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싸우는 당신에게 묵혜/오형록
그거 아시나요 어둠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아침이슬의 가슴에 재롱을 부리는 일곱 빛갈의 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갓 피어나는 나팔꽃 그이는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요 무지개가 눈을 뜨는 아침이 오면 생기발랄한 참새의 떼창을 따라 부르며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푸른 잎사귀 위에 앉아서 무지개를 만드는 이슬을 생각해봐요 검은 옷을 입은 안개는 꼬리가 잘리고 나팔꽃처럼 맑고 청아한 세상을 만날 거예요 참새의 노래가 빼곡하게 적힌 꽃잎에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아침 이슬과 눈이 맞았어요 영롱한 날개를 펄럭이는 꿈은 이제 당신 거예요.
마른 장작을 몰아넣는 밤
- 오형록
사계절이 있어 참 좋습니다 쓴맛 단맛 신맛 골고루 맛볼 수 있는 행운은 덤입니다 계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지만 가슴의 크기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천차만별입니다 삶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이러스를 깨끗하게 씻어 내릴 듯 장맛비가 집중호우로 쏟아집니다 인생의 계절은 저마다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우리들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사막을 일구어 비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호령을 하기도 합니다 한번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냉엄한 계절 눈시울에 마른 장작을 몰아넣는 밤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해 주는 인연을 생각하며 군고구마처럼 노릇노릇 한 가슴을 구워내고 있습니다 아득하게 밀려오는 행복의 물결이 당신의 가슴도 흠뻑 적셔주길 바라며 천둥소리에 덜 익은 가슴을 맡기고 두 눈을 감았습니다 혹여 우리들 인생에도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좌절보다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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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노예
묵혜/오형록
이놈에게 잡히지 않은 자 몇이나 될까 무심코 던진 주사위처럼 한 번 더 한 번만 더 뺑뺑이를 돌다 보면 검은 머리 간곳없고 어느새 백발이네 무서워 도망치면 창자가 눈물짓고 지지고 복자니 관절이 울먹이니 이도 저도 못하는 게 고깔 쓴 소 아닌가 그래도 찡그리지 말고 산허리 사례긴 밭 웃으며 갈아보세 한걸음 한 걸음에 혼을 담아 걸어보세 웅크린 노을 꽃처럼 우리도 한 번 취해 보세 찢어진 입 귀에다 걸고 나면 그깟 고깔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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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위한 기도 오형록
어쩌다 너를 만나 삶의 이정표를 만들게 되었다 오만방자하던 놈도 시도 때도 없이 갑질하던 놈도 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계절을 맞이했구나 어쩔 수 없이 찌릿찌릿한 꼭짓점을 봉인하며 인연의 신호등을 바라본다 거미줄같은 시간은 단절과 소통의 빌미를 만들고 나를 견인하던 무소불위는 끔뻑끔뻑 졸기 시작하였다 내 몸속 곳곳에 포진할 너는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최신형 아이언 돔 당당하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날 또 하나의 파란불이 손짓할 거야 이 세상 사람들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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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공주
묵혜/오형록
장맛비가 내리던 날 손톱만큼 작은 청개구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구 귀여워라 일손을 멈추고 동화책을 넘겼다 네 이름이 뭐니 내가 이름을 지어줄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작은 몸을 일으켜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좋아 넌 지금부터 엄지 공주다 엄지 공주님 으뜸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동화의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몇 번을 물어봤지만 말똥말똥 눈만 끔뻑거렸다 그래 며칠 쉬었다가 다음에 얘기하자 하우스 옆 연못으로 안내했다 엄지 공주가 입주한 연못에 빗방울이 속속 날개를 접었다.
프로필(묵혜/오형록)
* 한울문학 5기( 2004) * 시아문학 발행인 *해남문학회 회장 < 2003평화주제 문학 작품상 / 2006년 대한민국문예진흥 백일창작문학대상 / 2006년 6월 한울문학 공로상 / 2006년 바다문예대전 동시부분 장려상 /2006년 시사문단 문학상, 본상 / 2006년 베스트탑 작가상 / 2008년 목포 문화원장상 /2011년 목포 시민의 상 / 2014년 열린시학 겨울호 추천 / 2016년 9월 30일 목포 시의회 의장상 / 2022년/이동주 문학상> 오형록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알이, 2005 그림과책 > < 오늘밤엔 달도 없습니다, 2010 책 나무 출판사> <꼭지 따던날, 2018 문학들> <희아리를 도려내듯이 2020 문학들> <해운대 에필로그, 2020 시와 사람> <기억의 건넌방, 2021 사의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