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년 - 일본 제60대 천황 다이고(醍?天皇, 제호 천황 885년 1월 18일 ~ 930년 10월 23일) 사망.
(재위 897년 8월 14일 ~ 930년 10월 16일),
처음 휘는 고레자네(維城)였고, 나중에 아쓰히토(敦仁, 아쓰기미라고도 읽음)로 바꿈.
1340년 - 리라 사망,프랑스의 성서주석가,1292년에 베르뇌이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들어갔고,
그후 파리로 가서 소르본느대학의 교수로서 남은 일생을 보냄.
1532년 - 쿠레우스 출생,종교개혁시기의 독일의 신학자,그의 본명은 쉬르이다.
그의 남은 생애는 글로가우에서 시의 으사로서 보냈다.
1542년 - 츠비크 사망,콘스탄스와 남부독일의 종교개혁자,
그는 또한 교육적,고백적,역사적,가치가 있는 많은 소책자를 편집함.
1707년 - 영국의회,처음으로 소집.
1752년 - 식품 캔가공 발명 프랑스 요리사 니칼로 아페르 출생.
1783년(조선 정조 7년) - 실학자 홍대용(1731(영조 7) 서울~ 1783(정조 7)) 세상 떠남.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의 한 사람이며,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는 등 조선 후기 과학사상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弘之),
할아버지는대사간 용조(龍祚)이며,아버지는 목사 역(?)이다.일찍이 당대의석학이자 노론학파의 중심적 인물인 김원행(金元行)에게서 주자학을 배웠다.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지못한 가운데 박학다식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나갔다. 1765년(영조 41)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는 숙부 억(檍)을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따라가 3개월동안 베이징[北京]에 체류했다.이때중국인 학자 엄성(嚴誠)반정균(潘庭均)·육비(陸飛) 등과 친교를 맺고,독일계 선교사로 흠천감정(欽天監正)인 A.폰 할러슈타인(중국식 이름 劉松齡)과 부정(副正)인 A. 고가이슬(鮑友管)등과면담하면서 청나라 고증학과 서양의문물을접하고 사상체계에 큰변화를겪게되었다.그의베이징행은 북학파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당시 교우관계에 있던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 등에게 영향을주어 북학파를형성하게 되었다.베이징에서돌아와3년간 중병을 앓은후, 1774년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되고 곧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1778년 태인현감(泰仁縣監), 1780년 영천군수(榮川郡守)가 되었다. 1783년 모친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온 후 곧바로 중풍에 걸려 죽었다.
1852년 - 버트 출생,감리교회 감독,1904년에 그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엔젤리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1854년 - 리즈 출생,조지아 성공회 주교,1878년에 부제,서품을 받았고,그 다음해에 사제로 승격되었다.
1866년 - 래그 출생,영국국교도,1905~1906년에는 베네치아에서 영국인의 전속사제로 일함,
그는 링컨대성당에서 벅든의 참사회의록 수입자였다.
1868년 - 최초의 영국 자동차를 만든 란체스터(1868. 10. 23 런던~ 1946. 3. 8 잉글랜드 버밍엄 워릭셔) 출생.
하틀리 유니버시티 칼리지(지금의 사우샘프턴대학)와 국립과학학교에서 공부한뒤,1891년 버밍엄에서가스 기관 제작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진자조속기(振子調速機)와 시동기(始動機)를 설계해 가스 기관을 개량했다.
5년 뒤 자동차 제작공장을 세우고 1896년에 처음으로 1기통 5마력짜리 차를 만들었다. 2번째로 만든 2기통 차 덕분에 왕립자동차협회의 금메달을 받았으며, 란체스터엔진회사의 설립계기가 된 3번째 차는 그뒤 몇 년 동안 수백 대를 생산했다. 그의 차의 유명한 설계상의 특징은 진동이 적고, 대부분의 운전석과 짐칸에 튀어나와 있던 손잡이나 지렛대를 줄여 겉모양을 우아하게 한 것이었다.1897년에 쓴 논문에 처음으로 항공학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는데, 당시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의 비행원리에 대한 그의 인식은 매우 진보적이었다. 1907~08년
공기역학에 대한 자신의진일보한 생각을구체화한 2권의 책을발간했다.또 1909년 항공학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나중에는 다임러자동차회사의 고문으로서 작전연구(OR) 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란체스터 전략 (Lanchester Strategy)
란체스터의 제1법칙_ 개별전에서는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긴다. 란체스터의 제2법칙_ 총력전에서는 서로의 전력에는 제곱의 차이가 난다.
▲란체스터의 법칙은 약자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약자는 정면 승부로는 강자를 이기기가 어렵다 이기기 위해선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한다.
1871년 - 셔대혼 출생,감리교 목사,인도에서 선교사로 봉사한후 캔자스감리교대학교에서
영어성경 교수가 되었다.
1873년 - X선튜브 발명가 윌리엄 클리지 출생.
1881년 - 스페인 화가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년10월25일~1973년4월8일) 태어남.
1900년 바르셀로나의 'Els 4 Gats'카페 전시회.
프랑스공산당 입당.
프랑스 정부에 의해,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다. 대표작으로 큐비즘의 시대를 연 작품인《아비뇽의 처녀들》,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1938년)을고발한《게르니카》가 있다.피카소는1만3,500여점의 그림과 700여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1905년 피카소는 이른바'장밋빛 시대'를 맞는다.이시기의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너는 군인이 되면 대장이 될 거다.' 그 대신 나는 화가가 되었고,
마침내 피카소가 되었다."
1883년 - 전영기 출생,장로교 장로,민족운동가3.1운동때 삭주읍만세시위에 참여했고,
신의주에서 곡물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신의주 장로교회 장로로 장립.
1884년 - 유전 출생,기독교 교육자,호는 우촌,1954년 삼일백화점 경영.
1890년 - 소련의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Leonidovich Pasternak)
1890년 2월 10일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1960년 5월 30일 소비에트 연방 페레델키노) 태어남.
1914년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
노벨 문학상 (1958년)
"온 세계에 눈이 내려 눈이 내려서/눈은 세계 끝에서 끝까지 덮었다./촛불은 테이블 위에 타고 있고,/
촛불은 타고 있다."
아버지는 예술 학교 교수이자 화가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였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인 로자 카우프만(Rosa Kaufman)였다. 파스테르나크는 국제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집에 들렀던 방문객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레프 톨스토이가 있다.그의 이웃이었던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영향으로 파스테르나크는작곡가가 되기로결심하고 모스크바 음악 학교(Moscow Conservatory)에 입학했다. 1910년 그는 돌연 학교를 떠나 마르부르크 대학(University of Marburg)에서 신칸트주의(Neo-Kantianism) 철학자인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과 니콜라이 하트만(Nicolai Hartmann) 지도 아래 공부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철학을 직업으로 삼길 포기한 후, 1914년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러시아 미래파인
알렉산더 블록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시집은 같은 해 말에 출판됐다.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가르쳤다. 이곳의 경험이 의사 지바고에 반영돼 있다. 그의 친척, 친구들 대다수와 달리,
그는 혁명 후에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사상과 가능성에 이끌렸다.
1893년 - 창량 장택상(張澤相,1893년 10월 22일 경상북도 칠곡군 ~ 1969년 8월 1일 서울특별시) 태어남.
초대 외무장관과 국무총리 역임.제3대, 4대, 5대 국회의원.호 창랑(滄浪), 자 치우(致雨), 아명은 삼욱,
독립운동가, 금융인, 경찰관, 외교관, 정치가, 서예가,
일제 강점기의 금융인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정치인·경찰관·외교관·서예가이다. 일제 강점기 해외 유학, 파리위원부와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소련 등을 거쳐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 유학하다 귀국, 국내에서는 청구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제5차·제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李範奭)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자유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었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64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여 윤보선, 장준하,함석헌 등과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9년 신민당 고문이 되었다.해방 정국에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등 좌파 정당과 좌파 정치운동에 대한 구속, 탄압을 가하였으나 여운형,이만규,조봉암 등과는 인간적인 친분관계를유지하였다.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이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다.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이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자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張承遠)과
정부인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자(字)는 치우(致雨), 어릴 적 이름은 삼욱, 영문 이니셜은 TS. 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인동,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오태동 출신이다.
1895년 - 유억겸 출생,기독교 교육자,사회운동가,육영사업가,유길준의 아들.순종황제의 동서.
1901년 - 소설가 심훈 태어남.-본명은 대섭, 대표작:상록수.
1903년 - 신명여학교 설립,경북 대구시 남산동에 설립된
기독교 학교,북장로회 여선교사 브루엔 부인에 의해 설립됨.
1906년 - 영국해협 수영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게르트루드 에들리 출생.
1919년 -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대한정의군사[령부]로 개칭.
1920년 - <새동무> 창간.
1923년 - 함부르크에서 독일공산당 봉기.
- 김약수 등 사회주의자 160여명,서울에서 건설사 조직.
1925년 - 토크쇼 사회자 자니 카슨 출생.
1926년 - 조선 주일학교대회 개최.
- 반기독교운동 대회,경복궁 앞에서 진행되었던 공산주의자 주동의 반기독교대회를 의미한다.
- 리온 트로츠키,소련 정치국에서 추방.
1934년 - 청직이와 재정 발행,저자 스위코드,발행자 본윅,발행처 조선예수교서회.
1936년 - 한강인도교 개통.(한강대교 두번째 개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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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사업이 진행되기 전 한강 대교
(아래쪽)를 중심으로 내려다 본 한강의
항공 사진. 백사장과 철교가 보인다. |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10월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많아골칫거리였다.파출소를설치하고난간에“잠깐만 참아”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효과가 없었다.자동차가 계속증가하고 노량진ㆍ영등포 일대가 급격하게 발전하자 기존의 다리를허물고 새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는논의가진행됐다.1936년의 한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이용하는 자동차가 하루평균 2327대, 우마차 1473대, 보행자 781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다리폭을 20m로 넓혀 좌우양측에 각각 차도와 인도를 설치하고 중앙에는복선의전차궤도를신설,노량진까지 전차노선을 연장한 새다리의 도교식은1936년10월23일에있었다.3번째 도교식은6ㆍ25때 폭파됐다가 8년이 지난 1958년 5월 15일에 가졌다.]
1940년 -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 출생.
1942년 - 몽고메리가 롬멜을 제압한 엘 알라메인 전투.
1945년 - 조선신문기자협회 결성.
-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결성.
1946년 - 제1회 유엔총회 뉴욕에서 개막.
1951년 - 동독경찰,서베를린에서 철수.
1954년 - 미국,영국,프랑스,소련,파리 협정 조인.-서독의 주권회복 및 NATO의 가입을 승인.
독일점령종식위한 파리협정 조인,서독 주권회복.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발족.
1956년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학생들 반정부시위.
- 국제원자력기구 설립.
1957년 - 박태선 자신을 동방의 의인이라 선언.
1958년 - 소련,애스완댐 건설에 1억달러 원조 발표.
-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1961년 - 한국방송문화협회 발족.
- 하마슐트 전유엔사무총장에 노벨평화상 수여.
1963년 - 여주 나룻배 침몰참사,국교생 49명 익사.
1969년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준공.
1972년 - 니카라과 지진으로 1만여명 사망.
- 국제음악 선교회 창립.
1973년 - 제1차 석유파동,메이저들의 3-%유가인상으로 세계경제 큰혼란.
-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 사망.
1978년 - 일본,중국과 평화우호조약비준에서 교환.
1980년 - 소련수상 코시긴 사임.-후임에 니콜라이 티호노프 임명.
1982년 - 영국,소련 KGB거물요원 쿠지치킨의 망명 발표,전테헤란 총영사.
- 하크 파키스탄 대통령 북한 방문.
1983년 - 레바논 케이루트에서 폭탄테러 발생.-미국 해병대와 프랑스 공정대의 중대본부에
각각 폭발물 적재트럭이 돌진 278명 사망.
- 제22회 세계양궁대회 여다잔체-개인 종합우승.
- 레바논주둔 미-프랑스 합동군사령부에 폭탄테러 299명 사망.
1989년 - 헝가리,40년간의 공산통치를 종식하고 공화제를 선언.
1990년 - 남북통일축구대회,제2차 친선경기가 서울에서 열려 1대0 으로 남측 승리.
- 이라크,64명의 영국인 인질 석방.
1991년 - 제4회 남북총리회담 평양에서 열림.
- 캄보디아 내전종식 평화협정.
1996년 -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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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 살해범 안두희씨가 백범사건 진상규명위에 붙잡혀 검찰에
넘겨졌던 당시의 사진(1961년) |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가1996년10월23일 오전11시30분쯤 인천 자신의집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는박기서씨에의해 피살됐다. 범인 박기서씨는 경찰조사에서 "평소 백범 선생을 존경했다. 지난6월 백범추모식이후 살해를계획했다.후회는안한다"고 밝혔다.박기서씨는 1997년 11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중 1998년 3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이날 피살된 안두희씨는 백범 김구 선생을 살해한 1949년6월26일 이후47년동안 테러와협박의공포에 시달리며 피신생활을 해왔다. 1949년 당시 32세의 포병소위였던 안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육군형무소에서 복역하던중 1950년 6.25가 터져
포병장교로 복귀했다. 전투중 부상,1951년 군복을 벗은후 1956년6월부터 강원도 양구에 군납공장을지어 많은 돈을벌었으나 4.19후 테러위협이 계속되자 사업을 중단, 서울로 돌아와 잠행을시작했다.안씨가 첫 테러를당한것은1965년12월의 일로, 29세의 청년 곽태영씨로부터칼로 목을 두군데나 찔렸으나 극적으로살아났다.안씨는이후 수차례 미국이민을시도했으나 국민의비난여론으로 여권을발급받지못해 좌절됐다.안씨가 두번째테러를당한것은1987년3월27일의 일로,서울마포에서 권중희씨에게 각목으로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 그해 7월에는 잠을 자다 27세의 노송구씨에게 각목으로 폭행당해 또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후 1988년부터 인천에서 살던 안씨는 1991년 8월부터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 1992년 2월 28일 권중희씨 등의 강권에 못이겨 백범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1998년 - 이스라엘-팔레스타인'영토-평화 교환협정'에 서명.
2000년 - 울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북한 방문.
- 노사정위원회 '주40시간 근무'합의.
2002년 - 체첸반군 50여명은 러시아 극장 인질극,4일만에 특수부대에 의해 집합,
진압과정에서 129명 깨스에 희생.
2003년 -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 사망.
2004년 - 일본 니가타 현 강진 발생,33명 사망,21,000여명 부상.
2008년 - 환율 1408원80전 으로 마감. 코스피 지수-1049.71
- 한국은행,총액한도대출 9조원으로 증액-중소기업 지원.
- 2008 세계여성포럼 폐막.
- 광고주협회 창립 20주년.
- 피겨 요정 김연아,월드그랑프리 출전.-미국 시애틀 북쪽 에버렛에서 시작.
- 군 법무관들,불온서적 위헌소송-국방부 징계방침.
잠자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1조1,200억원 가까이 쌓아놓은것으로 밝힘.
- 중앙은행 명의 은행송금 국제사기 적발.
미국의 시티은행이 위조서류에 속아 국제사기단에게 무려500억원을 사기단에게 넘겨주엇지만,
결국 대한민국 경찰에 붙잡혓다.
- 서울 강남 고시원 방화 살해사건 현장검증 실시.(담담히 범행 재연.)
-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6차전 두산 5대2 삼성 으로 4승2패 으로 한국시리즈 진출.
- 납품 비리 KTF상무구속.-KTF사업개발실장 박 상무가 납품업체들로부터 2005년부터 올해 5월 사이
한번에 3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까지 현금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게 됨.
- 인천대교 상판 첫 공개-국내에서 가장 길고,세계에서 5위 규모의 인천대교 상부가 개통 1년을
앞두고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영종도 인천공항과 송도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인천대교는
바다 위 길이만 12.34km에 달하며,교각 없이 63빌딩 높이의 주탑과 상판을 케이블로 연결한
사장교 방식으로 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