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박수경

[박수경]

애견(愛見)

박수경

  어둡다. 자정을 목전에 둔 거리가 텅 비었다. 괜스레 뒤가 무겁게 느껴진다.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다. 내비게이션에서 간간이 들리는 맹목적인 지시어가 달갑다. 갈 길을 일러 준달까. 귀를 곧추세우고 핸들을 부여잡는다. 오백 미터 앞에서 우회전, 그 소리에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며 액셀을 밟는다. 엉거주춤한 모양새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삼십 여분이 어느 때보다 길다.

  남편을 찾아 헤맨다. 아침에 입고간 파란색 재킷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터미널 주위를 서너 바퀴 돌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어둠에 잠식되어 있다.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지만 허사다. 택시정류소에 불법 정차를 하고 수 분 후, 누군가가 창을 두드린다. 핸드폰 불빛에 비치는 낯익은 얼굴이 반갑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차 안으로 들어온다. 몇 번이고 지나치는 차를 쫓아 달렸다는 그는 파란 재킷을 입고 있지 않았다. 검정 티셔츠에 동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 야맹증이잖아.”

  가로등조차 꺼진 짙은 밤은 핑계를 허락해준다. 헤매도 괜찮다. 매번 지나치던 건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해도 그러려니 한다. 서른 해 가까이 살 비비며 살던 이조차 몰라봐도 말이다.

  내비게이션과 남편의 음성이 차 안을 메운다.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을 분석하며 정보를 주는 기계음과 수십 년간 발로 뛴 경험으로 단련된 육성이 뒤엉킨다. 집으로 가는 길이 혼란스럽다. 노란색 점멸등에도 멈칫한다. 지시하는 단어들을 조합한다. 까만 아스팔트를 비추는 일이 미터의 헤드라이터가 뿌옇다. 로돕신이 여전히 부족해서일까. 비타민 A가 결핍되었을 수도 있겠다.

  난시인 언니와 색맹인 남동생으로 인해 눈 건강 영양제를 어릴 때부터 섭취했다. 안과에서의 ‘정상’이라는 진단명이 무색하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형제가 먹는 약을 같이 복용했다. 어쩌면 소외되지 않아 좋았을 수도 있었다. 꼬부랑 글로 적힌 설명서에 현혹되었을 수도 있겠다.

  빛의 판별이 불분명하다고 자신을 세뇌한다. 난시를 흉내 내고, 색맹을 모방한다. 눈두덩을 자주 비볐다. 부러 눈을 계속해서 깜박이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되었다. 학교 대표로 나간 미술 대회에서 녹음(綠陰)을 까맣게만 보이게 하려 애썼다. 따가운 햇빛 아래, 새로 장만한 수십 색의 신한물감이 무색하게 그림이 어둡기만 했다. 양지와 음지의 구분을 지우기 급급했다. 눈꺼풀에 의해 수시로 덮이는 세상을 오롯이 바라볼 용기가 없었달까. 아니, 사실 그땐 그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가 맞겠다. 그냥, 그래야만 했다. 선명도나 명암을 알아채기 싫었다. 상 받고 싶은 의지를 스스로 없앤 시기다.

  “보이는 것들을 감춰 다행스러웠지. 샘쟁이라 ‘나’가 외면이라도 당할까 봐 초조했어. 치기로만 제단하지 마. 사랑받고 싶었어.”

  그때의 잔상일까. 여전히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목격했던 건물의 형태를 무시했다. 미숙한 운전도 제 몫을 한다. 야맹증은 좋은 핑곗거리다. 썩 만족스럽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인다.

  눈 감는다. 나도 너도 말이다. 사방팔방이 어둡기만 했을까. 알지만 모르쇠다.

  세상이 하양과 검정으로만 나뉜다면 어떨까. 파란색 재킷을 찾지 않으니 편할까 싶다. 모든 빛을 반사하는 하양, 모든 빛을 흡수한 검정으로 칠한 곳에서 살아간다면. 심플하지 않을까 싶다. 색에 미혹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헤매지도 않을 테다. 더는….

  살면서 순수한 하양과 검은색을 본 적이 있었나. 수없이 겪었던 흑백에서 오롯이 정제된 빛 말이다. 산란 된 파동을 헤치면 색색이 요동치고 있을 게다.

  눈이 침침하다. 점안액을 뿌리고, 루테인을 입에 털어 넣는다. 안경의 도수를 높이면 호전될까. 어지럼증만 더 짙어진다는 의사의 말이 귀 언저리를 맴돈다. 안막에서 피어오르는 푸르스럼한 아지랑이를 애써 무시한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자가 틀렸다.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이년 후에도 닿지 않을 게 분명할 터. 다만, 어리석게 명견(明見)을 찾는다. 잘 살고 싶다.

애견: 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기는 정의적인 번뇌인 애(愛)와 잘못된 이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이지적 번뇌인 견(見)을 아울러 이르는 말

[안홍진]

수필 제목 애견을 한자도 자세히 읽지 않고 내려가다가 설명문을 보고 알아차려서 죄송합니다.
애견의 심성으로 명견을 추구하시는 감성을 글 속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수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연교 선생님의 '우리들의 깊은 대화'를 읽고 반성했습니다. 글=숙제로 여기며 매번 급하게 휘갈기는 스스로가 부끄럽네요ㅠ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글을 언젠가는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