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길 / 권춘애
1. 퇴원 절차를 끝내고 병원문을 나서는 엄마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일 년 중 반년 넘는 시간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갇힌 삶을 살았다. 얼마나 징글징글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차에 오를까.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엄마의 절박했던 마음이 아프게 느껴졌다.
2. 엄마는 생명의 끈 하나를 모질게 움켜잡고 차가운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 그토록 그리던 집을 향해 가는 길목은 겨울의 끝을 지나 봄날이 와 있었다. 톡톡 터질 듯 꽃망울을 매단 나무들을 보며 엄마는 중얼거렸다. 꽃은 조금 더 있어야 피겠구나.
3. 드디어 엄마가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집안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성한 몸이 아니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했었다. 자식들조차 요양병원에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자식들은 엄마가 없는 빈집을 부동산에 내놓자는 의논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런 집에 걷는 것이 힘들고 생활하기 어렵다 해도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했다.
4. 마루 귀퉁이에 병원에서 가져온 물건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았다. 팬티 기저귀 몇 봉지와 욕창방지 매트 등 치료용 물품이다. 당장에라도 잊고 싶은 병원 흔적이지만 얼마간은 필요한 물품들이라 엄마가 찾기 수월하게 정리를 했다. 처방받은 약은 찾기 수월하게 약봉지에 아침, 점심, 저녁이라 표시하고 분리했다.
5. 엄마는 급하게 병원 생활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입원 전에 매일 다니던 목욕탕을 찾았다.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했다. 며칠 사이에 병원에 있었다는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변신을 했다.
6. 변신의 결과는 감기몸살로 이어졌다. 면역성이 떨어져 있는 몸으로 무리했으니 상태가 심해 근처 병원에 갔다. 당장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말에 엄마는 입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식들은 며칠이라도 입원을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병원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러실까 하고 이해가 되어 통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호흡기 내과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서 진료를 받고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감기가 오래 낫지 않아 일주일마다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감기는 차도가 없고 점점 심해졌다.
7.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기침을 심하게 해서 그럴 것이라 했지만 오랜 병원 생활 탓에 병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는지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하고 싶어했다. 결국,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한동안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8. 병원을 오가는 사이 길가에 꽃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삼월 말도 되기 전에 벚꽃과 개나리가 엄마의 쾌유를 기원하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피었다. 온 세상이 꽃들로 꽉 채워졌다. 엄마는 차장 너머로 보이는 고운 꽃들에게 눈길을 떼지 못했다.
9. 엄마의 엑스레이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다. 마음 졸이며 병원에 간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단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엄마의 갈비뼈가 언제 아팠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나은 듯하다. 감기도 많이 나아 일주일 복용할 처방전을 끝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밀에 날아갈 듯이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
10. 지난 일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날마다 가시밭길을 걷듯이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시간이다. 자식들은 죄인처럼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사는 동안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래오래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가시는 그날까지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1. 엄마를 모시고 꽃구경을 간다. 엄마는 자식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꽃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 따라 난분분 흩날리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 모습이 행복하게 보인다. 꽃들을 올려다보며 연신 중얼거린다. 예쁘다! 정말 예쁘다!
12. 아름다운 봄날이다. 엄마는 칙칙하고 어둡기만 했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꽃길 위에 서서 손을 흔든다.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엄마 어깨 위에 꽃잎 하나가 슬쩍 자리 잡는다. 엄마가 꽃그늘 아래서 환하게 웃는다. 엄마가 꽃처럼 아름답다. 먼 훗날 봄을 맞을 때마다 두고두고 오늘의 이 봄날을 그리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