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식 토마스 신부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사도행전 1,15-17.20-26 요한 15,9-17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들의 첫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뜨거운 무엇인가를 느꼈고 이분이야말로 구세주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 8,34)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였으며, 나중에 자신들에게 돌아올 부와 명예에 대한 자리싸움(마르 10,37 참조)을 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죽을 상황에 있는 스승을 버리고 달아나기도(마태 26,56 참조)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나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이라 밀어붙이며 행동하고, 때로는 신앙이 부담스럽고 힘들다고 느껴지면 달아나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던 첫 마음은 어디에 갔나요?
정채봉 시인은 ‘첫 마음’이라는 시에서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라고 자신의 신앙 체험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첫 마음을 유지하고 간직하기에 우리는 너무 나약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잘 아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하십니다. 첫 마음을 되찾는 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고 또 다른 이들이 용서를 청하면 그것을 받아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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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사도행전 1,15-17.20-26 요한 15,9-17
우리는 지금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도 마티아 축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가리옷 유다의 빈자리를 마티아가 채우게 되는 선출과정을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를 받아들여 사도단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가 부활의 증인으로 직무를 맡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그처럼,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살게 되면, 부활의 증인이 되고 참된 제자가 되는 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십니다. 이는 서로 사랑하는 이가 바로 부활의 증인이요, 참된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곧 우리가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함임을 말해줍니다. 곧 타인은 적이거나 경쟁자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임을 일깨워줍니다. ‘서로 사랑하되,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먼저’ 하신 사랑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
이는 당신께서 이미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밝혀줍니다. ‘이미’ 우리가 사랑받았음을 말해줍니다. ‘이미’ 사랑을 먹은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받은 이 사랑을 아는 만큼만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이미’ 우리가 받은, 바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었습니다.”(요한 15,13). ‘우리에게’ 벗이 되어주신 사랑입니다. 곧 우리의 사랑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우리의 벗이 되어 주신 바로 그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사랑이 되게 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곧 자신의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사랑이 되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사랑이 상대에게 사랑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해가 되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형제를 사랑하기보다 형제에게 사랑이 되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마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하고 묻는 율법학자에게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루카 10,36)하고 물으시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형제에게 벗이 되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 되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사랑을 통하여, 우리도 당신의 벗이 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사랑을 하라는 호소입니다.
그리하면,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진정 부활의 증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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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분명, 이미 사랑을 먹었습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호의를 입었습니다. 먹고서도 먹은 줄을 모르는 무지를 깨우치소서.
더 이상은 그 사랑을 내팽개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제 삶이 온전히 당신의 사랑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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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사도행전 1,15-17.20-26 요한 15,9-17
머물러 있는 사람의 축복
오늘 우리는 제자들의 자리를 재정비하면서 새 역사를 펼쳐가는 교회의 시작을 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모임에서 전혀 새로워진 제자들을 만납니다. ‘백스무 명가량’이 모인 자리에서 전혀 다른 꿈과 각오를 펼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참 의젓해서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니까요. 예전의 졸렬하고 옹색하고 비열한 모습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제자와 부활을 목격했던 이후의 삶은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하느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움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새 생각과 새 힘으로 살아가게 되는 새 삶을 꾸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로 새깁니다. 다시 모인 그들이 가장 처음 했던 일이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함께 기도 한 후에 제일 처음 행한 일이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봅니다. 그날 그 자리에 비어 있는 두 자리, 제일 중앙에 계시던 주님의 자리와 다른 한 사람 이스카리옷 유다의 자리입니다. 같이 뒹굴고 함께 살았던 한 사람의 자리가 허전했던 탓일까요? 그들이 행한 첫 사업은 동료의 빈자리를 메꾸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날 그 모임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초대교회의 핵심멤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열두 제자 안에 선택되지 못했을 때에 엄청 서운했을 사람입니다. 또 한편 제자들의 꿀꿀한 모습들이 실망스러워서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운타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제자들과 함께 내내 머물렀습니다. 오늘 동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기도를 들어주시며 마티아를 선택하신 하느님께서는 질긴 믿음만 있으면 그것이 곧 승리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짚어 봅니다. 주어진 일에 만족하여 주어진 만큼 충실한 것이 그분을 향한 믿음의 자세이며 끝없는 희망의 모습이라는 당부라 생각해 봅니다. 그분께로부터 “종이 아니라 친구”로 지명되는 축복은 끝까지 그분 곁에 머물렀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깁니다. 마티아 사도, 그는 처음부터 지목받는 자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분을 떠나지 않고 내내 그분 곁에 머무른 사람이었습니다. 열두제자에 뽑히지 못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그분 곁에 머무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분의 일에 끝까지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제자입니다. 오늘 그분 곁에 머무름으로 믿음의 새 제자로 이름이 올랐던 마티아 사도처럼 더욱 새로워지는 축복이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그분 곁에 머무름으로 그분의 친구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탐해 봅니다. 마티아를 통해 머무른 자의 축복을 일깨워주신 주님께 큰 찬미 올립니다. 아멘
부산교구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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