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4 서울 한양도성길 산행기
일 시 : 2023년 6월 4일 (일요일) 08:20 ~ 17:40 (9시간 20분)
코 스 : 숭례문(남대문)-남산(270m)-광희문-흥인지문(동대문)-낙산(124m)-혜화문-숙정문-북악산(백악산, 342m)-창의문-인왕산(340m)-돈의문터-소의문터-숭례문(남대문)
(도상거리 18.6km, 실거리 23km, 만보기 37,000보)
참가자 : 동탄 무봉산산악회 유기선 회장님 포함 22명(미니버스 1대 만차)
[개 요]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청계천)과 이간수문(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을 두었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철종 때 만들어진 동여도(東輿圖)에 기록된 한양도성 지도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정문이며 1396년(태조 5년)에 완성되었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례문이라 하였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석축만 남긴 채 소실되어, 복원공사 끝에 2013년 준공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문화재 지정번호는 2021년도에 폐지됨. 따라서 숭례문을 국보 1호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숭례문에서 서울 한양도성길 산행을 시작하며....
좌로부터(존칭생략)
앞줄 : 신사맨 박완수, 산아래 김진호, 이영주, 김량원, 도도 왕덕호, 동탄 무봉산산악회 감사 최석환
중간 : 일월 배진한, 이정상, 명원, 동탄 무봉산산악회 부회장 최동옥, 동탄 무봉산산악회 회장 유기선, 달리미 최광식 부인, 동탄 무봉산산악회 부총무 이들바보 장은주.
뒷줄 : 문동설, 한정모, 영통, 망포, 얼큰스 하경구, 서상록, 달리미 최광식, 군포도사 백성기.
이상 21명 + 사진사 상선약수 지운흥 = 총 22명
힐튼호텔을 뒤로 하고 남산을 향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갑니다.
(구) 남산 어린이회관
1970년에 청소년을 위해서 국가적 관심으로 개관.
1988년 이후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으로 사용 중.
백범 김구광장에서 바라본 남산 서울타워와 (구)남산 어린이회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안중근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글.
눈앞에 이익이 보일 때는 의(의로운 이익인가?)를 생각하고,
위험이 직면하여도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한다. - 논어 -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알린 민족의 영웅이다. 뤼순(여순)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순국.
1970년 국민의 성금 등으로 일제시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이곳에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나,
기념관이 노후해짐에 따라 2004년 노무현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건립하여 개관하였다.
안중근기념관은 10:00부터 개관하여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함.
남산(南山)
본래 이름은 인경산(仁慶山)이었으나 이성계가 1395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목멱대왕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신사'라고 불리고
이때부터 인경산은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렸다.
조선 도읍 초기부터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남산 서울타워
서울 남산전파탑을 가리키는 것으로, 남산타워라고도 한다.
문화방송 등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2000년 YTN이 인수한 후 2005년에 개보수하여 5층부터 전망대까지는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산 서울타워를 배경으로...
군에서 단련된 탄력적인 몸매가 빛났던 그리고 언변이 변호사 같았던 문동설 님
헤어지지 말고 꼭 같이 살자고 맹세하며 달아 놓은 자물쇠 더미.....
영원히 변치말자. 사랑해... 사랑해라고 쓰여진 자물쇠를 배경으로... 동탄 신사 박완수 님.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니신 동탄 무봉산산악회 최동옥 부회장님.
남산에 만들어 놓은 하트 조형물
남산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전경.
서울 시가지가 연무가 끼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래 붉은 지붕의 아파트는 이태원 남산대림아파트
남산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전경.
인왕산(왼쪽), 북악산과 그 뒤로 북한산 보현봉과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 정상에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한양도성을 따라 다음 목적지로 이동
남산 하산길에 만난 나리. 마돈나 나리인가?
나리는 백합과에 딸린 화초. 백합이라고 불리는 나리 종류는 우리나라에도 20여 종이 있다.
남산 순환도로는 산책하는 이들이 많지만 휴일에는 자전거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어느 때이거나 남산 순환도로와 곳곳으로 연결된 남산 샛길은 아름답고 운치가 있다.
이 길은 남산샛길 중 한양도성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남산에서 한양도성길을 따라 내려오면 만나는 국립극장 전경
반얀트리호텔(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를 지나 바라본 신라호텔 방향 한양도성길 전경
신라호텔이 보이는 한양도성길에서....
삼성맨으로 청춘을 다 보내고 2023. 6. 1. 정년퇴직하신 달리미 최광석 님.
정년으로 퇴직하신 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 긴 세월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민을 하며 견뎌냈는가를 생각하면 존경스럽다.
이제 산과 어울려 그동안 못다 한 여가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신라호텔 인근에서... 한양도성길 산행에 막차를 타셨던 이영주 님.
한문 선생님이신가 한자에 일가견이 있으시고, 체력도 좋으셔서 오르막 계단길도 끈기 있게 잘 올라가시고, 더욱이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鑫(기쁠 흠)
신라호텔 담장을 지나며 바라본 신라호텔 정원 모습
장충체육관
1963년 삼부토건에서 건설한 대한민국 첫 돔구장, 2014년 리모델링하여 사용 중이다.
현재 배구단 GS칼텍스와 우리카드 배구단 등의 홈구장.
신라호텔 담장을 지나자 마자 만나는 장충체육관.
광희문(光熙門)
서울을 둘러싼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에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이다.
광명의 문이라는 뜻의 광희문은 1396년(태조 5) 도성을 건설할 때 도성 사소문(광희문, 소의문, 혜화문, 창의문)중 하나로 세워졌다.
장충체육관을 지나면 신당동의 한양도성길 성곽은 흔적조차 알 수 없고, 헐린 그 자리에는 대궐같은 집들만이 들어서 있다.
그러한 신당동 골목길을 지나면 4소문 중의 하나인 광희문이 반겨준다.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여성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가 설계한 DDP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건축한 세계 최대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규 모 : 연면적 86,574m2(지하 3층, 지상 4층, 최고높이 29m)
건립 기간 : 2009. 04. 28 ~ 2014. 03. 21
시설 공간 : 5개 시설 15개 공간 / 알림터, 배움터, 어울림광장,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등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간식타임.
어린 시절에 동대문 운동장으로 소풍나온 것 같은 분위가 물씬 풍기네요~
달리미 최광석 부인께서 손수 만들어 오신 도토리묵.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간수문(二間水門)
한양도성 성곽의 일부로 남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도성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든 수문(水門).
오간수문(五間水門)
한양도성 안의 모든 물줄기는 청계천의 오간수문을 통해 흘러나갔다.
오간수문의 모형을 청계천 북쪽면에 만들어 놓아 그 당시에 오간수문 형태를 알 수 있도록 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대한민국 보물이며, 속칭 '동대문'이라 부른다.
2008년 숭례문이 불타 소실되면서, 도성 사대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축조된 원형을 지키고 있다.
흥인지문에서 낙산까지는 성곽을 따라 성곽 밖에서도 걸어 올라갈 수 가 있고, 성곽 안에서도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사대문은 유교의 인의예지(신)를 따와 동서남북 사대문의 이름에 담았다.
흥인지문(興仁之門)인 동대문은 인을 의미하고,
숭례문(崇禮門)인 남대문은 예를 받들며,
돈의문(敦義門)인 서대문은 의를 지키고,
숙정문(肅靖門)인 북대문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를 뜻한다.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서울 한양도성 투어 지도에 스탬프 날인을 하고,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도 이용하고, 잠시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휴식
흥인지문에서 기념촬영
한양도성 축조시 시공실명제를 실시하였던 흔적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허리춤에 스피커를 차고 서울 한양도성길 투어 해설가 역할을 하다.
알바하지 않도록 길 안내만 맡으려고 했는데, 해설사까지 했네요.
얄팍한 지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없이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낙산(駱山)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해서 낙타산(駱駝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낙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북쪽의 북악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서울을 감싸는 네 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낙산(124m) 정상 모습.
낙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방향 전경
낙산에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낙산에서 혜화문을 향해...
멋진 포즈를 취해주시는 한정모 님
혜화문(惠化門)
1396년(태조 5년)에 창건했고 조선시대 내내 한성에서 강원도, 함경도 지역을 오가는 문으로 기능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관리 보수가 어렵다며 일제가 문루를 헐어버린 것을,
1994년 복원한 것으로 원래 혜화문이 있었던 곳과는 10m 정도 차이가 있다.
혜화문 통로 천장에 그려진 봉황?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었던 혜화동 한양도성길
금강산도 식후경.
동탄 무봉산산악회 유기선 회장님, 최석환 감사님, 명원님, 신사맨 박완수 님의 찬조로
서울에서 맛집으로 이름난 서울왕돈까스 성북동 본점에서 시원한 소주와 맥주를 곁들여 점심식사.
찬조해 주신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점심도 맛있게 드셨으니 힘내시자고요~
와룡공원을 지나 성곽을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길상사(吉祥寺)
1987년 길상화 김영한 님(1916-1999)이 법정스님께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보시하였고,
1997년 음식점을 길상사로 재건축하여 창건법회를 열었다.
법정스님은 매년 정기법회를 여시다가 이곳에서 2010년에 입적하셨다.
사진 가운데 위쪽 숲이 시작되 곳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와집 건물이 길상사.
삼청각(三淸閣)
고위정치인의 회동 장소로 사용했던 삼청각은 1972년에 건립되었고, 1970년대 말 유신시절의 요정정치 상징이었다.
2001년 이후 현재는 공연장, 한식당, 찻집, 결혼식 장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의 요정 3각 : 청운각(청운동, 현재 폐쇄), 대원각(길상사로 개축), 삼청각(전통문화공간으로 용도 변경)
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