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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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fa.or.kr/news/print.asp?tb_name=interview_gisa&g_conid=2012111314122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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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천재 앞에는 날개가 없었다. 그러나 천재는 날개를 찾았고, 이제 날아오르려 한다.
‘천재’ 최승인의 챌린저스리그 경험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최승인은 11일 파주스타디움에서 열린 ‘Daum 챌린저스리그 2012’ 4강 플레이오프에 선발 출전했지만 연장전 도중 다리근육에 경련이 오며 교체 아웃 됐다.
소속팀 청주 직지FC(이하 청주)는 파주 시민축구단(이하 파주)과 연장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이날 최승인은 파주의 거친 수비 속에서 고군분투했으나 득점에는 실패했다. 지난 26라운드에서 파주를 상대로 홀로 5골을 몰아친 경험이 있어서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 부산의 축구 천재, 날개를 잃다
축구팬에게 ‘최승인’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최승인은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U-15팀인 신라중 축구부 창단 멤버로 합류하기 위해 1년을 휴학했다. 부산 유소년 보급반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부산 U-15팀 시절 에이스로 거듭나며 부산 U-15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신라중 3학년 시절 프로 2군 리그인 R리그를 뛰게 되며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천재’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또한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단기 교육까지 받고 올 정도로 가능성과 천재성을 인정 받았다.
이후 부산 U-18팀인 동래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최승인의 R리그 경험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코친 스태프끼리의 문제로 최승인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고 결국 동래고를 자퇴하고 일본 프로축구 쇼난 벨마레에 입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힘든 일은 계속 됐다. 어린 나이에 해외에 진출한 최승인은 철저한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최승인을 둘러싼 축구 외적인 부분으로도 끊임없이 힘든 일이 지속되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어린 나이에 성인리그를 경험하게 된 것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는 자신감이 있고요. 하지만 그 속에서 힘든 일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최승인은 2011년엔 JFL(일본 3부 리그)로 임대 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 최승인의 폼은 망가졌고, 쇼난 벨마레는 최승인을 방출했다. 그리고 2012년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국내 구단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최승인의 상태를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