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국립현충원 월남참전자 묘역
월남전선에서 68년 구정공세가 터진 그때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비상시국이었다.
북한 124군 특수부대 김신조 일당 30여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대통령을 어떻게 하겠다고 만행을 저지른 사건, 이른바 1.21사태가 바로 설날 열흘전에 발생한 것이다.
북한 특수군이 청와대 바로 옆 까지 기습해 일반인 탑승 버스를 공격하고 출동한 경찰관들을 사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36개월로 연장되고 예비군이 설치되는 등 큰 변화를 초래했다.
국내사정이 이렇게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이국땅 월남전선에서도 큰 회오리가 몰아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전편에서 다루었듯 베트남전 사상 가장 치열했던 68년 구정공세는 우리들에게 많은상처를 안겨주었다. 전투에 직접 나선 우리뿐아니라 그 가족들의 슬픔은 어찌 말로 다 할수 있으리요.
20대 초반 젊고 꽃다운 나이에 할 일을 많이 남겨놓고 그날 밤 머나먼 천국으로 떠나간 분들이 어찌 한둘이리요.
부대는 구정공세를 치룬 다음날, 그러니까 설날아침 어제밤 장렬하게 전사한 김병장의 시신을 거두어 중대본부 옆 빈터에 텐트를 치고 그안에 모셔 전우들과 작별인사를 하도록 했다.
그래도 낮에는 전우들이 번갈아 찾아와 조문하느라 몰랐지만 저녁이 되고 어둠이 짙어지니 우리와 생을 달리한 김병장이 너무 외로울것 같았다.
연락병인 난 그 시신을 지키는 보초를 서며 그가 외롭지않도록 맥주 한 깡을 갖고 얼굴을 덮은 흰 가운을 벗기고 가지런히 모신 한 쪽 손에 맥주깡통을 쥐어주었다. 쥐어 주고 또 쥐어 줘도 잡지를 못하고 자꾸 흘려버린다.
성경시편 말씀에는 산자와 죽은 자 사이는 한걸음이라 표현 했지만 그 순간 산 자와 죽은 자는 맥주깡통을 제 손으로 쥘 수 있는냐 쥘 수 없느냐는 차이밖에 없었던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산자의 행동이고 어떤 것이 죽은 자의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땐 모든 생각이 마비되고 살아서 장렬하게 전사한 전우의 시신을 지키고 있는 내 자신이 그저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었다.
내 동료 김병장은 20대 꽃다운 청춘을 던져 이역만리 우방국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쳤는데 나는 살아 있다는 자체가......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그 당시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흔쾌히 응해 이렇게 이국땅에서 피 흘려 싸우는데 나중에 우리가 어떤 대접을 받을까 이런 것은 전혀 생각 할 수도 없었다.
이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도 많은분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남은분들도 대부분 70대 이상이고 80을 넘어선 분들도 많다. 그들중 상당수는 고엽제 후유증과 전상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이름은 번듯하게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나라에서 약간의 보상을 받고 있지만 대다수가 말만 유공자지 실제론 큰 혜택없이 어려운 처지에서 고생하고있는 실정이다.
참전명예수당이란 명칭으로 2022년 현재 한달에 35만원을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 작년에 34만원 주다가 금년들어 애들 껌값 보태듯 1만원 더 언져 주었다. 그리고 거주하는 지자체에서 천차만별로 조금씩 보조해 준다.
그래봐야 현역병인 병장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첫째 둘째 후보가 당선되면 군인봉급을 대폭 올려준다고 공약한 것을 듣고 있노라면 진짜 자존심 상한다.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 우방국들은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다고 듣고 있다. 한달에 우리 돈으로 200만원 이상 대우하고 사회적인 예우도 대단하다고 한다. 자녀들이 손주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뻐길만 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력이 어떻고 경제력은 세계 10대 강국이라 떠들면서도 보훈 인식과 예우는 중진국만도 못한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참전군인에 대한 특별법제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들리지만 언제 어떤 내용으로 될지는 미지수다. 더 늦기전에 적절한 대책이 있기를 기대한다.
'보훈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해야 유사시 젊은이들에게 나라를 위해 희생을 요구할 수 있으리라...지금과 같이 실속 없이 말로만 대접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만일의 경우 누구더러 나라 지키는데 앞장서라고 등 떠밀수 있겠는가?
일부 정치집단이나 노조처럼 당사자들이 악따구 쓰고 떠들고 시위를 벌여야만 마지못해 대책이 나올 것인지......
지금부터 54년전 그날 밤 68년 구정공세를 겪었던 그 일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되돌아 보면 바로 엊그제 일인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제대해서 복학해 다시 학교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결혼 시키고... 그러다 보니 그 전우한테 몇 번 가지 못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 뿐이다. 봄이 또 오고 지나가면 현충일이 또 다가온다. 올 현충일에는 꼭 찾아가서 만나봐야지, 전우야 잘 자거라.
1963년 비전투부대인 이동외과병원을 시발로 월남전에 참전한 대한민국은 그 후 2개 전투사단 (맹호·백마부대) 1개 해병여단 (청룡부대) 보급부대인 십자성부대, 건설지원단인 비둘기 부대 등을 파병, 75년 4월 30일 월남패망 때까지 그곳을 지켰다.
총 32만여명이 참전했고 전쟁기간중 전사자는 5,099명에 달했다. 1만명이 전상을 입었고 10여만명이 고엽제로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참전자들은 늙고 쇄약해져 주변의 다른 동년배에 비해 더 버거운 삶을 살고 있다.
전쟁을 잘 모르는 오늘의 젊은이 들이여
당신들의 할아버지 세대는 조국의 산하와 가족,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서 피 흘려 싸웠고 , 아버지 세대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이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먼 이국땅 정글을 헤매며 피흘렸음을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