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첨단을 걷는 모-단적 과자!’ 초코레-트
조선일보 2023.10.14
[뉴스 라이브러리속 모던 경성]’연애의 시대’총아, 강장제로 선전도
초콜릿을 강장제처럼 선전한 모리나가 초콜릿 신문광고. 조선일보 1931년 2월28일
장편소설 ‘고향’으로 이름난 소설가 이기영(1895~1984)의 초기 단편소설 ‘유혹’엔 초콜릿이 등장한다. 목사 아들인 서울 학생이 시골처녀 옥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넨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무엇을 한움큼 꺼내 놓는다. 유지로 네모나게 싼 것은 그 전에 어머니가 정거장에서 사다 준-궐연갑 같은데 든 것이었다마는 납지에 똘똘 뭉친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싫어요!”하고 옥단이는 무안한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왜요? 이거 서울서 사온게요!”하고 그는 다시 초코레트를 한 개 집어 준다.’(‘유혹’5, 조선일보 1927년1월8일)
자유연애가 물밀 듯 밀고 들어온 1920년대, 초콜릿은 ‘시대의 총아’였다. 달콤한 연애의 환상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초콜릿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이기영의 묘사를 보면 은박지에 싼 사각 초콜릿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 '초콜릿과 연인은 전생의 인연’
‘연인이여! 조코렛트를 먹으라! 나의 손에는 초코레트 하나가 쥐여진다. 그리고 반쪽은 연인의 입으로 그리고 남은 반쪽은 나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야 남은 초코렛트가 하나도 없어지는 때 오랜 시간의 사랑의 속살거림에 어느덧 달도 서편에 넘어지는 때! 우리들의 두 그림자는 문밖 고요한 지는 달빛을 끼고 하룻밤의 이별의 분수(分手)를 하는 것이다.’
월간지 ‘개벽’ 1932년 10월호에 실린 수필 ‘가을달과 연인과 초코레트’이다. ‘조코렛트’ ‘초코레트’ ‘초코렛트’처럼 표기도 제각각이다. 초콜릿은 연애와 ‘전생에서 무슨 인연이나 가지고 나온 기연(奇緣)의 글자들같다’고 쓸 만큼, 동류로 취급받았다.
◇ 1900년대초 몰려온 양과자
1900년대 들어서면서 양과자를 수입해 파는 상점들이 여러 곳 생겼다. 황성신문에는 인천의 의생성(義生盛), 서울 정동의 홍원호(鴻源號)같은 상점에서 양과자, 양주, 담배 등 서양 잡화를 들여왔다고 알리는 광고가 실려있다. 이런 과자류에 초콜릿은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리나가(森永), 메이지(明治)제과 같은 일본 회사들이 초콜릿을 본격적으로 만들면서 두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이 물밀듯 들어왔다.
◇ 커피와 함께 초콜릿 판 메이지제과 판매점
1916년 설립된 메이지 제과는 대표상품인 ‘명치 메리밀크’를 내놓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어 밀크초콜릿, 아이스크림, 우유 등을 생산하면서 일본의 대표적 제과회사로 떠올랐다. 경성에는 1930년 10월1일 본정 2정목(本町 2丁目·충무로2가)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점을 열었는데, 초콜릿과 함께 커피를 내놓아 애호가들의 단골 맛집이 됐다.
◇ 강장제처럼 광고한 초콜릿
모리나가 제과는 1930년대 신문에 스키를 타는 남자 그림과 함께 초콜릿 광고를 내보냈다. ‘그는 지치지 않는다! 결코 지치지 않는다. 쵸코레-트를 熱愛하는 까닭이다!!’
초콜릿을 강장제처럼 선전하는 홍보문구다. 심지어 초콜릿에 계란, 우유의 3배인 2160칼로리가 들어있어 추위를 이기는 데도 끄떡없다고 광고했다. 초콜릿 1개에 성인 하루 권장 칼로리에 맞먹을 만한 열량을 갖고 있다고 선전한 셈이다. 심지어 영양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의 필수품이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 여학생 대상 초콜릿 감상문 공모도
‘동경 삼영(森永)회사는 작추에 동경6대학 마크와 심볼을 넣어 만든 ‘칼리지 초코레잇’을 비롯하야 ‘밀크 하모니가’ ‘스포-스맨’ ‘올나이스’ 등의 첨단적 신품을 만들어 전국 남녀노소의 초코렛일당으로 요금 무상의 찬양을 받아오던 바 근일은 이상과 각종 초코레트에 대한 조선 여학생 제씨의 풍부한 감상담을 듣고자 좌와 같은 현상모집을 한다는데….’(조선일보 1931년2월28일)
모리나가 회사는 1931년 2월 신문에 현상공모까지 했다. 특히 여학생을 콕 집어 초콜릿에 대한 감상을 에세이나 시(詩)로 제출하면,1등 100원(1명), 2등 50원(2명),3등 20원(5명), 4등 초콜릿 1상자(5원 어치, 20명)를 준다고 했다.
◇ 현대 여성의 악취미로 꼽기도
‘초코레-트 선물 한 상자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초코레트는 한 개 두 개 자꾸 받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에 초코레트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쓸데 없는 말 같지만 이 점이 초코레트는 모-단적 과자! 첨단을 걷는 과자니까요. 받는 사람은 십분 주의하시오.’(‘신여성’1931년6월)
초콜릿에 대한 경계 경보도 발동됐다. 이화고보 교사 김창제는 현대 여성들의 악취미를 꼽아달라는 잡지 ‘삼천리’설문 조사에서 초콜릿을 활동사진(영화), ‘머리 지지기, 입술 칠하기’(화장)와 함께 꼽았다. 달콤한 초콜릿은 너무 가까이했다간 신세 망치는 금단의 열매였다.
◇ 참고자료
ABC생, 가을달과 연인과 초코레트, 개벽 1932년 10월
김창제, 현대 여성의 악취미, 삼천리 제10권8호, 1938년 8월
최자혜, 경성백화점 상품박물지, 혜화 1117, 2023