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하워드 브렛(1953년 5월 15일생)은 은퇴한 미국 야구 3루수로
캔자스시티에서 21년간 메이저리그(MLB)에서 뛰었다.
브렛의 통산 3154 안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3루수 중 가장 많으며 역대 16번째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0안타, 300홈런, 그리고 통산 300타율(한크 아론, 윌리 메이스, 스탠 머시리얼)을
모은 4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1999년 첫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30년 만에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다.
브렛은 2013년 5월 30일 로얄스 임시타격 코치로 임명됐지만 7월 25일 야구부 부사장 직을 재개하기 위해 사퇴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 중의 한 사람이자 한 팀에서만 뛰면서 3000안타를 기록한 10명의 선수중 하나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1970~80년대 로열스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
[초기]
웨스트버 Virginia주 글렌 데일에서 태어난 브렛은 19세의 나이로 1967년 월드 시리즈에서 투구한
두 번째 메이저리그 투수 켄을 포함한 스포츠 마인드를 가진 가족의 네 아들 중 막내였다.
존과 바비는 마이너리그에서 짧은 경력을 쌓았다. 비록 그의 세 형들이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지만,
조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북쪽 팬핸들에서 태어났다.
잭과 에델 브렛은 가족들을 중서부로 옮기고 3년 후 로스엔젤레스 국제 공항의 바로 남쪽에 있는
로스엔젤레스 교외의 엘 세군도로 옮겼다. 조지는 그의 세 형제의 뒤를 따르기를 바라면서 자랐다.
그는 1971년 엘 세군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71년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29위)에서 캔자스시티 로얄스에 의해 선발되었다.
그는 투수 스콧 맥그리거와 고등학교 팀 동료였다.그는 중서부로 이사했을 때 캔자스 주 미션 힐스에 살았다.
[마이너리그]
브렛은 유격수로 프로 야구 경력을 쌓기 시작했지만, 오른쪽 수비에는 어려움을 겪었고, 곧 3루로 옮겨갔다.
3루수로서 그의 힘있는 팔은 자산으로 남아있었고, 그는 15년 이상 그 자리에 머물렀다.
브렛의 마이너리그 역은 1971년 신인급 파이오니어리그 빌링스 머스탱,
1972년 A급 캘리포니아리그 산 호세 비즈, 1973년 AAA 아메리칸리그 오마하 로얄스 등이었다
[캔자스시티 로얄스 1973-1993년]
1973년 8월 2일 13경기에 출전해 20세 때 40대 5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브렛은 1974년에 선발 3루수에서 우승했지만, 플레이트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로얄스의 타 코치인 찰리 라우에게 도움을 청했다.
올스타전에서의 휴식을 함께 하면서, 라우는 브렛에게 어떻게 모든 플레이를 보호하고,
빅 리그 투수들이 이용하는 것을 경험한 그의 스윙의 구멍을 막는 법을 가르쳤다.
이 지식으로 무장한 브렛은 타자로서 빠르게 성장했고 113경기에서 282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1975-1979년
브렛은 1975년에 처음으로 .300점을 돌파하여 308점을 기록했고 안타와 3루타로 리그를 이끌었다.
그는 1976년 3할 3푼 3리로 그의 첫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다. 그해 타격왕에 오른 네 명의 경쟁자는
브렛과 로얄스팀 동료 할 맥레이, 미네소타 트윈스 팀 동료 로드 캐럿과 리먼 보스토크였다.
극적으로, 브렛은 트윈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그의 세 경쟁자를 모두 같은 경기에서 이겼다.
2위를 차지한 맥레이를 누르고 그의 선두는 0.001보다 적었다.
브렛은 트윈스의 좌익수 스티브 브라이언 앞에 플라이 볼을 떨어뜨리고, 로얄스 스타디움 아스트로터프에게 튕기고,
브라이언의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브렛은 공원 내 홈런으로 베이스를 돌았다.
맥레이는 연장전에서 브렛을 바로 뒤진 채 땅볼로 물러났고 브렛은 그의 첫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다.
1976년 5월 8일부터 5월 13일까지 브렛은 6경기 연속 3안타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기록이다.
한 달 후,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출연하여 13개의 올스타 팀 중 첫 번째 팀이 되었다.
로얄스는 3회 연속 아메리칸 리그 웨스트 디비전 타이틀 중 첫 우승을 차지하며 뉴욕 양키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뉴욕 양키스는 3년 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맞붙게 되었다. 1976년 ALCS의 5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에서
브렛은 8회초 3점 홈런을 쳐서 6점을 득점했다. 단지 양키스의 크리스 챔블리스가 9회말에 솔로 홈런을 쳐서
양키스가 7 대 6으로 승리하는 것을 보는 것 뿐이다
1년 후, 브렛은 로얄스가 또 다른 ALCS로 향하면서 22개의 홈런을 치면서 강타자로 부상했다.
1977년 ALCS 5차전에서 3타점을 기록한 브렛은 그렉 넷틀스와 말다툼을 벌이며 벤치 클리어링 싸움을 일으켰다.
1978년, 브렛은 로얄스가 3연속 AL 웨스트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면서 타율 0.294(최소한 타율 0.300)를 기록했다.
하지만 캔자스시티가 ALCS에서 다시 한번 양키스에 패했지만, 브렛이 3차전에서 메기 헌터를 상대로 세 개의 홈런을 치기 전에,
LCS 경기에서 세 번째 홈런을 친 선수가 되었다. (보 로버트슨은 1971년 NLCS 2차전에서 세 번째 홈런을 친 선수였다.)
브렛은 그 뒤를 이어 1979년에 AL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 동안 20개 이상의 2루타, 3루타, 홈런을 기록한 6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3할 2푼 2리를 기록했고, 3할 2푼 9리를 기록했으며 , 3할 2푼 9리의 타율과 3푼 3리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1980년
이 모든 인상적인 통계는 1980년의 서곡일 뿐인데, 그 당시 브렛은 아메리칸 리그 MVP에서 우승했고
3루수 현대 기록인 3할 9푼 9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브렛의 타율은 9월 19일 기준으로 시즌 말에 0.400 이상이었고,
국가는 그의 시즌 전체에 대한 추구를 면밀히 따랐는데, 이것은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 달성되지 못한 업적이다.
브렛의 1980년 타율은 3할9푼으로 토니 그윈의 1994년 평균 타율 .394(그윈은 110경기에 출전했고
파업이 줄어든 시즌에 419타수)에 이어 1941년 이후 가장 높은 싱글 타율이다. 브렛도 117경기에 출전해 118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장타율과 출루율 모두에서 아메리칸 리그를 이끌었다.
브렛은 4월에 259초만을 기록하면서 천천히 출발했다. 5월에 그는 3할 2푼 9리를 기록하며 그의 시즌 평균은 301이 되었다.
지난 6월 27세의 3루수 .272(17-36)는 타율 0.337로 올라갔지만 6월 10일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7월 10일 올스타전 이후 복귀하지 못했다.
한 달 동안 쉬는 7월 21경기에 출전해 타율 0.494(42-85)를 기록해 시즌 평균 타율도 0.390으로 끌어올렸다.
브렛은 18일 30경기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19일(다음 날 밤 3타수 3안타) 0-3을 기록했다. 이 30경기 동안 브렛은 0.467을 쳤다.
그의 시즌 최고 성적은, 화요일 밤 밀워키에서 5타수 5안타를 친 이후, 8월 26일, 브렛의 타율은 0.407이었다.
그는 8월 30일 동안 타율 0.430을 기록했고 시즌 평균은 5주 남은 0.403이었다. 1980년 6월, 7월, 8월 세 달 동안,
조지 브렛은 60개의 아메리칸 리그 경기에서 뛰었고, 대부분이 한 달간의 부상에서 돌아온 후 0.459를 기록했다.
이 60경기 동안 그는 69타점과 14개의 홈런을 쳤다.
브렛은 9월 초에 또 다른 10일을 놓쳤고 그 달 동안 겨우 0.290을 기록했다. 그의 평균은 9월 19일까지 400으로 늦었지만
27개의 슬럼프에 대해 4를 기록했고, 9월 27일에는 평균이 384로 떨어졌고, 경기할 때는 일주일이었다.
마지막 주에 브렛은 10월 4일 열린 정규시즌 결승전에서 4타수 2안타를 포함해 10타수 19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평균 타율은 0.390(449타수 175안타=389755)으로 경기당 평균 타점을 1타점 이상 기록했다.
브렛은 MVP 경주의 예상 1위 투표 28표 중 17표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출루율(4.44), 장타율(0.6664)으로 리그를 이끌었다.
알 시몬스도 1931년 필라델피아 육상경기에서 0.390의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1931년 이후 가장 높은 평균치는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토니 그윈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로얄즈가 아메리칸 리그 웨스트를 이겼고, ALCS에서 동부 챔피언 양키스와 맞붙게 된다는 것이다
1985년에 브렛은 또 다른 멋진 시즌을 보냈고 그는 로얄스를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으로 끌어올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타율 0.335에 30홈런, 112타점을 기록하며 10개 공격 부문에서 리그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방어적으로, 그는 그의 유일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그것은 버디 벨의 6년 연속 우승을 깨뜨렸다.
정규시즌 마지막 주에 그는 6경기에서 7실점 5홈런 9타점을 기록하며 9-20타로 경기를 마쳤다.
그는 토론토 블루 제이스와의 1985년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였으며, 놀라운 3차전을 치렀다.
KC가 2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4타수 4안타, 도일 알렉산더를 상대로 첫 두 타석에서 동점 을 터뜨리며
3타수 우익수로 돌아선 것도 로얄스의 복귀를 이끌었다. 그리고 나서 브렛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에서 4안타를 날리는 등 0.370의 타율을 기록했다.
로얄스는 다시 3 대 1의 적자에서 회복하여 로얄스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다.
1986-1993년
1988년 브렛은 부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1루로 옮겼고,
평균 타율 306, 24홈런, 104타점으로 또 한 차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내년에 16홈런으로 0.290타를 친 뒤,
그의 경력은 둔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1990년에 형편없는 출발을 했고 어느 순간에는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매니저인 전 팀 동료 존 와단은 그에게 그것을 드러내도록 격려했다. 마침내, 7월에 슬럼프는 끝났고
브렛은 나머지 시즌 동안 386의 타율을 기록했다. 9월에 그는 리그 선두로 리키 헨더슨을 잡았고
시즌 마지막 날까지 계속하여 3번째 타율을 기록했다.
이 업적은 브렛이 30년 동안 타 타이틀을 거머쥔 유일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
브렛은 주로 지명타자로 3시즌을 더 뛰었지만 가끔 1루에서 부상당한 팀원들을 대신했다.
그는 1992년에 3,000안타를 돌파했지만,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기지에서 물러난 후, 엔젤 1루수 게리 가에티에게 발탁되었다.
브렛은 1993년 시즌 이후 은퇴했다. 그의 마지막 타석에서, 그는 레인저스의 마무리 투수 톰 헨케를 상대로
중간 안타를 치고 현재 팀 동료 가에티에게 홈런을 쳤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알링턴 경기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은퇴 후 활동]
2009년 2월 브렛 그의 선수 생활 이후, 브렛은 로얄즈의 부사장이 되었고 파트타임 코치로, 봄 훈련에서 특별 강사로,
임시 타격 코치로, 그리고 전망 개발을 돕기 위해 파견된 마이너리그 강사로 일했다.
그는 또한 야구 장비와 폼핸드 회사인 브렛 브라스를 바비, 켄 브렛과 함께 경영하고 있다.
그는 또한 Country Club Plaza에서 실패한 레스토랑에 그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1992년 브렛은 전 레슬리 데이븐포트(Leslie Davenport)와 결혼했고,
그들은 캔자스 주 미션 힐스의 캔자스 시 교외에 살고 있다. 이 부부는 잭슨(조지오의 아버지 이름),
딜런(밥 딜런), 로빈(밀워키 브루어스)의 동료 명예의 전당 이름을 딴 로빈 윤트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브렛은 흔히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대한 돈을 계속 모금해왔다.
브렛은 1980년대 중반 그의 선수 생활 동안 키스 워싱턴 지부의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와 그의 개 찰리는 PETA 광고 캠페인에 출연하여 사람들이 더운 날씨에
그들의 개 친구들을 차에 남겨두지 않도록 격려했다.
그는 201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마이크 나폴리에게 시구를 했다.
2013년 5월 30일, 로얄스는 브렛과 페드로 그리폴이 이 기구의 타격 코치로 활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얄스는 2013년 7월 25일(이하 핀 타르 사건 30주년 기념일)에 브렛이 야구운영부 부사장을 맡게 된다고 발표했다.
브렛은 2018년 3월 28일, ABC 시트콤 모던 패밀리에 함께 출연했으며,
캔자스 시티 토박이이자 로얄스의 팬인 에릭 스톤스트릿과 함께 출연했다
[송진 Pine Tar사건]
1983년 7월 2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다.
9회초 로열스 공격에서 조지 브렛은 양키스 투수 구스 고시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쳐서 경기가 5-4 로 역전이 됐다.
브렛이 베이스를 돌고 난 이후, 양키스 감독 빌리 마틴이 덕아웃에서 걸어나와 심판에게
브렛의 배트에 규정 이상으로 많은 타르가 묻혀져 있다고 항의하였다.
야구 규정상 배트 밑에서 18인치까지는 타르를 발라도 되지만 그 이상 바르는 것은 규정위반이었고,
브렛의 배트에는 24인치 정도의 길이로 타르가 발라져 있었다.
시즌 초부터 양키스는 브렛이 타르를 규정 길이를 넘어서 배트 위쪽까지 타르를 바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팀]
캔자스시티 로얄스(1973-1993년)
[경력 하이라이트 및 수상]
13번의 올스타(1976–1988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1985)
AL MVP(1980)
ALCS MVP(1985)
골드 글러브 상(1985)
3번의 실버 슬러거 상(1980년, 1985년, 1988년)
3번의 IMT2000 3GPP AL 타율 왕
캔자스 시티 로얄스 5번 은퇴
캔자스 시티 로얄스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