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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 방 스크랩 그림그리기 그림에서 발견하는 가족의 모습 -애호가로 가는 길 16
보리1234 추천 0 조회 371 08.10.29 09:2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소재가 무엇이든 ‘사람’이 그려내는 그림에는 ‘삶’이 담기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각양각색이듯, 그림에 비친 삶의 모습도 다양하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접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여자의 삶을 담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아내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삶이 묻어나는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자기 방에 걸 그림을 선택할 때, 나는 그 그림을 통해 아이의 생각을 엿봤다. 아버지이기에 부족했던 딸들과의 대화를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벌충할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출가한 큰딸이 사위와 연애할 때 내가 아끼는 그림을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 집에 왔던 남자친구가 그 그림을 마음에 들어해서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딸아이가 그 남자친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아직 공부를 하는 둘째딸은, 얼마 전 집에 들러 호랑이 두 마리가 꼭 껴안고 있는 안윤모 화백의 <연인>을 달라고 했다. 아직 남자친구는 없지만 연애를 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발견하는 가족의 모습

 

김원숙, <달빛 아래 길>, 석판화, 40 x 60cm, 2003

 

이 판화를 벽에 걸자 아내는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산 모퉁이로 사라진 길은, 그림 속 여자가 꿈꾸던 길이리라. 여자들의 꿈…… 결혼 전 과거의 꿈이라면,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저 길처럼 작아졌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현재의 꿈이라면, 세상에 부대끼느라 꿈은 점점 작아지고 있을 것이다. 아내도 그림 속 길을 바라보며,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꿈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 판화를 보며, 아내의 마음과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내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열 살에 이민을 왔다. 나를 만나 결혼한 후에는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대가족 시집살이를 했다. 김치 담글 줄도 모르고 일가친척 거의 없는 미국땅에서 조촐한 가족들 속에 살아온 아내의 시집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우리집은 어려움이란 어려움은 다 안고 살아가던 이민 초기였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아내의 시집살이를 떠오른다. 알콩달콩 오순도순 살고 싶었던 꿈을 버리고 맏며느리로서 버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던 그 시절 아내의 모습이 떠올린다. 그러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김원숙 화백은, 여자의 삶 특히 내면의 외로움과 슬픔을 자주 표현한다. 이 작품처럼 한 화폭을 둘로 나눠 이야기를 연결할 때도 있고, 두 개의 독립된 화폭에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할 때도 있다. 김 화백의 이야기에는 은유가 있다. 나는 이 은유가 김 화백 작품의 독특함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김 화백이 은유적인 작품을 즐겨 그리는 것은, 그림이 화가 자신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성에도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 혹은 주변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듯 화폭에 옮긴 후, 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있느냐?”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의 전시회에서는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애호가가 많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일기 형식과 같은 숨김없는 고백체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그림을 본다는 것에 앞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했다. 영국의 미술평론가 휘트니 채드윅 역시 “김원숙의 그림은, 프랑스 표현을 빌려 ‘그려진 시’라고 할 수 있고, 그림 속의 뜻을 각자의 가슴속에 새롭게 그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고 평했다.

 

결혼한 딸에게, 외로운 막내아들에게

 

 

황규백, <잔디 위에서>, 동판화(메조틴트), 33×27cm, 1977.

 

이 판화는 큰딸이 결혼하면서 갖고 갔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집에 어울릴 것 같아 선선히 내줬다.

잔디밭 멀리 ‘꿈의 궁전’이 보인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았을 풍경이다. 잔디밭 위 보자기에는 나침반처럼 방향표시가 있고 열쇠와 장미도 있다. 꿈의 궁전에 도착하기 위한 준비물이다. 닌텐도게임의 마리오처럼 나침반과 장미를 도구 삼아 역경과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도 다시 올라와야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도 용기를 잃지 않고 싸워야 한다. 그래야 열쇠로 ‘꿈의 궁전’의 문을 열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이 작품을 두 점 구했다. 처음 구한 작품은, 나이 서른다섯의 동네 총각이 서울에 선보러 갈 때 선물했다. 워낙 숫기가 없어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프러포즈할 자신이 없으면 이 그림을 건네라고 했다. 그는 그림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이 그림의 뜻을 알까요?” 나는 만약 이 그림을 선물하는 의미를 모르는 여자라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한 달 후, 그가 돌아와 프러포즈할 여인을 만나지 못했다며 그림을 돌려줬지만, 다음 기회에 사용하라며 받지 않았다. 그는 얼마 후 동네를 떠나, 이 그림이 프러포즈에 제 역할을 했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

 

황규백 화백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다 몇 년 전에 귀국했다. 1968년 파리로 가서 동판화를 배웠고, 1970년 뉴욕으로 갔다. 그는 뉴욕에서 무엇을 그려야 ‘화가들의 무덤’ 속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잔디에 누워 잠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의 낮잠에 당연히 땀이 났고, 그는 땀을 닦으려고 손수건을 꺼내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빛에 그는 전율을 느꼈다. 푸른 하늘이 아니라 하얀 하늘, 빛이 쏟아지는 하늘이었다. 아니, 그 빛은 햇빛이 아니라, 그의 일생을 결정짓는 ‘영감의 빛’이었다.

 

작업실에 돌아온 그는 잔디밭 위에서 하늘에 못질을 해서 손수건을 걸었다. <잔디 위의 흰 손수건>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잔디밭을 운동장처럼 사용했다. 고향이 그리우면 코스모스를 심고, 음악이 듣고 싶으면 바이올린을 그리고, 골프를 치고 싶으면 골프채를 그리고, 담배를 피고 싶으면 성냥을 그리고, 잠을 자고 싶으면 베개를 그렸다. 마이애미 판화비엔날레 1등상, 영국 국제판화비엔날레 화이트로즈 갤러리상, 이탈리아 플로렌스 판화비엔날레 금상이 그의 품에 안겼다.

 

 

이만익, <초동>, 목판화, 42 x 56cm, 1996

 

오래전에 구한 이만익 화백의 <초동>을 보며 나는 막내인 아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누나들 틈에서 외롭지 않은지 생각했다. 아이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자기 방에 걸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실에 걸어놓고 엄마와 함께 그림 속 아이가 바로 너라고 생각하며 보겠다고 했다. 아이는 얼마 전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났고, 우리 부부는 이 그림을 보며 그를 생각한다.

 

이만익 화백은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가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그렸다. 이 그림처럼 남자아이 혼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부모 혹은 엄마와 함께 있다. 아이가 하나인 그림도 있고, 둘이나 셋일 때도 있다. 아이 없이 부부만 있는 그림도 그렸다.

 

나는 이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유화는 작품값이 만만치 않아 판화를 주로 모았다. 그의 그림은 다정다감하다. 그는 1980년부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멋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단군신화의 웅녀, 고구려신화의 주몽․해모수․유화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모습과 보편적 심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낯설지가 않다. 인물의 모습과 표정도 한결같이 온화하고 부드럽다. <초동>에 있는 아이도 그렇다. 나는 바로 이런 온화한 모습과 심성이 우리 민족의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영원한 한국인

 

 

박민자, <등잔>, 조합토에 소금, 15 x 18 x 25cm, 2006

 

집 안에 불을 켤 수 있게 만들었으니 등잔이고, 집 옆에 향이나 나뭇가지를 꽂을 수 있게 했으니 향꽂이이자 화병이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나라 도예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느낀다.

 

박민자 작가는 기와집이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기억”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한국에 사는 이에게도 기와집이 그리움과 향수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기와집은 살아본 사람만이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꼬불꼬불 뱀마냥 돌아들어가던 골목길, 햇빛에 따라 시시때때 변하는 기와 색깔, 가을이면 그 지붕 위에서 빨갛게 익어가던 고추와 노랗게 여물던 박, 밤새 내린 눈을 하얗게 이고 똑똑 낙숫물 떨어뜨려 아침을 깨우던…… 이 모든 것이 기와집이다.

 

서울에 들어가면 북촌에 간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면서 버선코마냥 부드럽게 이어진 기와집 지붕을 잠시 바라본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산지사방 아파트로 빽빽이 들어찼다. 골목길 굽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유년의 이야기가 하나씩 떠오르는 서울의 풍경은 이제 우리 가슴속에만 있다. 서울이 점점 낭만과 이야기가 없는 도시로 변하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깝다.

 

작품은 내가 두 번째 인연을 맺은 박민자 작가의 작품이다. 첫 번째는 등잔만 있는 기와집이었다. 사촌여동생 집에 갔는데 기와집이 보였다. 동생이 기와집에 불을 밝히자 창호지는 온통 모괏빛으로 변했다. 그것은 고향의 색이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경기도 명달리 통방산에 있는 박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명달리는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산촌이다.  

서울에서 명달리 가는 길은 아름답다. 가는 길에 운길산 수종사에 들러 ‘삼정헌’이라 이름 붙은 다실에서 차공양을 받으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아스라한 풍경을 바라본다. 농담을 달리한 화야산, 고동산, 멀리 용문산의 중첩된 능선이 한 폭의 수묵화다. 수종사 삼정헌의 차맛이 좋은 것은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 때문이다. 차맛은 석간수로 다렸을 때가 일품이고, 그래서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이곳에서 차모임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수종사에서 내려와 북한강 길을 20여 분 달리면 명달리에 닿는다. 박민자 작가는 작업실을 지금은 양평읍내 신애리라는 곳으로 옮겼지만, 2007년 가을까지는 통방산에서 남편 이동욱 작가와 함께 흙을 구웠다. 부부는 어느 정도 애호가층이 형성되어 있는 전통 도자기가 아니라 생활자기 작업을 고집하면서 독창성을 추구해 왔다.

 

나는 박 작가의 작업실과 가마를 둘러보며, 도자기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도공’으로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부는 도자기에 미쳐 힘든 줄도 모르며 가마에 불을 땠고, 2003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흙을 만지고 구운 지 15년 만의 경실이었다. 다음해인 2004년에 수상기념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사촌여동생이 박 작가의 작품과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동생은 박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그림이나 도자기는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림을 맡겨놓아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동네 이야기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박 작가의 전시회에서 ‘이런 도자기도 있구나’ 싶어 소품을 한 점 산 게 인연이 되어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했다. 박 작가의 작품과 동생의 취향이 맞아떨어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연이다.

 

동생 덕분에 나도 명달리를 드나들며 꾸준히 모았다. 깨질까 봐 수하물로 부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기내로 들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운반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조심스럽게 풀어놓으면 가족들이 모두 좋다며 탄성을 질렀다. 특히 딸아이들이 좋아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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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1.29 17:42

    첫댓글 그림과..가족....듣고있어도..좋은 단어예요....

  • 09.05.14 14:46

    (식구 )밥을 함께먹는사람과 사랑의 결정작용 . 예술 작품으로 정서을 나눔과 생각을 불러 일어키는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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