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1240) 조 흥 제 1985. 6.8,9. 가지산은 영남알프스에 포함된 주(主) 산이다. 영남알프스 하면 밀양, 청도, 언양에 있는 운문산, 가지산, 취서산, 천황산, 신불산 등 1000~1200m급의 산이 원을 그리면서 한군데 모여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3박4일 휴가 때 가서 다 봤으면 했었는데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이틀 휴가를 얻어 단독산행으로 가지~운문산 종주를 하고자 마음먹고 조선일보 조사부에 가서 월간 산 84년2월에 게재된 지도와 문헌들을 복사했다. 나침반이 또 어디 가고 없어 새로 구입하고 열차시각표에서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조사했다.
8,9 양일간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 가족들은 “나갔던 사람도 장마 때면 돌아오는데 나가느냐”며 걱정을 많이 했으나 “비가 오면 안 올라간다.”는 조건으로 8일 9시40분 울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씽씽 잘 달리는 코오롱 고속버스는 금강유원지 휴게소와 평사휴게소를 거쳐 2시30분경 울산에 도착했다. 터미널 근방에서 식사하면서 그 집 종업원 아가씨를 보며 김상희의 울산 큰 애기를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현대중공업 근방을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도시 한 가운데에 태화강이 흐르고 양쪽 연안에 고수부지 식으로 운동시설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3대 공업의 요람(현대, 대우, 조선공사)인 현대중공업(조선소), 장기간의 파업으로 경찰을 투입하여 정상화시키기까지 울산을 온통 마비시켰던 현대자동차공장을 보고자 함이었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참만에 TV에서 본 현대자동차 정문이 나왔으나 사진 찍을 기회는 놓쳤다. 그 길이 파업 때는 노동자들이 꽉 메웠던 자리라 한다. 정문으로 일반 차량은 못 들어간다고 한다. 조금가니 바닷가에 거대한 크레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조선소다. 그 건너편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수십만 평의 대지에 수 많은 건물이 있고, 출고장엔 수 많은 자동차들이 서 있었다. 조선소를 통과하며 기사의 설명을 들었다. 정박해 있는 선박은 모두 고치러 왔다고 한다. 조금 가니 현대자동차 수출용 대기장이 있는데 역시 수천대의 승용차가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유람선 같은 배가 있는데 거기 실어서 외국으로 수출할거란다. 울산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두 공장을 구경하고 다시 터미널로 와서 4시40분경 석남사(石南寺)행 시외버스를 탔다. 많은 사람들이 언양에서 내렸다. 비는 계속 내려 차창을 때렸다. 몇 명 안 되는 사람을 싣고 5시30분경 석남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식사하고 석남여관에 투숙했다. 밖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이 깨다. 시계를 보니 2시30분. 청춘 남녀 여러 명이 방 하나를 얻어 밤새도록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아무리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유원지 근방에서의 들뜬 기분이지만 여러 사람이 자고 있는데 저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몰상식에 눈이 찌푸려진다. 5시에 일어나 밖에 나가 보니 잔뜩 흐리긴 했으나 비는 그쳤다. 밥을 해 먹고 6시에 출발.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지도에는 석남사 뒤로 등산로가 있고 자동차 길은 석남사 근방에서 그치게 되어 있는데 도로를 따라가 보니 밀양 44㎞란 이정표가 나온다. 길을 잘못 들었구나 생각하고 대성여관 휴게소 근방에서 물으니 그곳에서도 가지산 등산이 가능하단다. 건너편 소로를 따라 가니 쌍갈래길이 나온다. 우측 길을 택하다. 지도에는 외길인데 길이 무척 많다. 우측에 있을 석남사 쪽 길을 찾고자 우측으로만 붙다. 한참 가다보니 쌍갈래 길이 있어 좌측길로 가다보니 잘 정돈된 무덤이 3개가 나온다. 그 뒤로 올라가니 숲으로 가려진 희미한 길을 가게 되는데 밤사이 내린 비로 물기를 머금은 풀과 나무가 전부 물이었다. 순식간에 옷은 빨래같이 젖었다, 한참 가다보니 길이 그쳤다. 되돌아 무덤으로 내려 와 개울 가 까지 와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등산로 깃점에 붙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다시금 느꼈다.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대조해 보니 우측으로 가야 제 길을 찾을 것 같아 우측 길을 택하다. 다시 도랑이 나온다. 이 계곡을 건너서 길이 있으면 지도상의 길과 일치할 것 같다. 계곡을 건너니 길이 있었다, 한참 올라가니 길 옆 나무에 깡통을 걸어 놓았다. 리본은 없었지만 틀림없이 등산로였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비를 꺼내 입다. 비는 장대비로 쏟아진다. 등산로가 도랑이 되어 빠지면서 행진, 길 가 나뭇가지에 쌕이 걸려 있다. 더욱 확신을 가지면서 가파른 길을 오르니 능선 정상이 나온다. 능선 정상인줄 알았더니 지능이었다. 휘몰아치는 가스 사이로 건너편 부드러운 능선이 높게 보여 저기가 지도상에 있는 쌀바위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쌀바위가 정상이다. ㄷ자 능선길을 돌아 살바위 사면길에 접어드니 경사가 심하고 멀다. 비는 장대비로 쏟아지고, 길은 도랑이 되어 등산화를 넘었다.
8시40분에 쌀바위 정상에 서다. 2시간이면 올수 있는 거리를 40분이나 초과하였다. 우중에도 배낭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고 간식을 들고 식수가 어디에 있나 찾으니 안 보인다. 안내서에는 있다고 했는데. 짐을 챙겨 계속 가니 연봉의 자태는 운무에 가려 보이다 안 보이다 했다. 지도는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꺼내 보나 비와 땀에 젖어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망가졌다. 높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아 석봉을 기어오르니 길이 어디로 났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보이지도 않지만 가까운데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 봉우리를 지나 얼마쯤 가다 높은 봉에 오르니 조그마한 돌무덤이 있고 가지산 1240이란 푯말이 나온다. 지도상에는 쌀바위봉에서 가지산까지 1시간10분 소요로 되어 있는데 40분밖에 안 걸린 것으로 보아 쌀 바위가 아닌 것 같다. 지도상에 석남사에서 쌀바위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직코스로 되어 있는데 나는 능선상에 올라 ㄷ 자로 걸었고 지도상에 있는 산판길도 보지 못하였다. 내가 쌀바위로 안 곳이 쌀바위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집에 와서 안 것은 새로 지도를 보고나서의 일이고 산행 도중에는 심한 가스와 망가진 도로로 느끼지 못하였다. 여기서 사진 한번 찍고 너머 쪽으로 가니 야영 터가 있고 쓰레기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거기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아 아래쪽으로 가다. 길은 풀과 나무에 가려 안 보이고 계속 내린 비로 물이 고여 빠지면서 부지런히 걷다. 바위를 딛은 것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밑에는 조그마한 낭떠러지라 간담이 서늘하였다. 10m 앞이 안 보여 영남알프스의 경승은 아예 볼 생각을 못하였다. 지루한 연봉 길을 걷다보니 우측으로 난 길이 있는데 이 길이 아내재로 가는 길인지 아리송하다. 지도는 이미 쓸모없는 젖은 종이쪽이 되어 볼 수 없었고 연장선상의 길로 가니 리본이 매여 있다. 안심하고 내려가다 보니 물소리가 들린다. 아래재는 지도상에 계곡이 없었는데 길을 잘못 들은 것이 분명하다. 꺼먼 지붕을 한 집에 나무를 세워 놓은 것이 있는데 지도가 없어 분간을 못하였다. 계곡에 내려오니 웬 사람이 있고 허름한 집이 있다. 주인이 왔다갔다하는 산장이란다. 거기 있는 청년은 부산서 왔는데 금식을 하며 며칠째 묵고 있다 한다. 거기서 밥을 해 먹고 조금 가니 와폭(臥瀑)이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구룡소 폭포란다. 조금 내려오니 주차장이 있고 한 떼의 사람들이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래재를 물으니 모른단다. 그곳은 팔복기도원으로 다리가 삼양교이고 아래재와는 180˚ 엉뚱한 곳이었다. 큰 길을 따라 남명을 향하여 내려가니 수십m 낭떠러지 위에 산을 깎아 낸 도로는 경관이 멋있었다. 호박소 50m란 표지판이 있어 급경사길을 내려가니 백연사라는 절이 있고 그 위로 계곡을 따라 가니 한국 100선에 드는 소(沼)가 호박소라는 안내글이 있다. 넓은 암반이 있는 것이 멋있었다. 내려 와 절에 들러 표지판에 있는 이무기 굴이 얼음굴이냐고 물으니 얼음골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된단다. 비가 또 와 우의를 받쳐 입고 가니 가게가 있어 얼음골을 물으니 건너편이란다. 주차장이 있어 그곳이 얼음골이어서 표를 사고 계곡에 들어가니 온 몸에 한기가 들다. 조금 오르니 너덜지대가 나오고 너덜지대에 쇠 난간으로 쳐 놓고 천연기념물 224호인 얼음골이라고 써있다. 아무리 보아도 얼음은 안 보인다. 이곳은 해발 600~750m에 이르는 넓이 900평 안의 빙곡(氷谷)으로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나면 녹는다고 써 있다. 오늘은 비가 오고 날이 차서 얼음이 없고 해가 쨍쨍 내리쪼이면 얼음이 있다한다.
그 옆에 가마골 폭포라고 있는데 하늘을 찌를 듯 높은 협곡에 실낱같이 기는 물줄기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구부러지면서 내려오는 직폭이다. 내려와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 잔 하는데 한 사람이 동석하여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는 지리산 22회 종주 기록을 갖고 있는 베테랑으로 30대의 청년이다.
여기서 내려오니 4시2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그때 시간이 3시.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남명까지 걸어 나왔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다방에 들어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으니 차에 사람이 올라 나도 오르니 한 떼의 노인들이 타며 떠들썩하다. 한 노인이 어떤 노인에게 술주정하니 “술과 차 까지 얻어먹고 그 지랄인가”하니 “인놈의 자식 차를 언제 사딱하나” 웃으면서 농담 하는 진짜 경상도 사투리와 인정에 흐뭇함을 느끼다. 밀양에 나와 택시로 역에 오니 서울 가는 표는 입석밖에 없단다. 5시10분에 출발하는 통일호 열차에 올라 특실 칸에 가서 앉았다. 차장이 와서 표 좀 보잔다. 사실 얘기를 하였다. 산행을 하여 다리가 아프니 좀 앉아 가자고 하니 기다려 보란다. 얼마 후 와서 자리를 잡아 줄 터이니 좀 생각해 달란다. 그를 따라 가니 일반석에 앉았던 사람을 일어나라고 하고 나를 거기 앉으라고 한다. '좀 생각해 달라'고 한 청구에 어떻게 보답했는지는 일기장에 없다. 설아산 오색에서 한계령 갈 때는 한계령에서 버스가 안서서 담배 두곽을 주면 세워준다는 오색약수터 주차장 직원의 말대로 하여 한계령에서 내렸는데. 9시50분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비 때문에 엉뚱한 데로 빠져 운문산행은 다음으로 미룬 채 가지산 산행만으로 만족해야 할 산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