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정년을 만 60세까지로 연장한다고 한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지켜지느냐가 문제이다. 만 55세가 정년일 때도 정년을 다 채워 퇴직하는 예는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제도적인 틀로 정해 놓는 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뜻에서 환영할 일이다.
최근 들어 노사 협상을 통해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여전히 만 55세가 정년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2016년에 55세가 되는 나이는 1961년생이다. 그러니까 1961년생부터 정년 연장 혜택을 보게 된다는 얘기이다.
1961년생은 어지간히 운이 좋다. 내 막내아우가 바로 이 나이. 이 녀석은 1961년생 중에서도 눈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지듯 억세게 운이 좋다. 대학원 졸업 무렵 마침 석사장교 제도(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아들들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그건 뭐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있었던 제도)가 있어서 군 복무도 6개월 만에 소위로 제대했다.
제대 얼마 후엔 일본에 갔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물가가 비싸다. 그러므로 실력만으로 유학하기는 벅차다. 교수에게 잘 보여 추천서도 받았으나 이 때문에 집안에서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제법 살 만한 데다가 약사인 제수 덕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동경대에서 박사 학위 받고 돌아와서는 카이스트 연구 단지에서 잠시 일하고 있었다. 얼마 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다. 소위 문민정부는, 국립대학교 교수 임용 원칙을 몇 가지 정했다. 다른 대학교 출신으로 연구 실적이 많은 젊은 교수를 우선으로 쓰라는 것. 동경대와 비교해 한국의 대학을, 카이스트와 비교해 다른 연구 기관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막내가 다닌 곳은 연구를 강조하는 곳이었기에 실적이 쌓일 수 있었고, 이 덕에 교수 자리를 이 녀석이 얻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승승장구. 전임,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40대 초중반쯤에 이미 정교수가 됐다. 실력은 모르겠지만, 그 학교에서는 막내 녀석이 공부한 분야의 전공 교수가 없었던 덕이 컸던 듯하다.
막내처럼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바로 밑 동생도 운이 따랐다. 1958년생인데, 이 녀석 때부터 고교 무시험제가 도입됐다. 이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 씨 때문에 만들었다는데, 이것 역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아무튼, 명문 고교에 진학하기 위해 죽으라 기를 쓰지 않아도 됐던 것.
이렇게 보면 가장 운이 없는 나이가 서울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중학교 시험 보고 들어간 1955년생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재수를 한 54년생도 있고, 삼수(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한 번씩 재수)한 53년생도 있다. 반면, 3월까지 끊어 입학시켰으니 56년생도 있다. 실제로 영락고 17회 우리 동기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난다. 거의 55년생이지만, 56년생이 네댓 명, 54년생도 네댓 명, 53년생이 두서너 명, 52년생도 한두 명쯤 있었던 것 같다. 뭐 재수나 삼수를 하지 않았어도 예전 시골에는 호적신고를 늦게 해 제때 학교 보내지 않은 예도 많다. 사실, 백일잔치라는 것도 그걸 못 채우고 죽는 예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 지나서도 마마(천연두)나 홍역 따위를 앓다가 죽는 예가 적지 않아 출생신고를 미루었다는 얘기, 그거 거짓이 아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운이 70%이고 재주나 능력은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운명론에 기대는 것은 아니지만, 내 동생에 비추어 보면 마냥 부정할 수만도 없는 셈. 그런데 그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제가 잘나서라고 대부분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운이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그것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을 얘기가 아니다. 내 운이 다했을 때 남의 운을 빌려서라도 견뎌야 하지 않을까. 운이 좋을 때 나누지도 않으면서, 운이 나쁠 때 나눠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첫댓글 그러고보니, 저와 우리 23기들이 61년생입니다...^^
어정쩡한 나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일도있습니다...
61년, 소띠생 홧팅~~~
만취에 뒤늦게 술독이 퍼지는 데다가 비까지 내려 어제 종일 멍했었네.그러느라 전화 못 받고...나중 답 전화와 메시지 보냈는데 이번엔 그대가 무반응.아무튼 타이밍이 서로 어긋났었나 보네.자정 무렵에야 취기가 가셔 이 글 올렸었네.시간 나면 서정주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읽어 보기 권하네.
네, 선배님!
잘 알겠습니다.
선배님과의 만남은 즐거운시간이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실력발휘해주신 두루치기를 못먹어서 아쉽습니다...^*^
글을 읽어보고 살면서 나의 운은 몇 % 정도였나..잠시 생각해보니... 음.. ..운은 별로 였던것 같은데...ㅎㅎ
이제부터 한꺼번에 몰려올지 모르네. 감당 못할 정도면 내게도 좀 떼어 주게.
아이코오 현택 님, 나 앞으로 그대에게 잘 보일 터이니 제발 비빌 언덕이 되어 주구려. 막내동생 녀석도 못 만나는 마당에 그대가 그 방석 홑겹이라도 벗겨 가끔 내어 주면 기꺼이 빨래해 돌려 드리리다.
현택 님,이제 그대가 할 일은 이런 것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네.
사람과 사건과 사물을 잘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과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볼 줄 아는 혜안.
혼자 어려우면 옆에 그런 사람을 잘 둬야 하는데,그런 사람 선택에도 통찰과 혜안이 필요할 테니...쩝!
치어를 양식하는 곳.눈에 확 들어오네.양식장에서도 낚시할 수 있나 몰라.고기야 물든 말든 인생 낚고, 세월 낚고, 예술도 낚으면서,함께 낚싯대가 되어줄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고...
그러게, 이럴 줄 알았으면 기를 쓰고 현택 님과 친하게 지낼 것을...뭐 친하다고 무조건 될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있는 준비라도 해뒀을 텐데, 기회라도 얻었을 텐데 ^-^...! 하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지요.그를 봐서라도 할 말 못하고 참아야 하고, 그를 봐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소홀히하는 예가 많고, 아는 사람이라고 더 이익을 추구하는 예도 적지 않고...선후배가 아니라 친형제라도 일은 냉정하게 판단해야지요.
한창 어려울 때 백화점 30년 역사를 집필한 적 있지요.나중 알았지만,그때 후배가 경쟁사 집필자로 참여했는데,소속 회사 수주 실패로 일을 못하게 되자 내게 보조 집필이라도 맡겨 달라더이다.말이 보조지 일 추진 과정에서 부딪힐 것 같아 거절했죠.대신 다른 일 걸리면 반드시 그에게 주겠다 약속했는데,5년 후에야 그 약속 지켰죠.근데 결과가 나빴죠.그가 사고치는 바람에 다른 집필자를 선정,고료가 2배 나갔거든요.애초에 그럴 것 같아 그와 함께 일하기를 거부한 건데,처지가 안타까워 다음 일 반드시 주겠다 약속하는 바람에 그 약속 지켰더니 결국...믿을 만한 사람 찾기도 쉽지 않지만,친분과 일 구분해 그걸 고수하긴 더욱 어렵죠.
이크! 현택 님, 댓글을 다 지웠군요. 그 바람에 그대의 댓글에 내가 다시 댓글을 단 것이 무엇 때문이지를 알기 어렵게 되고 말았네. 내 댓글도 지워야 하나? 일단 바쁜 작업부터 먼저 하고 나중 다시 검토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