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왜 해방 전후사의‘재인식’인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우리 역사는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인 시각에서 서술되어왔다. 1979년 첫 권이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전6권, 이하《해전사》)은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를 대변하는 책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을 민중사관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학계에서는 민족 지상주의, 민중혁명론 등《해전사》에서 제기된 여러 주장에 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이번에 책세상에서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재인식》)은 그간 학계에 축적된 해방 전후사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해전사》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의 좌편향적인 역사서술을 바로잡고 보다 다각적이고 실증적으로 우리 역사를 논하고자 한다.
《재인식》은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이분법적 시각이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방 전후사를 ‘재인식’해보자는 의도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굴했으며,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일상사의 문제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머리말을 포함한 30편의 글과 편집위원의 대담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위원 박지향(서울대, 서양사), 김철(연세대, 국문학), 김일영(성균관대, 정치외교학), 이영훈(서울대, 경제사)을 중심으로 카터 J. 에커트(하버드대학, 한국학), 기무라 미쓰히코(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 등의 외국 학자들뿐만 아니라,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신형기(연세대, 국문학) 등《해전사》의 필자였던 학자들까지 참여함으로써 이념을 떠나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친일과 민족주의의 문제, 일제 잔재의 단절과 연속, 해방 정국과 대미 관계, 분단과 한국전쟁, 1950년대와 이승만 정부에 대한 재평가 등을 논하고 있는《재인식》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성과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기존의 역사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보다 비판적인 안목과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족 지상주의에 칼날을 들이대다
《재인식》은 먼저 민족 지상주의가 우리 역사 해석에 미친 폐해를 지적한다. 민족이 다른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는 민족 지상주의는 애국심과는 다른,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최근 황우석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민족의 이익을 최고의 선(善)으로 간주하며 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극렬한 파시즘적 행태를 보인다.
이러한 극단적 행태는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재인식》은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편집위원 박지향은 머리말에서 “우리 민족은 대단히 우수한데 다른 나라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의 비극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말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공과(功過)를 정확히 따져 공정하게 봄으로써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인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권은 해방 전사(前史)이며, 2권은 해방 후사(後史)로 구분된다. 식민지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1권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민지하의 일상적인 삶, 예를 들면 당시의 투기 열풍, 1인당 소득과 소비 행태, 근대 도시의 일상문화에서부터 당시 조선인 위안부와 정신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의 삶, 친일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삶, 그리고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 조선인의 정치 참여에서 이어지는 공산주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를 논하고 있는 2권은 냉전 과정 속에서의 한반도 분단 문제와 대외 세력과의 관계 등을 통해 해방 공간의 사회를 살피고, 한국전쟁과 한미동맹, 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 해체를 중심으로 당시 농촌 사회의 사회상을 고찰해보며,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시 담론뿐만 아니라 민중의 일상사라는 미시사의 관점에서도 접근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은 근대 사회였는가
《재인식》은 일본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이 조선 사회와 조선인의 삶에 미친 이중적 효과를 추적한다. 일제가 35년간 조선을 지배한 목적은 ‘영구병합’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지배 정책은 ‘내선일체’라고 불린 동화 정책이었다. 조선을 영구히 병합하기 위해 일제는 일본의 법과 제도를 조선에 이식했고, 그 결과 조선은 법치가 성립한 근대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지배자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않은 권력인 식민지 권력의 법치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가 아니었다. 조선인에게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기회가 없었다. 총독부는 자신의 전통 사회와 문화를 지키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독립하고자 했던 조선인의 자연적 권리를 짓밟았다. 그 점에서 식민지 권력은 생경한 폭력이었다. 이 같은 식민지 권력의 이중적 성격, 즉 한편에서는 근대적 법치로써 사회를 규율하는 정당한 폭력체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의 자연권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부당한 폭력체로서 기능하는 모순적 관계를 잘 지적하고 있는 것이 이철우(성균관대, 법학)의〈일제하 법치와 권력〉이다.
식민지 시기에 관한 인식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점은 경제 영역이다. 1910~1940년간 세계 자본주의가 침체와 위기를 겪는 동안 조선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산업 구조도 근대화했다. 김낙년(동국대, 경제학)의〈식민지 시기의 공업화 재론〉은 이러한 식민지 경제의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을 최근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식민지 경제의 발전을 조선 경제의 발전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조선의 경제 발전은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유입과 일본으로의 쌀 수출로 가능했고, 따라서 경제 발전은 일본인 자본가와 일본인 지주들을 살찌웠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을 모두 일본인이 차지하고 조선인은 거기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주익종(서울신용평가정보 평가사업본부 이사)의〈식민지 시기의 생활수준〉은 이러한 수탈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당시 식민지의 일반 대중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한편으로는 근대 문명이 주는 해방감이나 활기를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문명의 주체가 되지 못한 식민지인의 무기력감과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신명직(구마모토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의〈식민지 근대도시의 일상과 만문만화〉는 ‘만문만화(漫文漫畵)’를 통해 근대도시 경성을 향유하고 있는 경성 사람들의 일상과 이중성을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수영(동아대, 국어국문학)의〈하바꾼에서 황금광까지―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난 식민지 사회의 투기 열풍〉은 미두와 금광 개발을 둘러싸고 전국에서 벌어진 투기 붐을 그린 채만식〈탁류〉와〈금의 정열〉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실감나게 재생하고 있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식민지 유산은 무엇인가
이 책은 해방 전사와 해방 후사를 연결시키는 인간군, 이를테면 박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성장한 사실에서 식민지 유산을 찾아낸다. 카터 J. 에커트의〈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화〉는 제도와 인적 자본의 측면을 넘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20세기에 한국인들이 경험해야 했던 일련의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를 연결하는 인간군이 성장해왔음을 설명한다. 중일 · 태평양전쟁기에 조선에서 전개된 대규모 군수공업화는 조선인 노동자 · 기술자 · 기업가 · 관료 집단을 성립시켰다. 또한 에커트는 정부 주도형이라는 1960년대 이후 경제 시스템의 기원도 총독부가 주도한 식민지 공업화의 경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식민지 권력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다는 논리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때 시행된 개발 정책의 기본 개념이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 시행한 개발 정책의 모델이 되었고, 그것이 1960년대 이후 복원 내지 답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가 전시기에 구축한 통제경제 체제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밝힌 기무라 미쓰히코의 논문과 함께 남북한 모두에서 식민지와의 단절보다는 연속이 지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책임
지금까지는 이승만과 미군정에 분단 책임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광복 직후 통일의 기회였을 신탁통치안을 남한의 우파들이 반대했을 뿐 아니라,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할 의향을 밝힌 최초의 인물이 이승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정식(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의〈냉전의 전개 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공개된 소련 문서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할 의향을 밝히기 전인 1945년 9월 20일에 이미 북한의 소련군정에 북한에 독자적인 행정 기구를 구축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다. 또한 김영호(성신여대, 정치외교학)의〈한국전쟁 원인의 국제 정치적 재해석―스탈린의 롤백 이론〉은 소련 문서를 통해 한국전쟁이 미소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에 기인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스탈린은 중소방위조약을 체결한 다음, 미국의 봉쇄선 38선을 돌파하여 남한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편입함으로써 미국의 국제 위신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을 부추긴 것은 김일성의 무력통일 의지였고, 여기에 중국의 참전 의지가 전달됨으로써 한국전쟁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대담―해방 전후사의 새로운 지평
《재인식》의 취지와 목표는 편집위원(박지향 · 김철 · 김일영 · 이영훈)의 대담을 엮은 제9부〈대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걷어내려 한다. 고대사든 일제시대든 해방 이후사든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은 특정한 이미지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규명하고 그 과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주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과 마주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단 하나의 잣대로 환원시키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것이고, 따라서 여러 개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즉《재인식》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객관적 역사 해석, 일국사적인 관점이 아닌 비교사적인 관점에 의한 역사 인식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다층적이고 다원적이고 복잡한 삶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
- 자료제공: 인터파크(도서) |
지은이소개 |
기무라 미쓰히코(木村光彦)_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김낙년_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호_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일영_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철_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나미키 마사히토(竝木眞人)_페리스여학원대학 교수 박지향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소정희_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 인류학과 교수 신명직_구마모토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신형기_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우정은_미시간대학 정치학과 교수 유영익_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이만갑_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_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완범_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 교수 이정식_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이철순_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철우_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 이혜령_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장시원_한국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전상인_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조관자_주부대학 인문학부 교수 주익종_서울신용평가정보(주) 평가사업본부 이사 차상철_충남대 사학과 교수 최경희_시카고대학 동아시아학과 한국문학 교수 카터 J. 에커트Carter J. Eckert_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한수영_동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후지나가 다케시(藤永壯)_오사카산업대학 인간환경학부 교수 |
- 자료제공: 해피올 |
목차 |
머리말│박지향
1부 | 식민지하의 일상적 삶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이영훈 하바꾼에서 황금광까지―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난 식민지 사회의 투기 열풍│한수영 식민지 시기의 생활수준│주익종 일제하 법치와 권력│이철우 식민지 시기의 공업화 재론│김낙년 식민지 근대 도시의 일상과 만문만화│신명직
2부 | 식민지하의 여성의 삶
상하이의 일본군 위안소와 조선인│후지나가 다케시 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젠더와〈야국초〉│최경희 교육받고 자립된 자아실현을 열망했건만 : 조선인 ‘위안부’와 정신대에 관한 ‘개인 중심’의 비판인류학적 고찰│소정희
3부 |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삶
몰락하는 신생―‘만주’의 꿈과〈농군〉의 오독│김철 ‘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조관자 한글 운동과 근대 미디어│이혜령
4부 | 단절과 연속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화│카터 J. 에커트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정치 참여―해방 후사와 관련해서│나미키 마사히토 ‘신인간’―해방 직후 북한 문학이 그려낸 동원의 형상│신형기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북한 집산주의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발전│기무라 미쓰히코
5부 | 해방 공간
냉전의 전개 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이정식 해방 직후 국내 정치 세력과 미국의 관계, 1945~1948│이완범 한국의 노동 운동과 미국, 1945~1950│박지향 해방 공간의 사회사│전상인
6부 | 한국전쟁과 한미동맹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 정치적 재해석―스탈린의 롤백 이론│김영호 전시 정치의 재조명―부산 정치 파동의 다차원성에 대한 복합적 이해│김일영 이승만과 1950년대의 한미동맹│차상철
7부 | 농지개혁과 농촌 사회
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의 해체│김일영 농지개혁―지주제 해체와 자작농체제의 성립│장시원 1950년대 한국 농촌의 사회구조│이만갑
8부 | 잃어버린 10년을 찾아
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유영익 비합리성 이면의 합리성을 찾아서―이승만 시대 수입대체산업화의 정치경제학│우정은 1950년대 후반 미국의 대한 정책│이철순
9부 | 대담 해방 전후사의 새로운 지평│박지향 · 김철 · 김일영 · 이영훈 | |
첫댓글 오늘 무비위크 읽다보니 '2006봄 문화 트렌드를 말한다'에서 책부문에 이 책이 소개되었더라구요...서울 1945를 보면서 함께 읽어보면 좋을듯
정치적인책인가보죠? // 흠.
정치적인 건 아니고...교과서에서는 알 수없던 근현대 역사를 새롭게 알 수 책일듯...호진오빠가 정말 괜찮다고 하시던데 다른 곳에서도 추천되어 있는 걸 봤거든요...한번 읽어보심이 어떨런지...
흠;;
어후~ 700페이지가량되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