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밖,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딱히 지을 이름은 없어서 新設洞, 새로 생긴 동네라는 뜻, 서울로 들어갈 배추가 모이던 곳, 길거리가 자연 부산스럽고, 지저분 했으리라. 청계천이 흘러 배추를 다듬기도 쉬웠을 듯 하다. 성북천, 정릉천, 몇 개의 다른 개천도 흐른다. 고기가 흔치 않던 시절, 근처에 마장동 도축장이 있으니 싼 가격에 좋은 고기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했을 듯한 해장국집, 대중옥이다.
사대문 안에 들어가 팔 배추며 채소를 씻는 거대한 우물이 대중옥 앞에 여러 곳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1970, 80년대에는 부처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도 찾았고, 조선일보 방우영 당시 사장은 틈나면 회사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
생전에 즐겨 찾던 가수 현인 씨는 주변 손님들이
동아일보, 2011..04.23 민동용 기자의 기사 중 일부 인용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 이야기이다.
환갑을 넘긴 동네 형님이 그런 얘기를 하신다.
"니가 대중옥을 알아?"
"아직도 하냐??? .........
공무원 생활을 때려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유학을 배우고 똑똑하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임기응변에 능숙하지
못했던, 그 양반은 애들 밥 안 굶기려고, 이리 넙죽 저리 넙죽, 거래처 쫓아 다니다가
대중옥에 찾아들어가 찰선지, 우거지에 한 그릇 쓴 소주를 가슴에다 들이 부었다.
"한 그릇 먹고 쏘주와 얼콰하게 먹고 나면, 세상 사는 맛이 났다."
이제는 딸, 아들 다 분가를 시켰다.
아들에게 공장을 물려 주고, 이리저리 팀을 짜서 골프를 치러 다니신다.
그러나 아직, 대중옥을 다니던 그 때를 잊지 않는다. 짠돌이 소리를 들을 만큼 검소하다.
그 때 주린 배와 상처 받은 자존심을 달래주던 찰선지 해장국 위로 떨어지는 것은 땀방울 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이제 아이 아버지가 된 자식 세대들은 이 맛에 낮설어 한다.
"애들을 너무 받들어 키웠나 봐!" 자식세대의 유약함에 걱정이 많은 아버지의 걱정은 늘 태산 같다.
아직도 마음이 통하고, 만날 만 한 형편이 되는 이들이 만나서 쏘주 한 잔을 마시며, 옛날 얘기를 하고,
다음은 자식들 얘기를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입을 다문다.
"옛날 맛이 안 나데~"
얼버무리는 그 끝에 가족의 생계를 모두 짊어지고, 땀방울, 눈물 방울과 함께 먹던
젊은 날의 그 혈기 방장함을 키워주던 선지 해장국의 그 추억 너머를 헤집는 표정이다.
남대문처럼 위압적이지도, 서대문처럼 허망하지도, 북대문처럼 음습하지도 않은 동대문,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수도 한양의 대문이다.
동대문 청평화 시장 근처에 만담가 장소팔 선생의 동상이 있다. 길가에 그 옆에 앉아도 될 만 하다. KBS 전국노래자랑 송해 선생이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고 동판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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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리 수육, 옛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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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 바 라 당 선생, 길 위의 역 사 학 원문보기 글쓴이: 당선생
첫댓글 요새도 가끔 들러 가는 집입니다. 식당이란 표현보다는 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
작년 가을에 배추파동 나기 전엔 수육 1접시 시키면 해장국이 서비스로 무한 리필였는데, 요샌...ㅎㅎ 아쉽더라고요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반갑습니다. 정확한 위치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신설동역 9번 출구로 나와서 우회전 후 직진하면 왼쪽에 한국도자기 건물을 지나, 청계천 비우당교를 지납니다.
맞은 편 왕십리 뉴타운 공사로 철거를 다했고, 왕십리 중앙교회 맞은 편 골목으로 좌회전하면, 있습니다.
빗님 오시는 날, 자박자박, 투덕투덕 내리는 빗소리 들으며
디디님과 한 잔 하고 싶은 곳~~~꼭 가봐야쥐~~~
약도 올려 주세여~
잘먹고 갑니다.
아직도 있다니 놀랍군요.... 우리아들 어릴때 주당 형부덕분에 몇번 들렸던 기억이 나는데 ㅋㅋ
어떤땐 냄비들고 가서 사온적도 있는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