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685)
조 흥 제
1988.1.24일. 회사에서 산을 좋아하는 몇 사람이 시산제 겸 금년 첫 산행을 하남에 있는 검단산으로 잡았다.
10시경 10여 명의 회원들이 영하 12도의 강추위에도 돼지 머리와 시루떡, 북어 포, 삼색 과일 등 푸짐한 제수(祭需)를 장만하여 종로 5가에서 신장행 573번 버스를 탔다. 천호대교를 건너니 몇 년 전 논밭이던 땅이 거대한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군을 이루고 있다. 길동,거여동을 거쳐 10시40분 신장에서 하차.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이곳 신보장은 꽤 큰 읍 소재지인가보다. 이곳에서 술을 사서 천호동~광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11시10분경 신곡기도원이라고 쓴 간판이 있는 곳에서 하차하다. 도로 옆에는 새로 뚫린 중부고속도로다. 좌측 도로를 따라 오르다. 조금 오리니 산곡국교가 나오고 옆을 끼고 도니 별장 비슷한 신축 집이 몇 채 있다. 1㎞ 정도 오르다 길 옆 나무 의자에서 휴식. 이 산은 서울 산꾼들이 잘 찾지 않는 이름도 생소한 산인데 광주군에서 공원화 시설을 갖춘 후 등산계에 알려진 산이다.
우리산악회 승병호 총무가 답사한 일이 있었고 언젠가 월간 산에 소개되었단다. 좁은 계곡을 끼고 오르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흐를 계곡이 얼어 붙고 눈은 많지 않으나 꽤 미끄럽다. 통나무 층층계단을 잘 만들어 놓은 경사가 심한 길을 계속 올라 12시에 능선에 붙다. 옆에는 정자가 있고 안내판에는 동물의 상관관계를 적은 그림이 있다. 토끼, 뱀, 매뚜기 등등.
능선을 따라 조금 오르니 샘물이 나온다. 우물식으로 돌을 쌓아 잘 만든 우물이고 표주박까지 준비되어 있다. 서울 근방 약수터에는 바가지가 준비되어 있지만 일반 산에는 드문 일이다. 물을 먹으려고 하니 김이 무럭무럭 나고 영하10도가 훨씬 넘는 혹한인데도 단숨에 들이킬 정도로 미지근한 온도다. 샘터 근방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고 좌청룡 우백호의 전망이 시원한 곳에 제사상을 차리다. 천광욱씨가 아침에 교회에 갔다 온다는 조건으로 마누라가 준비해 주었다는 미끈하게 잘생긴 돼지 머리를 중앙에 놓고 옆에 떡과 과일, 북어 등을 진열했다. 바람이 심해 향불은 여러 번 실패한 끝에 부치고 제사에 들어가다. 산제는 절을 3번 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년에도 무사히 산행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사’하는 소원을 검단산 산신께 빌고 각자 절을 하고 돼지 머리에 돈을 물리고 막걸리로 음복하고 점심식사에 들어갔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갓 쪄온 시루떡을 돼지머리 고기와 김치에 싸서 먹었다.
근처에 있는 5살 정도 되었을 여아를 데리고 온 아줌마를 불러 떡을 주다. 산행에 처음 참석한 오희모 부장과 승병호씨 동네 솔잎조기회 회장인 최돈식이라는 분이 참석해서 자리를 더욱 빛내 주었다. 두꺼비 12마리가 다 떨어질 즈음 손끝이 아려오는 추위 속에서 배낭을 챙기다.
1시30분경 정상에 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고 산정에 제법 쌓인 눈 위에는 수십 평 넓은 운동장이 있다. 팔당댐의 검푸른 호수가 보이고 두물머리(양수리)의 북한강은 꽁꽁 얼어붙고, 남한강은 얼지 않았다. 우리 국토 중심부에 있는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 예로부터 한강을 수중에 넣은 나라가 융성했다. 그러한 한강이 금강산 쪽에서 파로호, 소양호, 춘천을 거쳐 내려 온 북한강과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정선, 영월, 단양, 여주 등지를 거쳐 온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곳 양수리다. 팔당댐은 이곳 양수리를 막은 댐이다. 천호동 쪽은 고층 아파트군이 보이고 그 뒤로 아스라이 서울의 변두리가 매연에 뒤덮여 부옇게 보인다. 전원이 모여 기념촬영하다. 서천에 둥실 떠 있는 태양은 구름 한 점 없이 우리의 산행을 축복해 주는 듯 싶다.
경사가 심한 통나무 층층계단에 눈이 덮여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 와 3시 경 팔당댐 옆 팔당 식당에 들어갔다. 막간을 이용하여 동양화 손금을 보고 이어서 나온 향어회를 감상하고 향어 매운탕으로 입맛을 돋우다. 4시경 팔당댐을 보도로 건너다. 발전 시설인듯 다리 옆에 많은 구조물이 있다.
다리 건너 156번 버스로 서울에 들어와 산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