나오는 것이 자
신의 귀에도 들렸다.
"그이한테 이야기하겠어요. 당신들 마음대로 이했다가는
"못 알아듣는군. 영리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안진흥이 바짝 다가셨으므로 홍성희는 차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젖혔다.
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구. 알아들었어? 이제 쓸데없는
미 련은 버 리 란 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요."
칠쪽에서 차량의 불빛이 비치더니 이내 요란한 엔진 소리가들려 왔
다. 땅이 울리는 진동음을 내며 트럭 한 대가그들 옆을스치고 지나갔다.
"이봐, 홍성회, 나는 당신을 인계해 주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 잠자
코 있지 않으면 다쳐. "
안진홍은 그녀의 팔을 움켜쥐고는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그에게 잡힌 팔이 저렸으므로 홍성희는 입을 벌렸다.
"자, 들어가. 어서."
"누구한테, 그것만 알려 줘요."
차 안으로 밀려 넣어지면서 그녀가 소리쳤으나 안진홍은 대답하지
않았다.
홍성희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앞쪽의 유리창을 통해 검은 국도를 바
라보았다. 언젠가 유장수가 했던 말이 아까부터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
다. 그는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도 않은 것이다.
탁자 위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 든 유장수는 소파에 않았다.
"여보세요."
"아, 유사장, 나 이성철이오."
5인 위원회의 위원인 이성철의 목소리 였으므로 그는 퍼뜩 눈을 들었다.
"웬일이시오? 갑자기 "
그쪽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내가 전화한 것이 꽤 오래 되었구만. 그만큼 적조하였습니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올시다. "
유장수도 부드럽게 말을 받았으나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그는 교활
하고 잔인한 놈이다. 아마 그쪽도 이쪽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사장, 갑자기 웬일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 좋은 일이라고 하기는 첫하고, 바쁘시지 않으면 만납시다. 부
탁드릴 일도 있고."
유장수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한동안 시계를 바라보던 유장수가 말했다.
"좋습니다, 만납시다. 급한 일이신 것 같은데, 우리 가게에서 만나기
로 하지요."
"그럼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
이성철이 선선히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유장
수는 자리에서 일어셨다.
"전부장, 방에 있는거냐
현관 쪽의 방에 대고 소리치자 전우석이 방문을 열고 나와 그를 바
라보았다.
"지금 가게로 가자.이성철이 나한테 부탁할 말이 있다는데,가게에
서 만나기로 했다. "
"이사장이 말씀입니까?"
그가 덕을 내밀고 물었다.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이제까지 이성철과
유장수는 독대해 본 적이 없다.
이성철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경기도의 관급 공사를 손
아귀에 넣고 주무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대진건설에서 공사를 하
는 것도 아니다. 공사를 따놓고는 다른 건설회사에 하청을 주는 것이
어서 프리미 엄만 떼어먹는 안전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슬금슬금 마약을 들여와서 조직을 통해 뿌리기 시작하
고 있었다. 본래 건설회사의 청부주먹 출신인 이성철이어서 유흥업과
부동산으로 기반을 굳힌 유장수와는 성격 차이가 났지만 노는 물도 다
른 사이였다.
이성철이 5인 위원회에 추천된 것도 막대한 돈을 지역의 보스들에게
뿌렸기 때문이라고 유장수는 믿고 있었다.
"갑자기 웬일일까요? 사장넘. "
부랴부랴 윗도리를 입으면서 전우석이 물었다.
"지배인님한테 연락을 할까요?"
"내버려 둬라,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
그들은 아파트를 나와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는 승용차에 올랐다.
"이사장이 마약이 딸리는모양입니다. 인천에서 선금을 받고는 아직
공급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
차가 움직이자 조수석에 않은 전우석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들었어, "
그렇다고 그런 일로 만나자고 할 이성철은 아니다. 물론 이쪽에 아
직 1킬로그램 정도의 마약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놈은 그것을 짐작하
고 있을지언정 나눠 달라고 할 형편은 안된다. 5인 위원회에서는 마약
유통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위원들끼리라도 그것을 나누자거
나 있다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사장이 김종무를 홍콩으로 내보냈는데 빈손으로 돌아왔다던데요. "
김종무는 이성철의 심복으로 전우석과는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부
하들은 보스의 취향이나 기호에 맞추도록 해야 하고 대인관계도 마찬
가지로 처신해야 한다. 전우석에게는 이성철이 적군의 대장쯤 되었고
김종무는 적군의 부장이었다. 전에는 둘이서 친했더라도 보스들의 사
이가 멀어지면 자연히 그들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장수는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이성철이 마약을 직접 취급하려
고 외국으로 부하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호락호락 직거래를
틀 리가 없다 강일준이 제거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신바람나는 장사
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성철이 요즘 자금이 딸린다더냐?"
유장수가 묻자 전우석이 눈을 끝택이며 그를 마라보았다.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서초동에 지은 오피스텔이 분양이 잘 안된다던데‥‥‥‥
전우석이 잘 모르는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유장수는 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성철은 오십대 후반으로 마른 몸집에 펀은 피부의 사내였다. 두
눈을 찌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제만에는 상대방에
게 위압감을 주려고 하는 모양이었으나 유장수는 그가 만성 배않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장, 이거 밤늦게 만나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
두 눈을 찌푸린 그가 입으로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싫다.
"여긴 언제 와 봐도 장사가 잘되는 것 같습니다. 들어오면서 보니까
시설도 확장하셨던데 ."
일년 전에 확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널책한 밀실에 마
주보고 앉았다. 종업원들이 술과 안주를 날라 탁자 위에 벌여 놓고 나
갈 때까지 그들은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
시션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증업원들의 모습을 좇거나 탁자 위의
안주 접시로 시선을 내리 거나 해서 서로의 시선이 템글템글 돌았다.
"여자는 부르지 않았숨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서, 자, 내가
한 잔 따르지요."
술병을 집어 든 유장수가 말했다.
"이사장하고 이런 자리 하는 것도 처음이지요?"
이성철이 템긋 웃었다.
"다론 위원하고도 마찬가지죠.다섯 명이 모여서 마시는 경우는 제
법 있었지만,어됐든 오늘밤에 우리 둘이 한잔했다는 이야기는 오늘이
가기 전에 다른 세 명의 위원들한테 알려질겝니다. "
유장수는 잠자코 그가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았다. 서로 견제하도록
되어 있는 위원회의 조직이었다. 둘이 친하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세
명이 뭉쳐서 견제하는 상황이 되므로 가급적 둘이 만나는 것도 삼가야
했다. 모두들 사회에 단단히 기반을내린 사업가들이어서 조직 세계에
는 드러나지 않게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권은 결코 양보하
는 법이 없었다.
다섯 위원들의 본거지는 모두 서울이었지만 활동무대는 달랐다. 서
울과 경기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다섯 개 지역을 대표하는 다섯
위원들이었다. 각 지역들은 시나 단위 지역들로 세포가 나누어져 있어
서 세포마다 보스가 지배한다. 그들은 엄격히 자신들의 세력권을 유지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조정하고 때에 따라 규을을 잡는 사람은 지역
의 위원이다.
지금은 경기도 위원인 이성철과 서울 위원인 유장수가 마주앉아 있
는 셈이었다.
"유사장, 우리는 제각기 자기 일만 하다 보니까 서로 털어놓고 이야
기할 시간도 없군요. 참 한심한 노릇이오. 위원 둘만 모이면 작당을 한
다고 의심들을 하니. "
이쳔철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는 유장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를 도와 줄 사람이 누가 있숩니까? 아무래도
같은 위원들이 도와 춰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러는 것이 모양이 좋지요."
유장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가 난데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유사장, 오늘 마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 킬로만 나눠 주시
오. 내가 값은 후하게 쳐서 드리도록 할테니까."
이성철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똑바로 유장수를
바라보았다.
위원회에서 마약 통용을 금지시키고 있는 만큼 그런 이야기를 꺼내
는 것도 금기시되어 왔다. 그런 상황에서 마약을 나눠 달라는 노골적
인 부탁은 이쪽이 그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은근한 위
협이다.
유장수는 번책 덕을 치켜 들고는 이성철을 쓰아보았다. 그도 나름대
로 단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쪽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그거 무슨 등딴지 같은 소리요?마약을 나눠 달라니?내가 마약거
래라도 하고 있단 말이오?"
이성철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날 떠보려고 이리는 것 같은데,그만두시는 게 신상에 이로울거요.
나는 당신한테 약점 잡힐 일이 없으니까."
"유사장, 오해하시는데, 나도 그 거래를 하고 있으니 서로 듐자는 의
미였소."
"거래는 당신 흔자 하는 모양이고, 나는 아니오."
이성철이 입을 꾹 다물고는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까놓고 말씀드리는데, 오늘 오후에 이호윤일 시켜서 돈을 찾아 가
셨더구만. 상업은행 지점장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들었소,"
이제 그 상업은행 지점은 유장수와 거래가 끊기겠지만 그것은 이성
철의 일이 아니었다. 이성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애들 시켜서 이호윤이를 미행시켰던거요. 이호윤이는 제일
은행에 가서도 8억을 더 찾아오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