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꽃에 관한 시모음 12)
간이역 코스모스 /권기식
들을 수 있을런가
풍요로운 웃음소리를
길게 누워 잠든
기차 길옆 간이역
기적소리 멈춘 지 오래
대합실 흐르던 정도
끊긴 지 오래
파란 하늘 아래
연분홍 단아한 자태
바람 한 점에 가는 허리
이리저리
그리움 피워내고
익어가는 물든 그리움
먼지같이 켜켜이 쌓인 그리움
가슴에 넘치는데
휘어지는 그리움 무게 속
웃음꽃 피던 그때가 그립다
기적소리
웃음소리 들린다면
가는허리
휘어진들 어떠하겠는가?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 /김영남
하얀 꽃들이 내 오른쪽을, 빨간 꽃들이 내 왼쪽을
응원한다. 분홍 꽃들은 앞과 뒤를 분홍으로 응원한다.
이들은 바람이 불면 고개를 흔들면서 서로를 응원한다.
응원하다가 이내 바람개비처럼 돈다, 오색으로.
그 부력에 이 지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붕 뜬다.
나는 그걸 뒤에 붙이고 뻗은 길을 한없이 달려본다.
청군인 내가 백군 대표인 '순'이와 손잡고 달려본다.
수평선 끝 푸른 하늘이 구부러진 곳까지 달려본다.
그 끝에서 부력을 떼고 다시 출발선을 뒤돌아보면
할머니, 어머니, 풍선장수, 해남 아저씨, 바지게,
복슬 강아지
고향 운동회 한구석이 박수를 치며 일어선다.
코스모스 /운중 김재덕
갈바람의 산들거림은
연분홍빛 가슴 물들이고
이별의 몸짓에 목이 메
세월을 망각한 나그네의
옷깃을 스친다
찬 서리 내리면
추억을 쓸어 담은 상처는
갈피 속에 켜켜이 쌓이고
새끼손가락 걸며
속삭이던 밀어와
떨리던 심장도
붉은 노을 탄
고추잠자리의 너울춤에
발 도장 찍듯
시선이 머뭇거린다
아
이 아픔 가져가
내가 웃을 수 있게
코스모스 /한천희
당신만 바라보며 살아 왔습니다
한여름 땡볕 타는 듯 한 형벌도
당신에 대한 그리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지요
세상 모두를 쓰러갈 듯 한 거세 비바람도
당신을 향한 사랑 있어 버티었지요.
갈라져 가는 아픔으로 흘러넘치는
물난리도 당신과 만남의 희망이 있어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하늘은 높고 스산한 바람 불어와
향기로 가득 채워진 나의 정원에
고추잠자리 높게 날아 춤출 때
그리움의 멍울은 하얗게
사랑의 여울은 빨갛게
인연의 설래임은 연분홍으로
곱게 화장하고 피어나
가을을 서성이는 나는
오르지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지요
당신만을 사랑 합니다
코스모스 연정 /구분옥
분홍 화관 쓰고
다소곳이 연둣빛
저고리 치마 입고
네가 떠난
그 길목에 서서
기약없는 먼 기다림
돌아 온다는 기별에
소문만 무성하고
해는 서산으로 뉘엇뉘엇
늦가을
된서리 맞을지라도
난 널 기다릴 테야.
코스모스 /김태윤
나를 흔든 것은
바람이 아니라
내 속에서 이는
하얀 분홍 바람이었다
나를 깨운 것은
후두둑 떨어지는 비가 아니라
내 속에서 아프게 돋는
빨갛고 노란 그리움이었다
나를 재우고 꽃 피운 것은
나의 외로운 긴 밤을
내 머리맡에 내려앉아
밤이 새도록 불러주는
달빛과 별빛의 노래였고
나에게 상큼하고
진한 가을 향기를
얹어두고 간 것은
눈물로 손등을 적셔주던
밤이슬의 입술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희고 붉은 것이 아니었듯
내 향기에도 처음부터
나비와 꿀벌이 넘나들진 않았다
누가
그저 흔들리면서
꽃이 핀다 하였는가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다
향기가 나지 않으면
꽃이 아니다며
이름없이 사라질까
나, 피는 것이거늘.
코스모스 /안숙현
아직은 찬바람 불어
쌀쌀한 날
까만 씨앗에 손가락이 찔리는
아픔도 잊고
흙을 파고 너를 뿌렸지
따뜻한 바람 불어 오면서
연초록의 여린 새싹으로
세상 문을 열고 나온 너
너에게
보석같은 이슬을 뿌려 주고
네 삶에 방해가 되는
잡초들을 뽑아 주었지
살랑살랑 바람 불어 오던 날
한들한들 춤을 추며
나비와 잠자리의
친구가 되어
나에게 다가 온
여리고 아름다운 코스모스야
나 좀 꼬옥 안아주렴
코스모스 /박인혜
어린 시절 등교 길
논두렁 밭두렁 코스모스 길
타향에서 고향에서
언제나 내 곁에 코스모스
변함없는
가는 몸매에 꽃잎 달고
가을바람 휘적이는 너는
꽃이기보다
다정한 추억이다
이 가을도
높은 하늘 떠받치고 서서
그 시절
네게 들려주었던 가을 이야기
이제는 돌아와
다시 내게 들려주며
그 빛깔 그 향기로 미소 짓는다
코스모스 들녘에서 /은파 오애숙
너의 갸날픔에
위로 받으며 오늘을
살아가고파라
인생 살다보면
가슴 시리게 휘청대는 날
휘모라칠 때 있다
그때마다 정신 곧춰
쓰러지지 않으려고 널
바라보는 마음
그대 당당함에
매료된 까닭 거센 세파
마주할 수 있어
가슴에 물결치는
희망참의 푸른 꿈 품고
일어서게 됩니다
코스모스 /안광수
하늘을 닮은
너의 모습
가을이면
반겨주는
따뜻한 사랑
방긋 웃는
그 모습
이제는 나의
웃음으로 전할게
보고 싶던 당신
그리움에 나도
꽃이 되리라
코스모스 /김진경
코스모스 속엔
유랑곡마단의 천막과
나팔 소리가 있다
코스모스 속엔
까맣게 높은 천장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는
곡마단의 소녀가 있다
코스모스 속엔
하얀 꽃송이
팽그르르르 맴을 돌며 떨어지는
물 맑은 우물이 있다
검은 물빛을 보며
나도 나팔 소리와 깃발 따라가는
떠돌이이고 싶었다
코스모스 속엔
하얗게 소름 마르는 길이 있다
코스모스 /김진학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태풍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코스모스 길 /일중 임남규
쉬엄쉬엄 가다 보면 꽃 피어 있는 길
한들한들 춤을 추듯 하얗고 빨간색
코스모스 그 길가 가을 미소도 있겠지
그 길에 파묻혀 손끝에 닿는 이파리
그리운 임 손짓하는 길에서
그대 향기 흠뻑 취해 무작정 걷겠다
잠자리 너울너울 날아 심심치 않고
홀가분하게 예쁜 마음 꽃잎으로 포장하고
파란 높은 하늘 꽃 구름 흐르는 그 아래
가을바람에 등 떠밀려 사뿐히 상큼하게 걷겠다
코스모스 용광로 날다. /운봉 김경렬
하늘하늘 연분홍 꽃잎 흔들며 날린다.
발아래 광란의 쇳물 도가니
어떻게 꽃잎되어 날았는가? 어미아비 두고
쇳물을 끓여 보았는가? 말도 마소
땀쩔은 눈물 흘려 보았는가? 숨쉬지 마소
태양을 가슴에 묻었네 어미 아비 눈물 마져
코스모스 연정 /정심 김덕성
늦가을 갈바람은
가슴에 맺힌 순정어린
가녀린 몸매를 살랑살랑 요염하게
흔들며 스쳐간다
해맑게 핀 꽃
빨강, 분홍, 흰색으로 조화되어
한들거리며 춤추는
일류 무용수
신비롭게 순결한 꽃잎
나비와 고추잠자리들과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다가오고
코스모스 꽃잎에서
풍기는 파란 가을 내음이
가슴에 스며들며 연정을 느끼는
신선한 코스모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