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건강한지
혹은 건강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을 현혹시키는
이 땅의 보물들을 의중에 둡니다.
눈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보물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눈은 마음의 빛 혹은 마음의 창 또는
몸의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눈이 좋으면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마태복음 6장 22~23절>
예수님만 믿으면
인생길이 순조롭고 평탄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길도 거칠고 괴롭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빛은 왔고 어둠은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이 빛을 볼 수 있는 눈과
믿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어둠은 다시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둠이 물러가면 아침이 옵니다.
아침은 빛으로 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아침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한 여인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신혼의 단꿈이 채 깨기 전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린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빛이 사라졌습니다.
캄캄한 밤이 온 것입니다.
여인은 삶을 포기하기로 하고
무작정 기차에 올라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처녀 시절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여인은 산길을 헤매다 어느 바윗등에 쓰러졌습니다.
절망에 지쳐 가물거리는 시선에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파랗게 돋은 풀포기였습니다.
오랜 세월 바위에 풍화작용이 일어나
침식된 부분이 돌가루가 되고,
거기 풀씨가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것입니다.
여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해 후 여인은 간증했습니다.
“거기 나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바위가 침식되어 생명을 싹트게 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윗등에서 풀씨의 생명을 기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꺼져가던 내 인생도 소생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죽어도 살리는 분이심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밤의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한 아침의 신앙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눈은 하늘을 향해서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영적인 눈으로 보고 분별하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이 되면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바뀌지 않는 눈입니다.
이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세상은 발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대로
세상일은 진행되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은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은 움직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보는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분별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온전한 믿음 안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적인 눈과 귀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영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열매맺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